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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15화 (1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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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 의상실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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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이 가진 에너지는 그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으며 어른 머리 크기만 한 마석 한 덩이는 한 나라의 예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루비카가 알기로 한 해 동안 마석마차를 운행하는 데 필요한 마석은 겨우 새끼손가락 크기 정도였다.

고작 그 정도 크기만으로 말의 스무 배에 달하는 속도를 내며 흔들림 없는 마차를 한 해 내내 운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비카를 더욱더 놀라게 한 건 마석마차 중에서도 속도가 가장 빠른 쾌속 마차를 세 대나 동시에 운행하는 클레이모어 공작가의 부였다.

‘공작이 업무를 하기 위해 서재처럼 꾸민 마차 하나, 그리고 지금 내가 쉬고 있는…… 침실과 옷장이 있는 마차 하나, 집사 같은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마차 하나인가?’

루비카는 백조 털로 만든 푹신한 침대에 누워 마차 천장의 아름다운 무늬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마차에 있던 하녀가 질 좋은 린넨 잠옷으로 갈아입혀 줬건만 잠은 오지 않았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현실로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침대 저편에 시중을 드는 하녀가 꾸벅꾸벅 졸고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앞서 루비카가 뒤척거리는 바람에 잠옷이 불편한지, 침대가 적당하지 않은지, 잠들기 전 와인 한잔을 준비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는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다 겨우 잠든 하녀였다.

루비카는 그녀가 깰까 몸을 뒤척거리는 것도 삼간 채 침대 위에서 골똘히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그러나 모두 영문 모를 일이었다.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공작이 자신에게 청혼한 것도,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루비카의 말에도 청혼을 철회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그의 뺨을 때리고 심한 욕을 해 버렸음에도 물러나지 않은 것도. 하지만 제일 영문 모를 일을…….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니…….’

환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가슴 속에 숨긴 반지가 그녀에게 지난 모든 일이 실존했음을 명백히 알리고 있었다.

‘대체 왜…….’

신이 무슨 일을 할 때는 이유가 있으며, 모든 것은 인과에 따른다. 루비카는 과거로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고단하고 힘들었던 지난 삶에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즐겁고 풍족하게 살 수 있을 리 없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봉사하며 가난 속에서도 행복과 아름다움을 찾았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마음을 얻었다. 자신의 삶을 단 한 번도 하찮다거나 되돌리고 싶다고 느끼지 못했다.

다만, 단 하나의 미련이 있다면…….

‘아르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만큼이나 사소한 미련이었다. 그러나 그 단 하나의 미련을 신이 들어준다면 루비카는 무엇이든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말 신이 루비카의 원을 들어줄 생각이었다면 클레이모어 공작이 그녀에게 청혼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되었다.

그러나 루비카는 당장 아르망에게 달려갈 수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현재 아르망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몰랐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상태였다.

공작과의 결혼을 수락함으로 당장 삼촌 내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고 5만 골드라는 여유 자금이 생겼다. 루비카의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말도 안 되는 결혼을 추진한 공작이 이상했다.

그는 이 결혼으로 한 톨의 이득도 보지 못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은 남자는 손해를 보고서라도 어여쁜 아내를 들이고 싶어 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루비카는 자신에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

풍성하긴 하나 특색 없는 다갈색 머리에 짙은 적갈색 눈. 피부 결은 좋았으나 딱히 대리석처럼 투명하지도 않았고 그냥 혈색이 좋은 우윳빛이었다. 적어도 아름다움에 관해서는 명확한 눈을 가졌다고 자신했기에 루비카는 자신에 대해 단호히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평범 그 자체.’

시장에만 나가도 루비카 같은 여인은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루비카는 10만 골드를 요구할 때 공작이 자신에게 질리길 내심 바랐다. 그저 안젤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5만 골드로 충분했으나 일부러 치졸해 보이게끔 10만 골드를 요구했다. 남자란, 돈으로 여인을 사려 들면서도 그 여인이 돈을 밝히면 질색하니까.

