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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8화 (1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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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8화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주세요.”

열 벌의 드레스는 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루비카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 예쁘다. 다 탐난다. 다 입어 보고 싶다.

루비카는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억누르며 간신히 말했다.

“다 입어 봐도 될까?”

“……네?”

“아, 무리겠지? 아냐, 아냐. 괜찮아.”

이런 드레스를 입는 데는 손이 많이 간다. 제니 혼자서는 역시 무리다. 루비카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은 걸 후회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 제니의 귓가에 베르너 저택으로 떠나기 전 시녀장님이 그녀에게 했던 당부가 환청처럼 들렸다.

-무슨 일이든 베르너 영애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세요. 그분이 하고 싶다고 하거나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모두 다 들어드려야 해요. 만약 그분을 무시하는 분이 생기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식은땀이 쭉 흘렸다. 시녀장 앤은 다정다감했으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제니는 클레이모어 공작가처럼 좋은 직장을 잃고 싶지 않았다.

“마차, 마차를 멈춰요!”

“아, 그럴 필요까지는!”

루비카가 말릴 새도 없이 제니가 마부에게 뛰어갔다. 루비카가 타고 있던 마차가 멈추자 뒤따르던 사용인들을 위한 마차도 멈추었다. 제니는 곧바로 사용인의 마차에 뛰어가 하녀 세 명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난 다음 마차가 다시 출발했다.

“아가씨께서 여기 있는 드레스를 다 입어보고 싶으시대.”

“열 벌을 다……말씀이신가요?”

하녀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열 벌을 다 입으려면 시간이 모자랄 텐데…….”

“아, 괜찮아요. 무리하지 말아요.”

루비카가 다시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루비카의 원래 성격을 모르는 하녀들은 제니가 이렇게 부른 것은 필시 이유가 있다 여겼다.

‘설마 우리를 시험해 보려는 건가?’

야단났다. 절대 괜찮다거나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맡겨만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녀들은 즉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은 제니와 함께 전체적인 실루엣을 볼 수 있는 대형 거울과 장신구 함을 가져왔고 다른 두 명은 솜씨 좋게 루비카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간단히 입고 벗을 수 있는 하녀복과 달리 귀부인의 드레스는 입을 게 많았다. 이즈음 유행하는 치마의 실루엣은 베르튀가댕(* * *

“어떠신가요?”

루비카가 보기 좋은 위치에 전신 거울을 놓고 제니가 긴장해서 물었다.

“정말 예쁘다.”

“예, 그렇지요. 스토마커의 자수는 이번에 새로 한 거라고 알고 있어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저기. 이 건 무슨 문양이야?”

“아…….”

루비카의 질문에 제니의 목이 바싹 타올랐다. 화장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지만 옷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석류꽃! ……무늬예요.”

소리친 하녀는 말하고 부끄러웠는지 전신 거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혹 루비카가 자신에게 벌을 주지 않을지 두려웠다.

“석류꽃 무늬라고? 어떻게 알아본 거야?”

그러나 뜻밖에도 루비카는 소리친 것에 대해서 화내지 않고 다정하게 질문했다. 하녀는 전신 거울 뒤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끝에 수술 모양이 석류꽃이에요. ……석류는 다산을 상징하잖아요. 언니 혼수품을 만들 때 석류꽃 무늬 자수를 많이 했어요. 그 무늬는…… 사막 왕국에서 유행하는 거라고 들었어요.”

“사막 왕국? 넌 어떻게 그런 걸 아는 거니?”

“……엄마가 그쪽 출신이라.”

“와, 그래서 바로 눈치챈 거구나. 나는 전혀 몰랐어. 좀 더 설명해 줄래?”

연신 질문을 하며 감탄하는 루비카의 모습에 하녀들은 서로 눈짓했다. 다행히 그리 무서운 주인은 아닌 것 같다는 게 그들이 눈으로 주고받은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홍색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그러나 루비카는 냉정히 평가를 내렸다. 푸른기가 도는 창백한 분홍빛 드레스는 분명 아름다웠으나 루비카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이쪽 하늘색 드레스는 어떤가요?”

“한번 입어 보세요.”

하녀들은 마치 자신들이 재봉사가 된 것 같다고 속닥이며 루비카에게 새 드레스를 갈아입혔다.

“……음.”

거울을 보고 루비카가 고민하자 다른 하녀가 한마디 했다.

“솔직히 안 어울…….”

그리고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공작 부인이 될 아가씨에게 감히 이런 말을 지껄였다니, 큰 벌이 떨어질까 오들오들 떨었다.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나도 그래.”

