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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31화 (131/212)

# 131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31화

당연했다. 그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있는 기사였다. 집무실에 앉아서 책과 설계도를 들여다보는 에드가가 그들처럼 엄청난 근육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음, 저런 몸도 좋지만 에드가도 제법 괜찮아.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것치고는 근육이 제법 붙었잖아. 너무 우락부락한 것보다 그렇게 적당히 마른 근육이 더 좋아.’

‘얼굴은 확실히 에드가가 낫지.’

눈앞의 훈훈한 광경에 집중해야 하는데 에드가가 생각났다.

“엘리제, 그거 좀 줄래?”

“아, 쌍안경 말씀이시군요.”

엘리제는 눈치 좋게 바구니에 넣어 온 쌍안경을 건넸다. 원래 이 쌍안경을 통해 눈여겨볼 만한 기사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하지만 루비카는 기사들을 보는 척 에드가의 집무실 쪽으로 쌍안경의 방향을 틀었다.

‘흠, 또 보고 있네.’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에드가는 창가에 바짝 붙어 있었다.

‘뭐야, 저기가 오페라 극장 박스석이라도 돼? 아주 의자에 앉아 제대로 구경하고 있는데.’

쌍안경으로 그의 표정까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루비카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체 이 정원의 뭐가 그리 재미있기에 저기 앉아 구경하고 있는 걸까. 게다가 그는 이 저택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럴 시간에 제대로 나와서 산책이나 하지. 풀이 자란 모습이랑 꽃이 핀 걸 가까이에서 보고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그래야지. 저래서는 운동 부족이야.’

그녀는 나중에라도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몸은 운동이 딱히 필요 없을 정도로 탄탄했지만 젊어서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서른이 넘어 무너지기 쉬웠다. 루비카는 젊은 시절 제 외모만 믿고 술을 진탕 마시고 궐련을 피워 대서 외모를 한방에 잃은 남자를 여럿 알았다.

‘진짜 꼴불견은 그래도 여전히 자기가 미남인 줄 아는 놈들이지.’

에드가는 다행히 커피 마시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예민한 남자라 딱히 궐련을 즐기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피로연장에서 물 대신 샴페인을 자꾸 마신 게 걸렸다. 집무실에서 그녀 몰래 술을 마시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아, 그 외모를 잃으면 국가적 손실인데…….’

외모도 외모지만 건강을 잃는 게 더 큰일이다. 루비카는 에드가에게 함께 산책이라도 하자고 권유하기로 결심했다.

“마님, 뭐가 그리 재미있으신가요?”

엘리제의 말에 루비카가 정신을 차렸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그만 에드가를 구경하느라 자신의 본분을 잊을 뻔했다. 루비카는 먼저 시험 삼아 얼굴이 그리 빼어나지 못한 기사를 가리켰다.

“엘리제, 저분 잘생긴 것 같지 않아?”

엘리제는 잠시 침묵했다. 표정을 보니 동의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녀는 친절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러네요.”

앤의 말이 맞았다. 이번에는 리스트의 가장 상위권에 있는 기사를 가리켰다.

“저분은 어때?”

“그, 저. 음. 글쎄요.”

엘리제는 수줍은 듯 시선을 피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루비카는 방금 가리킨 기사를 합격 리스트에 올렸다. 그리고 기사들을 한 명씩 가리켰다. 엘리제는 정확히 앤이 조언한 대로 반응했다.

“저는 저분이 더 잘생긴 것 같은데…….”

어느새 하녀 하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기사를 바라보다 보니 한창때인 하녀들의 마음도 흐뭇해져 저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다.

“그런가?”

“아니, 마님. 제 생각에는 방금 가리키신 분이 더 낫다고 봐요.”

“왜?”

“허벅지가 더 탄탄했어요.”

하녀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니까요!”

하지만 하녀는 웃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모습에 루비카도 참지 못하고 부채로 입을 가리는 것도 잊고 웃고 말았다.

“호호호호.”

높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기사들의 귀에 꽂혔다. 그러자 바로 실수를 하는 기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대시너, 오른쪽 팔이 처졌다. 사하르! 너는 왼팔에 힘을 너무 많이 줬잖아. 아니, 조지! 넌 지금 자세가 왜 그러냐.”

당장 기사들의 훈련을 봐주고 있던 스테판 경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정하겠습니다!”

지적을 받은 기사들이 힘차게 외쳤으나 다음 자세도 엉망인 건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연습하는 내내 스테판 몰래 한쪽 방향을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스테판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언덕 위에 파라솔을 세우고 앉아서 자신들을 구경하고 있는 공작 부인과 시녀가 있었다. 그들이 웃을 때마다 실수하는 기사들이 속출했다.

‘젠장!’

그는 욕지기를 겨우 삼켰다. 오늘따라 부하들의 동작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다 싶더니 원인이 저기에 있었다.

“너희들, 내가 훈련을 봐주는 게 얼마나 황금 같은 기회인 줄 알고 있냐?”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좀 잘하라고!”

“네!”

공작가는 비록 전통 있는 무인 가문은 아니었으나 소속된 호위 기사들의 솜씨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많은 봉급과 명예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클레이모어 공작은 세리토스 왕국의 주요 인물이었다. 인원이 부족하면 왕실에서 직접 좋은 기사를 선발해 공작가에 보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판의 실력에 비해서 다들 한참 모자랐다.

호위 기사단의 단장이라면 응당 부하들의 훈련을 봐주었어야 했으나 스테판은 에드가의 호위를 보느라 시간이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어떤 일에도 그는 에드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보통 호위는 교대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으나 스테판은 본인의 담당 시간이 아닐 때도 자리를 지켰다. 다들 그 성실함과 우직함에 혀를 내둘렀다.

