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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녀님이 두 번째 삶을 사는 방법-59화 (59/148)

59화

“내가 착용하기에는 이 장신구들이 너무 크지 않나?”

그렇게 말하며 나는 미리 준비했던 백지 어음을 꺼냈고 엘비어스가 받아 빠르게 작성했다. 그러는 동안 지배인이 말했다.

“지금 들고 가시겠습니까, 배송을 원하십니까?”

“라벤더궁의 아멜리아 앞으로 보내.”

“예?”

지배인의 얼굴이 갸웃, 모로 기울었다.

곧 엘비어스가 다 작성한 어음을 지배인 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그가 위조 어음을 판별하기 위해서 어음을 받아 들고 햇빛에 비추어 본 순간,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어어어, 어음, 황실 어음……! 허억!”

지배인은 내 황금빛 머리카락과 루비색 눈동자를 꿈뻑꿈뻑 쳐다보다가 바닥에 엎드렸다.

“황태손 저어어어하아아아!”

“이럴 필요 없는데…….”

내가 오히려 당황해서 머뭇머뭇 어쩔 줄 모르자 아르가 지배인의 손을 붙잡아 일으켰다.

“세이렌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지배인은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아까보다 한층 과해진 배웅을 받으며 경매장을 나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엘비어스에게 뿌듯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한 일이 잘된 거죠?”

“예?”

그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비싸게 사는 바람에 지배인이 직접 왔고, 그래서 황후의 생일 파티까지 비밀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내 계략이었다는 듯 자랑스럽게 어깨를 쫙 펼쳤다. 그리고 엘비어스에게 팩트로 두들겨 맞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우연히 잘된 일이라고 그냥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게 만약 계획하고 지르신 일이었다면 이렇게 나중에 으쓱할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저지르기 전에 먼저 ‘내 계획이 어떠하냐?’라면서 책사인 제게 계획을 검토해 달라는 핑계로 칭찬해 달라는 표정을 지으셨겠지요.”

이 책사, 나를 너무 잘 안다. 게다가 묘하게 아르랑 똑같다.

“정적들에게 휘둘리기 딱 좋은 행동 패턴이시군요.”

나는 옆에 선 아르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르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쪽에서 싸워 놓고 왜 저한테 화풀이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십니까?”

“아니거든!”

***

씩씩거리면서 걷다가 문득 아르한테 미안해졌다.

“아까 소리 질러서 미안.”

“괜찮습니다.”

“맛있는 거 먹을까?”

나는 아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의 미안함을 피력했다.

“지금 점심 먹은 지 두 시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삐진 건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걸지도.

아르는 평소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고 생각이나 기분을 좀처럼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러니 지금도 삐져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밥 말고 맛있는 거.”

아르는 여전히 대답할 기미가 없었다. 색 없는 표정은 마치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그런 아르의 앞에서 알짱거리다가는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엘비어스를 올려다봤다.

“어때요? 우리 차 한잔할까요?”

나는 둘이 대답하기도 전에 바로 옆에 있던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르와 엘비어스도 어쩔 수 없이 내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 둘이 말릴 새도 없이 나는 북적이는 1층을 무시한 채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층마다 같은 음료라도 가격 차이가 심해진다는 건 들어 봐서 대강 알지만 그건 개의치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좋은 전망과 프라이빗한 룸이다.

잠시 후, 케이크 한 조각과 타르트와 쿠키 여러 개, 커피 한 잔, 과일음료 두 잔이 나왔다. 안 먹는다는 아르의 것도 내가 억지로 시켰다.

“자, 일단 사람인 이상 입안에 단 게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거든!”

나는 에그타르트를 들고 아르의 입 앞에서 흔들었다. 아르가 몸을 뒤로 쭉 뺐다.

아까부터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라는 얼굴이었다. 처음에는 앉지 않겠다던 녀석을 내 옆으로 끌어당겨 강제로 앉혀 놓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별로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아 조용히 커피만 마시던 엘비어스가 보다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눈치를 보느라 저하 옆에 앉지 못하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는데? 로즈벨리아에서 저하와 겸상을 한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식당에서 나오다가 몰딘 남작과 시비가 붙었다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 이제 와 새삼스럽게…….”

와아, 방금 책사님 엄청 분위기 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의 입 앞에서 계속 타르트를 흔들었다. 어린아이가 되면 입맛도 어린아이로 변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마 그건 아르도 마찬가지일 거다. 이 유혹은 참기 힘들 것이다!

