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으아악!”
번개에 맞는 순간 나는 계산이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예상보다 번개에 실린 신성력이 더 강했던 것이다.
‘성녀님 혼자 버티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정령수의 가지가 힘겹게 파닥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우리 둘 다 팝콘이 될 것 같았다.
그때 나를 지지던 신성력이 조금 약해졌다. 세스가 나를 감싸고 온몸으로 번개를 막고 있었다.
‘세, 세스……!'
그를 밀어내고 싶은데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 순간 하얗고 검은 것들이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뿍!
-깍!
복실이와 코코가 신성력에 볶아지는 것이 보였다. 놀란 주크와 성화가 달려오다가 같이 튀겨지고, 까미와 흑룡이 나를 가지에서 떼어 놓으려다 번개에 휩싸였다.
‘으아악, 얘들아! '
이게 가족 감전 대회로 보였는지 날고양이들까지 하나 둘 날아들어 함께 지져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숨을 쉰 코크 곰이 고양이의 등에 앞발을 올렸다.
‘아니, 너까지 왜! '
모두가 피카츄로 변신하자 나를 튀기던 신성력 번개가 조금씩 약해졌다. 튀겨야 할 튀김 수가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자 피뢰침 역할인 정령수의 가지가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을 쳤다. 땅에 뿌리를 박은 가지가 넘치는 힘을 성장에 쏟아 부으며 급속도로 쑥쑥 자랐다.
어느새 프리지어 궁의 정령수만큼 성장한 녀석이 가지를 활짝 펼치고 신성력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뿌리를 통해 사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그제야 겨우 감전에서 풀려난 나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스가 그런 나를 얼른 안아들었다.
“괜찮아?"
“전 괜찮은데 애들아······."
"무리하지 마. 가만히 있어.“
아프진 않았지만 온몸의 근육이 풀린 것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다.
“세, 세스는 괜찮아요?"
"신성력엔 남들보다 익숙하니까.”
해롱거리는 나와 달리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주 멀쩡한 얼굴이었다. 와, 정말 대단하다, 내 남편.
그때 축 늘어져 있던 복실이와 코코가 부르르 떨며 깨어났다. 다행히 둘 다 괜찮은지 뻑뻑거리며 내게 안겨들었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꾸?
-깟?
고개를 갸웃거린 녀석들이 서로에게 장난을 치며 푸닥거리기 시작했다. 기운찬 모습을 보니 딱히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나는 다른 녀석들도 체크했다.
“다들 괜찮아?"
-구르륵?
다행히 고양이들도 코크 곰도 구불구불해진 털을 열심히 그루밍하는 것에 바빴다.
“강한 신성력과 접촉했을 뿐이니까 몸에 이상은 없을 거야. 자주 씌는 것은 문제지만 한 번 정도는 괜찮아."
신성력 전문가인 세스 씨의 의견에 겨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잔뜩 화가 난 까미를 보니 아직 안심할 때가아니었던 것 같다.
-카가각! 칵!
“으앙, 잘못했어요!"
너무 무모했다고 까미에게 혼나고 있는데,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루시아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이, 이블린 님?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갑자기 번개가 떨어지고 콩나무가 쑥쑥 자라서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까미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그녀를 열렬히 환영했다.
“지금 개미집 뚜껑을 따는 중이에요. 진행률은 한 20% 정도 되겠네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지평선 너머에서 피웅하고 한 줄기 빛이 올라왔다. 완만한 곡선을 고리며 올라온 빛이 신성력 번개에 합류하자 하늘에 황금빛 선이 그어졌다.
“이제 30% 정도? 이 속도라면 금방 다 차겠네요.”
“개미집 뚜껑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세요?"
“아, 곧 알게 되실 거예요.”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기 귀찮았다. 하지만 루시아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저 빛은 뭐죠?"
“정령수의 가지를 안테나로 삼고 부리를 통해 땅에 신성력을 전달하게 했거든요. 루시아 님이 땅에 묻어 둔 성물이 거기 반응한 거죠.”
영혼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사방에서 황금색 선이 올라와 번개에 합류했다. 꼭 하늘에 둥근 그물 이 펼쳐진 것 같았다.
"저 건, 신성 결계?"
“땡! 비슷해 보이지만 아닙니다."
우리가 공격, 적이 수비를 하는 상황인데 방어 결계를 펼쳐서 뭐 어쩌겠어. 저건 완전히 다른 용도였다.
그때, 사도궁 쪽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신성력을 훔쳐 가서 뭔가 한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가까이에 있던 깐깐징어의 무리는 다짜고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음, 재들이 여기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겠다.
“세스, 저 좀 내려 줘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아무래도 내려 줄 기세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해 온 천이랑 응원봉이랑 북을 꺼내야 해요. 시녀장이 어딘가에 넣어 둔다고 했는데.”
"마님, 여기 있습니다!"
까미의 짐수레를 지키던 사람들이 내가 찾는 것을 들고 달려왔다. 저 짐 중에 일부는 내 것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루시아에게 북을 들게 했다.
"루시아 님, 제가 신호할 때 북을 치세요.”
"······예?“
이어서 까미와 흑룡에게 천을 나눠 주고 나중에 펼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거의 완성된 하늘의 그물을 확인한 후에 사도궁 쪽을 바라봤다.