‘하지만 내가 그 말을 꺼내자 이상하게 그 남자는 표정이 밝아졌지.’

삼촌 내외와 육친의 정을 싹둑 잘라 낼 때도 클레이모어 공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비카의 행동에 맞장구를 쳤다. 루비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촌 내외가 잘못했다고 여기면서도 루비카의 행동을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그 여인이 자신의 아내가 될 경우는 더 그렇다. 이럴 때 남자들이란 아내 될 여자가 가련하게 울며 어쩔 줄 몰라 하길 바란다. 그러다 남편이 ‘내 아내를 괴롭히는 친정 따위 필요 없다. 연을 끊겠다!’라고 통보하면 마음 미어지는 척 남편의 뜻에 슬쩍 따라 주길 원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마음 약한 아내를 원한다. 그래야 자신이 엄청난 빚을 지거나 더는 돈을 못 벌 정도로 몸이 약해져도, 젊은 시절 얼마나 개차반으로 굴었든 마음이 약해 자신을 차마 버리지 못할 테니까.

수도원에서 일하며 루비카는 마음이 비단결처럼 착한 사람도 보았지만 악귀 같은 사람도 많이 보았다. 젊은 시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채 몸이 약해지자 자신을 버린 가족을 욕하던 이들.

루비카는 휴 신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간호하면서도 절대 환자가 욕하는 대로 그를 버린 가족이 지옥에 가리라 믿지 않았다.

‘본인은 절대 약한 처지에 놓일 일 없는 공작이라 그런 건가.’

루비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전쟁이 나자마자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곳은 왕성도 아닌 클레이모어 공작가였다. 클레이모어 공작가에는 아카데미에서 수학을 마친 세리토스 왕국 출신의 우수하고 다양한 발명가와 연구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공작의 지휘 아래 다양한 무기들을 개발했다.

다른 수많은 왕국은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공작가의 수많은 부는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으며 공작은 적국에 포로로 잡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지금의 클레이모어 공작이 알 리 없다. 그는 황금에 둘러싸여 태어났으며 죽는 날까지 그러리라 믿겠지.

루비카는 침대에 누워 픽 웃었다.

계산 실패다. 에드가는 자신이 타인의 도움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오리라고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대가문이 그렇듯 클레이모어 공작가에도 객식구가 있을 터이다.

공작가와의 혈연에 기대어 공작이 자신의 사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거나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먼 친척. 많은 대가문이 그런 친척들 때문에 골머리를 않았다. 마음 약한 귀족 중 그런 친척들의 감언이설이나 협작에 속아 넘어가 큰 재산을 날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루비카의 어머니가 아팠을 때 라미나 백작가가 얼마나 그들에게 차갑게 굴었던가. 백작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고모의 병을 고치는 데 한 푼도 보태 줄 수 없다고 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미덕은 다르다.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야 아내의 차가운 태도는 걱정스럽지만 에드가는 가진 자였다. 그의 입장에서 단호한 자신의 행동은 오히려 바라 마지않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원래 삼촌에게 줄 생각이었다고 해도 내 도발 한마디에 10만 골드를 미련 없이 주다니.’

에드가는 무리를 해서라도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타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격 없는 자에게는 한 푼도 나눠 주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도 그는 기꺼이 10만 골드를 루비카에게 주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인데 그저 그의 아내가 될 사람이란 이유로…….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게다가 공작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10만 골드는 어디까지나 사적으로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돈 내에서 지급한 것이다. 그녀가 요구한 돈이 사적 자금을 넘어섰다면 공작은 허용하지 않았으리라.

‘뭐, 잘됐네. 일단 돈은 모두 자칼 은행 쪽으로 옮겨 달라고 하자.’

전쟁 중에서도 파산하지 않는 몇몇 은행 중 하나가 남쪽 고블린들이 운영하는 자칼 은행이었다.

