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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48화 (148/240)

148화

까미의 마무리 샷을 맞은 케인은 완전히 뻗어 버렸다.

“아니, 이보시오! 할 말은 다 하고 기절해야지!"

나는 축 늘어진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필이면 세스, 그놈은 내 자식이······.’에서 말이 똑 끊겨서 애가 탔다.

‘출생의 비밀 말하다가 기절하는 건 좀 아니지!'

멱살을 잡아 흔들고 뺨도 찰싹찰싹 때려 봤지만 집 나간 케인의 정 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나는 결국 케인을 방으로 옮겼다.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주리를 틀어도 늦지 않으니까. 하지만 기절한 케인은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떨어질 때 머리에 충격이라도 받았나?'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 나는 어쩔 수 없이 켄트 박사님을 불렀다. 침대에 널브러진 케인을 한참이나 진찰한 박사님이 심각하게 말했다.

"심한 피로 누적과 영양실조로 보입니다."

"네? 피로 누적은 그렇다 쳐도 영양실조요? 오늘 아침 한 끼 굶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몸을 돌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완전히 회복하기 위해선 앞으로 꾸준히 관리를 하셔야 할 겁니다."

뭐, 내가 돌볼 것도 아니고 상관없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기력 을 회복하는 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응급 약이라 자주 쓰진 못하니, 건강에 주의해 주십시오.”

박사님의 처방이 효과가 있었는지, 약을 먹은 케인은 금방 깨어났다. 그는 침상 옆을 지키고 있는 나를 보고 소스라쳤다.

벌떡 몸을 일으킨 케인이 나를 손가락질했다.

“너, 너……이 불효막심한!"

“아버님, 어디서 손가락질이세요? 불꽃 효도 싸대기 한번 잡숴 볼래요?"

한 손을 들고 생긋 웃자 케인이 얼른 손가락을 접었다. 새파랗게 어린 며느리에게 뺨을 맞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자존심은 상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따지기 시작했다.

“너, 네가 이러고도 무사 할 줄 아느냐?"

"당연하죠. 엄청 잘살 것 같은데요?"

"뭐, 뭐?“

“아버님은 저한테 맞았다고 동네방네 말하고 다닐 수 있으세요? 저는 할 수 있는데.”

히히 웃으며 묻자 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뻔뻔한 것! 창피한 줄도 모르고!"

케인은 아직 내가 내추럴 본 망나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칭찬 감사합니다."

겸손하게 말하자 케인이 뒷골을 잡고 드러누웠다. 나는 낑낑거리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런데 아버님,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없으세요?”

“뭐?"

“기절하기 전에 뭐 말하려고 하셨잖아요. ‘세스는 내 자식이 아니다. ’라든가?"

케인의 몸이 순간 흠칫 떨렸다. 당황했는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라뇨, 분명히 들었는데요?"

“나는,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룻강아지도 안 믿을 것 같은 거짓말을 한 케인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핵 돌아누웠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다가 말했다.

“아버님, 저 사실 전부터 조금 이상했거든요?"

자식 하나를 죽도록 미워하거나, 미운 자식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는 부모는 전생에서도 흔했다.

하지만 딱 하나 남은 자식이 창창하게 잘나가는 상황에서 죽자고 미워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호구 잡고 한몫 우려내려고 하지, 죽어라 미워하지는 않지.'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지 않는 대로 이리저리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친자식이 아니라 수양딸에게 목을 맨다면  뻔하죠. 세스가 친아들이 아니거나, 라리사모어가 친딸이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웅크린 케인의 몸이 연신 움찔움찔했다. 어휴, 저러 다가지진 나겠네.

나는 그의 이불을 훌렁 벗겨 버렸다. 케인은 껍질이 벗겨진 거북이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왜 말을 못 하세요? 세스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리사가 내 딸이다! 왜 당당하게 말을 못 하시냐고요!”

”에잇,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라!"

“아무것도 말을 안 하니까 모르죠? 장난치나?"

"······."

말로는 못 이기겠는지 케인은 갑자기 눈을 질끈 감고 기절한 척하기 시작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봤다.

초췌하긴 하지만 젊었을 때는 미남이라는 말을 꽤 들었을 것 같은 외모였다. 세스를 좀 더 날카롭게 다듬고 병약미를 한껏 넣으면 그와 비슷해질 것이다.

‘아니, 이렇게 닮았는데도 어떻게 세스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 할 수가 있지. 털색 때문인가?'

갑자기 숙부의 초상화를 보고 자선과 닮았냐고 묻던 세스가 생각나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버님, 딱 한마디만 할게요.”

더 이상 케인을 상대하기 귀찮아진 나는 도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아버님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세스를 닮아서니까, 아드님께 감사하면서 사세요. 네?"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 내 손에 죽었다, 진짜.

-구르르륵?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까미가 나를 샅샅이 확인했다.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내가 흙바닥을 구른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없었어. 그냥 시간만 낭비했어.”

그래도 몇 가지 확인한 것은 있었다. 케인은 분명 세스가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명예 때문인지 자존심 때문인지 그걸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론 사정을 알고 있는 내겐 헛소리나 다름없었다.

