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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녀님이 두 번째 삶을 사는 방법-133화 (133/148)

133화

“예. 아직 약혼식도 하지 않았어요. 딱히 걸릴 건 없어요. 게다가 사람들은 제가 로이드 님과 자주 만났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로이드 님만큼이나 엘비어스 님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거든요. 딱히 로이드 님이 제 약혼 상대라고 확신한 적은 없어요. 그러니 셋째가 좋겠어요.”

“네 말에는 어폐가 좀 있구나. 일단 로이드와 결이 맞지 않는다고 했어. 그런데 셋째는 괜찮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게다가 그쪽은 사교계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아 귀족 사회에 영향력도 없고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쉬쉬하는 사람이야.”

“그래서요. 난 내 옆자리에 국서로 앉힐 사람은 조용했으면 좋겠거든요. 황궁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시끄럽게 만들 사람은 원치 않아요. 어차피 크로이젠이 황실의 사돈이랍시고 제게 간섭할 거라면 적어도 내 배우자는 여기저기 휘둘리고 간섭할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거든요.”

“취향이 확실하구나. 이상형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여기저기 주고받을 인맥이 많은 로이드보단 개인적인 사교계 친분이 없는 데다 사람들이 잘 모르기까지 하는 알테어 크로이젠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굳이 필요한 인맥이라면 로이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제 힘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고모님은 내 말이 끝나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고는 등받이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이윽고 답했다.

“좋아. 외부에 밝힐 공식적인 황제의 입장은 이렇게 하면 될까? 황실의 사돈으로 크로이젠 공작가를 생각하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국서를 로이드 폰 크로이젠 공자로 내정했던 건 아니었으니 누구든 이번 사건을 황실과 엮어 황가를 모욕하지 말라. 그걸 원하느냐?”

“네.”

“그럼 다음 문제. 이에 대해 너와 로이드는 합의했을지 몰라도, 내가 방금 말한 것과 같이 발표한다면 크로이젠 공작과 나의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어. 그가 공식적으론 어찌할 명분이 없다고 해도 나나 네게 지극히 개인적인 앙금이 남을 수 있겠지. 그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지?”

“고모님께서 숙부에게 일부러 반역을 일으키게 하려는 계획을 알고 있어요. 저도 거기에 숟가락을 좀 얹는 중이고요.

그때 반역자를 잡는 가장 큰 일을 크로이젠 공작가에 맡기겠다고 해주세요. 반역자 가문인 체리에의 작위, 영지와 재산을 몰수하게 되면 공에 따라 그 일부가 공신들에게 분배될 것이고 그때 크로이젠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건 물론이고 엄청난 명예를 얻을 테니 구미가 당기겠죠. 그리고 어차피 그 역할을 어느 가문인가는 맡아야 했던 거 아닌가요?”

고모님께서는 곧 한참을 웃다가 입을 열었다.

“많이 컸구나…… 멜리. 약간 부족한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네 뜻을 긍정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겠다.”

***

정보 길드에서 연락이 온 건 내가 의뢰했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 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황실에 들어오는 모든 편지는 발신자가 누구인지 철저하게 확인을 거쳐 반입될 텐데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그들이 내게 먼저 편지를 보냈다.

‘황궁에도 사람을 심어 두었다더니, 무서운 놈들.’

나는 내용물을 빼낸 편지봉투를 곁에 있던 호위대장에게 넘겼다.

“이게 들어온 경로를 조사해.”

“범인을 잡아서 어떻게 할까요?”

“굳이 궁 내부의 분위기를 흐릴 필요는 없어. 이걸 내 편지들 틈에 끼운 사람이 누군지만 조용히 파악한 다음에 생각해 보지.”

나는 그렇게 말해 놓고는 곧바로 밀렌을 비롯해 몇 명을 데리고 정보 길드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길드장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건물 밖에 밀렌을 세워 놓고 몇몇 섀도 나이트는 주변에서 은신한 채로 기다렸다.

“편지를 보시자마자 오신 것 같네요. 내일 즈음 오실 줄 알았는데. 급하셨나 봅니다.”

“마침 일정이 없었을 뿐이야. 그나저나 대체 내 궁에 어떻게 그런 편지를 보낸 거야?”

“궁금하세요? 그건 10실버 정도 하는데.”

“윽! 그것도 정보 값이야?”

“그럼요. 영업 비밀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꽤 비싼 정보를 통 크게 구매하셨으니 반값 할인해서 5실버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5실버에 내 궁의 보안을 좀 더 강화할 수 있다면 꽤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그가 내 생각을 먼저 읽은 듯 말했다.

“어차피 아셔도 막지도 못할 테니 알려 드려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황실 보안을 만만하게 보는구나.”

“원래 조직이 거대할수록 보안이 강력할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사각지대가 그만큼 많아지거든요.”

