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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93화 (1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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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93화

벌써 30분째 같은 시도 중이다. 인간의 두 배 크기의 손으로 바늘에 실을 끼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의 반쯤 구부러지다시피 한 바늘 상태로 봤을 때 오늘은 텄다 싶었다. 스노우는 그러지 말고 자신이 상점에서 사 온 실 끼우는 기계를 쓰자고 말하려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블랑코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큰일 난다. 어떻게 클레이모어가 만든 걸 쓸 수 있냐며 스노우를 배신자 취급하고도 남았다.

“나중에 하는 게 어때?”

“아니,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이 리본을 봐. 내가 달아 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블랑코는 요즘 들어 잡지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마담 베리의 팬이었다. 스토마커 만드는 방법이 잡지에 나오자마자 그는 상점에 내려가 재료를 사 왔다.

리본은 그의 두터운 손으로도 비교적 만들기 쉬웠다. 그는 쾌재를 부르며 역시 마담 베리는 천재라며 칭송했다.

드레스는 못 입어도 가슴에 스토마커라도 달아 보고 싶었다. 인간에게는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드래곤의 권속에게는 성별이 없어 남자 옷이네 여자 옷이네 하고 구분할 필요가 없다.

드디어 오랜 꿈을 이루나 싶었으나 언제나 그렇듯 그놈의 바늘! 바늘이 문제였다.

“음…….”

스노우는 블랑코가 집중한 틈을 타 바늘과 실을 슬쩍했다. 블랑코가 한눈을 판 사이에 몰래 실 끼우개를 사용할 속셈이었다.

이베르 님을 생각하면 양심에 찔렸지만 그 기계는 정말…… 클레이모어란 놈들이 똑똑하긴 똑똑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편했다.

스노우는 이미 그 기계 없이는 살수 없는 상태였다. 고작 사과 다섯 개 살 정도의 금액이니 클레이모어의 배를 그리 불릴 것 같지도 않았다.

“블랑코, 어제 마을에서 잡지를 사 왔는데.”

“자꾸 말 걸지 말라니까!”

하늘까지 치켜 올랐던 블랑코의 눈썹이 잡지 표지를 확인하는 순간 초승달처럼 변했다. 블랑코가 가장 좋아하는 잡지 ‘작은 새의 소식’지였다.

스노우는 가십이 절반 이상인 그 잡지보다 의상실에서 발행하는 팸플릿을 더 좋아했지만 친구의 취향을 존중했다.

“이건 내가 못 본 최신호인데?”

“그래, 슬쩍 훑어봤는데 마담 베리의 소식이 실린 것 같았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블랑코가 뺏다시피 잡지를 낚아챘다. 그리고 읽기 시작하는 게 보통 집중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담 베리가 그리 좋을까? 물론 그녀가 개발한 리본은 스노우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그 리본 드레스는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이 처음 입었다.

자신이 산 편리한 기계는 클레이모어와 관련되었다며 화낸 주제에 마담 베리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블랑코가 야속했다.

‘그런데도 널 위해 이렇게 몰래 실을 끼워 주려는 내게 감사해라.’

정신없이 책을 읽는 블랑코를 내버려 두고 스노우는 부엌으로 들어가 숨겨 둔 기계를 꺼냈다.

버튼을 하나 눌렀을 뿐인데 30분을 씨름했던 일이 해결됐다. 양심을 팔아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앞으로도 클레이모어 공작이 이런 걸 많이 만들어 줬음 좋겠다. 신이시여, 제발 그가 많이 일하고 적게 벌도록 해 주십시오.

“블랑코, 내가 뭘 했는지 좀 봐.”

득의양양하게 돌아온 스노우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블랑코가 인간 모습으로 변신했다. 책을 읽다 말고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어, 음. 지금 내가 바늘에 실을 끼우는 데 성공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게 중요하지 않다니? 그 때문에 30분이나 씨름하지 않았나. 하지만 블랑코는 무척 비장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너도 변신해. 어서.”

“어, 왜? 또 포목점에 가려고? 천은 이미 충분히 많잖아. 네 방 하나가 비단으로 꽉꽉 차 있는 걸 모르는 애들이 없어. 그만 좀 사. 그 잡지에 무슨 비단이 새로 나왔다고 소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천이나 다 쓰고 생각해 보자.”

