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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61화 (161/240)

161화

나는 뚫어져라 선배님의 얼굴을 살폈다.

확실히 눈매며 체격 에 제스터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니, 제스터가 선배님이었다고?

너무 놀라서 일시 정지가 됐지만, 저쪽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가짜공작부인이라니!"

껄껄이가 수정구를 든 마법사의 뺨을 후려쳤다. 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진 마법사가 벌벌 떨었다.

“이번 작전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줄 아느냐? 그런데 고작 가짜를 붙잡아? 아이오나 님께 뭐라고 보고 하란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불쌍한 마법사가 파리처럼 싹싹 빌었지만, 껄껄이는 연달아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결국 그의 화풀이를 견디지 못한 마법사가 정신을 잃었다.

나는 내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온 수정구를 발로 탁 밟아서 멈춰 세웠다.

“이봐, 듣는 가짜 좀 기분 나쁘네. 대역이라는 좋은 말도 있는데 왜 자꾸 가짜라고 해?"

“닥쳐라!"

“너나 닥쳐라!"

나는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암행어사의 마패처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반복한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투항하라!"

“…… 무슨 혓소리냐?"

껄껄이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 너는 왜 눈치가 없냐? 이런 상황에 내가 뭘 꺼내겠어?"

"······."

“위치 추적기요, 위치 추적기. 일행과 멀리 떨어진 사람이 가장 먼저 켜야 하는 것이지.”

친절하게 정답을 말해 줬는데도 껄껄이의 반응은 여전히 느렸다. 대신 뒤에 선 놈들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나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들을 달랬다.

“우리 애들이 곧 이쪽으로 몰려올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항복하자. 자, 얼리버드 항복 특전 ! 지금 항복하시면 목숨만은 살려 드립니다!"

껄껄이가 재빨리 마법사를 쳐다봤다. 하지만 마법사는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물론 정신을 차린다 해도 수정구가 없어서 내 말이 진실인지 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결정을 돕기 위해 수정구를 다시 발로 차서 마법사 쪽으로 보내 주었다.

"날고양이랑 거대 뱀이랑 스파링하는 거 좋아하는 분은 버티시고, 그게 아닌 분은 서둘러 항복하세요.”

“대장님,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들 중 하나가 껄껄이에게 속삭였다.

그걸 본 나는 품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안에 든 것을 그들 쪽으로 뿌렸다.

“미안, 보내 줄 수가 없어.”

"독이다! 피해!"

눈치 빠른 이가 외치자 적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들을 쫓아가며 마구 병을 휘둘렀다. 운 없이 액체를 덮어쓴 적이 제자리언|서 뻣뻣이 굳어 버렸다.

나는 술래잡기하듯· 달아나는 적들을 쫓아갔다.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니! 너희를 팔아 출세하고 싶은 내 마음을!“

“오지 마!"

적들이 질색하며 검을 휘둘렀다. 재빨리 끼어든 제스터가 그들의 검을 일일이 쳐 내며 소리쳤다.

”로즈, 물러나!"

나는 말 잘 듣는 후배답게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제스터의 뒤에 숨어서 팔찌를 적들에게 겨누었다.

내 이름은 로즈, 암살자죠.

팔찌의 보석을 꾹 누르자 슉 하고 튀어 나간 침이 적을 맞췄다. 독침을 맞은 적이 픽 꼬꾸라졌다.

“오!"

생각보다 잘 맞는데?

신이 난 나는 풍선 터트리기 게임을 하듯 적들을 하나씩 쏘아 맞혔다.

여럿이 몰려오면 마비독이 든 병을 꺼내 뿌렸고, 하나씩 떨어져서 오면 독침을 왔다.

내 방패 역할을 맡은 제스터가 황당한 듯이 물었다.

”로즈, 대체 독을 얼마나 가져온 거야?"

“넉넉한 제 마음만큼?"

집에 뱀 두 마리가 있다 보니 제일 많이 준비한 것이 독이었다.

"저 계집부터 죽여라!"

내 끈질긴 괴롭힘에 화가 난 껄껄이가 소리쳤다.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는 뒤에 방치되어 있는 아군을 불렀다.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말고 적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세요.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끼어들 틈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기시들이 검을 뽑았다. 나는 혹여나 그들이 무리하다가 다칠까봐 덧 붙였다.

"여럿이서 한 명을 붙잡고 늘어집시다. 치사하고 끈질기게 싸우면 무조건 입길 수 있습니다.!"

기시들은 내 명령에 따라 비겁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적들의 숫자가 착실하게 줄어들었다.

“제기랄! 후퇴! 후퇴해라!"

더 이상 버텨도 이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껄껄이가 후퇴 명령을 내렸다. 적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이히히, 못 가!"

”으아악! 저리 가!"

