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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77화 (17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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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77화

변하는 체형에 맞춰 옷에 직접 바느질을 하거나 핀으로 고정해 입는 걸 좋아하는 귀족에게 단추란 옷이나 구두를 꾸미는 장식용 이상의 의미가 없다.

서민의 입장에서는 단추보다 바느질로 꼼꼼히 처리를 해야 하는 단춧구멍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루비카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에드가’였다.

‘단춧구멍 만드는 기계 정도는 충분히 만들겠지?’

에드가라면 뭐든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오스가 부리는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능력이었다.

심지어 이오스의 마법은 시간이 지나면 풀리거나 사라지지만 그가 발명한 것은 사라질 일도 없었다.

에드가가 가진 가장 신비하고 매력적인 능력 중의 하나가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이나 만들고 싶은 것을 어떤 제약 없이 실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잘생긴 외모나 엄청난 부도 그 앞에서는 빛이 바랠 정도였다.

“마님!”

한창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다급히 불렀다. 호들갑 떠는 소프라노 톤의 주인은 바로 앤이었다.

어느새 마석마차가 도착했다. 역시 아이들을 돌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앤, 오느라 고생했어.”

“에고, 고생이라니요. 마님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요. 세상에, 손에 상처 좀 봐요. 스테판 그놈은 어떻게 은혜를 이리 원수로 갚을 수가 있나요. 여태 먹인 밥이 아까울 정도예요.”

다른 때는 조금 귀찮기까지 했던 앤의 수다가 이번에는 무척 반가웠다.

고작 하루 얼굴 못 본 것뿐인데 왜 이리 그리움이 몰려드는지……. 루비카는 어느덧 울상이 되었다.

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린 다정함에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다. 그나마 주변에 보는 눈이 많기에 그녀는 간신히 눈물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힘드셨지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요.”

“그래.”

이제 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클레이모어 공작가를 떠올리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에드가와 마음이 통하고 나서도 공작가를 떠올리면 따스함보다 냉기를 느꼈다. 서로 숨기는 것이 있기에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끝내 불안은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집’이라는 단어에 더는 수도원도 베르너 저택도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가면 커튼 색을 좀 더 따스하게 바꾸고 싶어.’

앞으로 공작가는 자신이 사랑하고 아껴야 할 공간으로 느껴졌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가족이 생긴 것이다. 남편이 공작인 덕택에 시녀부터 집사까지 바글바글한 가족이었다.

칼을 비롯해 클레이모어의 사용인은 무슨 일을 처리하든 꼼꼼히 하는 편이다. 루비카는 뒷마당에 도착한 두 대의 마석마차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 급박한 가운데에 사용인이 탈 마차와 공작 부부가 탈 마차를 따로 구분해서 보냈다.

‘에드가와 내가 탈 마차를 따로 보내지 않았으니 나름 허둥댄 건가?’

공작 부인 전용 마차가 아닌 에드가의 마차를 탈려니 기분이 묘했다. 바로 이 마차에서 그와의 결혼 조건을 조율하고 그의 뺨을 때렸다.

추억이라 표현하기에는 낯부끄러운 기억이다. 루비카는 망설이며 앤에게 물었다.

“에드가는?”

“먼저 타셨어요. 마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가 아이들과 시간을 너무 오래 보냈구나.”

말은 그리했지만 루비카는 마차에 바로 타지 않고 사제를 비롯해 자신을 돌봐 준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기회라고 여겼는지 사제는 앞으로 종종 영지 시찰을 나와 달라 청했다. 영주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나 에드가는 저주 때문에 그동안 미루기만 했었다.

루비카는 앞으로 자신이 챙기겠다고 대답했다. 차가운 공작과 달리 따스한 그녀의 태도에 사제는 흐뭇하게 웃었다. 소문대로 좋은 부인이었다.

“에드가, 나 왔어.”

마차에 올라 기쁘게 그를 불렀으나 예상외로 에드가는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침대에 모로 누워 인사도 하지 않는 게 아무래도 아까 방에 남지 않고 도망친 것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에드가.”

다시 이름을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다. 이럴 때는 평소에 그리도 배려심 넘치고 어깨에 기댈 만했던 남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유치하다.

“화났어?”

어깨를 살짝 흔들어 봤지만 대답이 없다. 단단히 삐진 것 같다. 하긴 다른 건 몰라도 질투심이나 독점욕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다.

아무래도 이 화를 푸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말로 설득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 실력 행사가 최고다.

“응?”

그녀가 그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내지도 못하는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

에드가는 최대한 반항하려 노력했으나 등을 통해 살살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과 촉감에 올라가는 광대를 숨기지 못했다.

“정말 못 당하겠군.”

결국 에드가는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애초에 그녀에게 정말 화난 것도 아니었다.

화난 척하면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연기는 성공이다.

평소보다 귀여운 목소리도 들었으니 이제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따스한 체온을 느낄 차례였다.

“계속 옆에 있어 주기로 약속해 놓고 냉큼 가 버리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섭섭했는 줄 알아?”

“그게…… 음.”

그의 품에 안겨 그녀가 눈을 도르륵 굴렸다. 이런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다니 중증도 이런 중증이 없다고 그는 혀를 찼다.

“명령조로 이야기했잖아. 부탁을 했어야지.”