“그냥 제 손으로 먹겠습니다.”

아르는 내가 주는 타르트를 받아서는 마지못해 입속에 집어넣었다. 대충 분위기가 풀어지자 엘비어스가 이야기를 꺼냈다.

“차를 마시자고 한 건 아마 미뤄 둔 이야기를 하려는 생각이신 거겠지요? 몰딘 남작 이야기 맞으십니까?”

“맞아요. 그 변태 놈 일은 잘되고 있어요? 공자께서 알아서 한다 하였지요? 고마워요. 덕분에 원하던 항구도시를 잡음 없이 세르피스 후작가에 선물했어요.”

“별말씀을요. 공작가는 곧 더 좋은 땅을 받을 텐데요. 어쨌든 그날 이후로 계속 남작의 사업을 들쑤셔 주고 있습니다. 재산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더군요.”

“사업을 들쑤셔서 우리가 얻는 이득이 있습니까? 얼핏 들으면 치킨게임 같은데요.”

내 질문에 엘비어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좋은 지적입니다. 맞아요. 치킨게임이죠. 처음에 남작은 제가 공작저로 불러냈을 때 직접 오지 않고 대리인을 보내서 제가 뒤끝을 부리는 줄 알고 있더군요.”

“찔리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죠?”

내가 비아냥대자 엘비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그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자신과 크로이젠 공작가 사이에 접점이 없었을 거거든요. 지금은 아마 경비대가 수사를 강제로 종결해 버리고 저하의 몽타주를 전부 회수한 시점에서 무언가를 잘못 건드린 건 깨달았겠지만요.”

“제 정체를 알았을까요?”

“적어도 공작가와 연관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그날 왜 불렀는지를 몹시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왜 불렀는지를 궁금해한다……. 마치 그 사건을 왜 수면 위로 올리지 않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더라는 말 같군요.”

엘비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대화하려 하더군요. 그 사건을 묻기 위해서 불렀던 것이 아니냐, 그럼 협상을 하자. 그렇게 편지가 왔습니다.”

아니, 피해자가 이쪽인데 왜 협상을 저쪽이랑 해?

나는 순간 테이블을 치며 벌떡 일어나고 싶었던 것을 꾹 참고 이를 갈았다.

“감히 내 호위의 뺨을 쳤어요. 협상 같은 건 없어요. 합법적으로 끝을 볼 겁니다.”

“합법적으로 처리하려면 그자가 하녀로 들인 아이들이 합법적인 경로로 취직을 한 것인지부터 수사해야 합니다. 다만 거슬리는 게 있다면 몰딘 남작이 워낙 사업 수완이 좋고 사업적으로 크고 작게 얽힌 귀족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남작을 제대로 수사하려면 적어도 귀족과 시비가 걸려야 한다는 말이네요. 골치 아프네.”

나는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쪽쪽 빨았다. 머리에 당분이 들어가야 좀 굴러갈 것 같다.

“네, 저하. 몰딘 남작은 귀족을 절대 건드리지 않아요. 그자는 같은 귀족들 눈치를 정말 많이 보는 작자죠. 마치 남작 부인을 만나기 전 평민 졸부였을 때처럼요.”

아마 나처럼 남작에게 부당한 일을 당한 평민(그 당시에는 내가 평민인 척했으니까)이 신고한다고 해도 수사 과정에서 다른 귀족들의 압박이 들어갔을 가능성도 컸다. 그 귀족들이 아무리 하급 귀족이라고 해도 평민인 경비대원들에게 귀족 나리는 다 똑같이 높으신 귀족 나리였다.

“이참에 남작의 진짜 죄도 제대로 조사하도록 해요. 그날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저처럼 남작에게 시비가 걸린 평민이 한둘 아닌 것 같던데요.”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알아낸 것이 있는데 남작은 주로 평민들에게 고리대금을 해주고 종신 계약서를 받아 내는 방법으로 여자아이들을 모읍니다.

채무자가 아닌 그들의 미성년 자녀를 채무 담보로 한 것도 범죄이고, 종신 계약이라는 게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 불법 노예 계약이죠. 불법 노예 거래소를 이용한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이쪽은 더 조사해 보아야겠지만요.”

와, 이거 생각보다 쓰레기네!

“수면 위로 끌어만 올린다면 작위 박탈과 영지 몰수는 확실하네요.”

나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흠칫 몸을 떨었다. 그자와 부딪쳤던 어깨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때, 바삭!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아르의 손안에서 가루가 된 쿠키가 바스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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