“포목점에 가려는 게 아냐. 의상실에 갈 거야.”

“뭐? 의상실?”

작은 바늘 귀 때문에 친구의 머리가 드디어 이상해지고 말았구나. 스노우는 얼굴이 빨개져 소리쳤다.

“치수를 재는 중에 변신이 풀리면 어떻게 하려고? 두 번 다시 인간 마을에 못 내려가고 싶어?”

“잴 필요 없어! 그냥 가서 옷을 사면 돼.”

블랑코가 기사에서 이미 만들어진 옷을 판다는 부분을 스노우의 코끝까지 들이댔다. 상상도 못한 글귀에 스노우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우린 사이즈가…….”

“엄청 큰 옷도 파니까 사이즈에 구애 받지 말고 사러 오라고 적혀 있어. 마담 베리는 어떤 고객이 오든 그 사람을 위해 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거든. 자기만의 미학 운운하며 애들이나 입을 법한 작은 옷을 만들어 내는 건 제대로 된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했어.”

마지막 대사는 블랑코가 1년 전만 해도 팬이었던 어떤 디자이너 들으라고 한 소리 같았다.

하지만 스노우는 괜히 토 달지 않았다. 대장인 블랑코가 이랬다저랬다 맘 바꾸는 일이 그간 한두 번이었나. 그리고 지금 그의 그런 변덕은 중요치 않다. 스노우는 단번에 인간으로 모습을 바꿨다.

“미학이니 뭐니 가는 길에 이야기하고, 어서 움직이자!”

난생처음 제대로 된 드레스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스노우의 심장이 뛰었다.

어째서 마담 베리가 드래곤의 권역과 가까운 산골에 떡 하니 의상실을 냈는지, 또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옷도 판다고 언급했는지 석연치 않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스노우는 의심은 많았지만 함정에 잘 빠지는 타입이었다.

인간의 걸음으로 힘들게 도착한 의상실의 입구는 놀랍도록 세련되었다. 질 좋은 유리로 만들어진 문과 흰 물감으로 산뜻하게 적인 문구까지 두 권속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둘은 그래서 더욱 겁이 났다.

“쫓아내지 않을까?”

그들은 감히 권역에 침범한 대가로 죽은 모험가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모험가 놈들은 절대 좋은 옷을 입지 않는다. 얼룩덜룩 헤진 옷은 넝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옷을 구할 방법은 그 이외에는 없었다. 물론 민가의 옷을 훔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베르의 권속으로 자존심이 있지 도둑질만은 사양이다.

“쫓아낼 것 같아.”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손님이나 안쪽에서 물건을 파는 점원의 깔끔한 옷차림에 스노우는 단번에 주눅이 들었다. 괜히 들어갔다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유리문 너머 쌓여 있는 옷에 블랑코는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나가라고 하면 내가 점원을 쫓아내겠어.”

“여긴 이베르 님의 권역이 아니야. 우리 맘대로 하면 안 돼.”

“마담 베리도 내 행동을 알면 칭찬할 거야! 그분은 디자이너가 고객을 가리면 안 된다고 했어.”

블랑코는 프레사가 마담 베리의 권역이고 자신이 그녀의 권속이라도 된 듯 굴었다. 스노우는 그 사실을 지적하려다가 참았다.

그도 점원이 손님 앞에 옷을 펼칠 때마다 눈이 놀아갔다. 유리문 너머로도 이렇게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더 예쁠까.

“아내의 옷을 사러 왔다고 하면 이해해 줄 거야. 모험가 놈들이 옷차림은 이래도 현금은 두둑한 놈들이니까.”

“더 의심 사지 않을까? 걔들은 도박장에서 돈을 날렸으면 날렸지 아내에게 옷을 사 주는 놈들은 아니잖아.”

“세상 어디를 가든 별종은 있기 마련이잖아. 돈 주머니 묵직한 거 잘 보이면 쫓아내진 않을 거야. 포목점에서는 항상 통했잖아.”

두 권속은 주머니의 위치를 점검한 후 의상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들린 밝고 청량한 종소리에 눈을 감고 싶을 정도였다.

“어서 오세요.”

걱정과 달리 점원은 쫓아내기는커녕 친절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역시 돈 주머니의 위력은 대단하다.

“부인에게 옷을 사 주려 왔네. 일단 제일 좋은 걸 보여 주게!”

