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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41화 (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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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41화

“어제까지만 해도 크리스토퍼의 의상실이 아니면 싫다고 울더니…….”

가브리엘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뺨을 한계까지 붉게 칠한 터라 색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카나의 의상실로 하고 싶어요.”

백작 부인은 딸에게 돈을 아끼는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막내딸은 그녀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딸이 미모에 박한 평을 들을 때마다 모두 낳은 어미인 자기 잘못처럼 느끼곤 했었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즉석에서 탕트 백작 부인이 결정을 내렸다. 탕트 백작 부인에게 소개하겠다고 카나한테 말은 했다만 루비카는 일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질 줄 몰랐다.

“드레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저도 저런 푸른 드레스를…… 입고 싶어요.”

가브리엘은 옷이라도 비슷하게 입으면 자신도 엘리제처럼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했다. 그녀는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푸른 드레스?”

루비카는 잠시 숨을 참았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가브리엘과 로열 블루는 상극이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가브리엘에게 네게 어울리는 색은 따로 있다고 속살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가브리엘은 루비카의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발랄하게 말했다.

“어쩌면 솔라나양은 ‘작은 새의 소식’에 실릴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새의 소식?”

“가브리엘, 공작 부인처럼 고상한 분 앞에서 그런 가십지를 입에 올리면 어떻게 하니?”

“가십지라니요. 재미있는 칼럼이랑 좋은 정보가 가득한, 소녀들을 위한 작은 신문이라고요.”

“그게 더 위험해. 쓸데없는 사상을 젊은 아가씨에게 주입시키지 않니? 대체 왕이 여자인 나라가 있다니.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퍼트리는 가십지가 유행하는 건 영 좋지 못한 것 같구나.”

루비카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은 딸이 공작 부인 앞에서 그런 신변잡기나 퍼뜨리는 정보지에 대해서 말하게 둘 수 없었다.

“이 냅킨의 자수 좀 보렴. 정말 예쁘구나. 역시 클레이모어의 침방이야.”

“그건 마님께서 직접 하셨답니다.”

“부인께서?”

앤의 말에 탕트 백작 부인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어머, 그럼 그 소문이 진짜였군요.”

“소문이요?”

“각하께서 부인을 너무 아껴 자수할 때 힘드실까 봐 바늘에 실을 꿰는 기계를 직접 발명하셨다는 말이요.”

순간 루비카는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수습했다.

“그냥 심심해서 만든 거라고 하셨네. 그렇지 앤?”

“호호호.”

앤은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백작 부인은 “부인에게 아무래도 진심을 말하기는 부끄러우셨나 보네요.”라고 대답했다. 루비카는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자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날 위해서 만든 건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 것 같았다. 그래 놓고 그냥 시간이 남아서 만들었다고 했단 말이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는 왜 항상 쓸데없이 차가운 말로 자신을 방어하려 드는 걸까.

“마님.”

때마침 칼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시를 낭송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었구나.”

차 모임을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우정에 대한 고전 시를 읊기로 했다.

“엘리제에게 준비를 시켜야겠군.”

“마님.”

칼이 할 말이 있는 듯 그녀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각하께서 러셀 경을 보냈습니다.”

“러셀 경이라고?”

“설마 그 러셀 경?”

갑자기 테이블 주변이 웅성거렸다. 시나 학자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루비카는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 티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여상히 대답했다.

“갑자기 러셀 경은 왜 보냈지?”

“각하께서 차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사죄의 뜻으로 시 낭송을 대신하실 분을 보내셨습니다.”

아무래도 러셀 경이란 사람은 유명한 시인인 듯싶었다. 루비카는 괜히 질문해 망신살이 뻗치지 않은데 안도하여 그러라고 허락했다.

그녀의 짐작대로 러셀 경은 유명한 시인이었다. 다만 도도하고 괴팍하기 이를 데 없어서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부름에 응하지 않는 자였다. 그런 그가 이 차 모임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아카데미에 다닐 때 에드가에게 과제를 하나 도움받아 낙제를 면했다. 에드가는 그에게 오지 않으면 그때 그 과제가 자신의 도움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러셀은 먼저 루비카의 손등에 입 맞췄다. 그는 줄곧 에드가가 대체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오만한 그가 좋아하게 될 사람은 만만치 않은 성격이거나 엄청난 미인일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눈앞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따뜻한 느낌의 여인이 있었다.

러셀은 그 뒤 분수대 앉아 시를 낭송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와 분수대의 물소리에 사람들은 최면이라도 걸린 듯 빠져들었다.

‘읊기로 한 시랑 다르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시를 들었던 루비카의 얼굴이 점점 시뻘게졌다. 시는 남성이 한 아름다운 여성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였다. 더 부끄러운 건 러셀 경이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낭송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집사가 ‘대신’ 하실 분을 보낸다고 하셨지요.”

“원래는 각하께서 읊기로 했나 봅니다.”

“허, 그 클레이모어 공작이 이렇게 변하다니…….”

마음을 고백한 자는 더 거리낄 것이 없어 용감해진다더니. 루비카는 차 모임 내내 점점 퍼져나가는 이야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건 오해라고 주장할 수 있었으나 이젠 오해도 아니었다.

‘대체 저 사람을 부르는 데 얼마나 쓴 걸까?’

주변의 수군거림을 보았을 때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루비카는 에드가가 빚이라도 진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뭐, 빚이 있어도 상관없…… 진 않겠구나.’

그녀는 에드가를 위해 최대한 전쟁을 막을 생각이었다. 전쟁을 막는데 성공하면 은행 또한 망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돈을 썼으면 나도 슬슬 욕을 먹지 않을까?’

