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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34화 (234/240)

234화

라리사 모어는 다시 죄인의 수레에 실렸다. 사람들 이 수레의 뒤를 따라가며 돌을 던졌다.

“이 더러운 마녀! 레이디 메그를 살려 내!"

“사형을 피했다고 좋아하지 마! 신께서 반드시 너를 벌하실 테니까!"

라리사에게 내려진 형벌은 바로 감금형이었다.

무기 징역도 아닌 36년 형. 그녀가 저지른 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벌이었다.

이블린은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을 다독거렸다.

“이 여자는 악마의 하수인입니다. 여기서 죽으면 세상에 재앙을 흩뿌릴 거예요. 모든 힘을 잃을 때까지 가둬 두는 편이 낫습니다."

죽이면 재앙이 온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라리사에게 돌을 던지는 것으로 화풀이를 할 뿐이었다.

광장을 한 바퀴 돈 수레는 목적지인 하얀 탑에 도착했다. 죄를 지온 왕족이냐 고위 귀족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저런 악녀가 하얀 탑에 들어가다니. 신녀님이 너무 자비로우신 것 아닌가?"

“어허, 걸게 무슨 무엄한 소리인가 엄한 곳에 가뒀다가죽으면 안되니까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악녀 따위에겐 어울리지 않는 호사라고."

불만스런 웅성거림 속에서 라리사가 수레에서 끌려 내려왔다. 초점 없이 흔들리던 그녀의 눈이 사람들 틈에 숨어 있는 조슈아를 발견했다.

“조슈아!”

후드를 깊게 눌러쓰긴 했지만, 남편이었던 남자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조슈아! 구해 줘! 날 여기서 도망치게 해 줘!"

라리사는 병사들의 손을 부리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당황한 조슈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난…….”

사실 조슈아는 라리사에게 끔찍한 형벌이 내려질 줄 알았다. 그때 앞으로 나서서 이블린의 잔인함을 비난 하려했다.

신녀라는 사람이 이렇게 비정할 수 있냐고, 신들의 자비는 어디 갔냐고.

그럼 라리사를 구하진 못해도 이블린의 명성에 흠집은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라리사는 고작 36년 형을 받았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섰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다.

"살려 줘! 날 살려 달라고! 난 당신의 아내잖아!"

라리사는 조슈아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아니야! 난 몰라, 내가 모르는 여자야!"

이내 조슈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다. 라리사가 이를 갈며 욕을 내뱉었다.

“이 겁쟁이! 비겁한 놈! 더러운 고자새끼!"

병사들이 발버둥 치는 그녀를 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라리사는 계속 저항했지만, 건장한 남자들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탑의 최상층에 도착했을 때는 신발이 모두 벗겨지고 이리저리 꺾인 발목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어서 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블린이 생긋 웃었다. 그렇게 무게 느껴지던 얼굴이 지금은 아주 평범해 보였다.

이블린이 제 힘을 억눌렀기 때문이지만, 라리사가 그런 것을 알리  없었다.

‘분명 더러운 수법을 쓴 거야. 마도구 같은 걸로 나를 속여서 마녀로 몬 거라고!'

라리사는 분노에 치를 떨며 그녀를 노려봤다. 그러자 이블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반응이야? 내가 널 살려 줬잖아. 게다가 널 위해서 여기서 제일 좋은 방까지 준비했는데?"

이블린의 말처럼 탑의 꼭대기는 특실이었다. 감옥이 아닌 귀족의 방처럼 보일 정도였다.

바닥에는 폭신한 카펫이 깔리고 커다란 사주 침대와 고풍스러운 테이블에 의자까지 있었다. 죄인에겐 과분한 대우였지만 라리사는 분노와 억울함만 느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는데. 세상의 주인이 될 그분 옆에서 최고의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 오랜 꿈을 이블린이 망쳐 버렸다.

“이 나쁜 계집, 네가 감히 주인님을……!”

“응, 네 주인 이제 없어. 죽었어.”

이블린의 거침없는 대답에 라리사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블린에게 달려들려 했다.

"죽어! 이 악랄한 악마 같은 년! 죽으라고!"

격렬한 몸부림에 건장한 병사들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이블린은 라리사가 제풀에 지칠 때까지 구경만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고민을 좀 해 봤거든.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 너를 후회하게 만드는 방법 말이야.”

"······후회?"

라리사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 웃었다.

"난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네까짓 게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소용없다고, 꿈 깨시지!"

뭘 후회하란 말인가. 라리사는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고저 운이 없었던 것뿐이니까.

고귀한 태생으로 태어나 최고의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현실이 그러지 못해서 이런저런 수단을 썼을 뿐이었다. 그게 잘못이라고? 천만에!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다.

“멍청하고 바보 같아서 당한 걸 왜 내 탓을 하지? 당하기 싫었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았어야지!"

“너무 강하게 말하지 마. 약해 보이잖아?"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한 이블린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마거릿이 고통받은 12년, 아서가 고통받은 12년, 세수가 고통받은 12년, 전부 합쳐서 36년. 넌 그동안 만 여기 있으면 돼.”

왜 36년인가 했더니 그런 유치한 뜻이 있었던 모양이다. 라리사는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비웃음에도 이블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 식사와 씻을 물이 제공될 거야. 노역도 없으니 아주 편하게 있을 수 있어. 그리고 36년이 지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여기서 나가는 거야. 굉장히 너그럽지 않아?"

“내가 그 말에 속을 것 같아?"