“네, 여기 있답니다.”

점원은 가장 비싼 드레스를 꺼내 재촉하는 스노우에게 보여 줬다. 고급 리본과 레이스가 잔뜩 쓰인 드레스는 감동적이었다. 이런 드레스는 팸플릿에서만 봤다. 스노우는 그걸 사기로 단번에 결심했다.

“제일 큰 사이즈를 사고 싶은데.”

“제일 큰 사이즈요? 그건…… 정말 큰데요. 부인에게 안 맞을 겁니다.”

“얼마나 크길래?”

“키가 한 3미터 정도 되는 사람이나 입을 수 있는 드레스예요.”

인간이 입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대체 왜 마담 베리는 그런 옷을 만든 걸까? 심지어 가게에 팔라고 보내기까지 했다.

기행으로 홍보 효과를 노리는 건가? 덕택에 큰 사이즈를 찾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설명을 해야 하는 점원으로서는 귀찮기 짝이 없다.

“그걸로 하겠네! 부인이 딱 그 사이즈거든.”

“네? 부인이 키가 3미터라고요?”

“그렇네.”

지체했다가는 변신이 풀릴 수 있다. 마음이 급한 스노우는 일단 돈주머니를 풀었다. 점원은 기껏해야 주머니에 은화가 가득할 줄 알았는데 그가 꺼낸 것은 눈이 부신 금화였다.

“당장 포장하겠습니다.”

금화의 유혹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점원은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재빨리 포장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 앞에 블랑코가 옷 한 벌을 들고 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건 설마 그레이스 양이 입었던 드레스인가?”

“네. 색깔이랑 소재만 다르지 동일한 디자인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혼여성을 위한 드레스라 부인께 선물하기에는…….”

“패션에 미혼 기혼이 어딨어! 제일 큰 사이즈로 열 벌 포장해 주게.”

그레이스가 입었던 드레스란 소리에 블랑코는 결국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열, 열 벌이요?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나도 입고 친구들에게 선물하려면 그 정도는 필요해.”

“네? 직접 입으신다고요?”

아차 하는 순간 본심이 나왔다. 스노우가 수습하러 나섰다.

“잠깐 흥분해서 말실수를 했네. 그, 부인이 지나치게 커서 여태 맞는 드레스가 없어 힘들어 했거든.”

“아, 그러시군요.”

3미터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점원은 블랑코가 꺼내는 금화에 납득했다. 금화는 진리다.

“하지만 같은 옷을 열 벌이나 사시지 마시고, 다른 옷을 종류별로 사시는 건 어떤가요?”

“안 돼. 시간 없네. 어서 포장해 주게. 금방 가야 한다고.”

발톱의 변화를 감지한 블랑코가 외쳤다. 그 기세에 점원은 황급히 포장을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옷을 열 벌이나 요구하는 손님도 이상했지만 어째서 이 의상실은 그 정도의 재고가 있는 걸까?

하지만…… 알 게 뭔가. 옷을 한 벌 팔 때마다 보너스가 얼마나 많이 떨어지는데. 게다가 제일 큰 사이즈는 거의 세 배 가격이다. 보너스는 샘솟는 의심을 지워 버렸다.

“여기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두 권속은 옷을 받고 후다닥 의상실을 뛰쳐나갔다. 거리를 벗어나 숲속에 다다르자마자 그들은 키가 3미터는 족히 되는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해냈다!”

“샀어, 우리가 옷을 샀어!”

그것도 친구들에게 선물할 분량까지 샀다. 손을 잡고 춤까지 추는 그들의 모습을 저 멀리 나무 위에서 미노스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함정이 통했다는 것보다 그들의 금화를 수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이걸 노리고 의상실에 그도 약간의 투자를 했다.

‘이제 매일 오겠군. 제일 큰 사이즈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달라고 연락해야겠어.’

그의 계산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은 옷을 사러 왔다. 블랑코와 스노우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마담 베리는 이베르의 권속에게는 드래곤 다음 가는 존재로 통하기 시작했다.

이베르의 권속들이 그녀에게 완전히 중독되는 순간 미노스가 나섰다.

“블랑코 님.”

프레사에서 한참 옷을 고르고 있는 블랑코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비록 인간 모습이었지만 블랑코는 미노스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게 누구야. 클레이모어의 앞잡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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