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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16화 (116/212)

# 116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16화

“뭐?”

에드가의 반문에 루비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만든 그가 원망스러웠다. 대귀족가의 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루비카는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에드가.”

“루비카.”

서로의 이름을 동시에 불렀다. 민망했는지 에드가의 뺨에 붉은 기운이 떠돌았다. 요즘 들어 풍부해진 그의 표정 변화에 루비카는 깜짝 놀라 침을 꿀꺽 삼켰다. 덕분에 타이밍은 놓친 건 그녀가 되었다.

“그럼 지금은 괜찮지?”

“응?”

“식욕 말이야.”

루비카는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가는 시종에게 자신의 접시와 같은 요리를 내오라고 명령했다. 곧 따끈따끈한 요리가 나왔다.

“그런. 그,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혼자 먹기 싫어한다는 어린애 같은 버릇을 들킨 것도 부끄러운데 이건 지나친 배려였다. 꼭 그녀의 부모라도 된 듯이 구는 에드가가 낯설었다.

‘왜?’

루비카의 거부에 당황한 건 에드가였다.

‘왜 거부하는데?’

그는 그녀가 배려에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가 피곤하거나 힘들 때 항상 위로 해 주고 달래 줬어.

에드가는 루비카가 묘사한 아르망의 행동을 모두 외웠다. 그리고 자기 딴에는 똑같이 따라 했다. 그리하면 루비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아르망보다 못한 게 뭔데.’

그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녀가 아르망에 대해서 한 말을 종합해 보았을 때 그에게 부족한 것은 ‘다정함’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현재 충실히 다정해지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거부당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뭘 필요로 하는지 눈치채고 제공해 주려 했는데……. 그에게는 다정해질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걸까?

‘루비카.’

에드가는 속으로 이를 갈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에게 화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정하게 대하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한순간의 ‘화’로 모든 걸 망칠 수는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반한 쪽은 한없이 약자라고.

“칼, 잠시 나와 이야기 하지.”

에드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돌아올게.”

밥 먹다 말고 자리는 왜 비우는 걸까?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진 걸까? 그럼 칼은 왜 데리고?

루비카는 혼란스러웠다. 에드가는 웃고 있었지만 눈매가 매서웠다. 괜히 왜 그러냐고 질문해서는 안 될 위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응, 괜찮아.”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에드가는 여전히 가면 같이 웃는 얼굴로 식당을 나갔다. 칼은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라갔다. 식당 옆 평소에는 창고로 쓰는 작은 방에 들어간 에드가는 문을 닫자마자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무서운 형색이 된 그가 칼에게 따졌다.

“들었어? 혼자는 입맛이 없어서 밥을 잘 못 먹는다는 말?”

“네, 들었습니다.”

“자네는 알고 있었나?”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네, 아침에 식사를 하시긴 하셨으나 많이 드시지 못하였습니다.”

“그걸 왜 여태까지 보고를 안 했나!”

분노로 에드가의 흰자가 붉게 변했다. 위험 신호였다. 칼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이실직고했다.

“그, 음. 각하께서 아시면 신경 쓰실 것 같아서…….”

“당연히 내가 신경 써야지!”

참지 못하고 에드가가 칼의 멱살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칼은 그의 화풀이 대상에 낙점되었다.

“내가, 그녀의 남편인 내가! 그동안 혼자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게, 그게 옳은 일인가!”

아침에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건 에드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괜히 알았다가 가슴앓이만 할 수 있었다. 칼에게는 항상 에드가가 최우선이었다. 그는 에드가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그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마님의 건강에 무리가 가는 사안도 아니어서 전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에드가가 따지듯 되물었다.

“그럼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누락된 사항이 아주 많다는 말이군.”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이건 그가 제대로 화났다는 신호였다. 칼은 멱살이 잡힐 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꼈다.

“너조차 나는 그냥 무늬만 남편이니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거냐?”

“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지적이 들어왔다. 어안이 벙벙한 칼은 변명할 말조차 찾지 못했다.

“그녀와 내가 한 결혼은 진짜가 아니라 시한부 계약이니까?”

“가, 각하!”

지독히도 상처받은 목소리였다. 에드가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연봉을 삭감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 칼을 강타했다. 에드가를 지키기 위해 그가 한 행동 때문에 에드가는 더 상처받고 말았다. 칼은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절대, 절대 각하를 무늬만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각하야말로 마님의 진짜 남편입니다.”

“됐다.”

에드가가 들끓는 목소리를 꾸역꾸역 누르며 칼의 말을 잘랐다. 여전히 가슴의 고통은 참을 수 없었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루비카가 식당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앤을 비롯한 시녀와 하녀들을 내 앞에 대령해. 하나씩 따로 면담을 하고 싶군.”

