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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85화 (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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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85화

‘아, 3만 골드 관련 이야기인가?’

루비카는 그가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개인 예금을 꺼내 그녀에게 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줄 알았다.

너그러운 남편.

몰래 주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듣겠지. 그리고 그녀는 주제를 모르고 사치하는 아내가 될 것이다.

따돌린 복수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하지만 루비카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악명이 쏟아지든 반가웠다. 루비카는 아이스크림을 듬뿍 담은 스푼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의 에드가에게 신경 써 줘서 참 고맙다고 내가 주변머리가 없어서 예산을 흥청망청 썼다는 대답을 하려던 참이었다.

“올해는 마영석을 찾지 마.”

움직이려던 루비카의 입술이 멈추었다. 동작을 멈춘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접시를 나르던 하녀도, 식사가 끝난 후 손 씻을 물을 들고 오던 하인도 일순간에 동작을 멈췄다. 식당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황당한 건 루비카만이 아니었다. 원래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루비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앤과 칼은 제 귀를 의심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하녀, 하인들은 다른 이유로 제 귀를 의심했다. 황당해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에드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에드가, 그게 무슨…….”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찾지 마.”

그리고 포크로 집은 과일 한 조각은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게 식사의 끝이라는 듯 바로 일어나더니 홀가분한 표정으로 식탁을 떠났다.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도 시종은 제 본분을 다하기 위해 그를 따라 떠났다. 식당에 남겨진 사람들은 아직 패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 마님.”

간신히 공황상태를 헤쳐 나온 앤이 더듬거리며 루비카를 바라보았다. 이 사태가 무슨 일인지 어찌된 건지 그 해답을 루비카에게 구하는 눈치였으나 루비카도 모른다. 에드가가 대체 왜 저러는지. 정말 맘이 이리저리 바뀌는 게 밤하늘의 달보다 변덕이 심하다.

“나도 모르겠어. 나는…….”

루비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그리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입도 하지 못한 아이스크림을 보기가 아쉬웠으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여기에서 패닉에 빠진 사람들과 있어 봤자 에드가의 속내 따위는 알 수 없다. 그가 이러는 이유를 알려면 역시 그와 대화해야 한다.

“앤, 따라와요.”

“네.”

루비카의 속내를 읽은 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하녀들에게 오늘 저녁 시중은 자신이 들 테니 따라오지 말라 이르고 루비카의 뒤를 총총 따라갔다.

“에드가!”

시종이 소파에 기대어 있는 에드가의 신발 끈을 풀고 마침 실내화로 갈아 신겨 주었을 때 루비카가 등장했다. 그녀의 뒤에는 황급히 따라 들어온 앤과 칼이 보였다. 시종은 칼의 눈짓을 보고 금방 사태를 눈치챘다.

“그럼, 각하.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이런 자리에 있어 봤자 좋을 게 없다. 이제부터 공작 내외는 심각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괜히 소문이라도 나며 자신이 진원지로 지목될 것이다. 냉큼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데 에드가 루비카 쪽으로 몸을 놀리더니 팔을 펼쳤다.

“아직 난 편안한 시간을 맞이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빨리 겉옷을 벗기지 않고 뭐하냐는 태도였다. 아무래도 그가 입은 옷을 편안한 가운으로 다 갈아입히기 전에는 이 방을 나가는 건 그른 것 같다. 시종은 슬쩍 칼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의 주인은 칼이 아니라 에드가였다.

“네, 각하.”

그는 앞으로 펼쳐질 공작 내외의 부부싸움을 하는 수 없이 다 지켜봐야만 하는 것인가.

“에드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다행히 공작 부인이 그에게 구명줄을 내려 주었다. 시종이 슬그머니 에드가의 겉옷 소매를 잡은 손을 놓았다. 사실 부부싸움을 보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공작 내외에 어떤 식으로 언성을 높이든 그는 벙어리처럼 제 할 일을 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침실을 나선 뒤였다. 밖에 나가면 기다리고 있던 하인들이 목격한 것을 낱낱이 고하기 전에는 그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냥 이야기 하지. 사람을 물릴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잖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드가는 그 구명줄을 치워 버렸다. 루비카는 한숨을 쉬었다. 에드가는 그녀가 한숨 쉬는 게 제일 싫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른 척하고 시종이 안내하는 대로 겉옷을 벗고, 손을 내밀어 커프스의 단추를 벗기도록 했다.

“마영석을 구하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구하지 않으면 좋겠군.”

“대체 그게 무슨, 에드가! 난 정말 당신이 왜 이러는 지 도대체 모르겠어.”

에드가가 싱긋 웃었다. 루비카는 도대체 그가 왜 이러는 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걸 구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 이외에 이유가 따로 필요 있나?”

“하지만…….”

“당신 예산에 참견한 데는 다시 한 번 사과하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루비카가 답답한 듯 치맛자락을 두어 번 잡더니 놓았다. 앤과 칼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보았다.