“전부 진실인데 믿어 주지 않다니 좀 아쉽네."

어깨를 으쓱한 이블린이 감옥을 나섰다. 막 문을 통과한 그녀가 라리사를 돌아봤다.

"끝까지 후회하지 않고 버티길 바랄게.”

성긋 웃은 이블린은 라리사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라리사를 바닥에 내팽개친 병사들도 밖으로 나가 문을 잠갔다.

라리사는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36년이나 여기 처박혀 있으라고? 그동안 그녀의 외모는 완전히 시들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될 것이다.

이블린은 늙고 추해진 라리사가 비참하게 굶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 분명했다. 아니면 36년 후에 농담이었다며 풀어 주지 않던가.

‘내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절대 네 뜻대로 되지 않아.'

라리사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이블린에게 재를 뿌리고 싶었다. 그 얄미운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았다.

“이 여자는 악마의 하수인입니다. 여기서 죽으면 세상에 재앙을 흩뿌릴 거예요. 모든 힘을 잃을 때까지 가 둬 두는 편이 낫습니다.”

문득 이블린의 말이 떠오른 라리사는 입을 쭉 찢으며 웃었다.

‘그래, 모두의 앞에서 죽어 주지. 마녀인 나를 제대로 가두지 못한 네가 모든 재앙의 책임을 지도록 말이야.’

이블린은 라리사를 마녀로 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네 탓을 할 거야. 너도 한번 당해 보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라리사는 창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이를 악문 라리사는 창문을 부술 도구를 찾았다. 무거운 의자를 가까스로 들어 올려 내던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잠금이 깨졌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죄인을 확인해!"

병사의 목소리와 함께 철컥거리며 자물쇠를 푸는 소리가 났다. 마음이 급해진 라리사는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녀는 감옥에 창살이 없다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상층은 특실이었으니까.

저 아래쪽에 동그랗게 모인 사람들과 그들의 칭송을 받는 이블린이 보였다. 그녀의 옆에는 세수 엘마이어가 서 있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에 울컥 화가 났다. 그들의 앞에서 끔찍하게 죽어 행복한 순간에 재를 부려 주리라.

라리사는 망설임 없이 창틀로 기어올랐다. 고통은 잠깐이었다. 늙어서 추하게 굶어 죽거나, 고독에 미쳐가는 것보단 이러는 편이 나았다.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그녀는 이룰 악물고 몸을 내던졌다. 펄럭거리는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땅이 가까워졌다. 이내 끔찍한 고통과 더불어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라리사는 몸부림치며 깨달았다. 뭔가가 잘못됐다. 당연히 찾아와야 할 죽음의 안식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

대지신은 그녀의 영혼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죽음에서 튕겨져 나온 라리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발작을 일으켰다.

“끼아아악!"

부서진 몸으로 발버둥을 치던 그녀는 태평하게 서있는 이블린을 발견했다. 조금의 놀라움도 없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것 같은 담담한 눈동자.

‘나를 속였어!'

충격으로 고통마저 잊어버린 라리사가 일어났다. 죽어야 할 몸으로 삐걱삐걱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아악! 신이시여!"

"악마, 악마다! 저 여자는 악마였어!"

“신녀님,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신녀님!"

쓰러지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용서를 비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사방이 시끄러웠다.

‘너! 네가 날 속였어! 이 악마 같은 계집! 날 원래대로 돌려놔!'

라리사는 악에 받쳐 소리쳤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끔찍한 비명뿐이었다.

이블린은 비틀비틀 다가오는 라리사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녀를 감싸듯 세수 엘마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이 검 손잡이를 움켜잡는 것이 보였다.

‘어?'

다음 순간, 뭔가가 번쩍거리나 싶더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풀렸다. 라리사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끔찍한 고통은 여전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치 온몸의 근육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쓰러진 채로 경련하는 라리사에게 이블린이 다가왔다. 광기 어린 붉은 눈이 상냥하게 속삭였다.

“오늘이 첫날이야, 라리사. 남은 36년 동안 힘내. 파이팅!"

라리사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발작하듯 비명만 질러 댈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던 세수가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불렀다.

"죄인을 탑으로 옮겨라."

놀라 달아나 버린 병사들과 달리 산전주전을 다 겪은 기사들은 비명을 질러 대는 라리사를 묵묵하게 탑으로 옮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라리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어떡하지? 저 악마가 죽었느니 이제 재앙이 퍼지는 거 아니야?"

"몸이 박살 난 것뿐이지, 아직 죽지 않았잖아!"

"저 정도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때, 이블린이 정령수의 가지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황금색 가지를 움켜쥐고 힘을 불어넣자 은빛 잎들이 환한 빛을 내뽑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불안을 단번에 가라앉힐 정도로 성스러운 빛이었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가지를 휘적휘적 흔들고 사람들을 톡톡 건드린 이블린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악마의 하수인이 내뿜은 재앙을 모두 정화했습니다. 이제 그 사악한 존재는 탑에 갇혀 나오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오, 신녀님!”

"역시 선녀님이시다!“

사람들은 이블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블린에게 불만을 토했던 이들은 참회의 눈물을 홀리며 무릎을 꿇었다. 선녀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라리사 모어는 재앙을 일으키는 악마가 되어 하얀 탑의 꼭대기에 봉인 당했다. 화려한 방에 갇혀 천천히 썩어 가게 된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복수를 완성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블린은 정령수에 꽃봉오리가 맺혔다는 백탑주의 진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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