칼도 문제였지만 앤도 문제였다. 루비카가 임신했다고 오해해서 그를 비롯해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다. 앤의 행동은 나름대로 선의였으나 그런 중요한 착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말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여태까지 공작가를 잘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능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 자신의 아내에 대한 보고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바깥에서 유능하다 칭송을 들어 봤자, 일을 잘해 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지금 당장 부르겠습니다.”

“미쳤어?”

“네?”

그리고 여태 그래도 유능하다고 생각했던 칼마저 바보처럼 느껴졌다.

“지금 루비카가 식사 중이잖아. 내가 나가서 자기 시녀를 하나씩 불러내는 걸 보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겠어?”

“아.”

“넌 항상 그게 문제야.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 앞으로 그러지 마.”

칼의 두 눈을 깜박였다. 그는 클레이모어 공작가의 집사다. 그런 그가 공작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무얼 중심으로 생각하란 말인가.

“앞으로 루비카를 중심으로 생각해.”

“네?”

“반문은 필요 없어. ‘네.’라고 대답해.”

“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칼은 충실히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면 에드가가 당장 대문을 열어 그를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

칼의 즉각적인 대답에 에드가의 기분이 그나마 풀렸다. 아까 전까지는 정말 누구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손에 빨간 자국이라도 나면 루비카가 의심스러워할까 봐 그러지 않았다.

“이제 돌아갈 거니까 그런 그늘진 표정 짓지 말고 웃어. 알았어?”

“네? 아, 이렇게 말입니까?”

“그렇게 억지로 웃지 말고. ……됐다. 그냥 입 다물고 평소처럼 엄숙한 표정이나 지어.”

에드가는 칼의 표정을 몇 번이나 점검하고 자신의 상태도 점검한 뒤 식당으로 돌아갔다.

‘각하의 표정이야말로 어색한데.’

칼은 그의 뒤를 따르면 생각한 말을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했다.

“미안, 좀 늦었지?”

루비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 돌아온 에드가가 자리에 앉는 걸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화장실에 갔었나?’

식사 중에 갑자기 아랫배에서 소식이 올 때가 있기 마련이었다. 보통 그럼 필사적으로 참기는 하지만 가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고통이 올 때가 있다. 방금 에드가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치곤 겉보기는 멀쩡한데?’

그녀가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자 에드가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 아니야.”

루비카는 생긋 웃었다. 식사 중에 화장실을 다녀왔냐고 묻다니, 그건 너무 지나친 실례였다. 그녀는 재빨리 식탁의 음식으로 화제를 돌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아까와 달리 바지런히 움직이는 나이프와 포크에 에드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쩜 저 작은 입에 음식이 잘도 넘어가는지 그는 무척 신기하고 그녀가 대견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루비카.”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때였다. 식당에 심부름꾼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마, 마님!”

소리치고 난 다음 심부름꾼은 뒷걸음질 쳤다. 그는 에드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식당에는 마님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공작 내외가 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한창 루비카와 이야기 중인데 끼어든 불청객에 에드가가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고 물었다.

“아.”

심부름꾼이 루비카 쪽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아닌 그녀에게 온 소식 같았다.

“말하게.”

루비카와 자신 사이에 한 점 의혹이 없길 바란 에드가가 명령했다. 심부름꾼은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 에드가의 매서운 눈에 딸꾹질을 하더니 결국 실토했다.

“세사르 경이 아무래도 플레누스 산에서 실종된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실종?”

“뭐라고?”

루비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녀는 2주 전 세사르 경을 만났다. 그때 세사르는 막 지어진 온실 앞에서 무척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개량을 위해 모은 세계 각지의 다양한 장미꽃을 루비카에게 보여 줬다. 모두 예쁜 꽃이었지만 세사르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루비카에게 안겨 줄 것이라 자신했다. 온실에 붙어 살 기세였던 그가 실종이라니, 그것도 플레누스 산에서. 믿기지 않았다. 플레누스 산은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험난하고 위험한 산이었다.

“플레누스 산? 세사르 경이 플레누스 산은 대체 왜?”

“그, 음. 야생 장미를 수집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루비카는 뒷목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녀는 세사르 경에게 플레누스 산에 간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 그런 위험한 곳에 야생 장미를 수집할 목적으로 간다면 루비카에게 말 한마디 정도는 해 줬어야 했다.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수염이 하얗게 셀 정도의 어른이었다. 그래서 믿고 있었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을 몰랐다.

“함께 간 기사는 있나?”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루비카 대신 에드가가 질문했다. 그는 세사르 경의 이런 돌발 행동에 별로 놀라는 낌새가 아니었다.

“혼자 가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에드가마저도 한숨을 쉬었다. 세사르 경은 원래 생각이 짧다. 분명 야생 장미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느라 플레누스 산이 얼마나 위험하고 험준한지에 대해서는 새카맣게 잊어버린 게 틀림없다.

“수색대를…….”

기사단을 시켜 세사르를 수배하려던 에드가가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루비카와 그를 괴롭히던, 이미 계약한 모험단의 처리 방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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