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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75화 (175/240)

175화

‘이 향기는…….'

사람들은 흘린 듯이 항아리를 바라봤다. 본능이 그 안에 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탐욕이 가득 담긴 시선 속에서 시종들은 묵묵히 국자로 술을 따랐다. 그리고 일곱 개의 크리스털 잔이 채워지자 곧바로 항아리의 뚜껑이 닫혔다.

사람들은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대기 중이던 시종들이 미리 준비된 술잔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뭐지? 저 항아리에 든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술잔을 받아 든 사람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겉보기엔 똑같은 황금빛 액체였지만 뭔가가 달랐다.

사실 그들이 받은 것은 양을 불리기 위해서 희석시킨 술이었다. 이블린이 만든 술을 펑펑 나눠 주기 아까웠던 왕이 꼼수를 부린 것이다. 원래 최고 권력자가 제일 치사한 법이었다.

일곱 개의 크리스털 잔은 왕과 이블린, 삼국의 귀빈, 그리고 변경백와 그 이들에게 돌아갔다.

“모두 잔을 들어라.”

시침을 똑 뗀 왕이 잔을 높게 들며 선창했다.

“이블린 엘마이어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영광이 있기를!"

힘껏 외친 사람들은 허겁지겁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윽한 향기와 혀가 녹아내릴 것 같은 맛. 온몸이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세상에, 이런 술이 있다니!'

처음 맛본 황홀경에 사람들은 완전히 넋을 잃었다.

온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지병이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더 마시고 싶다.’

모두가 아쉬워하며 빈 잔을 내려다보았다. 체면만 아니면 잔에 묻은 술을 핥아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진짜 술을 마신 자들은 기적을 경험했다.

피부가 허물을 벗듯 맑게 피어나고, 흉터와 주름이 모두 사라졌다 순식간에 몇 년은 더 젊어진 것 같았다.

“세. 세상에.”

“이건 신의 은총이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사절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아기처럼 매끈해진 제 피부를 만지며 계속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꼭 전설 속에 나오는 엘릭서 같지 않은가."

제 손등을 바라보며 감탄한 왕이 변경백에게 말했다.

“이 술의 이름을 엘릭서라 짓는 것이 어떠한가?"

"폐하께서 친히 이름을 하사해 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앞으로 엘릭서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국의 13가지 비보 중 하나인 엘릭서가 탄생했다. 전설 속의 불사약은 아니지만, 그만큼 뛰어난 효능을 지닌 명주라는의미였다.

‘우리가 마신 것은 진짜가 아니었군.'

‘한 모금이라도 좋으니 진짜를 마시고 싶다.'

눈앞에서 기적을 목각한 이들은 엘릭서가 담긴 항아리를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알릴 것이 있다. 다들 북부의 식량난에 대해 기억할 것이다. 북부의 백성들은 오랜 가뭄으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북부의 인간들이 굶어 죽든 말든 딱히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령수가 부활하며 가뭄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공을 높이 사서 정령수를 공작으로 임명하고 우르스 변경백을 대리자로 삼는다."

“신 우르스, 공작 대리로서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 역시 북부의 정령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래 봤자 전설이 붙어 있는 나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나무 따위에게 공작 작위를 줘?'

‘변경백을 공작으로 임명하면 반발이 심할까 봐 그러시는 건가?'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왕은 능구렁이처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왕실 소유의 광산에서 마광석 채굴을 시작 했다. 이제 아스트리아에서도 마나석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대들도 알 리라 믿는다."

이번에야말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누구도 왕실에서 광맥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미 마광석 채굴을 시작하다니.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일이란 말인가.

“이 모든 일올 주도한 사람이 바로 이블린 엘마이어 공작 부인이다. 그녀는 북부의 정령수를 부활시켰으며, 왕실에 마광석 광산을 바쳐 뛰어난 충성심을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블린에게 쏠렸다.

정령수인지 뭔지를 부활시켰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마광석 광산을 바쳤다는 말은 거의 황당할 지경이었다.

‘진짜 광산을 왕실에 넘겼다고?'

그들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업적에 상이 없어서는 안 될 일. 이블린 엘마이어에게 황금 십자 훈장과 왕실 명예 기사의 작위를 내린다. 또한 왕실의 별장과 마광석 광산의 지분을 상으로 하사한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블린은 다소곳이 절을 했다. 이미 알고 있었는지 놀란 기색도 없었다.

“또한 이블린의 요청에 따라 광산의 관리를 발타자르 가문에 맡긴다. 총책임자로 우르스 발타자르의 아들 아트레유 발타자르를 임명한다."

