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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33화 (3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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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33화

루비카가 고개를 들었다. 아르망의 보이지 않는 눈과 마주쳤다. 그가 그녀는 더욱 세게 꽉 안았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귓가까지 들렸다.

루비카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꼭 말하고 싶었지만 아직 못한 말,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 그 꿈은 루비카에게 그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 꿨던 건지도 모른다.

“있잖아요.”

말을 이으려던 루비카는 멈칫했다.

아르망의 손 위치가 좀 미묘했다. 완전히 엉덩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고 엉덩이가 막 시작 하려 하는 그쯤이라고 해야 할까.

아르망은 조심성이 많은 남자였다. 눈이 보이지 않아 혹시나 상대편의 민감한 부위를 잘못 건드릴까 봐 손을 잡을 때도 몇 번이고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응?’

처음으로 안긴 아르망의 몸에서 나는 향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의 촉감도 여태 그녀가 알고 있던 아르망에 비해서 좀 더 굵었고 힘이 있었다.

그래, 마치 숲속에 있는 듯한 이 청량함. 이 향기는 바로…….

‘클레이모어 공작!’

그 순간 루비카의 감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자 바로 앞에 질 좋은 린넨 잠옷이 보였다. 머리 위가 무거웠다. 누군가 아예 그녀의 머리칼 사이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를 지금 꽉 안고 있는 건 꿈속의 아르망이 아니라 현실의 에드가였다.

그리고 그녀를 꽉 껴안고 있는 손이 도달한 곳은…….

“깍!”

손보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루비카는 반사적으로 에드가의 배를 걷어찼다. 맘 편히 루비카 옆에서 잠들어 있던 에드가는 그녀의 발차기에 그대로 당해 버렸다.

매끄러운 비단 이불은 에드가의 속도에 가속을 더해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그 어떤 방비도 없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 뒤였다. 터져 나오는 신음을 내지르지 않은 건 그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다. 에드가는 아픈 허리를 잡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정말 너무 하는군.”

“누가 할 소리를 하는 거야!”

루비카도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그리고 씩씩 숨을 참으며 에드가를 노려보았다. 의사를 묻지 않고 자고 있는데 몰래 와서 껴안았다. 거기에 더 나아가 손의 위치가 무척 나빴다.

“……기분 나빴다면 말로 하지. 이렇게 발로 찰 필요까지 있었나?”

“먼저 말도 안 하고 와서 껴안고 있었던 건 너잖아!”

루비카의 손가락질에 에드가의 화난 얼굴이 누그러졌다. 그도 내심 찔리긴 했다.

“곤히 자고 있어서 묻지 못했을 뿐이야.”

“왜! 침대가 이렇게 넓은데 굳이 옆에 와서 그런 건데?”

왜냐고?

에드가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 그게 루비카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 * *

목욕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평소에 숙면을 위해 애용하는 향수까지 뿌리고 나왔을 때 에드가는 루비카와 대화도 좀 나누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침대에서 그를 반긴 건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루비카였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자고 있는 루비카를 깨울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하루 그도 루비카만큼이나 피곤했다. 그는 일단 루비카와 멀찍이 떨어진 침대 모서리 끝에 누웠다.

하지만 분명 몸은 피곤한데 눈이 말똥말똥 떠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왜 이 여자의 말을 거역하기가 힘들지?’

그런 의문이 그를 지배했다. 그녀는 딱히 특별한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경 쓰였다. 혹 자신의 저주와 관련되어 있는 걸까?

에드가는 슬쩍 몸을 모로 돌려 루비카 쪽을 바라보았다.

‘마법이나 저주의 흔적 같은 게 남아 있을까?’

마법사는 무척 드물었고 있다 해도 사기꾼 같은 족속들이었다. 냉철하다는 평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은 마법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에드가는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저주에 걸렸고 그녀는 이를 풀 열쇠였다.

혹 무슨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를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쁘장한 편이지만 평범해.’

긴 속눈썹에 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가 화려한 느낌을 주는 눈이 아닌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에 순하게 처진 눈. 피부도 요즘 미인이라 칭송받는 대리석처럼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아닌 우윳빛 피부였다. 머리카락도 조금 풍성하다는 장점 외에는 없는 그냥 평범한 다갈색이었다.

한마디로 특색이 없다.

