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내가 가진 정보 중 그대에게 넘겨도 괜찮을 정보이면서 동시에 만 골드에 상응할 정보라…….”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뭐가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만 골드에 상응할 한 가지 정보는 어차피 너무 비싸서 팔기 힘드니 저희가 팔 수 있는 정보 여러 개로 넘기셔도 받습니다.”
“고르는 중이야.”
“전하의 정보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가령 볼테르 님에 관한 거라든가……. 그런 건 저에게 넘겨도 되지 않나요?”
“숙부를 팔아넘기라고?”
내가 피식 웃자 길드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여기서까지 숙부라고 부르며 예의를 차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가 상황 폐하의 친자가 아니라는 건 저희도 어느 정도 예상합니다. 다만 그때 당시에 폐하께서 황실을 욕보이지 말라고 일단락하는 바람에 조사하기 힘들어져서 그렇죠. 황실에서는 비밀리에 꾸준히 조사했을 텐데요. 모르세요?”
그가 대놓고 볼테르의 정보를 내놓으라며 소스까지 던졌다.
확실히 나는 아는 것도 많았고 만 골드에 상응하는 정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이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 과연 나에게 해가 없을 것인가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뜸을 들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물론 확실한 물론 물증이 있었다면 에오넬 황제 폐하께서 이미 가만히 있지 않으셨겠지요. 그러니 추후 증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힌트라도 좋습니다. 저번에 주신 선금 천 골드 빼고 9천 골드 어치라고 생각될 만큼 적당히 말씀해 주세요.”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좀 줬으면 하는데.”
나는 눈을 감고 차분하게 머릿속에 앞으로의 그림을 그렸다.
내가 아는 걸 정보 길드에 말하면 이들은 그 정보를 체리에 후작가나 키옌 태후에게 되팔지 않을까? 그러면 태후가 어떻게든 증거를 없애려고 들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가 조심스레 내게 구체적인 협상안을 제시했다.
“제가 태후에게 팔아서 증거를 인멸하는 걸 도와줄까 봐 걱정되십니까? 그리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전하께서 아시는 자세한 내용은 어차피 수십, 수백만 골드도 넘을 가치일 것 같은데, 저희는 그 정보 값을 전하께 치를 능력도 없고 그 정보를 알고도 사지 멀쩡히 살아남을 자신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친부가 누구인지 알려 주시면 됩니다. 물론 그 증거도 같이요. 그 정도는 가능하십니까?”
나는 잠시 그 정보의 가치를 가늠했다.
‘그리고 그 정보가 새어나가서 내가 보게 될 손해는? 아니, 그보다 크로이젠의 셋째 공자에 대한 정보와 비교한다면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닐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책정된 걸 보면 이게 보통 정보는 또 아닐 것 같았다.
이윽고 생각이 끝나고 입을 열었다.
“그걸 알려 주면 정보의 출처가 나라는 사실을 숨길 수 있나?”
“저희는 다른 정보는 몰라도 정보의 출처에 관한 보안은 철저히 지킵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고요.”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로베든.”
그 순간 정보 길드장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라, 라파트니 공국의 그 로베든 공이요? 그거 근거 있는 확실한 정보인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도 그는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듯 입을 어버버 벌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 거래를 한 번 더 하자. 그럼 확실한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무슨 거래요?”
“방금 내가 알려 준 그 정보를 볼테르에게만 팔아. 상황 폐하께서 늦둥이 막내에게 왜 박하게 대하시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꼬드기면 쉽게 팔아 치울 수 있을걸? 당사자인 그는 정작 아무것도 몰라서 자기가 황실 핏줄이라고 믿고 있거든.”
“한 군데에만 정보를 팔라니, 제가 손해 같습니다만.”
“그가 증거를 요구할 거야. 그러면 정보 값을 더 달라고 하고 태후가 꼭 챙겨 마시라고 한 민트티를 한 달만 끊으라고 해.”
“왜요?”
“나중에 보면 알아.”
태후가 볼테르에게 계속 보내서 챙겨 먹이는 허브티의 성분은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게 마나 뒤틀림의 증상을 없애는 약이라는 것 정돈 파악했다.
그 약을 어떻게 먹지 못하게 해보나 고민하던 찰나 잘되었다. 이참에 정보 길드를 이용해서 제 손으로 약을 끊게 한다면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정보 길드장이 물었다.
“그다음에는요?”
“마나 뒤틀림에 대해 알려 주면 돼.”
“……그거, 공국에서 가끔 확인된다는 유전병이죠? 로베든 공에게도 그런 병이 있다는 정보는 들었습니다만……. 전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더 깊게 조사해 봐야겠군요. 어쨌든 그래도 제가 아직 손해인데요. 그 정도로는 만 골드 못 뽑습니다.”
“알고 있어. 여기까지 해준다면…….”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해주면요?”