나는 그들을 쫓아가는 척 겁을 주다가 서둘러 돌아 왔다. 제스터와 기시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마님?"

"네?"

"진짜 마님 맞으시죠?"

기서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마님은 뭘까. 나는 배를 잡고 하하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가 불리한 것 같아서 연극을 좀 했어요.”

지금 내 말을 마법사가 들었다면 ‘거짓입니다!' 하고 외쳤을 것이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화제를 돌렸다.

“위기를 넘기긴 했는데, 속은 것을 알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서둘러 여길 탈출하죠.”

"예? 아군이 올 때까지 버티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군이 어떻게 알고 와요? 우리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데.”

“아까 분명 위치 추적기가 있다고…….”

아이고, 내가 연기를 지나치게 잘해 버린 것 같다. 나는 기사들에게 방금 꺼냈던 손거울을 보여 주었다.

“이건 그냥 거울이에요. 때마침 마법사가 수정구를 떨어뜨렸기에 적당히 거짓말 좀 했죠.”

껄껄 이가 마법사를· 때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쉽게 속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군에겐 늘 잘해 줘야 한다.

“그럼 대역이라는 것부터 아군이 오는 것까지 전부 거짓이란 말씀입니까?"

"네, 인질로 잡히기 싫어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희들까지 완전히 속았습니다.”

대단하긴 대역이 인질로 잡히면 엄청난 민폐니까 죽을힘을 다해서 연기한 거지.

"복실이가 붙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어서 탈출하죠. 선배님의 상처만 치료하고 바로 출발합시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스터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자 기사다운 모습이었지만, 평소의 그를 알고 있는 나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빨리 치료하세요. 옆구리에 구멍 난 게 자랑이에요?"

나는 주머니에서 포션과 성수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다행히 제스터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고 상처를 치료했다.

그사이 탈출에 대해 의논하던 기사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님, 적이 곧바로 속은 사실을 눈치채긴 어려울 겁니다. 적이 나간 곳으로 움직인 후에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괜히 뒷문이나 창문으로 나간다고 부산을 떨다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동의한 나는 서둘러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텅 빈 복도를 따라가자 어렵지 않게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저택을 탈출했다.

그런데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전에 도망친 껄껄이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나는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팔다리를 보고 그들이 이미 죽었음을 눈치겠다.

“어서 오게.”

쓰러진 사람들 사이에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이 서있었다. 로브 형태나 한 손에 든 지팡이로 봐서 마법사가 틀림없었다.

“내 부하들이 신세를 졌군. 진실의 수정구를 들려 줘도 무엇이 진실인지 보지 못하는 놈들이지."

”라이언 아이오나?“

확인하듯 물은 것은 상대가 도무지 백마법사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브 색도 그렇고, 그를 둘러싼 꾸물꾸물한 검은 기운들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 빠질 정도였다.

“오, 나를 아나? 어떻게 알았는지 좀 궁금하군."

아이오나가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주름진 얼굴로 그렇게 웃으니 몹시 흉측했다.

"백마법사인 줄 알았는데?"

“지금도 진리의 빛을 따르고 있지. 다만 순백의 빛만을 따르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야.”

"설마 세상 모든 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단언컨대 블랙은 가장 완벽한 색이다! 이러려는 건 아니지?"

나는 놀라움을 가득 담아 물었다. 아무리 젊게 사는 게 좋다지만 지금 중2병이 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부하들이 왜 속아 넘어갔는지 알겠군. 너와는 오래 말을 섞으면 안 되겠구나.“

“그런 말 안 하려고 한 척. 여유 있는 척.”

“시끄럽다. 마법사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되는 이유를 보여 주마.”

아이오나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자 쓰러진 사람들의 위로 그림자 같은 것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쐐애액 하고 제스터 쪽으로 날아들었다.

"안 돼!"

나는 배구공을 쳐 내듯 그것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탕! 하고 튕겨 나간 것이 무겁게 바닥에 내리꽂혔다.

힘겹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그것은 한 마리의 까마귀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까마귀의 다리를 움켜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닭처럼 꽥꽥거리는 녀석을 세 번 정도 내려치자 축 늘어지며 힘이 빠졌다.

“휴,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이마의 땀을 닦은 나는 까마귀에게 내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까마귀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까마귀를 노인쪽으로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가랏! 까막몬! 마구 쪼기!"

-까아악!

응답하듯 울부짖은 까마귀가 노인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투명한 막을 펼쳐 까마귀의 공격을 막은 노인이 음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놀랍구나. 그동안의 대업을 모조리 망쳐 놓은 것이 바로 너였다니.”

"뒤늦게 진리를 깨달은 척.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눈을 지닌 척.”

“마음이 변했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너를 죽여야겠다!"

노인이 지팡이를 거세게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귀곡성과 같은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사나운 바람이 우리 쪽으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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