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97화 (197/240)

197화

* * *

브란이 누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9살 때였다.

그 전까지 그는 집안의 유일한 자식으로 제멋대로 살아왔다. 어머니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아버지는 밖으로만 나돌아서 브란을 꾸짖거나 말릴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구석에 숨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늙은 하녀를 발견했다.

“지금 어머니 음식을 훔쳐 먹고 있는 거야?"

놀라 펄쩍 뛰며 일어선 늙은 하녀가 고개를 조아렸다.

“아, 아닙니다. 도련님. 소인은 결코 마님의 음식에 손댄 적이 없습니다.”

“그럼 이건 뭐야?"

브란은 그녀가 먹던 음식을 가리켰다. 묽은 수프와 구운 고기, 흰 빵과 고급 포도주까지. 모두 하인이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그것이······."

늙은 하녀가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브란은 거만하게 그녀를 위협했다.

"당장 말하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가서 이를 거야.“

“사실 소인이 관리하는 가축에게 주는 겁니다.”

“가축? 돼지나 말에게 이런 음식을 준단 말이야?"

“사람이긴 한데 사람이 아닌 그런 것이 있습죠.”

늙은 하녀의 대답에 브란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그 가축을 보게 해 달라고 졸랐고, 한참이나 떼를 써서 겨우 지하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님과 나리께는 비밀입니다. 그분들은 그 가축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거든요.”

그곳에서 그는 짐승에 가까운 모습을 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었다. 브란은 지금껏 그렇게 더럽고 비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당장 토할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왜, 왜 저렇게 가둬 둔 거야? 저 사람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어?"

"태어난 것이 죄지요. 악마가 씐 흉물이 감히 마님의 몸에서 태어났으니 죽을죄이고말고요.”

“······마님의 몸에서 태어났다니? 그럼 저 사람이 내 누나라는 말이야?"

"도련님, 저걸 그렇게 부르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서 늙은 하녀는 누나가 태어났을 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닿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괴물이라고. 어머니가 매일 술을 마시는 이유도 저것을 낳아서라고.

"저것은 악마입니다. 나리께서 처음에 몇 번이나 저것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것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여도 죽일 수가 없어서 지하실 깊숙한 곳에 숨기기로 한 거라고. 아무리 굶기고 얼려도 죽지 않는다고 속삭인 하녀가 그의 어깨를 꼭 잡았다.

"꼭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저것의 존재를 들키면 이단 심문관이 올 것이고, 악마를 숨긴 모든 사람이 죽어 나갈 겁니다.“

이단 심문관이라는 말에 브란은 겁을 먹었다. 그가 사는 티론에서 이단 심문관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도련님, 어서 나가시지요. 악마의 숨결이 닿은 이 불결한 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응.”

브란은 구석에 웅크린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본 뒤에 지하실을 벗어났다. 그것이 누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브란은 지하실의 열쇠를 훔쳐 종종 누나를 보러갔다.

누나는 항상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브란은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갔다.

다가가서 말을 걸고, 숨겨 온 먹을 것을 주고, 나는 당신의 동생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 습격을 당했다.

갑자기 덤벼든 누나가 그의 목을 조른 것이다.

브란은 증오가 섞인 그녀의 눈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나의 힘은 너무너무 약해서 그저 손을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떨쳐 낼 수 있었다. 그것이 더욱 슬펐다.

‘나도 힘들단 말이야!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고, 어머니는 술만 마시고, 아버지는 밖에서 다른 가족을 만들었어 나도 피해자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정작 밖으로 나온 것은 미안하단 말이었다.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울면서 말하는 그를 누나는 가만히 보기 만 했다.

그리고 그 뒤로 브란은 조금씩 누나에게 말을 가르쳤다. 그녀가 말을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을 배우면 밖에 나가서 살 수 있어. 그럼 내가 누나를 도망치게 해 줄게.”

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그의 생각과 달리 누나가 제일 처음 한 말은 죽여 달라는 거였다. 이제 그만 자신을 죽게 해 달라고.

그때도 브란은 조금 울었다. 그리고 누나의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 조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고작 10살이 된 아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의 서재를 뒤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의 아버지는 악마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수집해 둔 상태였다. 지하실에 있는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브란은 누나의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 악마를 소환 할 수 있다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책의 중간에서 ‘고통을 먹는 뱀’에 대한 걸 발견했다.

다른 자의 고통을 대산 먹어 주는 아주 크고 거대한 뱀.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뱀.

브란은 대체 왜 악마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는 뱀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다른 악마들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 뱀은 혈육이라는 것을 바치면 소원을 들어준대.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꼭 바쳐서 누나의 소원을 들어줄 거야. 그러니까 그때는, 날 좋아해 줄래?"

누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란은 그녀가 동의했다고 믿기로 했다.

그렇게 누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든 밤, 브란은 거대한 그림자를 불러내 는 것에 성공했다.