“내가 황제가 되었을 때 큰물에서 놀 수 있게 해주지.”
“큰물이요?”
“내가 황제가 되면 그 직후 반년 안에 그대에게 남작 귀족 작위를 주겠어. 그대의 길드가 가끔 작위서를 위조한다는 것쯤은 알아. 하급 귀족 작위서야 잘 위조하면 영지가 없고 작위만 있는 귀족인 척해도 대개는 위조 여부를 확실히 확인하려 들지 않으니까.”
“진짜 작위서…….”
그는 조금 끌리는 듯 흥미를 보였다.
“그대는 그걸로 작은 물에서 영양가 없는 정보나 가지고 소꿉놀이 수준으로 놀고 있겠지. 그래도 위조한 작위서는 한계가 있을 텐데? 이리저리 친분을 쌓고 소소한 사교 파티에 초대받고 거기서 또 소개에 소개를 거치면서 작은 물에선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정작 돈이 될 만한 사업 계약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건 기본이고. 위조 사실이 걸렸을 때의 위험부담도 크고.”
“저희는 그곳에서 나오는 정보가 필요할 뿐입니다. 돈이 될 양지의 사업은 별로 큰 관심 없거든요.”
“무엇보다 제국의 귀족 계보를 토대로 초대장을 돌리는 황궁의 신년 파티나 황제의 생신연회, 즉위식처럼 황실의 대규모 파티에는 초대받지 못했겠지. 제국의 모든 귀족이 빠짐없이 초청받는 자리에 그대도 불러 주겠다는 거야. 그곳에선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고급 정보가 발에 채도록 나뒹굴 거고. 그걸 그대가 죽을 때까지 누리게 해주겠어. 그게 내 조건이야.”
“죽을 때까지라면 계승 작위는 아니라는 거군요.”
“계승 작위까지 욕심 부리지 마. 그래도 혹시 아나? 마음에 들면 내가 그때 다음 대 길드장에게 또 작위를 내려 줄지도.”
계승되는 작위는 한번 내리면 빼앗기가 쉽지 않다. 작위를 준다는 건 얼핏 그에게 굉장히 이득이 되는 계약이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강제로 나와 한배에 태우는 계약이기도 했다. 그리고 불계승 작위라는 건 길드의 미래가 그 담보로 잡혀 있다는 뜻도 된다.
사람은 좋은 것에 적응이 빠르지만 반대로 그걸 다시 잃었을 때는 얻기 전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 불계승 귀족 작위라는 게 그런 거였다.
“너무 탐나고…… 중독성도 있는, 그런 미끼네요.”
그리고 정보 길드장도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감고 생각을 좀 하다가 어렵사리 말했다.
“지금 이 줄을 잡지 않으면 우린 전하의 적이 되는 거고, 그렇다고 잡으면 저흰 키옌 태후와 체리에 후작가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 버리는 거군요. 최대한 길게 중립을 지키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제안이잖아요.”
그가 반쯤 울먹거렸다.
“그러니 나도 정식 작위서 정도를 거는 거지. 그리고 볼테르에 대해서 그대에게 알려 준 건 빙산의 일각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가 체리에 후작가와 철천지원수가 되더라도 그때 그들은 이미 목이 잘린 뒤겠지. 어느 편에 설 건가?”
그는 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던 두 손을 슬그머니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손에 땀이 차오르는 걸 감추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대고 다시 말했다.
“나와 손잡고 큰물로 갔으면 하는데.”
“전하께서 황제로 즉위하시면 바로 주는 겁니까?”
“약속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에 낀 반지를 보였다. 펜던트가 편평한 이 반지는 직계 황족이 태어났을 때 장인을 불러서 파내는 일종의 도장이었다. 황족이 공문서가 아닌 개인적인 문서에 증표로 찍는 사적인 도장이면서도 법적인 효력을 가졌다.
물론 지금 이런 경우에는 거래 내용이 내용인 만큼 법적 효력을 가지는 문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런 문서에 이 도장이 찍혀 있다는 사실 자체로 내게는 족쇄가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앉은 이 남자가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그런 족쇄쯤 담보로 줄 수 있다. 지금 당장 작위를 줄 수 없으니 나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담보물을 제공해야 했고, 그들은 훗날 내가 약속했던 대가를 확실히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이윽고 그가 활짝 웃었다.
“좋습니다.”
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그 만 골드짜리 정보나 내놔.”
사실 오늘의 목적은 이거였다. 어느샌가 예상보다 큰 거래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좀 놀랍군요. 공국 귀족이 얽혀서 황실에서도 함부로 못 움직이는 거였다니…….”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셋째 공자가 누군지 몰라서 저한테 물어보러 오신 건가요?”
그는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예상보다 많이 늦어서 시간 없어. 그대와 말장난하고 싶지 않아.”
내가 딱 잘라 말하자 그가 지극히 일상적인 어조로 말했다.
“전하의 예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