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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55화 (155/240)

155화

"흥, 너야말로 멍청한 말을 하는구나!"

아버님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마탑과 신전이 한통속이라고? 그 둘은 앙숙을 넘어서 원수 사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검사 결과를 조작하려고 연합을 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버님은 개구리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저러다가 또 뒤로 넘어갈까 겁이 날 정도였다.

“내가 아무에게나 친자 검사를 맡긴 줄 아느냐? 생명의 수호자, 백탑주가 손수 라리사를 검사했다!"

"······누구라고요?"

"백마법사들의 영원한 스승, 라이언 아이오나 말이다."

순간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얀 노루가 아니라 전대의 백탑주인모양이다.

“오~ 백탑주라니 정말 흥미롭네요."

“흠흠, 우리 가문은 선대부터 그와 친분이 있었지.”

사실 나는 적탑주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마탑에서 왕을 습격한 자들에게 협조한 것도, 까미에게서 강제로 알을 빼낸 것도 적탑주였으니까.

‘그리고 적탑의 마법사들이 내가 흑마법사라는 고발을 넣은 적도 있었지.’

그런데 전대의 백탑주가 흑막의 부하였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럼 대지의 선전에서는 누가 검사를 했죠?"

"바로 그게 네 말이 헛소리라는 증거다. 대지신의 첫 번째 지팡이, 대신관 그레고리오가 신성 검사를 맡았으니까!“

자산 만만한 아버님의 선언에 나는 깜짝 놀랐다.

뭐? 대지신의 대신관이 흑막의 부하라고?

* * *

신성왕국의 사도궁.

대대로 성녀가 머무르는 이곳에선 지금 처참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도궁을 방문한 이단 심문관들이 갑자기 무기를 뽑아 든 것이다.

“어, 어째서!"

“타락한 자의 변명 따위 듣지 않겠다!"

갑작스러운 배신에 성녀를 수발하는 신관들은 피를 부리며 쓰러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형제들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올바른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다!"

처음엔 이단 심문관들이 일으킨 반역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기사들도 그들과 합세했고, 신관들까지 힘을 보랬다.

끝까지 저항하던 사람들이 차례로 쓰러진 뒤, 성녀가 거처하는 방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지신의 신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성녀는 고개를 돌렸다 침입자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은 바로 대 신관이었다.

“대신관, 기어코 선을 넘었군.”

“성하께서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대신관의 온화한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비웃음을 띤 채 검소한 방 안을 둘러본 그가 물었다.

“성기사단장 레오디나스는 이미 빼돌리셨습니까.”

"······."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레오디나스는 자신이 성녀 후보와 성기사단장 사이에서 태어난 죄의 씨앗이라는 것을 압니까? 성하께서 자신의 이모라는 사실은요?"

지금껏 아무런 동요가 없던 성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선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사실은 그녀가 오랫동안 숨기고 있던 죄였다.

과거 그녀의 언니이자 성녀 후보였던 조안나는 성기 사단장과 사랑에 빠졌고, 어린 나이에 무리한 출산을 하다죽고 말았다.

율법에 따르면 금기로 태어난 레오디나스도 죽어야 했다. 하지만 성녀는 조카를 신전의 고아라고 속여 곁에 두고 길렀다.

“신께선 왜 죄를 저지른 이를 성녀로 정하셨을까요? 그것이야말로 신의 눈이 멀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내 자매와 내가 지은 죄는 그대가 타락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저는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타락한 신전을 바로잡으려는 거지요.”

차가운 눈빛으로 대지신의 신상을 바라본 대신관이 말을 이었다.

“신의 자비는 공평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죠.”

“대신관, 그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화풀이를 하고 있을 뿐이야.”

"저는 신의 뜻을 따르고 싶은 것뿐입니다. 완벽한 평등 말입니다. 더 간절하게 바라는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세상!"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은 거군.”

냉담한성녀의 반응에 대산관이 웃음을 흘렸다.

"역시 우리의 의견이 일치할 일은 없을 것 같군요.”

대신관은 품에서 황금색 말뚝을 꺼냈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성녀가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이 말뚝에는 신성을 봉인하는 힘이 있지요. 이제 신이 머무는 그릇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성하.”

심문관들이 다가와 성녀의 팔을 붙들었다.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느낀 성녀는 대신관을 노려봤다.

“그레고리오, 신께서 반드시 너를 벌하실 거다.”

“아뇨, 이제는 그러실 수 없을 겁니다.”

기괴한 미소를 지은 대신관이 성녀의 가슴에 말뚝을 꽂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이 스르륵 파고든 말뚝이 음울한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성녀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몸이 신성한 빛으로 감싸였다.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자신의 몸에서 신성력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성녀의 몸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니, 이간…··!"

