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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20화 (220/240)

220화

다급하게 외치던 녀석은 밖으로 질질 딸려 나가는 라리사를 보고 잠시 주춤거렸다. 그리고 자신 없는 얼굴로 물었다.

"저, 조금 뒤에 다시 올까요?"

“괜찮으니 어서 보고해라. 무슨 일이냐?"

"구,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사자궁 쪽에 문제가 생 겼습니다!"

왕을 향해 무릎을 꿇은 과목이가 밖의 상황을 보고 했다.

벽돌 연합군의 활약으로 흑막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전부 해방시켰다는 것. 그리고 흑막을 추적하여 사자궁으로 몰아넣었다는 것까지.

“사자궁을 포위하고 안으로 진입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때문에 아군을 후퇴시켜야 했습니다.”

사자궁 전체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감싸인 것처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힘으로 밀고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안에서 튀어나온 그림자에게 공격당했다.

“그림자?"

‘예, 공격당하기 전에는 일반적인 그림자와 똑같아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림자에 당한 자들은 죽었느냐?"

“다행히 기절했을 뿐입니다. 신관들의 말로는 생명에너지를 일부 빼앗긴 것 같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벽돌의 힘으로도 그림자의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연합군은 그림자와 닿지 않는 곳에서 사자궁을 포위하고 활로 견제하는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정오가 가까워서 그림자의 길이가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해질 거라는 판단입니다.”

어두워질수록 그림자의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밤이 되면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흑막의 먹이가 될 수도 있었다.

‘확실히 큰일은 큰일이네.’

과목이가 다급하게 달려올 만했다.

상황을 파악한 왕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자궁은 대대로 왕위 계승자가 머물던 곳이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궁을 보호하는 고대 마법이 걸려 있지.”

프리지어 궁의 별궁처럼 폭탄을 떨어트리고 마법을 날려도 끄떡없을 거라는 소리였다.

흑막이 사자궁으로 도망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레베카왕녀 때의 기억이 있으니, 사자궁의 강력한 방어막을 이용할 생각이었겠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자궁의 비밀 통로를 사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블린,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느냐?"

"어, 그것이…….”

왕의 물음에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그림자는 흑막이 처음 선보이는 진기명기라서 따로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폐하, 제가 선두에서 길을 뚫겠습니다."

내가 선뜻 대답을 못 하자 세수가 방패처럼 앞으로 나섰다. 화들짝 놀란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니, 제일 뒤에 숨어 있어야 할 사람이 무슨 소리야?

"안에 숨어 있다면 밖으로 끄집어내고, 이상한 능력 올 쓰지 못할 정도로 힘을 빼놓으면 됩니다. 굳이 궁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림자와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왕이 아는 비밀 통로는 당연히 흑막도 알고 있다. 분명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 뒀을 것이다. 적이 손꼽아 기대하는 일을 굳이 해 주고 싶진 않았다.

"말은 쉽다만 그걸 어떻게 한단 말이냐?"

”폐하, 신에게는 아직 행사가 남아 있습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오늘을 위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당연히 지금 써먹어야지.

"비록 불미스러운 일로 회담이 중지되었지만, 먼 길을 오신 귀빈들도 있는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요.”

“아니, 처재 우린 신경 쓰지 마"

나바르 태자의 반항을 무시한 나는 왕과 눈을 마주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폐하, 분위기도 띄울 겸 이쯤에서 천공신을 모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응?"

“뭐니 뭐니 해도 아스트리아의 수호신은 천공신입니다. 분명 다들 열광할겁니다! "

이전에 콜그랜마로 대지신의 꿀을 빨았던 나는 그 달달함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흑막 올 상대하기 위해서는 천공신을 부르는 게 답이었다.

무엇보다 흑막은 천공산의 신기인 ‘지배의 왕관’이 낳은 괴물. 흑막이 설치고 다니는 것에는 천공신에게도 아주 약간의 책임이 있는 셈이다.

"허허, 짐이 요즘 난청이 생긴 모양이군.”

왕이 갑자기 귀를 후벼 파며 현실 도피를 시작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성녀가 왕의 팔을 토닥였다.

"외면해 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입니다.”

“아니, 성녀. 우리 애가 지금 천공신을 부른다잖소. 신이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부른다고 오겠소?!"

“대지신께선 이블린이 부르니 바로 오셨기 때문에.”

대지신을 강아지로 만들어 버린 왕이 당황해서 헛기침을 삼켰다.

“대지신께선 워낙 자비로우시니 그럴 수도 있지”

“오자마자 사도궁을 부숴 버리셨습니다만.”

완전에 할 말을 잃은 왕이 입을 다물었다. 대신 공왕이 콧방귀를 뀌며 쏘아붙였다.

“아스트리아에서 감히 천공신을 부르겠다는 소리를 하다니, 배반의 기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잊었나 보지?!"

"네? 무슨 짓을 했는데요?"

내가 아는 거라곤 배반의 기사가 몇 백 년 전의 사람이라는 것과, 북부에서 잘 살던 정령수에 갑자기 창을 꽂았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 또 어떤 미친 짓을 했을지 심히 궁금해졌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당황한 공왕이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전 타국 출신이잖아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요?"

“아니, 그 정도는 상식이잖아!"

"저 상식 없어요. 다 클 때까지 밖에도 못 나가고 집에 갇혀서 자랐는데요?"

“그······."