“마영석을 찾는 건 공작가의 위신도 위신이지만 새로 개발한 무기를 테스트하고 실전에서 어떤 용도가 있는지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전통과 역사가 흐르는 일이잖아.”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가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다니, 그녀는 이 말 때문에 그에게 결국 승복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달리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윗옷을 다 벗고 시종이 가져온 내의를 걸쳤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 거야.”

“에드가.”

이제는 분해서 눈물까지 나왔다. 어제는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자신에게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면 이번에는 제멋대로 구는 에드가에게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자신을 손바닥에 두고 가지고 놀려고 하는 걸까. 루비카는 에드가를 이겨 먹으려거나 가지고 놀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에드가는 매번 이런 식이다.

“애초에 그런 걸 공작가 내부 예산으로 잡아서 운영해 오던 게 문제였어.”

“그럼, 마영석을 구하는 걸 외부 예산을 잡겠다는 소리야?”

“아니, 안 잡아. 마영석은 아예 안 구할 거라니까.”

루비카가 이마를 짚었다. 앤은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마영석을 구하지 않겠다는 소리를 꺼낸 것을 루비카였다. 그리고 그녀는 어제 그 의견을 절회했다. 앤이 알고 있기에 에드가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루비카가 오기 전, 그는 공작가의 전통이었기에, ‘응당 그래야 하듯이’라는 말이 붙은 내부 살림에 대해서 앤에게 모든 것을 떠맡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상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에도 바빴다. 그는 클레이모어 공작가에서 개발하는 무기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어제만 해도 에드가가 왕성에 올 것을 청하는 국왕의 편지가 날아왔다. 마석의 가격책정과 관련되어 향후 경제계의 전망과 무기 산업의 진척도 등 에드가의 의견이 없으면 결정이 불가능했다. 국왕은 편지에서 공작의 신혼을 생각해 많이 참고 또 참고 기다렸다고 밝혔다. 단지 그 재촉 편지 하나를 보내기 위해 왕성은 전서구가 아닌 마석마차를 사용했다. 그가 일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집무실에는 가지 말라는 명을 받은 사자는 넌지시 밤늦게라도 좋으니 그만 왕성에 올라와 회의에 좀 참석해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공작가에서 마석마차를 세 개나 운영할 수 있는 건 그가 없으면 곤란한 왕성의 사정도 섞여 있었다. 에드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제는 매번 만찬 시간을 빼먹지 않는 게 용할 정도였다.

“각하, 이번 일은 마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 마영석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건 루비카였다. 앤은 잽싸게 루비카의 편에 서서 그녀의 주장에 편을 들어주었다. 에드가는 이것 봐라는 표정으로 앤을 바라보았다.

“앤, 지금 시녀장이라고 루비카의 편을 드는 건가?”

“각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마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대체할 방법을 찾는다고 했어.”

“오랜 전통을 깼다간 당장 주변의 친척분들이 반발할 것입니다.”

에드가의 입가에 비소가 흘렀다.

“그들이 반발해서 뭘 어쩔 건데.”

“에드가.”

루비카가 당황해 끝 간 데 없이 건방져지는 에드가를 제제했다. 상황이 이렇게 역전될 수 있나. 어제까지만 해도 마영석을 구하지 말자고 말하며 고집을 피웠던 건 루비카였다. 그는 그녀의 그런 기개를 꺾어 놓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고집을 피워 대고 있었다. 루비카는 황당하였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에드가는 똑똑한 사람이다. 재수 없게 구는 면모가 있긴 했으나 어린애처럼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루비카는 차분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방식으로는 모두의 반발을 살 거야. 천천히 방법을 알아보는 게 어때?”

에드가는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 루비카를 바라보았다. 칼과 앤은 갈급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옆자리의 시종은 무표정하려 노력했으나 눈동자에 호기심을 채 빼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알았어. 부인과 단둘이 이야기할 테니 그대들은 모두 나가지.”

에드가의 말에 다들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안도인지 포기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나가기 전 앤이 루비카의 손을 꼭 쥐었다. 말을 없었으나 그녀의 눈빛은 에드가를 설득해 주길 바라는 바람으로 절절했다. 칼은 불안한 눈빛으로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시종을 바라보았다. 식당에서부터 에드가가 선언을 하는 바람에 아무래도 입단속은 그른 것 같아. 하인의 숙소가 별채에 마련되어 있는 관계로 친척들에게 퍼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마 내일 내로 온 영지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리라. 철없이 마영석을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공작과 이를 말리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는 공작 부인.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 에드가 앞으로 항의 편지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당장 친척들은 내일 아침부터 집무실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 무대포 같은 자들을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칼의 집사 인생 50년 중 가장 큰 위기였다.

“마님, 부디 부탁드립니다.”

이제 믿을 걸 루비카밖에 없다. 본디 마영석을 구하지 말자는 말을 꺼낸 것이 그녀라는 사실을 모두 기억에서 지웠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어쩌랴. 칼은 루비카에게 공작을 말려 달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루비카는 맡겨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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