어쨌든 이 결혼으로 루비카는 전쟁 후에도 지난 삶처럼 큰 고생을 하지 않을 여유를 얻었다.

‘그 돈이면 수도원에서 수프에 고기를 듬뿍듬뿍 넣어도 40여 년은 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이번에는 영양실조 때문에 약 한 번 쓰지 못하고 아이들을 보내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 생각을 하자 루비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공작이 나와 순순히 이혼해 줄까…….’

아까 전부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의문이 튀어 올랐다.

루비카는 불안했다. 에드가가 자신과 결혼하려는 이유를 몰라서 불안했고 그가 루비카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줘 더 불안했다. 게다가 그는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으나 루비카는 그가 혹 자신이 결혼을 끝까지 거절할까 초조해하고 있음을 읽었다. ‘이혼’은 어디까지나 그녀를 순순히 결혼식장에 들어서게 하려고 꺼낸 방책일 가능성이 있었다.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루비카는 많이 속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을 속여 음식을 구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자신의 아내가, 남편이, 아이들이 시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본인의 목숨이면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 달리면 사람은 양심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덕분에 루비카는 아무리 선한 사람도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양심과 온정을 지키기 어렵다는 현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클레이모어 공작은 딱히 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큰 영지와 군사 무기와 관련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였다. 그런 자에게 양심까지 바랄 순 없다.

‘……이혼하고 싶게 만들어야 해.’

약속된 기한이 되면 알아서 이혼해 주려니 하고 두 손 놓으면 안 된다. 그럼 루비카는 삼촌에게 속은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된다. ‘가족끼리 한 계약이니 설마 속임수가 있겠어.’라고 어머니가 삼촌이 내민 서류를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에 이후 그녀의 삶과 루비카의 삶은 시궁창에 처박혔다.

타인의 양심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다. 루비카는 공작이 4년은커녕 결혼한 지 1년 만에 제발 이혼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 상황을 만들기로 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가장 널리 알려졌고 또 자주 쓰이는 수법은 바람이다. 그러나 루비카는 이미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담고 있었다. 만나지 못하거나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흔들리지 않을 탄탄한 사랑.

그러나 이 사실을 밝혔을 때도 공작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결혼을 감행했다. 바람은 그가 이혼하고 싶게 만들 수 있는 방책이 아닌 듯했다. 물론 루비카도 아르망이 아닌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두 번째는 사용인이나 공작가의 온정에 기대어 사는 객식구들을 학대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루비카는 누군가를 때리거나 밥을 주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용인을 학대하는 것 정도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귀족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루비카는 생각에 빠졌다. 공작가의 마차답게 꽤 값비싼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은은한 색을 썼으나 문양이 무척이나 복잡했으며 반복되지 않은 것이 장인이 직접 한 땀 한 땀 그린 듯했다.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클레이모어 가문이 막대한 부를 가졌음에도 세리토스 왕국의 미덕인 검소함을 잃지 않았다 여기겠지만 루비카는 달랐다.

그녀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곳에 돈을 쏟은 사치에 혀를 내둘렀다.

‘가만, 그러고 보니…… 맞아. 대부분의 부부가 헤어지는 데 가장 흔하고 결정적인 원인! 그래, 바로 돈이야! 내가 그걸 왜 까먹고 있었지?’

루비카는 침대에 일어나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아름다운 벽지에 입맞춤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사치. 바로 사치였다. 사치는 끝이 없다. 쓰고 쓰고 또 써도 모자란 게 돈이었다. 에드가가 아무리 루비카를 붙잡아 두고 싶어도 그녀가 사치스럽다 못해 공작가의 재정을 파탄 낼 정도라면 달라지겠지. 루비카는 공작 부인 앞으로 주어질 예산을 다 쓰다 못해 빚질 결심까지 했다.

‘게다가 어차피 4년 뒤 전쟁 때문에 국영은행은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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