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90화 (190/240)

190화

너무나도 생소한 음악, 새로운 춤에 사람들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박수와 호응이 아니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관람석에서 새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창공 기사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절도 있게 춤을 췄다.

‘오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내려놨다!'

‘실수는 죽음뿐! 실수는 죽음뿐!’

기사의 자존심과 명예 따윈 하루 12시간 이상 계속 되는 춤 연습에 훨훨 날아갔다. 지금은 그저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것에 혼신의 힘을 쏟을 뿐이었다.

‘그래도 난 센터는 아니니까!'

그들의 제일 앞에선 빛의 창의 주인인 말라크가 필사적으로 스텝을 밟고 있었다. 격렬한 동작에 그의 머리위에 솟은 삼각형의 귀가 귀엽게 팔랑거렸다.

말라크가 포인트 안무인 냥냥 펀치를 선보이자 기사들의 얼굴에 강 같은 평화가 깃들었다.

‘내가 센터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얼어붙어 있던 관람객들이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마리아를 응원하러 온 아가씨들이 응원봉을 흔들었다. 일반석에서도 웅성거림 대진 박수와 환호가 늘어났다.

빙그르 턴을 하며 바닥에 엎드리는 그리핀들을 뛰어 넘은 기사들이 엔딩 포즈를 취하면서 음악이 끝났다.

“네, 열정적인 축하 무대를 선보인 그리핀과 기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와아아아!“

관람객들은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생소하지만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까지 딱딱 맞는 신기한 춤 인간과 그리핀의 완벽한 조화. 이것만으로도 두고두고 떠들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세상에, 어떻게 그리핀을 저렇게 잘 길들였을까요?“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거 아니에요?"

멋진 공연을 본 사람들은 그리핀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한편, 제일 구석진 관람석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공국의 사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기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지금쯤 미쳐 날뛰어야 할 그리핀들이 각을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그는 대계를 망쳐 버린 라리사 모어에게 욕을 퍼부었다.

‘멍청한 여자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라리사에게 갖다 바친 금화가 아까워서 속이 쓰릴 정도였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그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말라크를 발견했다.

‘저 더러운 수인족 놈!'

아스트리아 왕을 설득해 빛의 창을 회수해야 할 놈이 어느 순간 사절단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적의 편에 붙어서 나타난 것이다.

사절은 배신감에 이를 갈며 말라크의 뒷모습을 쏘아 봤다. 여길 떠나자마자 보고를 올려 저 비천한 짐승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여러분, 제 1경기에 참가할 그리핀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새로운 그리핀들이 일렬로 입장했다. 박자에 맞춰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그리핀들을 보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핀들이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중앙 화면에선 번호별로 그리핀의 이름과 특기, 좋아하는 것, 승률이 소개되었다.

경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기 방식에 귀족들은 부담 없이 돈을 걸었다. 일반석에 앉은 평민들도 적게나마 참가하고 있었다.

‘저, 정말로 그리핀들로 돈벌이를 할 생각인가?!'

그리핀은 공국의 상징이자 힘이었다. 그것을 한낱 경주마처럼 사용한다는 것에 사절은 분노했다.

‘이 염치없는 놈들에게 천벌을 내려야겠군.'

라리사 모어가 실패했다면 자선이 하면 그만이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통로로 나갔다.

“나리, 이쪽입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이 그리핀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그를 안내했다.

“감시인들은?"

"금화를 써서 잠시 치워 뒀습니다.”

“서두르자. 다들 열광하고 있을 때에 쓴맛을 보여 주고 싶으니까."

사절은 품속에서 그리핀들이 싫어하는 향을 꺼내 온 몸에 부렸다.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에도 떡칠하듯 발랐지만,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모자란 법이었다.

"농축액을 꺼내라 이번엔 희석하지 않고 사용한다."

“그럼 그리핀들의 몸이 상할 겁니다.”

“몇 마리 정도는 죽어도 상관없어."

미치광이 풀의 즙을 농축해서 만든 액은 강한 독성이 있었다. 그리핀을 미쳐 날뛰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심장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사절은 그리핀이 죽는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든 것은 공국을 위해서다!'

사절은 빠득 이를 갈며 어두운 복도 안으로 들어섰다. 벌써부터 역겨운 짐승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코를 틀어막은 그가 물었다.

“아직도 멀었어?"

그때, 앞서가던 수행원이 갑자기 픽 쓰러졌다. 놀란 사절이 무어라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범인이 나타났군.”

서늘한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확 밝아졌다. 사신처럼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친 사절이 움찔했다.

“고, 공작 전하.”

"변명할게 있나?"

“오, 오해십니다! 전 그냥 그리핀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공작이 쓰러진 수행원의 손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농축액이 담긴 병이 도르르 굴러 나왔다.

“이 병에 든 게 뭔지, 무슨 목적으로 숨어들어 왔는지, 누가 사주했는지. 순순히 말해 줬으면 좋겠군.”

반사적으로 물러선 사절은 공작의 뒤쪽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뒤를 힐끗 본 공작이 눈을 휘었다.

“이상한 풀을 태우려다 붙잡힌 자들이야. 내 아내가 유독 그 풀을 싫어해서 신경이 쓰이더군."

