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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23화 (12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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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23화

주변은 임신으로 인한 입덧으로 믿고 있었지만 에드가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에드가와 달리 혼자서 밥 먹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식당에 아무나 앉힐 수는 없었다. 여태껏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운 적 없었으나 이번만은 아쉬웠다. 그리고 그를 가장 괴롭히는 사실은…….

―아침은 매번 제대로 못 드셨어요. 음, 그래도 임신을 핑계로 저랑 엘리제가 몰래 침실에서 함께 먹고 있답니다.

당분간은 임신을 핑계로 침실에서 몰래 시녀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임신이 가짜라는 점이다. 연기하는 기간을 길게 잡으면 잡을수록 주변에 들통나기 쉬웠다. 그녀가 제법 행복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두 달이 고작이다.

‘젠장.’

그가 함께 있어야 했다. 보통의 부부라면 그리했을 것이다. 함께 아침을 먹고 일하는 도중에 종종 안부를 물으며 점심 즈음 함께 산책을 하고, 공작저 안팎의 일에 대해서 의논하고 저녁에는 하루의 피로를 풀며 잠들겠지.

―클레이모어 공작은 세리토스 왕국 최고의 신랑감이지.

그는 그리 평한 이들을 찾아가 흠씬 패 주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뭐가 최고의 신랑감인가.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다. 자신은 고작해야 돈이나 좀 잘 버는 놈이다. 그것도 주변에 그녀를 귀찮게 하는 친척들을 주렁주렁 매단…….

점점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칼은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말했다.

“차를 올릴까요?”

“아니, 됐어.”

차 따위를 마신다고 사라질 두통이 아니었다. 에드가는 앞머리를 한차례 쓸어 올리고 얼마 전 칼에게 명령한 일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 아르망인지 하는 놈을 찾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

“아, 그분 말입니까?”

칼은 그리 말하고 뜸을 들였다. 평소 집사의 일 처리 실력을 생각하면 질문하자마자 바로 답이 나왔어야 했다. 칼에게 아르망의 정보를 넘긴 지도 벌써 며칠이 되었다. 거기에는 무척이나 찾기 쉬운 단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에드가는 아르망의 외모에 대해서 어물쩍 넘어가는 루비카를 추궁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외모 묘사 따위를 하며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게 음…… 각하, 아론의 아카데미에 따르면 졸업생과 수료생 중 아르망이란 이름을 가진 눈 먼 사내는 없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에드가가 자세를 달리 했다. 두 다리가 편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런…….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는데.”

설마 아르망이란 자는 자신이 영원히 루비카 곁에서 꺼져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걸 눈치 챈 걸까? 그에게 아르망에 대해서 설명하는 루비카의 눈빛은 화가 날 정도로 반짝였다. 그녀는 자신을 믿고 있었다. 양심에 찔릴 정도로.

“여러 번 다시 문의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하.”

루비카와 관련되어서는 쉽게 풀리는 일이 없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은가.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자꾸 그의 손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다.

그가 찾아내지 못한 아르망을 루비카가 먼저 발견하면?

아르망이란 자에 대해서 말할 때 루비카의 얼굴에 떠오른 빛은 에드가로서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작은 새는 미련 없이 그자에게 포르르 날아가겠지. 제 딴에는 아르망이란 자에게 뒤지지 않게 다정하게 대하려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럴 때마다 뭘 잘못 먹었냐는 반응밖에 보여 주지 않았다.

에드가는 초조함에 테이블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 동작에 칼이 움찔했다.

“저, 각하.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뭐?”

“각하의 이름 중에도 아르망이 있지 않습니까?”

에드가가 칼을 노려보았다.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살기가 풍겼다.

“그래, 그 기분 나쁜 이름. 내 기나긴 본명 중에도 있지. 내 이름은 온갖 작위와 조상들의 이름으로 거의 인명사전 수준이니까.”

세리토스 왕국 왕족의 성은 깔끔하게 세리토스 하나였다. 그러나 귀족의 이름은 가문의 역사를 읊는 것과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길었다. 기나긴 에드가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역대 공작 중 자기 이름을 다 못 외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물론 에드가는 예외였다.

“그게 저, 음.”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아르망이란 자와 관련된 주제에 한해서 에드가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다. 답답해서 윽박지르자 칼이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마님이 설명하는 아르망이라는 자, 눈이 멀었다는 것만 빼면 각하와 제법 비슷하지 않습니까?”

“뭐?”

“방금 그 테이블 끝을 두드리는 버릇도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님이 무슨 생각이신가, 설마 대답하기 싫어서 각하에 대해서 묘사하신 건 아닌가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각하는 못 느끼셨습니까?”

그는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었다. 루비카가 아르망에 대해서 묘사할 때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그녀에게 분통이 터졌으니까.

