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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04화 (204/240)

204화

* * *

프리지어 궁 앞은 수많은 마차들로 가독했다.

단 한 명도 이블린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은 것이다. 이블린과 멀어지는 것은 곧 유행에 뒤처진다는 소리와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블린의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블린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난폭한 군림자.

이블린이 사교계의 꽃이 아닌 폭군이라고 불리는 이 유였다.

“세상에······."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모피를 걸쳐야 할 정도로 차갑던 공기가 갑자기 후덥지근하게 변했다 겨울밤에서 갑자기 여름의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살짝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공기 속에서 낯설고 달콤한 이국의 향기가 느껴졌다 정말 어느 사막의 왕국에 온 느낌이었다.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지?'

‘가끔 정말 미친 것 같아.'

사람들은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두꺼운 겉옷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을 드러냈다. 프리지어 궁은 이상할 정도로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멀리서 신기루처럼 반짝이는 연회장만 보일 뿐 이었다.

"보일 남작님과 남작 부인, 몰리 아가씨. 초대장을 확인했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문지기의 확인과 함께 문이 열렸다. 하지만 보일 남작가의 사람들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문 안쪽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멀리서 은빛 등불을 든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른아른한 불빛 속에 드러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요, 요정?"

터번으로 감싼 하얀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 성별을 알 수 없는 외모. 길쭉한 귀와 파르스름한 피부까지. 전설 속에 나오는 요정과 똑같았다.

남작의 중얼거림에 사막의 옷을 입은 요정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헛소리지? 난 호롤롤로 왕국의 안내인이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늦으면 버리고 갈 테니까.”

홱 몸을 돌린 요정이 등불을 들고 앞서 걸어갔다.

남작은 가족들을 챙겨 허둥지둥 요정의 뒤를 따랐다. 발밑에서 모래가 사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분명 궁의 앞마당일 텐데 웬 모래가 있지?'

짙은 어둠 때문인지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은빛으로 반사되는 모래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꼭 밤의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이국 적인 선율과 함께 애달픈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남작은 반짝이는 모닥불을 발견 했다. 사막의 상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모닥불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용 천막 옆에는 낙타 한 마리까지 엎드린 채였다.

꿈에서 나올 것처럼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아버지!"

"여보, 정신 차려요.”

저도 모르게 모닥불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남작은 가족들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사이에 등불을 든 요정은 아른아른 멀어지고 있었다. 남작과 가족 들은 황급히 흔들리는 등불을 따라갔다.

어느새 발에 밟히는 모래가 줄어드나 싶더니, 딱딱한 돌바닥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래사막을 벗어나 좁은 돌담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와, 저기 좀 보세요!"

딸의 탄성에 옆을 보자 좁은 골목 너머로 활기찬 야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 왜 야시장이 있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두 눈을 비렸지만 환상이 아니었다.

골목너머에서 이국의 상인들이 신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튀기고 굽는지 맛있는 냄새도 났다. 남작은 홀린 듯이 그쪽으로 향하는 딸을 붙잡았다.

"안 되겠다. 절대 한눈팔지 말고 등불만 따라가자.”

"노는 것은 공작 부인께 인사를 드린 다음이야.”

가족들은 서로에게 주의를 주며 앞만 보고 나아갔다. 멀리서 흥겨운 음악과 박수 소리,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옆을 보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순간, 다른 세상에 떨어져 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어. 꼭 뭔가에 홀린 것 같군' 즐거운 체험 테마 파크를 기획한 이블린의 의도와 다르게 남작과 그의 가족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다 왔어. 여기다."

그때, 앞서가던 요정이 등불을 들어 올렸다. 검게 비치는 호숫가에 하얗게 빛나는 오리 보트가 떠 있었다.

“오, 오리?"

“이 보트를 타고 칙선으로 나아가면 연회장이 있다. 괜히 샛길로 들지 말고 똑바로 가라."

요정은 들고 있던 등불을 오리의 입에 매단다움, 보트에 타는 것을 도와주었다.

"바닥의 페달을 밟아라. 그럼 보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방향은 손잡이를 돌리면 된다. 어서 출발해라."

남작은 요정의 명령에 따라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오리 보트가 출렁출렁 앞으로 나아갔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자 수많은 등불과 다른 오리 보트가 호수 위를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우와아!”

아름다운 광경에 뒷자리에 탄 딸 몰리가 탄성을 질렀다. 남작부인 역시 멍한 표정이었다.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네요."

“그, 그렇군.”

페달을 밟느라 바쁜 남작도 동의했다. 상황만 된다면 느긋하게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다.

"······아버지? 그런데 왜 자꾸 왼쪽으로 가세요?"

"응? 이쪽이 아니냐?"

"연회장은 저쪽인데요?"

딸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자 오리 보트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당황한 남작이 허둥지둥 오리의 방향을 바꾸려고 애썼다.

"여보! 이러다 보트가 뒤집히겠어요!"