라리사 모어가 보낸 자들인 것 같았다. 보냈으면 들키지나 말든가,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다니. 사절은 라리사와 손을 잡은 것을 후회하며 물었다.

"죽 죽였습니까?"

“아니, 하지만 가끔은 죽는 게 나올 때도 있지.”

섬뜩한 대답에 마른침을 삼킨 사절이 몸을 날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리핀들을 폭주시켜 공작을 죽인 후에 여길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농축액 병을 낚아챈 그가 비장하게 소리쳤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병의 입구를 막고 있는 마개를 잡아 뽑으려던 그는 당황했다. 아무리 힘을 쓰고 손톱을 세워도 병이 열리지 않았다.

“이, 이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절을 공작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를 악문 사절은 병을 바닥에 내리쳤다. 하지만 퉁퉁하고 울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는 뒤늦게 병의 주변을 희미한 빛이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벅, 다가오는 움직임에 놀란 사절이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공작이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허공에 매달린 사절이 컥컥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어서 빨리 자백해 주지 않겠나? 내 아내를 더 이상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거든.”

이, 이건 미친놈이다…….

사절은 자신의 목을 조르면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공작을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이 손의 힘을 풀자 그는 쿵하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현명한 선택이야.”

칭찬하듯 속삭이는 공작의 뒤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눈을 번득이는 그림자 기서들에게 둘러싸인 사절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 * *

“우와아아악!“

"까아악!”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장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박진감 넘치는 그리핀들의 경주에 흥분하고 있었다. 땅을 파헤치듯 내달리고, 하늘로 뛰어오르며 서로를 밀쳐 내기 위해 몸을 부딪치는 그리핀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거대한 중앙 화면에서는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승리자의 배당금과 허공으로 훨훨 날아가는 골드들을 숫자와 그림으로 보여 주며 사람들을 자극시켰다.

게다가 제 2경기부터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다.

서부, 중부, 남부, 동부로 나뉜 지역 팀의 단체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각 팀을 이끄는 수장은 방 탈출 게임의 상위 25인 중에서 선발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을 휘두르며 그리핀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제 2경기는 이어달리기입니다. 각 팀에서 9마리의 그리핀들이 출전합니다. 4마리의 그리핀들이 한 바퀴 씩 바통을 이어받아서 달리며, 나머지 5마리는 자신의 팀을 보호하거나 다른 팀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지휘관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기가 되겠습니다!"

귀족들은 승률과 상관없이 자산의 지역에 많은 금화를 걸었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금액을 보며 다른 지역에 지지 않으려고 주머니를 털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 휘슬이 울리자 반칙의 선을 넘나드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연히 감정도 격해졌고, 온갖 욕설이 상대의 팀으로 날아들었다. 그건 각 팀의 사령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토비아스, 이 새끼야! 경기 진짜 X같이 하네!"

“린지 모티머! 아가리를 놀릴 시간에 네 그리핀이나 움직여라!"

서부와 남부의 대결에서 50만 골드가 휴지 조각이 되어 날아가자 양 팀은 거의 원수로 변했다.

“제 3경기, 타워 디펜스입니다. 각 팀의 타워에서 상대의 그리핀을 막기 위한 함정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핀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주의하세요!"

그리고 결승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제 3경기에선 지역감정이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점잖은 중년의 귀족마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악을 쓰고 있었다.

“사과! 2타워에 사과 넣으라고! 저 빌어먹을 그리핀 놈에게 사과를 처먹여!"

“닥쳐! 염병할 사과 배고 양고기 넣어! 저긴 양고기를 배치해야 한다고!"

"물풍선! 털 달린 놈들에겐 물풍선!“

각 팀에는 2,500포인트가 주어졌고, 이것으로 함정을 사서 4개의 타워에 배치해야 했다. 약세를 느낀 토비아스 팀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4타워에 복실이 목소리를 배치한다!"

복실이 목소리.

무려 1,500포인트나 하는 것이었지만, 효과는 아무도 모르는 아이템이었다.

‘우리 팀에 남은 그리핀들은 순발력은 좋지만 지구력이 부족해. 가장 빠른 그리핀인 디디를 4주자에 넣어서 역전승을 노린다!'

제 2경기에서 그리핀의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나머지 쓸 수밖에 없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나는 이블린 엘마이어를 믿는다. 그녀는 절대 쓸모없는 물건에 1 , 500포인트를 쓰라고 하지 않아!'

토비아스는 이블린을 믿고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복실이 목소리는 그의 믿음에 훌륭하게 보답했다.

“아닛,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4타워에서 ‘꾸우-! '라는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앞서 달리던 그리핀들이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반 바퀴나 뒤처져 있던 디디는 모든 그리핀들을 젖히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역전승! 역전승입니다! 토비아스 공이 이끄는 서부팀의 극적인 승리입니다!"

"까아아아악!”

"토비아스! 토비아스!"

쏟아지는 환호와 축하의 꽃다발 속에서 토비아스는 번쩍 고개를 들고 이블린을 찾았다.

환한 햇살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토비아스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게 사랑인가?'

그렇게 그리핀 런 오프닝 행사는 서부와 토비아스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 주며 막을 내렸다.

“아아, 온 세상에 금화의 향기가 가득해-!"

물론 진정한 승리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리핀 런의 주최자인 이블린과 공동 개최자인 마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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