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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93화 (9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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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93화

엘리제를 예쁘게 꾸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루비카가 재빨리 대답했다.

“하지만 제가 어찌 부인보다 화려하게 꾸밀 수 있겠어요.”

“아니, 아니. 이번만큼은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다른 때는 몰라도 이럴 때만큼은 머리가 빨리 돌아갔다.

“너는 선선대 공작 부인의 옷 중에서 제일 화려한 옷을 입고 가. 그럼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대해서 친척들이 꼬투리를 잡지 못할거야. 꼬투리를 잡으면 그보다 더 화려한 선선대 공작 부인의 옷을 입고 있는 네가 뭐가 되겠어.”

“아.”

엘리제가 감탄하는 눈빛을 했다. 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교군이 있으면 사치스럽다느니, 보석이 너무 많다느니 하고 함부로 깎아내리지 못한다. 옥빛 드레스의 비단이 지나치게 고급스럽다고 말한다면 엘리제가 입을 드레스의 화려한 자수도 문제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드레스는 선선대 공작 부인의 것이다. 지금 루비카는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굴러 온 돌이지만 선선대 공작 부인은 아니었다.

“그 생각을 못했네요.”

“어쩜.”

모두들 경탄했다. 사실 루비카는 그저 엘리제에게 예쁜 옷을 입힐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똑똑함인가…….’

자꾸 원하지 않는 속성이 붙는다. 부담스럽다. 하지만 루비카는 엘리제를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엘리제의 성격상 이런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잡기 어려워 보였다.

“좋아요. 그럼 엘리제님, 최대한 화려하고 멋지게 꾸밀 준비 되셨죠?”

“응.”

하녀의 말에 엘리제가 결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카는 덕분에 이번에야말로 어떤 눈치를 보지 않고 신나게 엘리제를 꾸밀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리는 간단하게 하면 되지 엘리제부터 먼저 꾸미자.”

당황하는 엘리제를 하녀들이 둘러쌌다. 그녀들은 이미 한번 평범해 보였던 소녀를 한 떨기 꽃으로 변모시키는 재미를 봤다. 자신이 한 사소한 덧셈 하나로 누군가가 눈부시게 변모한다는 건 무척 뿌듯한 행위였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 아름다움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가리켜 예술가라고도 하지 않는가.

“맡겨만 주세요. 마님!”

곧 엘리제에게 고문과 같은 시간이 펼쳐졌다. 하녀들은 정말 작정을 했다. 엘리제는 가장 어울리는 옷을 찾을 때까지 열 벌에 가까운 옷을 대보고 세 번이나 갈아입었다. 코르셋도 평소보다 바짝 쪼였다. 엘리제를 맡은 하녀는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머리 모양을 두 번이나 바꿨다. 루비카는 아예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 사이 린다가 루비카의 머리를 간단하게 말아 올려 공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핀을 몇 개 꽂았다. 옥색 드레스에 어울리는 따뜻한 연녹빛 페리도트였다. 린다는 머리를 다 하고 한참을 아쉬운 듯 드레스를 내려 보았다.

“마님은 드레스를 더 주문하셔야 해요. 단정한 드레스들 중에 언뜻 보기에는 사치스럽지 않지만 사실은 화려한 것보다 훨씬 더 품이 들어간 것들이 많아요.”

루비카는 백색 원단에 흰색으로 수를 놓는 등의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알아보는 디테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설사 최고급 비단을 썼다 하더라도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공작 부인의 기품에는 지나치게 얌전하긴 했다.

“카나의 의상실에 아직 사람들이 많이 부족해.”

다섯 벌이나 되는 드레스를 제때 만들기 위해서 카나는 정말 애를 썼다. 산책용 드레스는 아예 공작저의 침모들의 솜씨를 빌리기까지 했다.

“그럼 어서 빨리 사람들을 더 고용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어제는 왜 그분을 그냥 보내겠어요. 전 한 스무 벌 정도는 더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침방에서 만든 옷도, 선대 공작마님의 옷을 수선한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카나님이 만든 드레스가 마님께 잘 어울려요. 디자이너는 다르긴 다른가 봐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하려는 린다의 말에 루비카가 웃었다.

“고용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지금 당장 한두 명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카나가 많은 재봉사를 고용하려면 좀 더 유명해지고 내 옷 말고 다른 옷도 주문받아서 자금이 탄탄해진 이후가 될 거야.”

“마님의 옷을 만들게 되었는데 유명해지는 건 시간문제지요.”

린다의 말에 루비카가 애매하게 웃었다. 물론 클레이모어 공작 부인이 찾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는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교계는 냉정했고, 부인들의 눈은 날카로웠다. 실력도 알 수 없는 디자이너가 단지 신분 높은 귀부인의 옷을 한두 번 지었다고 유명세에 올라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루비카는 정식으로 사교계에 데뷔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센스가 좋은지 보는 눈이 있는지 상류층은 물론 근방의 귀부인조차 알지 못했다. 이전보다 카나를 찾는 사람이 조금 늘었을지는 몰라도 아직 사교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큰 손들이 카나를 찾기에는 때가 일렀다.

“마님, 다 완성했습니다.”

린다에게 어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제니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엘리제는 저번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변모했다. 물론 이전에도 하녀들은 엘리제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 꾸몄으나 그때는 카나가 없었다. 비록 카나에게 엘리제에게 어울리는 화려한 드레스를 주문하는 건 실패했었다. 대신 엘리제가 맞지 않는 속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속옷을 바꾼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엘리제는 언제나 어딘가 구부정해 보였다. 똑바로 서고 어깨를 피려 해도 어디가 불편한지 금방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당당하게 서서 어깨를 펴도 더 이상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곧게 몸을 쭉 펼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엘리제처럼 키가 크고 밝은 금발머리와 대조적인 보랏빛 새파란 드레스와 큼직큼직한 다이아 장식은 엘리제의 작고 예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했다.