"예하! 제 신성력이 사라졌습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을 보고 웃음을 터트린 대선관이 품에서 황금색 성표를 꺼냈다.

"두려워하지 마라. 더 이상 신성력이 많고 적음으로 고통받을 필요가 없다! 나를 따르는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질 테니까!"

대신관은 황금빛 성표를 그들의 이마에 눌렀다. 낙인과 같은 붉은 자국이 찍히며 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이 밀려 들어왔다.

성녀를 해친 것에 죄책감을 품고 있던 자들은 눈을 번뜩이며 기뻐했다. 대신관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자, 보아라! 새로운 신성 왕국의 시작이다!"

* * *

전 성기사인 헥터는 이를 악물고 말을 재촉했다. 그의 등에는 성기사단장 레오디나스가 끈으로 연결돼 있었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성녀의 부탁을 받고 궁을 탈출하긴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이제 신전 사람도 아니라고!'

천공신의 선녀가 바실리스크들을 복종시키는 기적을 목격한 핵터는 신전을 떠나 신녀의 종복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성기사단장에게 붙잡혀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후엔 결투에서 패배한 레오디나스를 선전까지 배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헥터가 성기사단장의 패배를 목격한 것을 알게 된 신전에선 그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성녀를 만나 억울함을 호소한 뒤에야 겨우 풀려 날수 있었다.

서둘러 떠나려던 헥터는 갑자기 성기사단장을 데리고 탈출해 달라는 성녀의 부탁을 받게 되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어 응했지만, 갑자기 사방이 용성거리며 사고가 터진 분위기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하게 기절해 있는 레오디나스 가원망스러웠다.

“이 짐덩이 같은 인간아!"

바로 고 순간이었다. 헥터의 몸에서 갑자기 신성력이 사라졌다. 탈력감에 그는 말위에서 꼬꾸라질 뻔했다.

‘서, 설마 성기사단장을 욕해서 신성력이 사라진 건가?’

더럭 겁을 먹은 헥터는 축 늘어진 레오디나스의 상태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전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창백하던 얼굴에 혈색까지 돌아온 것 같았다.

신벌이 사라진 탓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헥터는 괜히 울적하는 것을 느꼈다.

‘당신 안전 따윈 이제 몰라.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라고!'

핵터는 천공신의 신녀가 있는 아스트리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작이 다시 레오디나스를 보면 찔러 죽일 테지만 알게 뭔가.

‘여기 버려두고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친 헥터는 서둘러 말을 재촉했다.

* * *

“주인님, 대산관이 성공했습니다.”

푸른 불꽃을 들여다보던 노인이 보고했다. 계속되던 실패 끝에 얻은 값진 승리였다. 체스 말을 가지고 놀던 소년이 피식 웃었다.

“대지신이 꽤 화가 났겠군.”

“마도 시대의 유물을 이렇게 재현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신은 인간계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자신과 파장이 맞는 존재에게 신성력을 나눠 주고 그들을 통해 기적을 일으킬 뿐이었다.

과거, 그 사실을 알게 된 마도사들은 쐐기란 것을 발명했다.

신성력을 가진 존재에게 쐐기를 박아 넣으면 신성력이 한군데로 모여 인간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졸지에 신성력을 퍼내는 우물이 된 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세계를 버리고 떠나거나, 신성력을 나눠 준 자가 죽을 때까지 모욕감을 참고 버티거나.

“지금의 성녀라면 1년 정도는 죽지 않겠지.”

신성력을 잃은 세스 엘마이어를 살해하는 것은 1년이면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성녀는 놈을 키운 어미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았나?"

"예, 하지만 최근에 불화가 생겨서 적극적으로 성녀를 구출하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놈을 유인할 또 다른 미끼가 필요하겠군."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노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세스 엘마이어의 아내가 자식처럼 아끼는 반려동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납치하면 아내까지 생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려동물?“

"예, 신성력을 지닌 하얀뱀이라고 합니다. 신수라는 말까지 있더군요."

노인의 눈이 순간 번들거리는 빛을 냈다. 그의 속셈을 알아챈 소년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또 다시 쐐기를 쓸 생각인가 보군.”

“하나라도 더 신의 숫자를 줄이고 싶습니다.”

노인은 마법사들의 시대, 마도 시대를 다시 불러오길 바라는 자였다.

신성력을 짜내는 도구로 전락해 인간들에게 실망하는 신이 많을수록, 그가 원하는 세상이 빨리 도래할 것이다. 신의 간섭에서 벗어나 마법이 이 세상의 법칙이 되는 시대가.

“주인님, 청탑주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좋다. 미끼를 만들려면 그 정도는 투자해야겠지. 마음대로해라."

"감사합니다. 꼭 좋은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깊게 예를 표하는 그에게 손을 내저은 소년이 다시 체스 말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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