들어 보니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그 수많은 궁인 한 명 한 명을 황실이 다 통제할 수단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 했다. 일단 궁인들의 시선을 항상 받는 나도 궁에서 몰래 나오는 게 가능했는데 아무도 관심 없는 궁인 하나쯤이야.

“하녀들에게는 들키지만 않으면 이거 꽤 짭짤한 용돈 벌이거든요. 특히나 황궁 내에서도 폐하나 전하께서 직접 거주하시는 궁에서 일하는 하녀들이 가져온 정보는 값이 좀 나갑니다. 청소 하녀가 가져오는 쓰레기통 속 높으신 분들의 사적인 편지도 있고, 주방 하녀들이 가져오는 식단 정보도 있고.”

“그런 짓 했다가 걸리면 황궁에서 퇴직금도 없이 잘리는 건 물론이고 황실 기밀을 빼돌린 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어.”

“그들도 압니다. 그리고 그건 그 궁인들 사정이지 우리 사정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들이야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해고와 처벌을 감수해도 될 정도로 퇴직금이나 벌금보다 그동안 벌어들인 정보 값이 월등히 비쌀걸요?”

황궁 관계자도 아닌 사람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입 안이 썼다.

“그럼 너희는 대체 그런 걸 알아서 뭐에 써먹는 건데?”

어차피 누가 봐선 안 될 중요한 편지는 대개 그 자리에서 태워 버린다. 이미 먹어 버린 식단이야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고.

“전하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 같은 걸 알 수 있죠. 전하의 공식적인 인맥이 아니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적인 인맥을 알 수도 있고요. 그건 전하께 잘 보이고 싶은 귀족들에게는 가치 있는 정보입니다.”

정보 길드장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반대로 악용하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악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그도 악용 가능성을 알면서 굳이 말하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으으, 소름 끼쳐.’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그가 말했다.

“크게 심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위험할 것 같은 정보는 우리가 입수하면 알아서 황실 보안부에 알려 주거든요. 우리도 목숨은 좀 아깝거든요. 게다가 그렇게 하면 황실에서는 우리에게 적당히 입막음 비용을 주거든요. 이것이 바로 창조 경제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전하께서 황제가 되시면 알게 될 내용이셨으니 이 정보는 딱히 비용을 받지 않겠습니다. 고맙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도 몹시 당당한 그의 태도 때문에 잠시 어이가 없었다.

“물론 전하 입장에서야 입막음 비용이 조금 아까우시겠지만, 우리 정보는 질이 좋아서 제국의 국가 중요 기관 여러 곳에서는 물론이고 황실에서도 자주 구매한답니다. 그러니 아마 황제 폐하께서도 이 정도는 감수하고 있는 거겠죠”

그의 말대로 어차피 듣기 싫어도 황제가 되면 알게 될 일이었다. 그리고 딱히 이런 것을 완벽히 막을 방법도 없으며, 지금의 정보 길드가 황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방법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지난 생에선 내가 몰랐던 세상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이들의 정보력이라면 아마 황궁 암투에도 깊숙이 관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남자가 그때 나를 죽이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걸 딱히 탓할 생각은 없다. 내겐 과거의 일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이니까 지금 내 편이 되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그는 어차피 황실에 충성을 맹세한 궁인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득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믿을 만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믿을 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적당히 서로가 이용할 건 이용하는 그런 관계면 충분했다.

“잡담은 이쯤하고. 그래서 내가 의뢰한 건 얼마나 알아냈다는 거지?”

“다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크로이젠에서도 마찬가지로 몇몇 정보는 우리에게 입막음 비용을 내고 있거든요. 특히 전하께서 의뢰하신 셋째 공자에 관한 정보는 더욱요. 그래서 당장은 알려 드릴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는 잠시 내 눈치를 보더니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이게 생각보다 꽤 큰 거라 정보 값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정보 값이 너무 어마어마해서 아무도 살 거라고 생각 못 한 모양인데요…….”

공작 후계자인 엘비어스에 관한 정보도 아니고 국서 후보로 거론되던 로이드의 정보도 아닌 것이 비싸 봐야 얼마나 할까. 내가 재촉하듯 물었다.

“얼만데?”

“만 골드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언제부턴가 내게 경제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다시피 한 아르의 연봉이 떠올랐다. 그걸 기준으로 자그마치 200년 치였다.

“평민 중산층의 몇백 년 치 연 소득이네.”

“중간 수준 귀족에게도 몇 년 치 생활비죠. 어지간한 고위 귀족 영지 하나의 1년 치 예산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아무리 고위 귀족이라고 해도 그걸 손쉽게 낼 수는 없을 거다. 나 역시 지금 당장은, 아니 앞으로도 이런 돈은 은밀키는커녕 대놓고서도 개인적으로 굴릴 수 없다.

‘계약금을 이대로 날려야 하나?’

그런 아쉬움이 들 즈음 정보 길드장이 말했다.

“저희는 정보로도 대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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