대체 어떤 여자가 외간 남자의 사소한 버릇까지 기억하냔 말이다. 그는 그녀 이외에 남이 생각을 할 때 코를 파는지, 엉덩이를 긁는지 그런 것 따위 관찰한 적이 없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당신은 어느 틈에 그런 걸 보고 있었냐고 경우 없이 따지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네, 눈이 멀었다는 것 외에는 입맛이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각하와 무척 비슷했습니다. 각하는 모르셨습니까?”

“…….”

에드가는 침묵했다. 그리고 루비카가 묘사했던 아르망에 대해 하나씩 떠올려 봤다. 그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칼이 말한 대로 아르망이란 자와 그는 닮은 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쩌면 그녀가 그에게 말하지 않은 머리카락 색과 눈 색도 닮았는지도 모른다.

“정말 나와 비슷하군.”

“그렇지요, 각하.”

칼이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추임새를 넣었다. 칼은 희망을 보았다.

어쩌면, 어쩌면…….

“그럼 나를 그놈처럼 좋아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러나 에드가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칼의 의도와 전혀 달랐다. 애석하게도 왕국 최고의 두뇌이자 재목인 에드가는 루비카의 문제에 한해서는 한없이 바보였다.

“각하! 그게 중요합니까?”

참다못한 칼의 말에 에드가가 적반하장으로 소리쳤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어?”

칼은 결국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사랑에 빠진 바보인 에드가는 칼의 행동에 자기야 말로 답답하다고 역정을 부렸다.

“마님이 말씀하신 아르망이 사실 각하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말입니다.”

“뭐?”

아까는 누군가 앞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면 지금 에드가는 못이 박힌 커다란 방망이로 내리치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그는 칼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녀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칼, 너도 기억하지? 그녀는 내가 공작인 것도 못 알아봤어. 심지어 나와 결혼하지 않으려 도망치기까지 했다고.”

“그렇죠, 각하. 하지만 그분께 청혼하려 했던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사라진 반지의 보관함에 떠오른 마님의 이름. 처음부터 이 일은 불가사의하고 난해한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요.”

“그런, 그런…….”

너무 수많은 가능성이 떠올라 에드가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먼 미래에 각하께서 우연찮게 그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분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 반지를 사용해 과거로 돌려보냈을 수도……. 각하, 그분을 만나신 날짜를 기억하십니까? 그 일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당시 그와 똑같은 스물두 살이었다. 난데없는 가능성에 에드가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말이 안 돼.”

“그 반지와 얽힌 일 자체가 일반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녀는, 루비카는 내게 어떤 이상한 티도 내지 않았어. 반지 같은 것도 애초에 없었어.”

“사용하면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아르망에 대해서 떠올릴 때마다 그녀가 짓는 아련한 표정, 그녀는 그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가 자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그녀가 아르망에 대해서 말할 때 얼마나 질투했는지 모른다. 그가 좀 더 일찍 그녀를 만났다면 그런 자 따위 눈에도 차지 않게 사랑해 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가 그녀를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사랑에 빠진 뒤였다.

아, 아르망이 자신이라면. 그가 자신이라면 에드가는 행복해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야. 아르망과 내가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니. 그런 가능성은 없어.”

“각하, 재고해 주십시오. 저는 꽤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칼! 내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고백 하나 제대로 못할 놈으로 보이나?”

에드가의 질문에 칼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고민했다. 에드가에게 그가 보고 느끼는 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그가 상처받더라도 진실을 고하는 게 나을까. 최근에 있었던 아침식사 사건을 떠올린 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각하를 보호하는 게 최상의 가치’였던 것을 뒤로하고 진실을 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도 마님께 제대로 고백 하나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닥쳐! 그건 지금 그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에드가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외쳤다. 칼은 입술을 반쯤 열었다. 마님과 관련해서는 공작의 기분을 맞추기가 영 어려웠다.

“난 무턱대고 고백이나 하는 바보가 아니야.”

‘그 바보는 아니지만 다른 의미의 바보십니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티를 내 봐.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그건, 음. 참지 않으시겠죠.”

에드가는 원래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 루비카와 관련되어서 이렇게 참고 계획을 짜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모르겠습니다. 마님께서 각하를 좋아하는 티를 내도 참지 않으실지……. 그분의 일에 대한 각하의 반응은 정말 예상 밖이니까요.’

“루비카는 속마음을 숨기는 타입이 못 돼. 그녀는 착하고 순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마는 성격이지.”

“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요.”

“만약 아르망이 나였다면 난 분명 고백했을 거야. 뜨뜻미지근하게 꽃이나 따 줄 놈이 아니란 말이야. 아르망이란 놈이 나일 리 없어. 나는 그런 덜 떨어진 놈이 아니야.”

“알겠습니다. 제 지나친 억측이었습니다.”

칼은 에드가의 아르망에 대한 평가가 지나칠 정도로 각박하다고 느꼈다. 그렇게까지 나쁘고 덜 떨어진 사람은 아니었다. 에드가의 입을 한번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묘사된 아르망이란 사람은 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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