‘결혼식 때는 내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에드가는 사교계를 싫어했다. 자신에게 황소처럼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에드가의 의견 따위는 묻지 않고 무도회에 초대했으며, 가지 않으면 마음대로 실망했다. 춤을 추자고 들이대는 건 물론 나중에는 그의 입술을 노리기까지 했다.

에드가가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혀도 달려드는 이들 천지였다. 아무리 싫다고 말해도 진심은 그게 아닐 거라는 둥, 사실은 좋지 않느냐는 둥 그의 말을 곡해했다.

사랑? 우애? 애정? 정말이지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과 똑같은 짓을…….’

루비카가 자신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인 건 결코 아니었다.

에드가는 루비카를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이 여인은 평범한 여인이다. 이런 여자는 어디에 가든 있다. 특별한 건 없다. 키스하자느니 그런 말을 지껄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주문에 타당성을 더하기 위해 루비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보다 우윳빛 피부가 건강해 보여서 좋군.’

지금 감고 있는 눈은 순하게 처져서 웃을 때 살짝 애교 살이 올라오면 무척 귀여웠다. 또 풍성한 머릿결에서는 굉장히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가 결혼식 때 잠깐 만졌던 그녀의 허리는 적당히 부드러워 좋았다. 잡을 때마다 따뜻한 손은 그의 언 마음마저도 사르르 녹였다.

‘그 손……자고 있을 때도 따뜻할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몸을 옮겨 루비카의 손을 잡은 뒤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예상대로 따뜻했다. 에드가는 루비카의 손을 어루만지다 슬쩍 뺨 위에 가져다 대 보았다.

쿵, 쿵, 쿵.

분명 칼에게 말해서 약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심장 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에드가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괴로웠다.

‘달콤한 향기가 나.’

키스를 했을 때 났던 향기다.

“으음.”

그때 루비카가 몸을 뒤척였다. 에드가는 그녀가 잠에서 깨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루비카는 뭐가 불편했는지 몸을 에드가 쪽으로 돌렸다.

“헉!”

그러더니 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어 뺨을 부비는 게 아닌가. 에드가는 그 자리에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등에서 땀 한줄기가 쭉 흘러내렸다.

만약 루비카가 그를 암살하러 온 거였다면 분명 좋은 수를 쓴 거다. 심장마비에 걸리는 줄 알았으니…….

“휴우.”

에드가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간신히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는 루비카를 이대로 떼어 내고 저 멀리 침대 구석에 가서 자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루비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루비카가 여태 그에게 보여 준 적 없는 작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에드가는 그 순간, 충동적으로 루비카의 작은 이마를 입술로 꾹 눌렀다.

왜 그랬는지는 그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 이마에 뽀뽀를 하고 입술을 떼었을 때도 그녀의 입가에 여전히 미소가 머물러 있자 무척 뿌듯했다. 에드가의 입가의 근육이 한없이 풀어졌다.

“우응.”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살짝 뒤로 빼어서 떨어졌기 때문일까? 루비카가 다시 잠꼬대 비슷한 소리를 웅얼거리며 그의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에드가는 돌처럼 굳어 잠시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왜 이러는 걸까, 이 여자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거 진짜 잠꼬대일까? 설마 자는 척하는 걸까? 사실은 깨어 있는 게 아닐까?

백 가지가 넘는 상념이 에드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평생토록 풀지 못한 수학 문제가 없는 에드가였으나 이번에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그저…… 루비카가 가슴에 뺨을 비빌수록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머리카락이 그의 아래에서 살랑살랑 움직일 때마다 키스할 때 맡았던 달콤하고 고소한 내음이 났다.

“불편한가?

에드가는 루비카가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깨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자는 것 같았다. 에드가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말을 걸었다.

“추운가?”

“으응.”

웅얼거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춥나 보군. 그래서 이러는 가 보군.”

확신을 얻었다. 에드가는 그의 긴 팔을 뻗어 루비카를 확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과 자신의 몸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맞닿은 살을 타고 루비카의 따뜻한 체온과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쿵쿵, 고장 난 듯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와 달리 너무나도 평온하고 안정적인…….

에드가는 그만 루비카의 머리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머리에 바른 향유 냄새 속에서도 그는 루비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향을 찾았다.

우윳빛 피부에 어울리는 다디단 향. 그 기분 좋은 향과 심장 소리에 취해 에드가는 그 속에 살포시 섞여 들어간 이질적인 향이 코를 스쳐지나 뇌에 닿기 전 그만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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