"신성력을 무한하게 쓸 수 있는 신관만 수백이고, 병사는 수천 명이 넘소. 여기에 카스티야에서 건너온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우글거리오.”
적들의 수가 그렇게 많은데 내가 직접 해결할 필요가 있나. 해결사를 부르면 되지.
"복실아, 코코야!"
장난을 치던 두 녀석이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눈을 빛내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엄마 말 따라 해.”
-꾸우!
-갓!
"할머니이~ 복실이랑 코코가 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신이 나서 내 말을 따라 했다. 내 의도를 눈치챈 세스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말리지는 않았다.
"할머니 최고~ 나쁜 놈들을 무찔러 주세요~!"
-꾸우우! 구우우! 구구구!
-까가가갓! 가가갓!
다음 순간, 우웅 하고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하늘에 펼쳐진 그물이 우그러지면서 오로라가 펼쳐졌다.
‘오로라는 지구가 태양풍을 처맞으면 생긴다던데.'
지금 생긴 오로라는 태양풍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의 접근을 알리는 것이었다.
궁극기 콜그랜마.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으십니까? 할머니를 부르세요.
“지, 지, 지금 무슨?!"
본능적인 위험을 느낀 루시아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팁을 줬다.
"루시아 님, 지금입니다. 북을 치세요!"
“예?“
"까미야! 흑룡이랑 같이 천을 펼쳐!"
시녀들이 정성껏 만든 천을 까미와 흑룡이 물고 양 쪽으로 펼쳤다. 〈대지신님은 사랑입니다♡〉라고 써진 대형 천이 활짝 펼쳐졌다.
“우유! 저 궁을 중심으로 화살표 대형!"
이어서 날고양이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사도궁을 가리키는 화살표 대형을 그렸다. 나는 세스와 응원봉을 나눠 들고 열심히 흔들었다.
"플레이~ 플레이~ 대지신!"
"······."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야~! 꽃바구니이 옆에 끼고오~!"
어쩔 줄 몰라 하던 루시아가 내 목소리에 맞춰 북을 치기 시작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공기가 울렸다.
"루시아 님! 지금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때, 사람들을 끌고 나타난 깐깐징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둥둥 울리던 북소리 가뒤틀렸다.
-키이이잉!
공기가 조각조각 찢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내가 열어 둔 하늘의 구멍에서 이 공간이 감히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가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악!“
북채를 떨어뜨린 루시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깐깐징어와 그를 따라온 사람들도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쓰러졌다. 영혼에 가해진 압력을 견딜 수 없는 듯했다.
-꾸?
복실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루시아의 주변을 날아 다녔다. 사람들과 달리 압력을 느끼지 않는 녀석은 루시아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저게 뭐여!"
우리를 따라온 공작가 사람들이 걱정되어 돌아보자 다행히 까미와 정령수가 단단하게 보호하는 중이었다.
"바, 발이야? 발?"
“저게 발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따라 위를 보니 너무 거대해서 이상하게 보이는 발이 하늘의 그물을 찢고 튀어 나와 있었다.
‘아, 내가 저분 성격 급해서 손발부터 튀어나올 줄 알았다니까.’
나는 신성력 번개와 정령수, 대지신의 성물을 이용해서 신계와 이곳을 연결하는 구멍을 뚫었다.
말 그대로 개미집의 뚜껑을 열어서 대지신의 손이 직접 닿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모두 정령수 뒤로 피해!"
상황을 파악한 세스가 나를 정령수 뒤에 숨겨 두고 앞으로 나섰다.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던 사람들도 엉금엉금 기면서 정령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이 몸을 제대로 숨기기도 전에 대지신의 거대한 발이 사도궁을 깔아뭉갰다. 두부가 으깨지듯이 사도궁이 으스러지며 바닥이 화산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장난감 성이 부서지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파가 우리에게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세스가 이를 악물고 손에 든 응원봉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응원봉이 가른 공기가 반으로 찢겨 나가며 우리를 덮쳐 오던 충격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나머지 스플래시 대미지를 온몸으로 맞은 세스가 쿨럭 피를 토했다.
”으아악! 세스!"
“이비, 오지 마!"
세스의 경고와 함께 사도궁을 밟아 비벼 대던 대지 신의 발이 다시 높게 들리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어머니! 이러다가 아들 죽어요!
나는 내적인 비명을 질렀지만 대지신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곧 2차 분노의 킥이 한때 사도궁이었던 것 위에 내려앉았다.
꽈르릉 하고 대지가 울부짖었다.
1차 때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충격파와 함께 우리 쪽으로 밀려왔다. 세스는 처음보다 더 침착하게 응원봉을 휘둘러 황사를 갈랐다. 이번에는 피도 토하지 않았다.
우르릉 떨리던 땅이 가라앉자 대지선의 발이 쑥 뽑히더니 하늘의 구멍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때까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깐깐징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끄, 끝났나?"
아니, 미친! 이 상황에 금지된 주문을 외우다니!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깐깐징어를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하늘의 구멍에서 불쑥 거대한 주먹이 튀어나왔다.
"아······."
아무래도 대지신께서는 오늘 이 땅에 쑥을 재배하러 오신 것 같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헐떡이던 세스가 낭패한 얼굴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지신의 분노, 2차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