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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40화 (140/212)

# 140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40화

자작 영애의 어깨쯤 오는 키의 작은 소녀는 어머니를 닮아 동그란 볼을 가졌는데 볼을 지나치게 붉게 칠해 꼭 피부가 처진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검은색으로 칠한 눈썹은 붉은 머리와 분명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성숙미를 강조한 듯한 드레스는 말할 것도 없이 안 어울렸다.

“가브리엘, 인사.”

넋 놓고 있던 탕트 백작 영애 가브리엘은 친구의 속삭임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어머, 귀여워라.’

적어도 그 웃음은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짙은 화장에 숨겨져 이를 눈치챈 사람은 루비카밖에 없었지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작 부인. 저……, 저…… 드레스가 무척 예쁘세요!”

가브리엘이 넋 놓고 보고 있었던 건 바람결을 따라 나부끼는 루비카의 드레스 리본이었다. 뜻하지 않은 솔직한 칭찬에 루비카의 뺨이 붉어졌다.

“가브리엘.”

하지만 기뻐한 건 루비카뿐이었다. 가브리엘은 어머니의 낮은 음성에서 경고를 읽었다. 부인 앞에서 미모를 칭찬하지 않고 대뜸 드레스만 칭찬하다니…….

“부, 부인이 안 예쁘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에요.”

“가브리엘!”

결국 탕트 백작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딸의 팔을 잡아 제 뒤로 잽싸게 숨기더니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 얘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답니다. 별다른 뜻은 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번 시즌에 사교계에 데뷔하는데…… 보다시피 많이 모자란 딸이니 부인께서 어여삐 봐 주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황급히 딸의 팔을 잡고 떠났다.

“가브리엘, 내가 정말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네 언니들은 다 얌전한데 너는 대체 왜 그러니? 타티아나 반만 닮으면 안 되겠니?”

어머니의 타박에 아래로 축 처진 가브리엘의 어깨가 더 처졌다. 루비카는 당장 가브리엘에게 가서 자신은 네 말에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드레스를 칭찬해 줘서 기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마님, 다음 손님이에요.”

하지만 루비카는 이 모임의 주최자였고 인사를 나눠야 할 손님이 많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브리엘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다음 손님을 향해 환히 웃었다.

“공작 부인,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오는 동안 정원에 장식된 꽃이 너무 예뻐서 내내 탄성을 질렀어요. 대체 무슨 꽃인가요?”

“세사르 경이 개발한 테일러 장미이네.”

“꽃을 새로 개발했다고요? 세상에…… 정말 대단한 일이로군요.”

“드레스가 무척 예쁩니다. 어느 의상실에서 주문하셨습니까?”

“카나의 의상실에서 주문했네.”

“카…… 나. 수도 의상실 목록에는 없는 이름이군요.”

이후 이어지는 질문에 대답하고 인사하느라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세사르 경의 장미와 그녀의 옷에 대한 평은 좋았다. 그들은 조심스레 가슴 장식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루비카가 간단히 대답한 다음 앤이나 엘리제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얼굴에서 경련이 일 정도로 웃었다. 하지만 루비카는 손님의 드레스나 머리 장식을 구경하느라 내내 즐거웠다. 고위 귀족들의 유행이나 관심사에 대해 아는 것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일이 잘 풀리는 것이 가장 반가웠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드레스와 장미에 대해서 물었는지 모른다.

“마님, 피곤하시지요?”

“괜찮아. 이제 슬슬 내 테이블로 가야겠구나.”

루비카의 자리는 가장 유명한 사교계 명사인 탕트 백작 부인과 같은 테이블이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백작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처음에 솔라나 양이 자기를 소개했을 때 제가 깜짝 놀라서 몇 번이고 이름을 물어봤어요. 세상에, 그 아이가 그렇게 예뻤다니. 이 일로 내가 인정하고 말았지요. 이미 예쁜 걸 알아보는 눈이 있어도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능은 내게 없다고요.”

그녀의 수다에 루비카는 잔잔히 미소 지었다. 에드가는 백작 부인이 시끄러워서 귀찮다고 평했지만 루비카는 달랐다.

‘내가 안 떠들어도 되니 좋네.’

화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탕트 백작 부인의 수다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루비카는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다 못해 벌써 몇몇 남녀는 서로 수줍은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성공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던 그녀는 갈색 눈과 마주쳤다. 스테판이 무척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호위대장인 그는 그녀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녀를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듯 불만을 넘어선 증오가 일렁거렸다.

‘와, 여기 참석하느라 에드가 호위를 못 맡는 게 저 정도로 화날 일인가? 그가 그렇게 좋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그에게는 업무의 일환이겠지만 호위를 보는 것보다 훨씬 편한 일이다. 하지만 스테판은 자신을 정열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때때로 집무실 쪽을 보고 한숨 쉬었다. 그는 공작을 걱정하다 못해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설마…….’

불현듯 떠오른 가능성에 루비카는 손으로 입을 막을 뻔했다.

‘에드가를 좋아하나?’

그게 아니라면 저 집착이 이해되지 않는다. 스테판에게 호위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고 지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루비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스테판이 가엾었다. 그녀는 측은지심을 담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루비카는 소리 없이 입을 움직여 말을 걸었다.

‘왜 그러는지 다 알아요. 힘내요.’

스테판의 눈에서 불똥이 일어났다. 뭘 다 안다는 건가? 설마 내가 아마눈의 간자라는 걸 눈치챈 걸까? 설마 지금 공작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건 그녀와 공작이 꾸민 계략인 걸까?