“아버지, 서두르지 마세요!"

그때 보트의 옆에서 갑자기 물기둥이 불쑥 솟아났다. 등불에 반사된 그것은 거대한 용이었다.

남작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그르르륵!

길을 잃고 헤매는 오리를 보다 못해 튀어나온 흑룡은 꼬리로 보트의 방향을 바꿔 주었다. 그리고 물결을 움직여 연회장 쪽으로 흘러 했다.

“어머, 착하기도 하지.”

"도와줘서 고마워!"

얼음이 된 남작과 달리 그의 아내와 딸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남작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저, 저 용이 무섭지도 않아?"

“아버지도 참. 저게 진짜 용이겠어요? 길을 잃는 사람을 위해 공작 부인이 준비한 인형 같은 거겠죠.”

“아니, 진짜 용 같았는데 ?"

분명 한심해하는 용의 시선을 느꼈던 남작이 반박했다. 그러자 남작 부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네 아버지가 이렇게 순진하단다. 아까도 안내인을 보고 요정이니 뭐니 해서 얼마나 창피하던지.”

“아버지, 요즘은 환상 마법을 여기저기 다 써요. 마탑이 돈에 눈이 멀었잖아요."

그사이 보트는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 잘생긴 청년들이 손이 내밀어 보트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뒤이어 연회의 주인인 이블린이 그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 말라크 전하를 위한 위로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높게 묶은 분홍색 머리는 금화 장식이 찰랑거리는 터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금빛 자수가 놓인 볼레로와 녹주석이 박힌 화려한 황금 목걸이,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상의와 통이 넓은 바지까지. 사막의 궁전에서 막 걸어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 공작 부인.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녀의 컨셉에 압도당한 남작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이블린이 귀엽게 생긋 웃었다.

“자, 그럼 말라크 전하께 인사를 드리러 갈까요?"

그들은 넋이 빠진 채로 이블린의 뒤를 따랐다.

사막의 전통 양식으로 꾸며진 건물, 복도에 장식된 화려한 도자기며 벽을 꾸미는 작은 소품까지.

정말로 사막의 궁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오가는 시종들까지 진짜 같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가 정말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건가?'

남작이 혼란을 느낄 쯤 연회장에 도착했다.

나바르풍으로 꾸며진 홀에 투명한 커튼이 휘날리고, 바닥에 놓인 수반에는 활짝 핀 연꽃이 떠다녔다.

상석에는 황금색 그리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남자가 그리핀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게 보였다.

"말라크 전하, 전하를 위로하기 위해 보일 남작가에서 오셨습니다."

보석과 깃털로 치장된 거대한 터번을 쓰고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남자는 정말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는 왕자 같았다.

“전하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남작은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말라크에게 절을 올린 뒤 위로의 말을 건댔다. 어느새 이블린의 컨셉에 젖어 든 것이다.

하지만 말라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자신을 전하라 부르는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었지만, 남들의 눈에는 그냥 상심에 빠져 만사가 귀찮은 왕자로 보였다.

이블린이 정말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아직 실연의 상처가 크신 것 같습니다.”

“그 ,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께서 왕자님을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블린이 퀘스트가 담긴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남작은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웃지 않는 왕자님 §

말라크 왕자님을 위한 위로연에 참석한 당신. 하지만 왕자님은 깊은 상심에 빠져 웃음을 잃었습니다. 왕 자님의 웃음을 되찾아 주세요.

· 왕자님 이 좋아하는 하트 나비

- 나비의 방에서 하트 무늬가 있는 나비를 잡으세요. 동료들과 협동하셔도 좋습니다.

· 왕자님이 좋아하는 타조알 요리

- 둥지의 방에 타조알을 품고 있는 그리핀돌이 있습니다. 그리핀을 장난감으로 유혹해서 알을 가져오세요.

· 왕자님이 좋아하는 고국의 풍경

-퍼즐의 방에서 호롤롤로 왕국의 풍경을 담은 대형 퍼즐을 완성하세요. 동료들과 협동하셔도 좋습니다.

두루마리를 읽은 남작은 잠시 멍하게 이블린을 바라 봤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왕자님 을 위해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렇게 연회에 참석하기 위한 시련이 시작되었다.

* * *

“가녹 자작 부인과 루시 아가씨, 맞습니까?"

문지기가 초대장과 라리사 모어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초대장엔 이상이 없지만 느낌이 좀 이상했다.

"마, 맞습니다만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가녹 자작 부인으로 위장한 록웰 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라리사 모어의 후원자라는 이유로 이 자리에 끌려온 그녀는 누가 봐도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만약 신분을 숨기고 이 안으로 들어간다면,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문지기의 경고에 록웰 부인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블린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사람인지 아는 그녀는 당장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숨긴 것이 없으니 아무 문제도 없겠네요.”

하지만 라리사 모어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문지기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라리사는 당당하게, 록웰 부인은 머뭇거리며 새까만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어떤 시련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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