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56화 (156/240)

156화

* * *

-부우우!

복실이는 불만이 아주 많았다.

아빠는 집에 없고, 엄마는 복실이를 따돌린 채 할아버지랑만 놀고 있었다.

-쁏쁏!

사실은 복실이가 불꽃 효도를 보고 배울까 두려웠던 이블린이 그를 일부러 멀리 떼어 놓은 거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복실이는 잔뜩 토라져 있었다.

"공작님이 보고 싶으십니까? 지금 몰래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요.”

그때 낯선 시종이 속삭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마침 아빠가 보고 싶었던 복실이는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왕자의 가출에는 제일 먼저 백마가 필요했다.

-꾸우~ 꾸구~!

-띠링!

복실이는 주크를 열심히 꼬셨다. 사태가 심상찮은 것을 느낀 성냥이 둘을 말리려,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결국 성냥도 그들의 모험에 합류하게 되었다.

-뀨귯! 규귯!

그러나 복실이가 아무리 천공신의 이름을 외쳐도 왕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실망한 복실이는 다시 시종을 찾아갔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본 시종이 상냥하게 말했다.

“나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신 거군요. 괜찮습니다. 제가 아주 좋은 출구를 알고 있습니다.”

시종은 구석진 곳에 있는 개구멍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손수 덤불을 젖혀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꾸~!

사실 복실이가 시종에게 원한 도움은 천공신의 이름을 대신 불러 주는 거였다. 하지만 개구멍으로 몰래 탈출하는 것도 모험의 시작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복실이와 달리 성냥은 망설이며 시종을 돌아봤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성화의 눈에 시종은 썩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뿌뿌우!

하지만 복실이의 재촉에 성냥도 서둘러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셋은 그물을 들고 기다리는 괴한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꾸?

복실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크와 성냥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드디어 나왔군!"

"어서 던져! 도망치지 못하게!"

육중한 그물이 셋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물의 무게에 눌린 복실이가 젝젝 소리를 냈다.

“요놈, 아저씨 따라서 좋은 곳 가자."

가장 앞에 선 남자가 히죽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물이 양옆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주크가 단번에 그물을 잘라 버린 것이다. 성냥이 손을 휘두르자 나머지 그물도 재가 되어 휘날렸다.

-뿍!

날카로워진 복실이의 눈이 남자들을 노려봤다. 아직 작기만 한 뿔에서 탁탁 정전기가 튀기 시작했다.

“어?"

남지들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미 늦은 깨달음이었다.

* * *

“지독한 냄새군. 시체라도 태우는 건가?"

콧등을 찡그린 말라크가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타는 냄새가 옅어지기는커녕 재까지 휘날리기 시작했다.

"푸에취!”

수인족 혼혈이라 후각이 예민한 말라크는 연달아 재채기를 했다. 기분 같아선 당장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말라크는 다름 아닌 로엔 공국의 선기 선택자, 빛의 창의 주인이었다.

로엔공왕의 명으로 그리핀을 되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으나, 정면으로 부딪치면 승산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나라도 그리핀을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말라크는 밀입국해서 현지의 정보를 모으는 쪽을 선택했다. 공국에서 준 자료도 있지만 귀족들의 손을 탄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근처에 분명 공작의 거처가 있을 텐데.'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말라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하얀 것을 발견했다. 반사적으로 창을 움켜쥔 그는 다음 순간 자산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뱀이······ 하늘을 날아?"

반쪽이지만 수인의 피를 이은 그는 선뜻 창을 휘두르지 못했다. 하얀 뱀은 수인족이 숭배하는 영원의 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뮤우!

그의 코앞에서 멈춰 선 복실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의 남자들과 달리 말라크에게선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신기의 기운이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마음에 들었던 복실이는 말라크에게 자신을 모실 기회를 주기로 했다.

“어, 잠깐만!"

자신의 어깨에 살짝 내려앉은 뱀을 보고 당황한 말라크가 허둥거렸다. 그때 뭔가가 그의 발을 툭 건드렸다. 혼자서 꿋꿋하게 서 있는 단검이 었다.

”에고 소드? 내가 지금 꿈을 꾸나?"

다음 순간, 발밑에선 불길이 확 일어났다. 제일 늦게 도착한 성냥이 바닥에 불꽃으로 글자를 만들었다.

귀족은 아니지만 간단한 글을 배운 말라크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아스트라이아?"

순간 왕의 길이 열리며 황금의 빛이 그들을 감쌌다.

* * *

나는 그동안 알아낸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입궁했다. 손에는 내 불꽃 효도를 눈감아 준 왕에게 바치는 작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바로 포테이토칩이었다.

얇게 썬 감자를 기름에 튀기고 시즈닝을 입힌 가장 기본적인 형태였다. 감자의 품종이 다른 탓인지 전생 보다 담백한 맛이었지만 이것은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나보다 부자에 신분이 높은 왕에게 뭔가를 선물하는 것은 꽤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서 나는 전생의 기 억을 뒤져 왕이 신기해 할 것 같은 음식을 만들어 바쳤다.

“내 귀염둥이가 또 재미있는 것을 갖고 왔구나."

다행히도 왕은 내가 바친 포테이토칩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독이 없다는 확인을 받자마자 한입 가득 털어 넣고 우물거렸다. 와삭와삭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휴, 네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다.”

“뭔가 언짢은 일이 있으셨습니까, 폐하?"

”······생각해 보니 이것도 네 녀석 때문인 것 같은 데?“

갑자기 눈을 부릅뜬 왕이 내 뺨을 꼬집었다.

