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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55화 (155/212)

# 155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55화

―만약 일주일 뒤에 왔을 때 나랑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없어.

―제가 매일 밤 거울을 보며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부인이 알 수 있어요? 그때는 하녀도 제 옆에 없을 텐데요.

―알 수 있단다.

그리 대답하던 공작 부인의 눈은 얼마나 확신에 차 있던가. 가브리엘은 한숨을 쉬며 거울을 보았다. 어제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계속 이러다간 수면부족으로 죽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깟 말 한마디가 뭐라고 이렇게 망설이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야 뭐 언제나 그렇듯 못생긴 가브리엘이지요.

그런 말은 남 앞이든 그녀를 낳아 준 어머니 앞이든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는데 ‘나는 아름답다’라는 말은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조차 하지 못하다니. 자신이 이렇게까지 소심한 인간이었는지 화가 났다.

“정신 차려, 가브리엘.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어.”

가브리엘이 거울 너머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평생 못생겼다 놀림 받고 무시받으며 청혼도 못 받고 노처녀로 살다 죽을 거야?”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영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나 오빠의 성격상 그녀가 금전적 어려움에 처하는 걸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다. 타티아나랑 함께 운영하는 ‘작은 새의 소식’에서 얻는 수익금만 해도 평생 먹고살 정도는 될 것이다.

“안 하는 거랑 못하는 건 다르다고.”

결과는 똑같은 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제발 핑계거리 좀 만들지 말고 협조해 줘.”

가브리엘이 눈을 감고 거울에 이마를 콩콩 박았다. 이까짓 말이 뭐기에 망설이는 자신이 미울 정도였다.

“아!”

한참 머리를 쥐어박던 그녀는 곧 뭔가를 깨달았다.

“눈을 감고하면 되잖아!”

왜 이제야 그걸 깨달은 걸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부담스러워 말하지 못했다면 눈을 감고 말하면 된다. 공작 부인이 내민 조건에는 눈을 꼭 떠야 한다는 건 없었다.

“헤헤, 난 역시 잔머리의 천재야.”

이틀간 거울을 계속을 보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기 때문일까. 가브리엘은 아주 자연스럽게 거울 속의 자신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고 공작 부인과 한 약속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름답다.”

눈을 감았어도 생각보다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담은 거울이 보이지 않으니 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아름답다.”

두 번째 말했을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원래 무슨 일이든 처음이 제일 어렵기 마련이다. 아홉 번쯤 말했을 때 가브리엘에게 고민이 생겼다.

‘이틀간 못했으니 열 번이 아니라 삼십 번쯤 해야 하나?’

아홉 번이나 했는데 삼십 번은 또 못할 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찝찝함을 남기느니 그냥 밀린 만큼 화끈하게 오늘 다 말해 버리자. 가브리엘은 그리 결심하고 속사포처럼 연달아 ‘나는 아름답다’라고 말했다.

스무 번쯤 말했을 때 목이 말라 오는 게 느껴졌다. 스물다섯 번째쯤엔 감고 있는 눈이 괜히 가렵고 답답해 세수하고 싶어졌다. 스물여덟 번째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나는 목마르고 눈 가려운 고통까지 참고 이런 쇼를 벌이고 있나. 스물아홉 번 말했을 때 그녀는 가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결국 눈을 떴다. 이제 고작 한 번만 더 말하면 되는데 다시 눈을 감자니 오기가 생겼다. 스물아홉 번 말하는 사이에 그녀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나는…….”

가브리엘은 침을 삼키며 거울 속의 자신을 도전적으로 바라봤다. 여전히 거울 속 자신은 아름답기는커녕 예쁘지도 않았다. 작은 키에 통통한 몸. 지나치게 숱 많은 붉은 머리와 연한 눈썹. 얼굴에 주근깨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정말 자신은 못난이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한탄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아무것도 아닌 자신 때문에 루비카가 요구한 조건을 눈을 감는 편법을 써서 수행하는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났다.

‘그냥 거울에 비친 상이야.’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아니 못생긴. 이깟 게 뭔데 이렇게 망설이는 거야.

가브리엘은 심호흡하며 손을 꼭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더니, 자신을 이루는 아주 일부인 외모조차 이기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탕트 백작가에서 제일 똑똑해. 다른 언니 오빠보다 책도 잘 읽고 수학도 잘했어.’

그런데 고작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두려워 이러고 있다? 그건 정말이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가브리엘은 심호흡한 뒤 손을 꼭 잡고 거울을 바라봤다. 그녀는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장점을 열거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아름답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쉬었다. 달리는 말을 탔을 때보다 더 산소가 부족했다. 결국 자신이 해냈다는 기쁨과 이런 쉬운 일을 그리 망설였다는 허탈함 끝에 어떤 깨달음이 그녀를 엄습했다.

‘……처음이야.’

자기 자신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거울을 보며 ‘참 못생겼다.’라고 자신을 평했다. 그리고 타티아나처럼 키가 크고 마르면 좋겠다고, 조금 바보 같은 느낌을 주는 눈 대신 어떤 남작가의 영애처럼 야무지게 올라간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 매번 거울 앞에서 그녀가 닮고 싶은 여인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조금이라도 닮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봤지만 실상 그녀는 거울 속에서 자신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바보, 멍청이!’

