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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12화 (212/240)

212화

-아아, 내 아들아!

그사이 무대 위엔 왕 역할의 배우가 등장했다. 비탄에 잠긴 왕은 죽은 왕자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누가 내 아들을 죽였느냐! 누가!

-왕이시여! 왕이시여! 그 여자! 그 여자의 짓입니다!

시종들의 합창과 춤으로 왕자가 왜 자살했는지 알게 된 왕은 이를 갈며 복수의 노래를 불렀다.

-지옥의 불길이 내 가슴을 불태우는구나! 신이시여, 그 여자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느끼게 하소서!

우연인지 왕의 시선은 조슈아에게 닿아 있었다.

고막을 찌르는 날카로운 목소리,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이 조슈아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그는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조슈아는 이블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극에서처럼 라리사가 마거릿 공녀를 살해하고 세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일이잖아. 이젠 모두가 잊고 잘 살고 있잖아!’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면 너그럽게 용서할 수도 있지 않는가.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면서 보복하려 들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조슈아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박스석의 귀족들이 모두 그를 보고 있었다.

"…….윽!"

단지 호기심 어린 시선일 뿐이었다. 형제 살해자로 몰렸던 세스가 받은 눈빛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조슈아는 그것조차 견디기 버거워 몸을 떨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이블린의 협박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고자가 된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세스에게 알리길 바라지 않는다면 이곳으로 와라.]

전날 도착한 이블린의 편지 속엔 로열 오페라 극장의 초대권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봐라. 만약 도중에 자리를 비운다면 전국에 네가 고자라는 사실을 소문내겠다.]

세간에 조슈아는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한 로맨틱 한 왕자로 알려져 있었다. 진실을 아는 자들도 감히 왕가를 모욕하는 사실을 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블린은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여자였다. 그러다 보니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대는 마지막 장으로 이어졌다.

-나라를 망친 그 여자! 라라를 붙잡아라!

도망치듯 무대로 달려 나온 라라는 고문 기구들과 함께 춤추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고귀해지고 싶었을 뿐이야~ 귀족처럼 걷고~ 귀족처럼 말하고~ 그게 잘못인가? 천만에, 네가 나라도 그랬을걸!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 묻는 아주 뻔뻔한 내용이었다. 라라가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을 원했던 사람들은 화가 나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저런 게 다 있어!"

“저, 저 악독하고 나쁜 것!"

관객석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박스석의 귀족들도 기회를 틈타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면 라리사 클라멘스도 귀족 출신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요?"

"친부모가 카스티야에서 온 공주의 가신이었죠. 귀족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명문 출신이라기엔 좀 애매하죠.”

"공작가의 양녀가 아니었으면 감히 왕가와 혼인할 수 없는 처지였잖아요. 하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네요."

키득키득 비웃는 소리 속에서 라라는 고문 기구에 쫓겨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갔다. 그 끝은 화형 대였다.

하지만 화형대에 묶여서도 라라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불꽃에 휘감긴 뒤에도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내 유일한 후회는 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한 것! 그 것만이 나를 언짢게 해~!

"저 못된 것을 죽여!"

"죽여! 당장 죽이라고!"

화가 난 사람들이 물통 따위를 무대로 집어 던졌다. 마침내 불길이 라라를 집어삼키고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구나.

불이 꺼진 화형대 앞에서 아서가 쓸쓸하게 노래했다. 그는 죽은 동생의 영혼이 안식을 얻길 빌었다.

그때 광인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아버지가 나타나 아서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만 돌아와 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는 그를 아서는 거부한다.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 이 몸에게 안식은 없으니. 이대로 광야를 떠돌다 이슬로 스러지리.

순례자가 되겠다며 아서가 떠나자, 홀로 남은 아버지는 과거를 후회하며 무릎 꿇고 흐느꼈다.

그것을 지켜보는 케인 엘마이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걱정이 된 친구들이 그의 몸을 붙잡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무대가 어둠 속에 잠겼다.

이제 끝났나 생각하는 순간 한 줄기 불빛이 쏟아지며 하얀 옷을 입은 메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침내 빛이 보여요'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어둠 속에서 왕자가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둘은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합창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마침내 빛 속에서 당신을 발견했다는 노래에 사람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죽음으로 맺어진 연인을 축복하듯, 배경으로 작은 등불들이 하늘로 떠올랐다. 수없이 떠오른 불빛은 밤하늘을 장식하는 별처럼 보였다.

"마, 마거릿…….”

그리고 케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무대 위에서 행복해하는 메그의 모습에 어린 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고 장애를 얻게 된 채 별재에 갇혀 살다 목숨을 잃은 가여운 것.

‘미안하다, 마거릿 미안해.'

케인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겨워 딸을 외면했다. 딸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화재 이후로 세스를 더 미워한 것은, 딸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밀려오는 후회로 심장이 쪼개지는 듯했다.

”컥!”

"케인!"