들어 보니 내가 살려 낸 나바르 왕국의 태자 때문이었다.

"네? 저를 즉위식에 불렀다고요?"

"네가 사막의 지니로서 참석해서 자선을 축복해 주길 바라더군. 그게 아니면 자신을 핍박하는 늙은 대신들을 찍어 누를 방법이 없다나.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리는데, 솔직히 죽여 버리고 싶었다.”

왕은 성질이 난다는 얼굴로 포테이토칩을 와작와작 씹어 댔다.

“저, 그럼 전쟁이 끝나도 세스가 빨리 못 돌아오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요?"

“널 갖다 바치기는 싫으니 억지로 붙잡혀 있는 거겠지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태자 때문에 협상에 진척이 없는 것 같더군.”

저쪽에 있을 때 이미 겪어 봤다. 태자는 사막 민족 특유의 ‘적 아니면 형제’라는 사고방식을 극대화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상대가 적만 아니면 슈퍼 아스트랄 파워 인싸였다.

나도 분명 갈 때는 도적 이블로 쳐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태자비의 둘도 없는 의자매가 되어 있었다. 그게 다 처제라고 친한 척하는 태자에게 휘말려서다.

‘불쌍한 세스, 안 그래도 사교성이 떨어지는데.’

태자가 친한 최할 때마다 껍질이 챙강챙강 깨질 세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밤마다 울면서 깨진 껍질을 수선하고 있겠지.

"차라리 그놈이 죽게 내버려 두고 다른 왕족을 지원 하는 게 나았을까…….”

왕도 꽤 심하게 시달렸는지 극단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폐하. 전 참석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사막의 지니라고 했으니 매번 써먹진 않을 테고, 즉위식에만 나가면 더 이상 귀찮을 일도 없을 것 같은데. 가서 세스도 보고, 은근슬쩍 주물럭거리기도 하고.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왕이 버럭 소리쳤다.

\

“어림없는 소리! 원래 귀염둥이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세스와 짐이 왜 이 고생을 하며 버티고 있는데!”

“죄, 죄송합니다!"

나를 노려보며 마지막 포테이토칩을 강철처럼 씹어 삼킨 왕이 물에 탄 포도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휴~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왕이 한결 풀린 얼굴로 물었다.

I

“그래서 너는 무슨 일로 입궁했느냐. 네 시아버지가 드디어 혈압이 올라서 죽었느냐?"

"슬프지만 아직 살아 계십니다. 그것보다 아버님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요."

나는 아버님을 통해 알아낸 흑막의 부하들에 대해 보고했다.

“전대의 백탑주는 그렇다 쳐도, 대지의 대신관이 레베카왕녀의 부하라고?"

왕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인 것 같았다. 잠시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들기던 왕이 말을 이었다.

“대지의 신전이 레베카 왕녀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은 줄곧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선관이라니.”

과거, 대선관 후보 발렌타인이 나를 신전으로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한 일이 있었다. 당시 신전은 슬그머니 그의 편을 들며 나를 음해했다.

거기에 화가 난 세스는 대지의 신전으로 보내는 기부를 모조리 끊어 버렸다. 하지만 공작가의 지원이 잘려 나갔는데도 산전은 내게 사과하지 않고 계속 미적 거렸다.

“사실 그때부터 짐온 신전을 의심했다. 적어도 레베카 왕녀의 수하가 신전에 섞여 있을 거라 생각했지.”

적탑의 마법사들이 나를 흑마법사라고 고발했을 때가 결정적이었다. 선전에서 확인도 없이 곧바로 성기사들을 풀어 나를 잡아들이려 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상대가 꽤나 고위 신관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오라니, 꽤 까다로운 상대구나.”

“어떤 사람인가요?"

“아주 전형적인 인격자 흉내를 내는 소인배다. 그래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러나저러나 너한테는 한입 거리일 테니까.”

응? 방금 까다로운 상대라고 하지 않았어?

왕이 씩 웃으며 내 머 리를 토닥거렸다.

"설령 그레고리오가 신성 왕국을 차지한다고 해도 아스트리아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음이야. 너는 세스의 옆에서 녀석이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한마디로 흑막의 부하가 누구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사실 다른 방법이 없기는 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신관을 공격할 수는 없으니까.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짐에게 보고하러 온 것은 무척 잘했다. 앞으로 그렇게만 해라.”

내가 실망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왕이 열심히 격려하며 칭찬해 주었다. 상으로 보석이며 장신구를 잔뜩 받은 나는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적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치워 버릴 수가 없다니. 이렇게 답답한 것은 내가 전직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마님 ! 조심하십시오!"

그때, 나를 따라다니던 기사들이 방패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던 나는 바로 옆 기둥에 퍽 박히는 화실에 화들짝 놀랐다.

“둘은 흉수를 쫓고 나머지 는 마님을 지켜라!"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나는 멍하게 화실을 바라봤다. 화살에 매달려 있는 피 묻은 편지가 산경 쓰였다.

“위험한 물질이 없는지 검사하겠습니다.”

내 양해를 구한 기사가 먼저 편지를 펼쳤다. 그러자 거기서 피 묻은 작은 이빨 한 개와 하얀 털이 떨어졌다.

[네 애완동물을 데리고 있다. 돌려받고 싶으면 혼자 청탑으로 오도록.]

피로 쓴 글지를 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새까매졌다가 다시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참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언제까지?

머릿속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나는 그것을 떨치듯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

-끼에에엑!

내 부름에 응답하는 날갯짓 소리가 사방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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