"······성공했다고?“

이야기를 듣던 은발의 남자가 되물었다. 도저히 못 믿겠다는 어조에 브란은 부루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뭔가를 불러내긴 했어요. 그게 고통을 먹는 뱀인지, 아니면 다른 악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브란이 불러낸 것은 단순한 그림자였다.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거대한 뱀의 그림자.

하지만 브란은 자선과 그것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소환에 성공한 것이다.

브란은 그림자에게 몇 번이고 제 소원을 말했다. 누나의 고통을 먹어 달라고. 누나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그러나 그림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움직인 것은 누나가 다시 한번 살해당했을 때였다.

악마까지 불러냈음에도 성과가 없는 것에 실망한 브란은 다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바로 누나를 지하실에서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꼼꼼히 준비했지만 그래 봤자 어린아이의 계획이었다. 지하실을 벗어나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들켰고 그는 죽도록 맞아야 했다.

"네가 감히 내 아들을 홀려?!"

분노한 아버지의 몽둥이는 누나에게로 향했다. 브란은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매달렸지만 아버지를 막지는 못했다.

그 끔찍한 순간, 거대한 뱀의 그림자가 누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눈을 돈 누나는 그와 같은 녹색이 아니라 붉은 눈을 갖고 있었다.

브란은 자신이 누나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곧장 알아챘다. 그림자와 그를 연결하던 끈이 이제는 누나와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브란은 진짜 누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누나의 소원은 이뤄졌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하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브란? 왜 그런 표정이야? 누나는 이제 괜찮아.“

그림자가 누나 행세를 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렸다.

"누나 걱정해서 울었어요? 무서웠어요? 우쭈쭈-"

브란은 멍하게 ‘그것'을 바라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는 누나를.

“우리 브란, 아직 아기네. 다 큰 줄 알았더니.”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누나를 브란은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누나는 많은 것을 잊었어요. 자신이 살해당한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죠."

새로운 누나는 태풍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제일 먼저 목욕하고 싶다고 칭얼거리더니, 브란을 움직여 어떻게든 몸을 씻었다. 그리고 몸단장을 끝난 뒤에는 아버지를 호출했다.

“그리고 대뜸 아버지에게 협상하자고 하더군요.”

당시는 7년 전쟁이 막을 내릴 때였다. 티론은 카스티야가 아닌 아스트리아의 손에 들어갔다.

나라의 주인이 바뀌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그때, 누나는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얼마든지 그가 원하는 정보를 주겠다고.

"······자주 쓰는 수법이었군. 그거.”

은발의 남자가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거기 동의했고, 누나는 지하실을 벗어나 자신의 방을 얻었죠. 그리고 글자를 배우자마자 나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브란은 처음으로 맞아 가면서 공부했다. 누나는 때로는 부모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를 가르치고 돌봐 주었다.

그리고 가끔은 아버지의 방으로 불려 갔고, 그가 붙잡아 온 사람에게서 정보를 캐냈다.

“어쩌면 누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게 복수가 될 거라는 사실을.”

누나를 이용해서 큰돈을 벌려던 아버지는 결국 위험한 사람을 건드렸고, 반역죄를 덮어썼다. 그렇게 그란 가문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누나와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혈육을 바친다는 의미는 그런 거니까.”

하지만 악마의 힘을 빌린 지난 3년은 너무나 행복했기에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그렇게 끝이 나도 좋았을 텐데. 갑자기 누나를 강탈해 간 저 은발의 남자가 모든 것을 망쳤다.

"당신이 누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누나와 연결된 끈이 하나둘 끊어지고 있는 것을 느껴요.“

끈이 다 끊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썩 좋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누나를 돌려줘요. 당신은 절대 그녀를 감당 못 하니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털어놓은 브란은 남자를 바라 봤다. 누나의 정체를 안 그가 기겁해서 도망쳤으면 싶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겠는데.”

남자가 천천히 코트의 것을 젖혔다. 그러자 그의 가슴팍에서 뭔가 하얀 것이 불쑥 튀어 나왔다.

-꾸?

손바닥만 한 하얀 털 뱀이었다. 남자가 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둘의 아들이야. 이름은 복실이고.”

브란은 큰 충격을 받았다. 누나의 실체가 뱀이니 뱀을 낳은 것은 놀랍지 않지만, 어떻게 저런 남자와…….

"둘째 아들도 있어. 이 애의 이름은 코코지.”

남자는 여유롭게 주머니에서 자고 있던 까마귀를 꺼냈다. 브란은 부들부들 떨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 어떻게 결혼도 안 하고 누나를 건드릴 수 가······."

"참, 내가 말을 안 했었나? 우리 이미 결혼식도 올렸는데.“

다음 순간, 브란은 이성을 잃었다.

귀빈이 나오길 기다리느라 면회실 밖에서 있던 교장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으아앙! 끼에엥! 같은 울음소리였다.

당황하는 그를 본 귀빈의 기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학생의 누나와 결혼한다는 조식을 알리러 온 겁니다."

“아, 그래서…….”

어쩐지 '누나를 돌려줘!' 같은 비명이 들린다 했다. 가끔씩 있는 일에 교장은 한층 더 편안한 얼굴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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