원망스러웠다. 왜 가족들마저 자신을 못난이 취급하느냐고 미워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누구보다 자신을 못난이 취급한 건 자신이었다.

―그래요, 어머니. 전 못생겼으니까 옷이라도 예쁜 걸로 사 줘요.

남에게 비난을 듣고 싶지 않았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그녀가 먼저 나서서 그리 말하면 아무도 함부로 가브리엘에게 ‘못생겼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을 그리 하찮게 여기면서 자신을 못난이 취급한 다른 사람을 원망한 건 자가당착이다.

거울 속에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된 자신을 바라보던 가브리엘이 그만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워 버렸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찾지 않고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니 더욱 거울을 보는 게 힘들었다.

‘공작 부인이 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 알겠어.’

참 닭살 돋는 짓을 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깊은 뜻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인 양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으며 살아왔는데, 진짜 바보는 자신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말을 하며 울지 않았다는 게 그녀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하지만 다음날, 거울을 보며 가브리엘은 다섯 번째로 ‘나는 아름답다’고 말할 때 기어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아름…… 다워.”

그녀는 화장대에서 손수건을 찾아내어 코를 킁 풀었다. 덕분에 코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얼굴이 우스워졌다. 원래 그녀였다면 그 꼴이 되면 황급히 거울에서 멀어져 세수를 하든 차가운 수건을 올리든 코를 가라앉히려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가브리엘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가슴을 쭉 펴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눈이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제법 괜찮지. 아니, 이 말도 영 아니야. 역시 공작 부인이 부탁한 말로 해야 해. 가브리엘, 너는 아름다워.”

삼 일간 거울을 보고 씨름했더니 거울 속의 자신에게 제법 정이 들었다.

“키가 작고 통통하지만 뭐 어때. 귀엽잖아.”

어머니와 백작가에 자주 드나드는 디자이너들을 그녀에게 언니들처럼 살을 뺄 것을 종용했지만, 살을 빼면 이 귀여운 느낌이 사라질걸.

“속눈썹도 제법 풍성해. 속눈썹이 풍성한 건 미인의 조건이래.”

그렇게 말하고 가브리엘은 혀를 쏙 내밀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진짜였다. 예전에 그녀는 거울을 보면 항상 자신의 단점을 찾느라 바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장점을 찾았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 심지어 단점이라고 느꼈던 것도 다르게 바라보니 장점이었다.

“그래. 나는 아름다워.”

이제 더 이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말하는 게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진심으로 그리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깎아내리거나 말거나 스스로 자신을 먼저 아름답다 여기고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날 비하하지 마.”

공작 부인은 자신과 한 약속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다시 만났을 때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리 호언장담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울 속 자신의 외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가브리엘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건 백작 부인이었다.

“가브리엘, 요즘 고민거리가 있니?”

“없어요.”

곧 어머니가 열 차 모임에 초대할 사람들에게 나눠 줄 선물을 포장하며 가브리엘이 산뜻하게 대답했다. 덕분에 백작 부인은 애가 잔뜩 탔다. 가브리엘의 유모에 따르면 밤마다 방문을 꼭 잠그고 혼자 틀어박혀 있는데 두런두런 말소리가 같은 게 들려 걱정된다고 했다. 대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존심 다 버리고 공작 부인에게 전서구를 날렸더니 그저 서로 마음 탁 터놓고 즐겁게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는 답장이 왔다.

“가브리엘, 이번에 열 차 모임에 네가 입을 드레스를 새로 짓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내가 주최하는 모임인데 내 딸이 세상에서 제일 반짝반짝 빛나야지.”

결국 백작 부인은 재정적 출혈을 감수하고 가브리엘에게 미끼를 던졌다. 새 드레스처럼 가브리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없다. 기분 좋아진 딸이 분명 ‘전 가만히 있으면 눈에 안 띄니 반짝반짝 빛나려면 보석을 잔뜩 단 드레스를 지어야 해요.’라고 응수하며 농담을 가장해 한몫 단단히 챙기려 들리라.

“새 드레스요? 됐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가브리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백작 부인은 대경실색해서 외쳤다.

“무슨 소리니? 새 드레스가 필요 없다니!”

사실 가브리엘의 옷은 방 하나를 채우고 남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항상 ‘옷이 많으면 뭐해. 입을 옷이 없는데.’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 딸이 새 옷에 반응을 하지 않다니, 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네가 새 옷이 필요 없다니. 이건 말이 안 돼……. 가브리엘, 안 되겠어. 당장 주치의를 불러 검사를 받자꾸나.”

호들갑을 떠는 백작 부인의 모습에 가브리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결국 공작 부인과 있었던 일을 아주 조금 실토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내일 공작 부인을 만날 때 마담 카나도 같이 만나기로 했어요. 그때 아마 제게 어울리는 옷이랑 머리 스타일, 화장법 같은 것도 추천해 줄 것 같아요.”

“마담이 그런 것까지 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루비카는 정확히 누가 엘리제를 변화시켰는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실토했다간 어머니와 함께 마석마차를 타고 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가브리엘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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