그녀가 간신히 이유를 만들어 냈다. 에드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남편에게 이렇게까지 지지 않으려 드는 앙큼한 부인은 아마 그녀가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그런 점이 좋았다.

“네네, 죄송합니다. 부인.”

“기꺼이 용서하지요.”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존댓말이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식사 때처럼 소름 돋지 않았다. 장난스레 건넨 말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시중은 필요 없으니 마차에 당신이랑 나 빼고 아무도 타지 말라고 했어.”

“그래도 돼? 주치의는 당신을 좀 봐야 할 텐데…….”

“어차피 진짜 아픈 게 아니잖아. 타기 전에 대충 다친 곳을 보여 주고 큰 이상 없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마차로 보냈지.”

“아, 그래. 괜히 오래 보여 주면 의심을 살 수 있겠다. 잘했어.”

서글서글한 웃음에 그의 목이 탔다. 지금 이 대화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 모른 척하는 거야?”

“모른 척하다니?”

그를 대담하게 유혹한 건 언제고 지금은 또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하고 있다.

아니, 모른 척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 모른다. 할 수 없다. 목마른 자가 나서야지. 그는 대담하게 그녀의 손등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지금 이 마차 안은 우리 둘뿐이야.”

그제야 그녀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유혹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그녀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달아났다.

“둘, 둘뿐인데 뭐? 잡아먹기라도 하게?”

어차피 그는 지금 다리를 못 쓴다. 그녀가 달아나면 어찌할 수 없다. 에드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만으로 그녀는 온몸이 달아오르고 신경이 곧두섰다.

“이리 와.”

미치도록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저 부름에 응해 그의 옆에 누우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기대와 두려움이 그녀를 지배했다. 부른다고 냉큼 달려가자니 자존심이 서지 않아 그녀는 괜히 고개를 팽 돌렸다.

“싫어.”

“명령이라서?”

“그, 그래.”

그녀는 그가 피식 웃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부부 사이에 그런 거 너무 따지지 말자. 난 당신이 어떤 식으로 말하든 따를 건데.”

아까 침대에 모로 돌아누운 그를 유치하다고 평했지만 사실 그녀도 만만치 않게 유치했다.

오랫동안 그와 기 싸움을 한 영향일까. 루비카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그럼 이리와.”

어차피 그가 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에드가는 벌떡 일어서더니 두세 걸음 만에 그녀의 앞에 와 허리를 끌어당겼다.

“어?”

“미안하지만 해가 졌거든?”

마치 그녀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한 속삭임에 이번에도 부끄러운 건 그녀뿐이었다. 루비카는 발끝까지 달아올라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됐다.

“못 참겠군.”

새빨개져서 시선을 피한 그녀를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한 뒤 그가 키스했다.

허리를 매만지던 손이 슬슬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어제부터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몸 상태 때문에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원통할 정도였다. 금지당한 갈증과 욕망은 더욱 커져 폭발하기 직전이다.

“원래는 집으로 돌아가서 할 생각이었는데 이젠 정말 못 참겠어.”

다리도 쓸 수 있는 데다가 누추한 사제관에 있다 오니 저택에 비해 비좁은 마차 안이 더없이 화려하고 널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루비카도 마찬가지였다. 욕망은 사내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몇 번이고 살이 닿고 속을 훑는 키스를 했건만 정작 끝까지 가지 못해 몸이 달아올랐다.

“참지 마.”

말하고 깜짝 놀라 그녀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와 만나 자신에게도 이렇게 대담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깨닫는다.

어떤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구는 그녀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누구의 명령인데 따라야지.”

그가 그녀에게 손짓했다.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다는 듯 그녀가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의 손짓에 따랐다. 열망에 탁해진 적갈색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아까부터 씻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못내 걸렸다. 에드가가 침대 옆의 욕조에 물을 틀었다.

어차피 그만 쓰는 공간이라 모든 곳에 가림막이 없었다. 그녀의 바로 앞에서 그가 옷을 벗었다.

“에드가!”

루비카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관계를 가지려면 당연히 보아야 할 광경인데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에 그가 이마에 도장을 찍듯 꾹 입술을 맞췄다.

“어디든 상관없지만 더러운 몸으로 당신을 안고 싶지 않아.”

곧 욕조에서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괜한 초조함에 루비카는 발을 콩콩 굴렀다.

아, 내가 사제관에서 목욕할 때 그의 심정이 이랬구나 싶어 후회스러웠다. 한편으로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꿈틀거렸다.

단정히 옷을 입고 있는 금욕적인 모습도 아름답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분명 신이 빚어낸 존재 중 가장 아름답겠지.

그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욕망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애써 정의하면서 손을 슬쩍 내리고 눈을 떴다.

그 순간 욕조에 누워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헉!”

화들짝 놀란 그녀는 다시 손을 올려 눈을 가렸다. 하지만 이미 머리카락에 물이 똑똑 떨어지던 뇌쇄적인 푸른 눈이 각인된 것처럼 잊히지 않는다.

“루비카, 손 내려.”

그의 명령에 눈을 가리던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내려갔다. 그러나 여전히 눈은 감은 채였다.

“눈 떠.”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욕조에 누운 그의 몸이 그녀의 눈에 박혔다. 욕망에 사로잡힌 그녀는 반쯤 몽롱한 상태였다.

“이리 와.”

아까는 명령조로 말하면 싫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이번에 그녀는 순순히 다리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갔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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