”의사! 의사 불러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그를 친구들이 재빨리 부축했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이블린이 보였다. 그녀 는 복수의 신처럼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케인이 쓰러진 후 무대의 막이 내렸다.

비록 불행한 결말이었지만, 메그와 왕자의 행복한 모습은 사람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조슈아는 몸을 움츠렸다. 자선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왜 넌 죽지 않냐.'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슈아는 도망치듯 극장을 떠났다. 엔딩곡인 ‘언젠가는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가 그의 뒤를 쫓듯이 울려 퍼졌다.

* * *

이블린의 연극 〈레이디 메그〉는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극장에서, 거리에서, 야외 공연장에서 동시에 공연된 터라 수도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자네도 레이디 메그를 봤나? 못 봤다고? 세상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쳤군!"

“정말 아름다운 무대였어. 음악은 또 얼마냐 근사했는지 알아? 단 한 곡도 버릴 게 없더라니까!"

이블린은 전생에 보고 들었던 유명한 음악과 연출을 죄다 가져와 돈으로 버무렸다. 평범한 무대에도 감탄 하던 시민들은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새로운 무대, 새로운 음악, 새로운 연출은 그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블린은 거기에 기름을 붓듯이 레이디 메그의 무대를 모든 시민들에게 바쳤다.

누구든 레이디 메그의 무대를 연출하고 노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녀의 배포에 경의를 표했다.

아스트리아의 모든 극장에서 레이디 메그가 공연되고, 가수들은 연극에 나오는 노래를 불렀다.

이제 레이디 메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정도가 되었을 때, 은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레이디 메그가 실화라는 소식 들었어?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

”라라가 멀쩡히 살아 있다고? 어쩐지 무대를 볼 때 결말이 좀 찝찝하더라니!"

“세상에, 그럼 왕자님은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고 속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 그 여자가 미래의 왕비가 된단 말이야?"

"절대 안 돼! 나라 말아먹을 일 있어?"

수도 전체가 새로운 소문에 술렁거렸다. 분노하는 사람, 좌절하는 사람, 어떻게 든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쨍그랑!

값비싼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조슈아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가 머무르는 저택엔 하루에도 몇 번씩 돌에 묶인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투서에는 ‘왕자님은 속고 있습니다! 라라, 그 여자는 사악한 악녀입니다!’라는 고발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문 앞에서 어서 눈을 뜨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 지나가는 조슈아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의 진실한 사랑은 그 사람이 아니라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진실을 전하려는 몸부림에 조슈아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나는 속지 않았어! 그건 연극일 뿐이라고!"

세상엔 왜 이렇게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많단 말인가.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은 안 돼.'

조슈아는 한계를 느꼈다. 귀족들은 ‘아직도 살아 있네?’라는 눈으로 쳐다보고, 평민들은 그에게 진실을 깨우쳐 준다고 난리였다. 조슈아의 얄팍한 신경은 이미 다 닳아서 없어질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라리사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야 해.’

라리사는 이혼을 취소하자마자 영지를 떠났다. 지금은 수도에 있는 후원자의 저택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조슈아는 남편인 자신을 외면하고 후원자를 찾은 그녀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마치 이제 그만 자신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다고 후회하게 되었다.

저택의 담과 벽엔 보기만 해도 끔찍한 저주와 욕설이 쓰여 있었다. 사방엔 오물과 쓰레기가 뿌려져서 악취가 나고 창이란 창은 다 깨어져서 폐가 같았다.

귀족의 저택이 이런 꼴을 당하는데도 아무도 막지 않았단 말인가. 놀라 굳어 버린 조슈아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백작님.”

얼굴에 회초리 자국이 있는 시녀였다. 벽의 낙서를 지우던 중이었는지 걸레를 든 그녀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누군가 이곳이 레이디 메그를 죽인 악녀의 집이라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시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뒤로 사람들이 몰려와 오물을 던지고 욕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고용인들은 일올 그만두고 저택을 나가 버렸습니다.”

“기시들은?”

“그들도 불명예를 감당할 수 없다며 떠나 버렸습니다. 남은 자들로는 저택에 쳐들어오는 사람들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폭동이 일어날까 봐 극단적인 방법을 쓸 수도 없고요."

"치안대가 있지 않나! 산고를 해야지!"

"신고를 해서 잡아가도 별다른 처벌 없이 풀려나니 더 기세등등하게 날뛰더군요.”

최근엔 방화를 시도한 자까지 있었다고 했다.

기가 막혀서 멍하게 서 있던 조슈아는 문독 예전에 이블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믿으실 필요는 없어요. 곧 알게 되실 거니까요.”

“예?”

“제가 앞으로 부인을 묻어 버리기 시작하면 지금까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겠죠.”

그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이블린은 은근한 말로 상대의 기를 꺾거나 망신을 주는 귀족들과 달랐다. 그녀는 마치 태풍이나 지진처럼 휘몰아치는 재앙 같았다.

그 재앙이 자신과 라리사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에 조슈아는 아득한 절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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