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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녀님이 두 번째 삶을 사는 방법-66화 (66/148)

66화

「아르가 일부러 불시에 빗나가도록 직선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저 마부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손쉽게 받았어요. 그 타이밍, 그 각도, 그 속도로 날아오는 동전을 여유롭게 받아 내는 건 우연이라도 일반인이 하기에는 힘든 기예입니다.」

마차가 덜컹거리는 탓에 글자를 또박또박 적기가 힘들어서 우리의 대화는 몹시 느리게 진행되었다.

「정체가 뭘까요?」

내 질문에 엘비어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장을 썼다.

「적어도 아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황후, 혹은 그 측근 중 하나가 우리의 외출을 눈치챈 거겠어요.」

「아뇨, 우리가 아니라 저하의 외출을 눈치챈 겁니다. 크로이젠 공작도 아니고 고작 후계자에 불과한 저를 암살하려고 황태손을 위협하는 짓을 누가 합니까. 차라리 다음 기회를 노리겠죠. 하지만 황태손을 암살하기 위해서 크로이젠의 아들 하나쯤 위험해지는 거야, 감수할 만한 일입니다.」

엘비어스는 ‘암살’이라는 단어를 결코 왜곡하거나 돌려 말하는 법 없이 몹시도 직설적으로 적어 나갔다. 그건 책사로서 그가 판단하기에 지금 상황이 그만큼 썩 좋지 못하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손바닥 위에서 송연하게 피어올랐다. 섬뜩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오자 심장이 저릿해졌다.

나는 내가 앉은 쪽 창문을 덮은 커튼 안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살짝 들어 올렸다. 한쪽 눈만 간신히 창문 밖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개를 살며시 젖혀 바깥의 동태를 살피자 옆에서 말을 타고 가던 아르가 슬금슬금 말을 마차 옆으로 붙였다. 그러고는 창문 바로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마주친 눈이 전에 없이 날카롭다. 내가 배시시 웃자 그가 입 모양으로만 살짝 웃어 보였다.

그때였다.

덜컹!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뒤에서 엘비어스가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악!”

서걱!

순식간에 내 바로 앞, 방금까지 내가 있던 그 자리에 기다란 칼이 들어와 있었다.

“흡!”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로 눈앞이 새카매졌다. 마치 해빙 밑, 깊은 심해에 내동댕이쳐진 채 온몸의 피가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습이다!”

마차 밖에서 호위대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엘비어스가 뻣뻣하게 굳은 내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괜찮으십니까, 저하!”

덜컹!

마차가 다시 흔들리고 꽂혀 있던 칼이 빠져나갔다. 그 순간 엘비어스가 마차 문을 발로 차서 열고는 나를 끌어안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휙!

“저하를 지켜라!”

누군가 외쳤다. 동시에 귓가에 바람이 스쳤다. 엘비어스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본 마차 안에 또다시 칼이 꽂혔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과 달리 시간은 몹시 느릿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비어스는 등으로 착지해 나를 끌어안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윽!”

동시에 조금 전까지 마차 옆에 있던 아르가 마부석 옆으로 나와 있었다. 길게 옆으로 뻗은 손에 검이 들려 있고 그 칼날은 마부석까지 뻗어 있었다.

칼끝에 닿아 있는 머리 없는 몸뚱이가 옆으로 스르륵 기울어졌다. 맥없이 기울어진 단면에서 피가 바닥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퍽! 떼구루루-.

새벽녘 보았던 무표정한 마부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초점 풀린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깜빡. 깜빡.

두어 번 깜빡거리던 시체의 눈꺼풀이 그대로 굳었다.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차가운 시체 냄새와 뜨거운 피비린내가 절묘하게 섞여 속을 뒤집어 놓았다.

“저하! 저하!”

차라리 그대로 정신을 놓아 버린 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멍하게 탈색된 머릿속으로 자꾸만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하, 정신 차리십시오!”

바닥에 나가떨어진 우리를 향해 검은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다른 암살자가 달려들었을 때 우리 앞을 공작가의 호위가 막아섰다. 그러는 사이 엘비어스가 내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듯이 꽉 눌렀다.

그 이후로는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고막을 때렸다. 누군가 소리치는 것도 들렸지만 귀가 먹먹해서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귓속이 아팠다.

잠시 후 눈을 가린 엘비어스의 손가락에 슬그머니 틈이 생겼다. 바깥의 상황이 그 가느다란 틈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를 둘러싼 공작가의 호위 다섯. 그리고 저 멀리 암살자 둘이 도주하는 것이 보였다.

온몸에 이미 기운이 없었다. 팔다리가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축 처졌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그 장면을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담았다.

“하아…… 하아…….”

막혔던 숨이 터져 나왔다. 싸우고 움직인 건 호위들인데 숨은 내가 몰아쉬고 있었다.