“세스가 사생아나 뒤바뀐 자식이었어 봐. 흑막님께서 벌써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를 쳤지."

아마 비트 박스까지 넣어 가며 세스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소문을 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다는 것만 봐도 순전히 케인의 오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잠깐, 진짜 오해인가?'

갑자기 이게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누군가의 수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케인의 오해로 꿀을 빤 사람이 있지 않는가?

공작가의 수양딸이 된 라리사 모어라고.

‘만약 라리사 모어가 무슨 일을 꾸몄다면?'

그리고 배후의 흑막께서 그것을 거들었다면 케인이 홀라당 넘어간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직은 추측이지만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생각대로 일이 풀린다면, 아버님이라는 세스 인생 최대의 암초를 영원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친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금껏 구박해 왔다면 얼마나 미안하겠는가.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쓰레기통에 나들어가 있으라고 하면 되겠지.

"좋았어!"

이거라면 분명 세스에게 도움이 될 덧이다. 새롭게 목표를 정한 나는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 * *

하늘의 제왕, 그리핀을 다스리는 로엔 공국.

그리핀의 보금자리는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숲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깐의 방심으로 그리핀이 우리에서 탈출하여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 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에 예민한 왕과 귀족들은 그리핀의 거처를 자신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그래서 경비를 서는 병사들 또한 귀양살이냐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날이 저물자 위험한 감시 임무가 끝났다. 하루 일과를 마친 병사들은 하나둘 초소로 돌아왔다.

“별일 없지?"

“오늘 새로 온 약을 부렸다더니 다들 얌전하더라."

그때였다.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던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기시들을 보고 움찔했다.

“여.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야간 교대다."

무뚝뚝하게 답한 상대는 경비패를 집어 들고 자리를 떴다.

“엥? 야간 경비라니?"

그리핀은 새와 마찬가지로 야맹증이 있었다. 사나운 악명과 달리 날이 어두우면 얌전해졌기 때문에 밤에는 달리 감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에 창공 기시들이 싹 물갈이 당했잖아. 경비 임무로 좌천당했다고 하더니, 저치들인가 보네.”

창공 기사들은 뛰어난 위명에도 불구하고 소모품에 가까웠다. 중요한 것은 그리핀이지, 기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상을 당하거나 나이가 들면 바로 교체 당했다.

이번처럼 기사들 전체가 물갈이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크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나라면 자존심 상해서 때려치울 것 같은데, 용케도 붙어 있네."

"죽으나 사나 그리핀 옆에 붙어 있겠다는 거겠지. 운 좋으면 복직이 될지도 모르니까."

"복직은 무슨 다들 그리핀 하나보고 기사단에 입단 하는데 자리가 나겠어? 나가리지, 나가리.”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초소밖으로 새어 나갔다.

그것을 들은 기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단장이 툭 때렸다.

"참아라.”

“하지만 단장님!"

"야생 그리핀들이 주변으로 모여드는 게 관찰됐어. 오늘이 바로 그날일지도 모른다.”

단장의 말에 기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어깨를 똑바로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기시들을 둘러본 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회를 놓쳐 서는 안 된다. 다들 긴장하고 있어라.”

"예.”

기사들은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그리핀을 빼앗기고 경비 임무로 좌천되면서도 여기 남아 있었던 것은 미련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핀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듯 우리에 묶여 있던 그리핀들이 번쩍 눈을 떴다.

원래라면 밤의 어둠을 꿰뚫지 못할 그들의 눈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끼르르르륵!

때가 왔다.

우두머리 그리핀 ‘우유'가 울부짖었다. 우유를 좋아 한다는 이유로 이블린이 붙여 준 이름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그리핀들이 발목에 묶여 있던 사슬을 끊었다. 신수로 진화한 그들의 부리에 쇠사슬은 가볍게 부서졌다. 이어서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묶고 있던 사슬까지 끊어 냈다.

“너희들에게도 가족과 친구들이 있잖아. 이대로 영영 헤어지는 건 싫지 않아?"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면 언제든지 놀러 와도 돼.”

이블린의 말은 그들에게 신성한 명령이자 계시나 다름없었다.

-끼에에에엑!

자유의 땅으로!

우유의 울부짖음에 그리핀들은 하나 둘 날개를 폈다. 신수가 아닌 그리핀들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기꺼이 몸을 맡겼다.

“잠깐!”

그때, 우르르 몰려나온 기사들이 우유의 앞을 가로 막았다. 갑작스러운 방해에 놀란 우유가 부리를 딱딱 거렸다.

“우리 같이 가자! 우리 같이 살자!"

“한 번만 태워 줘라!"

죽을 둥 살 둥 그리핀들을 회수해서 귀환했더니 토사구팽당한 기사들은 그에 대한 복수로 망명을 선택했다. 그들은 통통한 벼룩처럼 그리핀들에게 달라붙었다.

-캬악! 캬아아악!

-키이이익!

벼룩이 붙은 그리핀들은 질색을 하며 싫어했지만 우두머리인 우유는 그들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선물을 가져가면 이블린이 더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끼르르르륵!

우유의 비상을 시작으로 그리핀들이 날아올랐다. 대 탈출이었다

뒤늦게 초소에서 뛰쳐나온 병사들은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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