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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51화 (151/240)

151화

* * *

“이게,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로엔 공왕은 텅 비어 버린 그리핀 우리를 보고 벌벌 떨었다. 사람들은 차마 그런 공왕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것들이 다 어디 간 게야!"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봤자 그리핀 잃고 우리 고치는 격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질끈 눈을 감은 공왕이 수석 관리관을 추궁했다.

“그리핀들의 행방은? 아직도 못 찾았나?"

"새, 새벽에 아스트리아 국경을 지나가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아스트리아?“

“아스트리아에 파견된 첩자가 긴급으로 전한 소식에 따르면 왕궁에서 다수의 그리핀들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눈치만 보던 자들이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했다.

“전하, 그리핀과 함께 도주한 기서들 짓이 틀림없습니다! 분명 아스트리아의 회유에 당한 겁니다!"

“아스트리아 놈들의 수작입니다! 앞으로는 회담을 권하면서 뒤에선 비열하게 그리핀들을 빼돌린 겁니다!"

그때 푸핫 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이런 상황에 낄낄거리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공왕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말라크!”

“아아, 죄송합니다. 너무 웃겨서."

말라크. 공국의 선기인 빛의 창의 선택을 받은 자. 그는 웃다가 홀린 눈물을 훔치는 시늉까지 해 가며 지금 상황을 비웃었다.

“밤에는 장님이 되는 그리핀을 움직여서 도주할 수 있는 기사들이라. 그런 인재를 왜 지금껏 몰라보고 심지어 자르기까지 했는지 궁금한데요.”

“그, 그건…….”

기시들을 좌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관리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사들이 아니라 아스트리아에 그런 능력이 있다면 굳이 남의 그리핀을 훔칠 필요도 없을 테고 야생 그리핀이나 몇 마리 잡아 길들이면 되니까.”

“지금 적국을 편드는 거요?!"

"흠? 엄밀히 말해서 아스트리아가공국의 적은 아니지. 쓸데없이 살이 붙은 돼지의 안위를 방해하는 적일 수는 있어도.”

말라크가 관리관의 배를 조롱하듯 쳐다봤다. 그러자 이를 악다문 관리관이 씹어뱉듯 소리쳤다.

“이 잡종새끼가!"

커다란 덩치와 거무스레한 피부, 인간의 것이 아닌 귀와 눈동자. 노예나 다름없는 수인족의 혼혈. 그것이 빛의 창에게 선택받은 말라크가 귀족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이쿠, 이런 잡종 새끼는 무서워서 이만 물러나야겠군. 관리관 무서워서 어디 살겠나.”

귀족들이 인정하든 말든 말라크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말라크! 거기 서라!"

휘파람을 불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말로크를 공왕이 멈춰 세웠다. 귀찮은 어울 예감한 말라크가 찡그린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전하? 그리핀과 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저처럼 천한 놈은 그리핀에 다가갈 자격도 없다고 한 분들 끼리 알아서 하셔야죠.”

본래 빛의 창의 소유자는 창공 기사단장이 되는 것이 암묵적인 법이었다. 하지만 말라크는 출신 때문에 예외였다.

"알고 있잖느냐? 빛의 창의 절반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아스트리아에 가야 한다.”

"거참, 웬만하면 알아서 하시지 그럽니까? 평소에는 잘만 절 제외시키시면서.“

“말라크!"

공왕은 말라크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고압적인 성정의 그로서는 제멋대로인 말라크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그러나 말라크의 뻔뻔함과 능수능란함이 이번 일에는 꼭 필요했다. 공국의 누군가는 빛의 창을 돌려받기 위해, 그리핀을 되찾기 위해 아스트리아에 무릎을 꿇어야하니까.

“빛의 창의 소유자로서 의무를 다해라!"

”······흥.“

코웃음 치는 소리를 낸 말라크가 비딱하게 자세를 바꿨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겁니까?"

“아스트리아에 그리핀들이 있는지 확인해라. 사실임이 밝혀지면 정식으로 항의한 후에 그걸 조건으로 빛의 창을 되찾아 와야 한다.”

“그것뿐입니까? 그리핀을 되찾는다거나, 도주한 기사들을 벌한다는 조건도 없이?"

이번에 새로 즉위한 나바르의 선왕은 자선이 아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아스트리아와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을 본 공왕은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스트리아에 강하게 나가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선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 괜히 거드름을 피웠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최선은 빛의 창을 되찾는 거다.”

”······알겠습니다.”

미심쩍은 듯이 공왕을 바라보던 말라크가 획 몸을 돌렸다.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그를 본 공왕이 열이 올라 삿대질을 했다.

“저, 저런 무엄한!"

"참으십시오, 전하. 나중에 저자의 죄를 물으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전하의 무서움을 보여 주시면 됩니다.”

말라크 덕에 짐을 덜어 낸 귀족들이 속삭거렸다. 말리는 척하면서 말라크에게 벌을 내리라고 부추기는 태도였다.

겨우 자존심을 회복한 공왕이 헛기침을 했다.

"돌아오면 이번에야말로 혼쭐을 내야겠군.”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정령수의 주인이 있는 곳에 수인족 혼혈을 보내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대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 * *

“이블리이인!"