도주한 암살자가 보이지 않고도 시간이 꽤 흘렀을 무렵, 드디어 엘비어스가 크게 숨을 내쉬며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바로 옆에는 아르가 서 있었다. 사각지대라 보이지 않았었는데 멀쩡해 보이니 다행이었다.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퍼런 검을 허공에 털어 내며 갈무리하는 표정에는 조금 전 그가 사람의 목을 쳤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식한 것인지 그가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서늘하게 말했다.

“고개 돌리지 마시고 계속 정면만 보십시오.”

그 순간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던 머리가 떠올랐다. 상황이 진정되었으니 그걸 치우려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시킨 대로 정면, 길옆의 수풀 속을 멀리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를 끌어안고 있던 엘비어스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주변을 정리하고 마차의 상태를 확인해라. 서둘러라. 빠르게 저하를 모시고 다시 환궁해야 한다.”

아르가 내 앞을 지키는 동안 엘비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서서는 잔뜩 까진 제 무릎과 팔꿈치를 털었다.

등 뒤가 요란하게 바스락거렸다. 귀가 절로 쫑긋거렸다. 엘비어스의 호위들이 시체를 질질 끌고 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르의 무심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저하, 다친 곳은 없습니까?”

“일단은…….”

마차에서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긁히긴 했지만 심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차에서 굴러떨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쩡한 축에 속했다. 엘비어스가 온몸으로 감싼 덕이었다.

그 대신에 엘비어스가 많이 다쳤지. 옷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고 얼핏 보이는 피부 곳곳에서 모래 섞인 피가 덕지덕지 묻어 나왔다.

호위대장이 엘비어스 앞으로 달려왔다.

“마차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아무래도 말을 타고 가셔야 할 듯합니다.”

조금씩 주변이 정리되어 가는 듯했다.

“그래. 이만 일어나시죠. 갈 길이 바쁩니다.”

내가 주저앉아 있던 자리에서 슬슬 일어서려던 그때였다. 멀리 수풀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하고 빛이 났다.

“저하!”

그와 동시에 아르가 내 앞으로 훅 다가와 순식간에 끌어안았다. 시원한 들풀 향이 훅 끼쳤다.

내 등 뒤에서 호위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려왔다.

“도련님!”

그 목소리와 함께 엘비어스가 나와 아르를 동시에 감싸 안았다.

퍽!

“으아악!”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무릎을 꿇고 엎어진 엘비어스의 등 뒤로 날카로운 쇠붙이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숨은 몹시 거칠었고 꽉 다문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를 끌어안고 있던 아르가 황급히 뒤를 돌아 엘비어스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엘비어스의 등에 꽂혀 있는 투척용 단검을 뽑아냈다.

“아악! 예고하고 해!”

“옷 찢는다.”

“그딴 건 예고할 필요 없고!”

아르가 단검을 꺼내 엘비어스의 옷을 찢었다. 살점이 푹 떨어져 나간 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때마침 호위 한 명이 물병 여러 개를 들고 왔다. 아르는 그것을 받아 그대로 엘비어스의 등에 부었다. 등에 피와 함께 엉겨 있던 모래가 물에 씻겨 내려갔다.

“아아악! 야, 이 빌어먹을 꼬맹이! 이런 걸 예고하라고!”

엘비어스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아르는 지극히 건조한 눈으로 아까보다는 깨끗해진 상처 부위를 훑었다.

“치명상은 아니네.”

곧 호위대장이 붕대와 비상약을 가져와 엘비어스의 응급처치를 했다. 대강의 처치가 끝나자 엘비어스가 말했다.

“아아…… 빌어먹게 아프네. 꼬맹이, 넌 저하를 말에 태워서 황궁까지 전속력으로 모셔.”

나를 옆에 놓아두고 둘은 아까보다 진지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거 지금 엘비어스를 놓아두고 먼저 가라는 말인가?

나는 황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기 남는 건 위험해요. 엘비어스 님!”

그러나 엘비어스는 단호한 손길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저하! 저들이 노리는 건 저하입니다. 마차도 없는 지금, 부상자인 저는 짐일 뿐이고요.”

“하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다. 엘비어스는 내가 말끝을 흐리자 고개를 들어 자신의 호위대장을 불렀다.

“내 호위는 둘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저하를 모셔라. 나는 인근 마을에서 상처를 수습하는 대로 따라가지.”

“예.”

곧 아르가 자신이 탔었던 말을 끌고 왔고 호위대장이 나를 안아서 말 위에 올려 준 다음 아르가 나와 함께 올라탔다. 순식간에 높아진 시야가 적응되지 않고 어색해 말의 목을 바짝 끌어안았다.

엘비어스가 다가와 말의 갈기를 움켜쥔 내 손등을 부드럽게 쓸며 끌어안은 말의 목을 놓게 했다.

“저하, 허리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공작가의 호위가 황궁까지 모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공작저로 먼저 모시겠습니다. 도착하면 바로 황궁으로 전령을 보내십시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아르는 한쪽 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반대쪽 손으로 고삐를 당겨 말을 돌렸다. 곧 호위 셋이 우리를 삼각형 모양으로 에워싸고 황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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