“신 아트레유, 반드시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아트레유가 한쪽 무릎을 꿇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에 사람들은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왕이 왕실 소유의 광산에 책임자를 임명한 다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완전히 당했군. 당했어.’

‘이러려고 갑자기 무도회를 연 것이 분명해.'

그들은 왕의 뒤에서 악동처럼 웃고 있는 이블린을 바라봤다. 왠지 앞으로도 이런 구도가 계속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회장에서 빠져나온 여자가 어두운 정원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시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입니다.”

희미한 조명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는 회초리로 맞은 것 같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그, 그게…….”

여자는 더듬거리며 안에서 있었던 일올 전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던 시녀가 물었다.

"안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의 능력으로는 무리 일 것 같습니다.”

기가 팍 죽은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세요. 이후의 일들은 서신으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머뭇거리던 여자는 알겠다고 답한 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눈치였다.

‘이블린 엘마이어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큰 것 같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는 라리사 모어의 심부름꾼 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짐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정원을 빠져나온 시녀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마차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떻게 됐어?"

마차 안에서 라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녀는 덤덤하게 보고했다.

“이블린 엘마이어의 수완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사교계의 규칙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구는데도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뭐지? 고작 천출에게 그런 배짱이 있다고?"

예상이 빗나갔는지 라리사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내가 지금 입장한다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자 달칵 문이 열렸다. 붉은 수가 놓인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라리사가 마차에서 내렸다.

얼핏 봐도 이블린과 비슷한 드레스였다. 라리사는 일부러 같은 옷을 입어 자신과 비교되게 해서 이블린에게 망신을 줄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봐. 지금의 날 봐도 같은 생각이야?"

"예.”

짝-!

망설임 없이 대답한 시녀의 고개가 핵 옆으로 돌아갔다. 몇 번이고 시녀의 뺨을 후려친 라리사가 겨우 침착함을 되찾았다.

“정공법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네. 할 수 없지.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그대로 몸을 돌린 라리사가 마차에 올랐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시녀를 바라봤다.

"무도회가 성공할 것 같으면 미리 손을 써 두라고 했잖아. 지시를 어겼으니 알아서 돌아와.”

"······."

시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후 마차의 문을 닫았다. 그러자 마차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로 출발했다.

* * *

“아구구, 죽겠다."

테라스로 나온 나는 기지개를 켜며 찌뿌듯한 몸을 달랬다. 공기가 조금 차가웠지만, 갑갑한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푸홉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순간 깜짝 놀랐던 나는 이내 상대의 정체를 눈치겠다.

“제스터 씨?"

“아구구라니, 공작 부인에게 너무 안 어울리는 소리인데요.”

“흠, 예법책엔 아구구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 없던데."

진지하게 받아치자 다시 웃음소리가 들렸다. 매번 빙긋 웃고 마는 세스와 달리 참 쾌활한 사람이었다.

"주방 쪽은 어때요?“

"급한 일은 다 끝냈습니다."

제스터가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면서 답했다.

몇 번을 봐도 투명 망토가 생각나는 신기한 수법이었다.

"힘든 일을 떠맡겨서 죄송합니다.”

“뭘요. 제가 자청한 건데요.”

제스터가 씩 웃었다. 그는 이번 무도회에서 디저트를 담당했다. 조수도 필요 없다면서 혼자서 300인분 이상의 디저트를 만든 것이다.

방금까지 일하고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가까이 다가온 그의 몸에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그리고 임무를 훌륭하게 마치면 제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 주기로 약속하셨으니까.”

아니 , 그건 당신이 멋대로 정한 거잖아.

배에 구멍 난 채로 약속해 달라고 우길 때도 그랬지만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니까.

“그때도 말했지만 그냥 물어보면 답해 줬을 텐데요."

"솔직하게요?"

"음, 상황을 봐서요.”

“그것 봐요.”

제스터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그러는 건데요?"

“이블린 양, 당신은 공작 부인의 대역입니까?"

······아, 왠지 이 질문이 나올 것 같더라니.

제스터가 한사코 솔직한 대답을 요청할 때부터 생각했다. 내 정체를 들킨 것 같다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글쎄요, 같이 도망갈까요?"

“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스터를 쳐다봤다. 제스터가 농담이라는 것처럼 웃었다.

“이블린 양, 전 당신이 걱정돼요.”

“어, 그게 저는…….”

"알고 있잖아요. 당신이 매번 위험으로 뛰어드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거.”

제스터는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그의 호의를 거절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사실 전 대역이…….”

“대역이 아니야.”

그때, 뒤에서 뻗어 온 단단한 팔이 나를 끌어안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 나를 껴안은 세스가 제스터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내 진짜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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