그러나 뜻밖의 말이 들렸다. 하녀들은 서로 당황해 눈을 마주쳤다. 대체 이 아가씨는 어떤 타입이지? 어떻게 기분을 맞춰야 하지?

갈팡질팡하고 있던 중 석류꽃 자수에 대해서 말했던 신입 하녀가 나섰다. 원래 신입일수록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용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건 어떤가요?”

주황빛이 살짝 감도는 노란 드레스였다.

“이게 아가씨 피부색이랑 또, 갈색 머리카락에 어울릴 것 같아요.”

베테랑 하녀가 그녀에게 괜히 나섰다가 경을 칠지도 모르니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그러나 루비카는 하녀의 추천에 손뼉을 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게 잘 어울릴 것 같아.”

하녀들은 다시 한 번 당황하면서도 재빨리 루비카에게 드레스를 입혔다. 그리고 드레스는 그녀의 예상대로 무척 잘 어울렸다.

“여기에는 무슨 장신구가 어울릴까?”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에 다들 당황했다. 제니가 겨우 용기를 내어 장신구 함에서 브로치 하나를 꺼냈다.

“이건 어떤가요?”

가운데에 루비가 박힌 금 장미 브로치였다. 루비카는 그걸 가슴 부근에 대어 보았다.

“괜찮은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이건요?”

그때 아까 눈치를 주던 베테랑 하녀가 참지 못하고 다른 브로치 하나를 가리켰다. 아차! 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루비카의 반응이 더 빨랐다.

“그래! 그게 딱이야.”

작은 토파즈가 알알이 박힌 수국 모양의 브로치를 가슴에 달자 드레스와의 조화가 썩 괜찮았다.

“아가씨 머리핀은 이게 어떤가요? 머리색이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장갑은 이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이 귀걸이가 어울릴 것 같아요.”

한번 물꼬가 트이자 폭풍처럼 의견이 쏟아졌다. 하녀들은 자기들끼리 갑론을박을 하더니 루비카가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거울을 보고 댔다 뗐다 난리였다.

“아직은 미혼이시니까 머리는 푸는 게 좋겠어.”

“하지만 지금은 인두가 없어서 머리끝을 정리 못하는걸? 내 생각에는 조금 땋는 게 좋을 것 같아.”

“앞머리를 조금 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참 결론을 찾지 못하던 그들은 어느새 루비카에게 고개를 돌려 동시에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양쪽으로 볼륨감 있게 땋아서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야.”

루비카가 하녀에게서 빗을 건네받아 직접 한 쪽을 완성했다.

“그게 좋겠네요.”

하녀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루비카를 꾸미기 시작하고 뭐가 더 잘 어울리는지 조잘거렸다.

어느덧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남을 꾸미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넌 정말 보는 눈이 있구나.”

“이 색이랑 이게 어울릴 줄은 몰랐어.”

루비카의 칭찬이 계속될수록 그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이런 칭찬을 받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마치 자신이 전문가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치마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해도 신발을 대충 정할 수는 없지요.”

마지막으로 하녀가 신발 여러 켤레를 들고 왔다. 루비카는 아주 잠시, 대체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레이모어 공작가는 여태 안주인이 없었다. 공작 부인의 죽음 이후 시녀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시녀장만 홀로 남아 안살림 대부분을 담당했다.

‘보통내기가 아냐.’

그러나 하녀들의 친절한 태도나 하나하나 준비한 물건들은 정성스럽기 그지없었다. 루비카는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자,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구두를 정하고 루비카는 거울 앞에 섰다. 거기에는 이제까지와 달리 마치 태어날 때부터 대부호의 딸이었던 듯한 자신이 있었다. 루비카는 가슴 속 깊이 무언가가 넘실거리다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여태 평범 그 자체라고 여겼던 자신이 제법 예쁘장하게 느껴졌다.

“모두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그냥 아가씨가 하자는 대로 한 걸요.”

“하지만 골라 준 건 여러분이잖아요.”

하녀들은 루비카 못지않은 뿌듯함을 느꼈다. 여태 그저 쳇바퀴처럼 당연히 해야 하기에 했던 일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자신들의 손으로 앞으로 마님이라 부를 아가씨를 이렇게까지 아름답게 꾸몄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예술품을 완성한 장인 같은…….

제니는 그런 기분에 잠시 빠져들다 피식 웃었다.

‘장인이라니, 나 같은 게 그런 게 될 리가 있어. 난 그저 화장을 조금 잘 할 뿐인 하녀인걸.’

“조금 있으면 공작저에 도착합니다.”

그때 마부의 소리가 들렸다. 씻고 바르고 입고 꾸미느라 다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 오래 일했건만 이상하게 다들 힘들기는커녕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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