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03화
청혼하러 가기 전 에드가는 루비카에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그녀 주위에는 남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있었던 것들도 그녀에게서 털어갈 지참금이나 유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 내뺐다. 루비카 자체도 딱히 남자에 관심이 없는 듯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사촌동생의 머리나 매만지는 걸 좋아했다. 그때 그는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꼴 대로 비꼬아 기를 꺾었다.
당시 그는 그녀를 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 대충 좋은 조건을 내걸어 그녀를 공작저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결혼이라는 것도 유일한 단서인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도 그가 이 일을 상담했을 때 국왕이 보인 강한 희망과 성화에 의해 추진된 일이다.
에드가가 저주를 풀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이 나라에는 그가 필요하다. 그뿐이었다. 루비카를 만났을 때 한 기대는 그녀가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저주를 풀 방법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그 뿐이었다. 그 이외에 어떤 감정적이 교류도 기대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태도를 보았을 때 누가 봐도 초면이었다.
그는 지금에 와서야 후회했다. 뭔가 의심을 해야 했다. 그녀가 왜 그리 굴었는지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나중에라도 이상했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그녀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오히려 눈에 잡힐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
책상 위의 서류더미를 집어 던졌다. 시간이 부족한 그는 이동할 때에도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집어 던진 서류는 아마 중요한 연구 결과나 왕실 문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딴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감히 그런 여자를 두고 내빼?”
그를 향해 설사 본인이 원한다 해도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아선 안 된다고 말했던 루비카의 곧은 시선이 생각났다. 에드가는 당시 그녀에게 뺨을 맞아서 그 아픔 때문에 몰랐다. 그의 심장은 그때 이미 떨렸다. 그녀만큼 마음이 올곧은 사람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예쁜 여자를 두고!”
루비카는 마음씨가 고울 뿐만 아니라 예뻤다. 처음 만났을 때는 평범하다 생각했으나 그 당시 자신은 눈이 삔 상태여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몰라봤을 뿐이다. 루비카는 그가 아는 모든 여자들 중 단연코 제일 예뻤다. 수도 사교계의 미인이란 미인은 모두 만나 본 그가 내린 판단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짝이 없다고 에드가는 자신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르망, 그 자식은 바보에 멍청이에 덜 떨어진 놈이 틀림없다. 그런 놈에게 루비카를 줄 수 없다. 그녀가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가 용납할 수 없다. 세상에 어느 남자가, 어느 남편이 제 여자가 쓰레기 같은 놈을 만나서 인생을 망치는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아르망이란 놈이 그도 인정할 만큼 괜찮은 놈이면 또 몰라.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임신한 루비카가 그런 놈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꼴을 그는 볼 수 없다.
‘그녀는 내 부인이야. 그러니 그 아이는 내 애야.’
에드가는 결심을 굳혔다. 명실상부한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이 낳은 아이이다. 공작 부인의 아이라면 당연히 공작의 아이다. 그녀의 과거 따위 상관없다. 어차피 아이의 생물학적 아비는 그녀와 아이를 모른 척한 놈이다. 그딴 놈은 아이의 친권을 주장할 수 없다. 루비카는 내 부인이다. 그게 4년 뒤에 깨질 혼약이든 뭐든 지금 그녀의 남편은 나란 말이다.
‘사내아이면 클레이모어의 후계자야.’
그가 판단하기에 루비카는 똑똑한 편이었다. 그가 붙어서 가르치면 아이는 충분히 영재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루비카를 닮으면 책임감도 있고, 똘똘할 것이다.
‘그리고 여자아이라면……?’
옅은 갈색머리에 순진무구한 적갈색 눈동자의, 루비카와 꼭 닮은 여자아이가 그의 눈에 선했다. 그녀가 아닌 다른 남자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배제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 어쨌든 루비카를 쏙 닮은 귀여운 아이는 에드가를 ‘아빠.’라고 부를 예정이다. 어쩌면 아이는 루비카에게 아빠한테 좀 더 잘하라고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고, 4년 뒤에는 아빠를 두고 떠나지 말라고 루비카의 치맛자락을 잡고 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