스테판은 분노를 누르기 위해 눈앞의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게 드시면 안 됩니다. 음미하듯 천천히 드셔야 합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칼이 스테판의 행동을 저지했다.

“지금 부인과 짜고 쳐 나를 골탕 먹이려는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칼은 정중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되물었다. 스테판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저었다.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그녀 때문에 요즘 들어 되는 일이 없다.

* * *

루비카의 예상대로 초대된 이들은 차를 마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접시에 가득한 스티븐의 케이크와 과자를 먹는 순간 그들의 고통은 보상받았다.

“케이크가 무척 훌륭하군.”

“이 과자는 처음 먹어 보는군요. 겉은 바삭한데 안은 어쩜 이리 촉촉하고 달달할 수 있을까.”

스티븐은 루비카의 꾐에 빠져 시작한 디저트 만들기에 푹 빠졌다. 루비카는 수도원 생활을 하며 들었거나 맛본 디저트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끊임없이 제공했다. 디저트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세리토스 왕국의 귀족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는 케이크와 과자였다.

한차례의 기쁨이 지나가고 그들은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단연 화제는 엘리제의 변신이었다.

“처음에는 솔라나 양을 못 알아봤다니까. 그렇게 예쁜 아이인 줄 전에는 짐작도 못했지 뭐예요.”

“대체 누가 그렇게 변신시켰담?”

“일단 옷은 카나의 의상실에서 주문했다고 하더군.”

“거기서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도 조언했을까?”

부인들의 머릿속은 카나의 의상실로 꽉 찼다. 공작 부인과 시녀들이 입은 드레스는 파격적이지만 무척 예뻤다. 보석 브로치를 몇 개 단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보다 보석 하나 달지 않은 그들의 드레스가 더 화려해 보였다. 게다가 앤의 드레스는 점잖고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엘리제가 있는 테이블로부터 시작된 ‘크리스’니 ‘리본’이니 하는 이야기가 바람결의 따라 루비카에게까지 들렸다.

“마담 카나에게 나도 옷을 주문해야겠어요.”

“부인께서 입은 옷과 비슷한 걸 주문하고 싶군요.”

다들 루비카의 가슴 장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루비카는 쏟아지는 칭찬에 쑥스러워 볼이 발그레해졌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참 얌전하고 상냥한 부인이라고 평했다.

“내 딸도 마담 카나를 만나면 솔라나 양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

부인들이 그런 이야기로 분주할 때 남자들은 다른 의미로 분주했다. 모임에 초대된 몇몇 영식은 엘리제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고, 아예 자신의 테이블에서 벗어나 그녀의 테이블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부럽다.”

가브리엘의 속삭임에 타티아나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가브리엘, 너도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 대꾸는 가브리엘에게 별 위안이 되지 않았다. 똑같은 부모의 몸에서 태어났는데 언니들은 어딜 가든 미인 소리를 듣고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항상 언니들에게 비교당하고 그들의 미모를 돋보이게 해 주는 존재에 불과했다.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사교계 데뷔 전이라 무도회에 참석한 적은 없지만 솔라나 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기가 없기로 유명했다.

―가브리엘, 지금처럼 굴면 너도 솔라나 양처럼 춤 신청을 받지 못해서 무도회 내내 우두커니 서서 남들이 춤추는 걸 구경이나 해야 할 거야.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말로 가브리엘을 겁박하며 살을 빼라고 했다.

―난 오빠가 있으니 괜찮아요. 정 안 되면 오빠랑 추면되지.

그리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어머니 속을 뒤집어 놓았지만 사실 두려웠다. 춤 신청을 못 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어머니가 자기에게 그러듯 춤 신청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거였다.

왜 사람들은 누가 누구에게 춤 신청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숫자를 세고 그걸 조롱거리로 삼는 거지? 고작해야 춤인데!

가브리엘은 얼굴을 본 적 없는 솔라나 양에게 동병상련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 와서 보니 그건 자기 홀로 느낀 정이었다. 솔라나 양은 인기 없기는커녕 추종자를 구름 떼처럼 몰고 다니는 여인이 되었다.

‘하지만 정말 부럽고 멋진 건 저 태도야.’

그저 추종자들을 몰고 다니는 것은 부럽지 않았다. 그런 미인은 많이 봤다. 일단 제 위의 두 언니가 그랬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런 언니들이 딱히 멋지거나 부럽지 않았다. 두 언니는 추종자들의 수로 경쟁했고 은근히 그걸 과시했다. 가브리엘은 그놈들이랑 다 결혼할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걸로 자랑이냐고 속으로 혹평했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했다. 그런 태도가 가브리엘의 눈에 퍽 멋져 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열렬한 눈으로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엘리제랑 친해지고 싶니?”

“아.”

공작 부인의 상냥한 말에 가브리엘은 자신이 결례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화에 전혀 참석하지 않고 솔라나양만 쳐다본 것이다. 엘리제를 불러 주겠다는 말에 번뜩 정신이 들어 가브리엘은 손사래를 쳤다.

“말을 걸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그냥 드레스가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어요.”

“어머, 고맙구나.”

솔라나 양의 드레스를 칭찬했는데 공작 부인이 볼을 붉히며 기뻐했다. 가브리엘은 무척 친절한 공작 부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네 의견에 동의한단다. 솔라나 양의 드레스도 드레스지만 부인의 드레스는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머니.”

“왜 그러느냐.”

“데뷔 무도회에 입을 드레스를 바꿀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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