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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24화 (224/240)

224화

세수는 어떻게든 나를 말리려고 했다. 내가 흑막이 죽은 장소에 들어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내가 선발대로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앞서 들어간 사람들이 위험한 게 없다고 확인했는데도 계속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꼭 제가 가야 해요.”

흑막을 해치웠지만 아직 보상을 받지 못했다. 세수에게 보보를 퍼붓다가 기절할 뻔했다는 소리다.

아무래도 ‘지배의 왕관’에서 떨어져 나간 보석 욕망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퀘스트 완료가 되는 것 같았다.

“당신 이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찾아서…….”

"손톱만 한 보석이라 찾기도 어렵고, 겉으로 보기엔 숯덩이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제가 후다닥 살펴보고 나오는 편이 나아요.”

나는 보석을 찾으려고 지배의 왕관까지 빌려 왔다. 둘이 원래 한 몸이었으니 가까이 가면 어떻게든 반응 할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거참, 적당히 하고 들어갑시다. 어차피 주인님을 이기지도 못하면서.”

기다리다 지친 말라크가 세수를 재촉했다. 함께 사자궁을 탐험하기로 한 루시아와 백탑주도 피곤한 표정이었다.

잠시 말라크를 노려보던 세수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대신 내 옆에서 벗어나면 안 돼"

“세수 옆에 딱 붙어 있을게요.”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자 겨우 세수 표정이 풀렸다. 나는 세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지배의 왕관을 움켜쥐었다.

‘더 이상의 독수공방은 네이버!'

나는 이를 깍 깨물고 사자궁 안으로 발을 디뎠다. 열기에 녹아내린 건물은 마치 파헤쳐진 무덤처럼 스산했다.

-우우웅!

그때 지배의 왕관이 몸을 떨었다. 수맥 찾는 막대기처럼 일정한 방향에서 더 강한진동이 느껴졌다.

“이쪽입니다! "

“내가 먼저 갈게.”

세수가 나를 방패처럼 감싸고 나아갔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다른 사람들도 잔뜩 긴장하며 따라왔다.

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중앙홀이 있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다.

"여기 있는 건 확실한데."

홀에 들어오자 지배의 왕관은 안마기처럼 붕붕 떨렸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반용이 강해서 보석을 찾는 일 에 도움이 안 되고 있었다.

"까아악!”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라 돌아보자 루시아가 제자리에서 팔짝거리며 소리쳤다.

"쥐, 쥐가!"

“아이 씨, 깜짝 놀랐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말라크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루시아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죽은 쥐가 움직였다고요!"

불타 버린 홀의 곳곳에서 붉은 눈을 번득이는 쥐들이 튀어나왔다. 반쯤 녹아내리거나 형체만 남은 놈들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으아악!“

좀비 쥐를 보고 기겁한 말라크가 빛의 창을 휘둘렀다. 창끝에서 빛이 튀어나와 쥐들을 꿰뚫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놈들은 꿈적도 하지 않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다들 가운데로 모여! 백탑주! 실드를!"

세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쥐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백탑주의 실드가 놈들을 가로막았다. 죽은 몸뚱이가 퍽퍽 실드에 부딪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우와악, 징그러워!"

”놈들이 제 실드를 파먹고 있습니다!"

백탑주가 새로운 실드를 펼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실드에 달라붙은 쥐들이 빠르게 구멍을 뚫는 중이었다.

“고개 숙여! 내가 베겠다!"

나를 내려놓은 세수가 주크를 움켜잡았다. 다들 엎드리기 무섭게 섬뜩한 기운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주크의 기운을 맞은 쥐들이 흔적도 없이 터져 나갔다. 세스코가 극찬할 솜씨였지만, 감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백탑주의 실드가 사각사각 갉아 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 설마 그 괴물이 아직 안 죽은 건가요?"

루시아가 내가 제일 걱정하던 부분을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쥐들이 품고 있는 기운은 흑막의 것과 똑 같았다. 말라크가 기겁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 벌레 새끼도 아니고 왜 안 죽어?!"

이 정도면 바퀴벌레가 형님이라고 울고 갈 것 같았다. 나는 흑막의 생명력에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와, 어떻게 천공신의 힘으로 조져도 살아남지?'

번개로 지지고 태우기까지 했는데 사라지지 않는 건 정말 예의가 아니었다.

그때 세수가 주크를 내밀었다.

“이비, 사람들과 함께 여길 빠져나가.”

왕의 길을 열어서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나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가려면 다 함께 도망쳐야죠!"

"놈을 붙잡아 둘 미끼가 필요해. 여기서 놓치면 피해가 얼마만큼 커질지 알 수가 없어."

세수는 이곳에서 풀려난 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너무 올곧은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저도 남겠어요."

"방어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루시아에 이어서 백탑주까지 남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말라크가 내 등을 떠밀었다.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주인님은 어서 가서 지원군이나 빵빵하게 보내 주십쇼.”

“아뇨,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찌꺼기예요. 흑막을 잡으려면 본체를 찾아야죠. 제가 찾을 수 있어요!"

이대로 쥐만 잡다가 지쳐 버리면 끝장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지배의 왕관에 있는 힘껏 힘을 불어넣었다.

내가 오늘 흑막을 왕관으로 두들겨 패서라도 승천시키고야만다!