에드가의 상태는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되는 기밀이었기에 그가 공작의 호위를 보느라 부하들의 훈련을 봐주지 않는 건 묵인되었다. 그런데 공작 부인이 연무장에서 기사단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하자 에드가가 그를 호출했다.

―그날 훈련은 자네가 직접 봐.

―저는 각하의 호위를 맡아야 합니다.

―호위는 부단장에게 맡기지. 부하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단장의 역할이야. 그동안 내가 편하다는 이유로 자네에게 너무 다 맡겼던 것 같군.

에드가는 그의 의무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스테판은 공작 부인 앞에서 클레이모어 기사단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지 제대로 보여 달란 속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대체 저 여자가 뭐길래.’

스테판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태평하게 시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공작 부인을 바라봤다. 그녀가 등장한 뒤 공작가는 예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바라 마지않는 것이었으나 그는 달갑지 않았다.

‘공작의 연구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잖아.’

그는 에드가가 무얼 연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호위를 이유로 공작과 함께 저택을 나서면 그의 동생이 몰래 집무실에 잠입했다. 그 안에는 중요한 서류들이 잔뜩 있었다. 당장에라도 그 서류들을 빼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공작이 개발하고 있는 ‘스텔라’라는 무기의 설계도가 정확히 나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드래곤과도 싸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무기.

그게 세상에 나오면 대륙의 판도가 바뀐다. 여태 대륙은 북서쪽 끝에 있는 세리토스 왕국의 의중에 의해 흔들렸다. 그들이 어느 나라에 어떤 무기를 파느냐에 따라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스테판의 고향인 아마눈은 차가운 북동쪽에 있었다. 아마눈은 세리토스 왕국과 마찬가지로 농작물이 충분히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교역 물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눈은 마석 거래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지 못해 항상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는 공작이 현재 개발 중인 ‘스텔라’의 설계도를 훔쳐 내 이 판도를 바꿀 생각이었다.

‘공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는 이제 다 알고 있어. 무기 설계도면은 3년 조금 넘어 완성되리라 예상했지.’

그때 그의 부하 중 한 사람인 대시너가 입을 헬렐레 벌리고 공작 부인 쪽을 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기사단에서 성실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시너가 저러고 있는 건 정말 의외의 광경이었다.

“대시너! 지금 어딜 보고 있나!”

“네, 네!”

대시너가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어, 어! 아, 조심하라고.”

“컥, 미안하네.”

그 바람에 대시너의 상대역이 실수로 칼에 맞을 뻔했다. 스테판은 그 광경에 한숨을 참지 않았다.

‘정말 저 여자가 나타난 뒤로 되는 일이 없어.’

부하들뿐만 아니다. 공작도 그녀의 등장 이후 이상해졌다. 공작의 태도는 오만하고 제멋대로였지만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의외로 성실했고 원칙을 지켰다. 그렇게 딱 짜인 틀처럼 움직였던 공작이 공작 부인을 만난 뒤부터 계획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흰 백지에 공작 부인의 이름만 쓰고 설계도에는 줄 하나도 제대로 긋지 않은 날이 종종 있을 정도였다.

‘정말 민폐다.’

공작에게도 지금 훈련받고 있는 기사들에게도 공작 부인은 방해였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모여 연습하는 곳에 오다니.

공작 부인 딴에는 배려한답시고 연무장 바깥에서 보고 있다지만 그것 때문에 부하들이 목을 쭉 빼고 기웃거리느라 자세가 다 흐트러졌다. 게다가 공작 부인 옆의 시녀는 지나치게 예뻤다. 홀린 듯 시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대시너는 양반이었다. 어떤 놈은 불경스럽게도 공작 부인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군!’

스테판은 부하들을 가르치는 걸 포기하고 성큼성큼 공작 부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인가요, 스테판 경?”

화가 나서 루비카 앞에 오긴 했으나 정작 할 말이 없었다. 공작 부인이 저택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따지자면 한눈을 판 기사들이 잘못했다.

“부인, 죄송하지만 자리를 피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훈련에 방해가 될까 봐 연무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고자 했는데…….”

스테판 경은 루비카가 초대해야 할 요주의 인물 중 하나였다. 에드가만 없으면 그도 손꼽히는 미남이다. 루비카는 그가 뚱한 얼굴로 차 모임에 앉아 있길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차 모임에 초대할 미남의 명단은 작성을 마쳤다. 그녀는 그를 향해 싱긋 웃었다.

“곧 자리를 비키지.”

그때였다. 저택 쪽에서 우당탕탕 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루비카 같은 평범한 사람을 알 수 없었지만 스테판은 그 소리가 에드가의 집무실에서 난 소리라는 걸 바로 알았다.

“어머? 이게 무슨 소리지?”

“글쎄요, 마님. 뭔가 부서진 것 같은데 하인들이 가구라도 옮긴 걸까요?”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던 그때 시종 하나가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그는 달려오는 내내 소리를 질렀다.

“스, 스테판 경. 스테판 경.”

스테판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 원인을 짐작했다. 저 멀리서 부인이 제게 짓는 미소를 보고 화가 나 공작이 집기 하나를 깨뜨려 먹다 못해 그를 호출한 게지.

“무슨 일이지?”

그리고 이 사건의 원흉인 루비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각하께서 경을 부르십니다.”

“에드가가?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아닙니다, 마님. 그저 스테판 경을 불렀을 뿐입니다.”

“아까 큰 소리가 난 것 같은데…….”

“하하하. 마님, 별일 아닙니다. 스테판 경, 빨리 가시지 않으시면 각하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

시종은 루비카 앞에서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며 스테판에게 간절한 구조의 눈길을 보냈다.

‘하, 공작은 상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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