내가 당당히 무식함을 자랑하자 공왕은 마치 남의 상처라도 건드린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날고양이 학대범이라 악감정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배반의 기사는 대신관과 똑같은 죄를 저질렀다. 정령수를 제물로 바쳐 천공신을 지상에 묶어 두고 힘을 갈취하려고 했지. 결국 신의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

"저런."

“그런데도 너희는 천공신의 후손이라며 아스트리아라는 이름을 짓고 신을 기만했다!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야!"

“벌써 몇 백 년이나 지난 일을 바로 어제 일어난 것처럼 우려먹는군."

왕의 투덜거림에 공왕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는 천공신께 버림받은 죄인이야! 아무리 불러 봤자 결코 오지 않으실 거다!"

확실히 천공신이 외면할 정도로 큰 죄였다. 게다가 화가 난 천공신을 달래기는커녕 대지신으로 홀랑 갈아타고 몇 백 년이나 방치했으니. 불러도 절대 안 올 거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이해가 됐다.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뭐? 내 말을 뭐로 들은 거냐! 무조건 실패한다니까!“

하지만 그래서 성공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한동안 아무런 교류가 없던 상대가 갑자기 엉덩이를 콕 찌르면 이게 뭔가 싶어서라도 살펴볼 테니까.

그리고 전통 있는 유교걸인 나는 천공신의 마음을 살살 녹일 자신이 있었다.

”폐하, 저를 믿고 행사를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천공신의 힘을 빌려 흑막을 처리하고 아스트리아의 위상을 드높이겠습니다.”

“······그래, 이블린 너를 믿겠다."

왕은 조금 지 친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억지로나마 허락을 얻은 것에 기뻐하며 세수를 바라봤다. 우리 내조 대왕께서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럼 귀빈들께서는 어서 행사장으로 이동해 주세요. 폐하, 폐하께선 의상부터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나는 매가리 없는 귀빈들을 밖으로 내몰고 왕을 시녀장의 손에 떠맡겼다. 그러자 옆에서 눈치를 보던 브란이 슬금슬금 나를 붙잡았다.

"누나, 또 위험한 일 하는 건 아니지?"

내가 얘 앞에서 위험한 일을 한 적이 있었나?

조금 의아했지만 그냥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정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걱정하지 마. 누나는 행사 뛰러 가는 거니까. 하나도 안 위험해."

그러자 울먹이는 표정이 된 브란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까도 느꼈지만 전보다 키가 꽤 많이 자랐다.

"난 누나가 보고 싶었는데, 누나는 나 보자마자 때리기나 하고 진짜 너무해!"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다."

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녀석을 토닥거려 주었다. 이번 일만 해결되면 더 이상 걱정할 거 없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안 나왔다.

“이비, 이만 동생을 보내는 게 좋겠어. 성하께 맡기는 쪽이 더 안전할 테니까."

그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던 세수가 막 이동하려는 성녀 쪽을 힐끗 보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 인 나는 브란을 놓아주었다.

“성녀님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알겠지?"

이 상황에서 브란이 인질로 잡히기라도 하면 다 망하는 거다. 내 목소리에서 심각함을 느꼈는지, 브란은 떼쓰지 않고 얌전히 물러섰다.

"브란, 이쪽으로 와라"

그리고 조금 전에 봤던 가짜 오빠가 브란을 챙겼다.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니 함께 등짝을 맞으면서 전우애라도 싹튼 모양이다. 순순히 가짜 형의 손을 잡은 브란이 당부했다.

"누나, 조심해야 해.”

“걱정하지 말고 행사장에 가 있어 나도 곧 따라갈게."

세수를 힐끗 쳐다본 브란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를 본 성녀가 신관들을 이끌고 다가왔다.

“이블린 동생의 말처럼 조심해야 합니다. 카스티야의 괴물이 노리는 게 당신일 수도 있어요.”

"예? 저요?"

누가 봐도 우리 김세스 씨가 제일 탐스럽지 않나?

의아해하는 나를 붙잡고 다시 한번 조심하라고 당부한 성녀가 브란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자 이번엔 나바르의 태자 부부가 다가왔다.

"처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몸조심해야 해"

“예? 또 무슨 헛소리세요?”

"태자비와 나는 아들딸 골고루 낳아서 처제와 사돈을 맺기로 했다고. 그러니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겨!"

어하 아직 손만 잡고 자는 사람들에게 말이 심하다!

울컥하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태자가 계속 나불거리다가 태자비에게 끌려갔다. 나는 손부채질을 하며 화를 삭이려고 애썼다.

“이비."

그때 수줍게 다가온 세수가 장미 한 송이를 내 손에 들려주었다. 내 뺨에 스치듯 살짝 키스한 그가 속삭였다.

"작위를 받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공비 전하.”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계속 기다렸던 모양이다. 나는 태자 때문에 들끓던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더 좋은 걸 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미안해하는 그와 달리, 나는 눈에 띄지 않게 숨겨 온 꽃 한 송이가 어떤 보석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반드시 흑막을 박살내고 대지신께 보상을 타 내겠다고 다짐하며 장미를 가슴 장식 옆에 꽂았다.

“이 장미가 시들기 전에 꼭 흑막의 목을 베겠습니다.”

"응.”

내 말을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세수가 작게 웃었다. 순도 100%의 진심이었던 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세수 손을 꽉 붙잡았다.

흑막, 목을 씻고 기다려라! 지금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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