-우우우웅!

내 힘을 받아먹은 왕관이 윙윙거리며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때 천장 쪽에서 쥐와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를 쳐다봤다.

"거기냐!"

새카만 덩어리가 약해진 실드 위로 뛰어내렸다. 까맣게 타 버린 상체에 두 팔만 달려 있는 모습이 꼭 거대한 바퀴벌레 같았다.

흑막이 백탑주의 실드를 박살내는 것과 동시에 내가 집어 던진 왕관이 놈의 가슴에 푹 박혔다.

한 팔로 나를 끌어안은 세수가 주크를 휘둘러 흑막을 밀어냈다. 공처럼 획 날아가는 흑막에게 그림자에서 솟구친 누군가가 달려들었다.

“제스터! 멈춰!"

세수 말에 나는 상대가 제스터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니, 대체 언제부터 따라온 거야?!

"안 돼!"

흑막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제스터를 보고 세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썩둑 잘려 나간 흑막의 목에서 쏟아진 붉은 끈끈이가 제스터에게 달라붙었다. 제스터를 새로운 숙주로 삼을 생각인 것 같았다. 우득우득 하고 뭔가를 파먹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대지여! 당신의 어린 양을 보호하소서!"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는 제스터에게 루시아가 신성력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흑막은 온 힘을 다해 제스터의 몸에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지금껏 조종하던 좀비 쥐들도 내팽개친 후였다.

“제스터 정신 차려!"

제스터 옆에 무릎을 꿇은 세수가 흑막을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필사적인 그의 노력은 제스터의 고통만 더 크게 만들었다. 눈이 하얗게 뒤집힌 재로 경련하던 제스터가 세수 팔을 움켜잡았다.

"주, 죽여! 빨리, 날 죽여! 죽이라고!"

세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붙잡았다. 고통을 못 이긴 제스터의 손톱에 팔이 마구 긁히고 있는데도 부리치지 않았다.

“마, 막을 수가 없어요! 어떡, 어떡해야 하죠?"

그때까지 제스터에게 신성력을 불어넣던 루시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빛이여 ! 삿된 것을 몰아내라!"

백탑주 역시 식은땀을 뻘뻘 홀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뒤에서 어쩔 줄 모르던 말라크가 물었다.

“지금 저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신이 새로운 숙주가 되겠죠!"

"절대 숙주가 안 될 사람에게 죽이라고 하면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던 루시아가 움찔했다. 흑막을 죽이고도 숙주가 되지 않았던 사람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세수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크으윽, 끄으으!"

제스터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얗게 질린 세스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 진짜……!"

나는 하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려다가 참았다. 어쩐지 눈알 녀석이 의미심장한 말을 잔뜩 해 놓고 도망치더라니!

내가 굳이 여기 들어오겠다고 우기고, 제스터가 말없이 그런 나를 따라와 새로운 숙주가 되고. 이건 너무 노린 것 같지 않은가.

"세수.”

내 부름에 세수가 고개를 들었다. 잔뜩 충혈된 푸른 눈을 보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잃지 않을 테니까."

그의 어깨에 앉아서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라고 속삭이는 운명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이비, 하지 마!"

뭔가를 눈치챈 세수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지나치게 눈치가 빠른 남자에게 빙긋 웃어 주었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지극히 총애받는 자여.

이것이 내 사명이라는 것을.

-이제 그대의 사명을 다하라.

인간의 사도로서 ‘욕망'올 봉인하는 것.

"돌아와라, 욕망. 네가 있을 자리로.”

제스터 쪽으로 손을 내밀자 그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것들이 나를 덮쳤다.

"안 돼!"

붉은 파도에 휩쓸리는 순간, 절망에 가득 찬 세수 얼굴이 얼핏 보이다 사라졌다.

* * *

나는 벨벳으로 감싸인 의자에 앉아서 눈을 깜빡였다.

커다란 창문으로부터 포근한 햇살이 스며들고, 숨을 쉴 때마다 달콤한 냄새가 느껴졌다.

제스터의 디저트 가게와 똑같은 풍경이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죽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가씨를 볼 수 있는 건 좋네요.”

맞은편에 앉은 제스터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에 집중하기보다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이곳은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라 욕망의 배 속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계셨죠?"

하지만 제스터의 물음에 집중력이 깨지고 말았다.

“······모른 척해 주길 바란 것 아니었어요?"

왕실 무도회 날,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던 제스터는 그 뒤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 고백한 것도 아닌데 미리 거절할 수도 없지 않는가.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세수를 좋아하고, 전 세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쓴웃음을 지은 제스터가 말을 이었다.

“세수가 그러더군요. 아가씨의 옆에 있으려면 수많 온 가족들을 먹여 살릴 재력과 그들을 지켜 낼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공작으로 남을 결심을 했다고.”

아니, 우리 세수가 그런 기특한 말을 했단 말이야? 돌아가면 마구 보호해 줘야겠군.

“그 말을 듣고 포기해 버렸지만, 이렇게 미련이 남을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해 볼 걸 그랬습니다.”

"돌아가면 고백해 주세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세 게 차줄게요."

"······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제스터에게 싱긋 웃어 주었다.

“우리 아직 안 죽었어요. 지금부터 제가 당신을 현실로 돌려보낼 거고요.”

이제 욕망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을 구해 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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