나는 온몸으로 도킹해 오는 다이애나를 받아 안았다. 기겁한 시녀들이 나를 뒤에서 떠받쳤다.

나를 깔아뭉갤 뻔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다이애나가 시무룩해졌다.

“미, 미안해요. 너무 반가워서 그만.”

“나도 반가워요, 다이애나.“

“너무 기쁘기도 하고요. 드디어 이블린의 집에 초대 받았잖아요!"

다이애나는 거대 해바라기 씨를 발견한 햄스터처럼 잔뜩 신이 나있었다.

원래는 내가 의상부로 출근할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왕의 전령이 당분간 입궁하지 말라는 명령을 전했다.

영문도 모르고 출입 금지를 당한 나든 의상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갑작스러운 초대에도 모두 참석해 줘서 고마워요."

“흥,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온 거지.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빨강 머리 카밀라가 새침하게 말했다. 반면 마리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결혼했는데 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죠?"

“네? 뭔가 달라져야 되나요?"

"결혼한 사람은 분위기부터 달라지던데, 당선은 이상할 정도로 결혼 전이랑 똑같아서요.”

순간 뜨끔했지만 여기서 들킬 내가 아니었다.

"왤까요? 결혼한 지 이틀 만에 신랑이 전쟁터로 끌려가서?"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다행히 마리아의 의심을 무사히 넘긴 것 같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호화스러운 보석방의 모습에 넋이 나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실내 정원처럼 꾸민 응접실로 이끌었다.

이전에 본 왕의 선룸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응접실을 꾸며 놓은 참이었다. 유리 온실에서 옮겨 온각종식물들이 평화롭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애써 꾸민 효과가 있었는지 긴장된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하게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삐우우!

하이라이트는 복실이의 등장이었다. 오랜만에 옛 추종자들을 만나게 된 복실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껏 선경 써서 차려입고 있었다.

"까아악! 복실아!"

“세상에, 복실이가 조금 커졌어!"

“조금 크고 왕 귀여워!"

2mm의 오차도 알아채는 열혈 추종자들과 복실이가 팬미팅을 가지는 사이, 나는 핀과 정보 교환을 시도했다.

“그동안 별일 없었어요?"

“별일이······ 아주 많았죠.”

의례적인 안부 인사에 핀이 십 년은 팍 늙어 버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뺨을 긁적였다.

“어,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뭐부터 말씀을 드릴까요. 곰 인형 품귀 현상? 북부 패션 대유행? 아니면 그리핀 대소동?"

“우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요.”

역시 수도의 화제는 금방 획획 변하는 것 같다. 감탄하는 나를 보고 핀이 한숨을 쉬었다.

“전부 아가씨가 일으킨 사건들입니다만.”

"예? 제가요?"

핀은 한숨을 쉬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우선 곰 인형 품귀 현상은 내가북부로 떠난 일 때문에 벌어졌다.

왕에게 곰 인형 1호를 바친 다음 날 내가 북부 감찰관 대표에 임명되는 바람에 곰 인형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판매를 시작한 곰 인형은 물론, 짝퉁까지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어, 제가 북부에 다녀오는 사이 곰 인형이 잘 정착 됐다는 보고는 받았는데요.”

곰 인형의 생산 및 판매는 글로리아나 백화점의 총 책임자인 마커스 씨가 맡았다. 제대로 설명도 못 하고 일을 떠맡기게 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전생의 지식을 포함한 약간의 팁을 건넸다.

인형을 시즌 한정판과 멤버십 한정판, n주년 한정판으로 나눠 판매하는 아이디어나, 인형과 별개로 미니어처로 구성된 하우스 시리즈와 소품으로 가지 수를 늘려 나가면 악마의 수집가들을 모을 수 있다든가.

사실 쓰면서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유능한 마커스 씨가 어찌어찌 현실과 타협해서 잘해낸 모양이다.

"급하게 시작했지만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란 말만 들었는데…….”

애초에 돈 벌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 의상부의 노력이 헛되이 흘러가는 걸 막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핀의 얼굴로 봐서는 그렇게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미 용돈벌이 수준의 사업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그 마커스라는 자도 백화점과 별개로 크게 키우려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내가 북부에 다녀올 때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옷이 북부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흥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세스가 쓰러지는 바람에 정선이 없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었는데, 그 비렁뱅이 항공 믹스 패션이 귀족들의 하트를 저격했던 모양이다.

”가능하면 빨리 다른 옷을 유행시켜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미의식을 가진 핀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패션인 듯했다. 어쩐지 오늘 손님들의 옷이 조금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이 있었지.

나는 괜한 죄책감을 느끼며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그리핀 대소동이라는 건 뭐에요?"

“그게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핀은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소식을 전했다. 로엔 공국의 그리핀들이 단체로 왕궁에 내려앉아 망명을 시도 했다고.

“아니, 그런 알이!"

“아가씨,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굉장히 심각한 일이에요. 그리핀과 함께 온 기시들이 엘마이어 공작 가문에 소속되길 원한다고 해서 지금 왕궁이 뒤집어졌습니다."

"와, 그렇군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엘마이어 공작 가문이면 우리 집인데?

"예?! 우리 집에 온다고요?!“

“······그러니까요. 아가씨가 대체 그리핀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다들 난리입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 진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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