이쯤 되면 반은 오기였다. 돈을 들여 새로 개발한 장미꽃, 혀를 녹일 정도로 단 케이크, 대 시인, 새롭게 사들인 테이블과 식기 그리고 비싼 차.

무도회를 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차 모임에 썼다. 이쯤 되면 정신 나간 여자라는 소리 정도는 나와 줘야 한다. 루비카는 차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는 귀족들이 마차에서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공작 부인이네.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네.’ 같은 입방아를 찧길 원했다.

‘난 정말 이 자리에 안 어울리긴 해.’

모두 자신에게 과했다.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 자리도 과했지만 에드가는 더 과했다. 어째서 그처럼 멋진 남자가 자신에게 목매는지 루비카는 이해할 수 없었다.

* * *

차 모임을 끝내고 영지로 돌아가는 마석마차 안의 화제는 단연코 루비카였다. 그러나 루비카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오갔다.

“클레이모어 공작이 수도 보석상을 쓸고 다닌다길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등장할 줄 알았더니…….”

탕트 백작 부인은 옐로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드레스에는 요청대로 브로치 정도만 달았으나 대신 목이 무거울 정도로 화려하고 비싼 목걸이를 했다. 그래도 공작 부인 때문에 빛이 바랠까 두려웠다. 백작 부인은 어쨌든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전 수도 의상실에서 맞춘 드레스가 아니라서 놀랐어요.”

“그래. 영지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의 것이라니……. 그 디자이너는 이제 유명해질 거야.”

백작 부인은 손톱을 깨물었다. 왜 자신은 진작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무명의 디자이너를 발굴하다니……. 카나의 드레스를 입는 사람들은 그 디자이너를 찾아낸 사람이 공작 부인이란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영지의 디자이너이니 클레이모어 영지는 더욱 부흥하겠지. 안 그래도 돈이 많은 공작가인데 참 너무할 정도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카나의 의상실에 연락해야겠구나. 하루라도 빨리 약속을 잡지 않으면 옷을 주문할 수 없을 거야.”

“어머니, 아직 사교계 시즌은 멀었으니 그렇게까지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가브리엘, 누가 네 드레스 때문에 서두른다 했니?”

“네?”

“내 드레스를 주문할 거야. 앤을 봤지? 십 년은 더 젊어 보이더구나!”

사교계 명사로 오랜 시간 살아남은 탕트 백작 부인의 감이 외쳤다. 그 드레스는 반드시 유행하고 만다고. 유행을 놓치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보석을 좀 더 달 거야. 보석을 달지 않은 옷은 영 입을 마음이 들지 않더구나. 진짜로 공작 부인이 가슴 브로치 하나 달지 않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굉장히 검소한 분이신 것 같아요. 하지만 귀한 장미꽃을 손님에게 나눠 주는 걸 보면 인색한 것도 아니었구요.”

탕트 백작 부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순진한 가브리엘은 그것이 오직 호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은 초대장을 받은 순간 이 모임이 공작 부인을 무사히 사교계에 적응시키기 위해 준비된 일임을 알았다.

“가브리엘, 정말 무서운 건 장미를 나눠 준 노림수란다. 그게 공작이나 집사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작 부인의 생각이라면 보통 여자가 아니야.”

“장미를 나눠 준 게 노림수라고요?”

“그래. 공작 부인은 모임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장미 화분을 나눠 줬어. 선물받은 사람들이 이걸 그냥 둘 것 같니? 이 희귀한 장미를? 그것도 클레이모어 공작가에서 선물한 걸?”

“……분명 근방에 사는 유력가나 귀족을 불러 자랑을 하겠지요.”

“그래. 그리고 남들이 가진 새롭고 귀한 걸 가지지 못하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귀족의 특성이지.”

탕트 백작 부인의 입을 삐죽였다. 자신도 귀족이면서 다른 집단에 대해 말하듯 하는 게 그녀의 습관이었다.

“곧 테일러 장미를 자기에게 팔아 달라는 사람들이 공작가에 몰려들겠네요.”

“가브리엘, 어쩌면 그 장미 화분은 네가 시집갈 때 웨딩드레스값을 하고도 남을 거야.”

가브리엘은 제 발아래에 있는 장미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은 화분의 꽃 몇 송이가 그 정도로 비싸질 거라니.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화분을 선물받았을 때는 그저 기뻤는데 그 안에는 복잡하고 깊은 속내가 숨어 있었다.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은 사교계 명사가 될 거야.’

장담컨대 그녀의 어머니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리라. 그녀가 걸치는 것, 먹는 것, 신는 것에 모두가 촉각을 곧두세우리란 예감이 들었다.

“가브리엘.”

깊은 생각에 빠진 그녀를 타티아나가 불렀다. 실컷 이야기하다 지쳤는지 탕트 백작 부인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쓸 거지?”

암호 같은 말에 가브리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차 모임과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이다.

“요리사에겐 우리 취재원의 하녀가 몰래 빠져나가서 슬쩍 질문했어. 시녀장은 내가 맡았으니 걱정하지 마.”

“쉿, 타티아나. 엄마가 들을지도 몰라.”

“괜찮아. 완전 푹 잠드셨어.”

타티아나가 탕트 백작 부인을 폭 찔렀다. 어찌나 곤히 잠들었는지 몸을 뒤척이지도 않았다. 두 소녀는 치미는 웃음을 참았다.

백작 부인이 싫어하는 ‘작은 새의 소식’은 그녀가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놓은 타티아나가 몰래 만들고 있는 잡지였다. 가브리엘은 그 잡지에서 가장 신랄한 칼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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