“와.”

루비카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엘리제는 제 나이 또래의 어지간한 남자보다 키가 컸다. 그 사실을 그녀는 좀 부끄러이 여기는 것 같았지만 시녀로서는 장점이었다. 루비카는 그녀가 차가운 표정으로 도도하게 친척들을 깔아보길 원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루비카의 말에 엘리제가 몸을 떨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무표정하게 내 옆에서 눈을 내리 깔아. 정 자신이 없으면 그분들 얼굴을 보지 말고 그 뒤의 벽을 노려봐.”

“벽이요?”

오늘 온 친척들은 평소 엘리제가 감히 말도 걸어 보지 못한 대단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얼굴을 바로 볼 자신은 없지만 벽을 노려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엘리제가 손을 꼭 쥐었다. 루비카는 환히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럼 당장 같이 가자라고 말하려는 순간, 제니에게 제지당했다.

“그런데 마님은 왜 머리만 하고 계셨어요?”

“어?”

엘리제를 구경하는데 바빠서 그만 자신을 꾸미는 걸 까먹고 말았다. 그건 옆에 붙어 있던 린다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런 지나치게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안 좋은데.”

“잠시만요. 목걸이랑 귀걸이는 제가 봐 둔 게 있어요.”

린다가 황급히 세트인 장신구를 가지고 왔다. 그 사이에 제니가 드레스와 세트인 예쁜 옥색 구두를 찾아왔다. 루비카는 황급히 장신구를 작용하고 구두를 신으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두가 쉬이 신겨지지 않았다.

“신발이 좀……작나?”

“가죽은 오래 신으면 늘어나니 일부러 조금 작게 만든 것 같은데 좀 과하네요. 잠시 기다려 보세요.”

하녀가 신발가죽을 늘리는 골절기를 가지고 와 늘렸다 신겼다 하며 신발 사이즈를 맞추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신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엘리제는 가만히 기다리기 그래서 그 사이에 할 일을 찾고자 했다.

“마님의 장갑은 어디에 보관하니?”

“외출용 장갑은 드레스룸에 보관하지만 실내용 장갑은 침실에서 보관하고 있어요.”

하녀가 침대 옆에 있는 협탁을 가리켰다. 루비카는 신발과 시름하느라 엘리제가 협탁의 두 번째 서랍을 여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

“색이 짙은 장갑보다 얇고 하얀 장갑이 어울리겠지?”

“네.”

“미리 몇 개 골라서 마님께 보여드리자.”

엘리제가 무심히 적당하다 싶은 장갑 몇 개를 꺼내 트레이 위에 올려 두는데 무언가가 또르르 굴러 떨어져 발에 닿았다.

“어?”

당황해 몸을 숙여 집어 올리니 반지가 있었다. 공작 부인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투박한 반지였다. 게다가 가운데에는 박힌 것은 청명한 하늘처럼 밝았으나 아무리 봐도 보석이 아니라 돌이었다. 대체 누구의 물건일까. 하녀가 정리하다 말고 실수로 반지를 떨어뜨린 걸까?

“엘리제!”

그때 겨우 신발을 신은 루비카의 눈에 엘리제가 들어왔다. 협탁 서랍이 열려 있었고, 엘리제는 그녀의 반지를 들고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루비카는 어느새 엘리제의 앞에 가 있었고 낚아채듯 반지를 뺏은 뒤였다. 엘리제는 언제나 상냥했던 루비카의 밀가루처럼 하얗게 질린 표정에 놀랐다.

“마, 마님의 물건이었나요?”

“응.”

잔뜩 쉰 목소리였다. 루비카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손바닥에 반지의 차가운 금속성을 느끼고서야 겨우 숨을 뱉어내었다.

‘헉.’

깜짝 놀랐다. 침실과 드레스 룸에 있던 하녀들 모두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고 허름한 반지. 반지라는 물건이 가지는 특성상 아무래도 오해를 살 것 같았다. 심지어 루비카도 아르망을 볼 때 그의 반지 때문에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오해했다.

‘빼앗길지도 몰라.’

덜컥 겁이 났다. 에드가가 그녀의 반지를 보고 그런 건 버리라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괜히 에드가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하게 다루는 장면을 모두 봐 버렸는데 그냥 모른 척해 달라고 말해 봤자 더 큰 소문만 낳을 뿐이었다.

‘어쩌면 좋지.’

그때 에드가가 어머니의 유품에 대해서 빈정거렸던 일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다. 루비카는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과거로 돌아와서 이전과 가장 달라진 점은 거짓말의 신과 친해졌다는 점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이야.”

“아.”

엘리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엘리제의 모습에 절로 미안해졌다.

“그렇게 귀한 물건인 줄 몰랐어요.”

“마님, 보석 상자에 보관하거나 보고의 리스트에 등록시키는 게 어떨까요?”

사과하는 엘리제 옆에서 하녀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귀중한 물건이면 서랍장의 장갑 사이에 숨겨질 것이 아니라 제대로 관리가 되는 옳았다. 그리고 루비카는 이 소리가 나오는 게 가장 두려웠다.

“너무 낡고 볼품없어서 에드가가 보면 체면이 떨어지니 바꾸라고 할지도 몰라. 모두 모른 척해 줄래?”

“네?”

하녀들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루비카는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에드가의 인기나 이미지는 떨어지겠으나 그가 언제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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