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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44화 (144/240)

144화

뭐? 세스의 아빠가 왔다고?

갑작스러운 시아버지의 동장에 나는 좀 얼떨떨해졌다. 시녀장이 안쓰러워하는 얼굴로 권했다.

“막 돌아오셔서 피곤하실 데니, 만남을 뒤로 미루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뇨. 지금 만나 볼게요."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정말 기대가 된다.

‘어쩌면 라리사 모어를 그렇게 끼고도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양한 노인 공격을 통해 아버님을 떠 볼 계획을 세우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일단 목욕부터 하고요.”

첫 만남이니까 깔끔한 모습을 보여야지. 아버님은 기다리느라 애가 타시겠지만 어쩌겠어.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뭐.

* * *

케인 엘마이어는 날카로운 눈으로 응접실을 둘러봤다.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은 가문의 얼굴이자 안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주는 장소였다.

이블린이 천박하고 사치스럽다는 소문을 들은 케인은 이곳 역시 그런 분위기 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보리색 벽지와 바닥까지 길 게 늘어진 커튼 둥근 곡선을 그리는 가구들은 평온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공작 가문을 상징하는 위압적인 장식이나 권위적인 상징도 없었다. 누구든 이곳에선 마음 놓고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흥, 아랫것들이 대선 꾸민 모양이지.“

코웃음을 친 케인은 근처의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는 몸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소파의 푹신함에 깜짝 놀랐다.

이 시대의 가구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품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블린은 마탑에 특별 주문을 넣어 제 취향의 가구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번 앉으면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푹신한 소파였다.

“이, 이런 요망한!"

이런 식의 편안함에 익숙하지 않은 케인은 펄쩍 뛰며 일어났다. 그는 악마의 도구를 발견한 것처럼 소파를 노려봤다.

도저히 소파에 다시 앉을 수가 없었던 케인은 괜히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플 정도가 되었을 때에야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경쾌한 노크 소리와 함께 벌컥 문이 열렸다. 케인은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서는 여자를 멍하게 쳐다봤다.

요염한 미녀라는 소문이 무색하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가씨였다 사치를 좋아한다는 말과 달리 착용한 장신구는 왼손의 반지들뿐이었다.

특징적인 분홍색 머리카락이 아니었으면 분명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연보라색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이블린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블린입니다."

조그맣고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동자가 생기 있게 반짝거렸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은 순진하면서도 쾌활했다.

어린 소녀 같기도 하고, 장난꾸러기 요정 같기도 한 모습에서 남지를 홀리는 요부를 떠올리긴 어려웠다.

‘마거릿······.’

문독 어린 나이에 죽어 버린 딸이 떠올랐다.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케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런 천한 것을 보며 마거릿을 떠올리다니!'

비록 몸은 불편했지만 마거릿은 고귀한 공녀였다. 남자를 잘 잡아 출세하려는 여자와 비교하는 것은 그 녀에게 모욕이었다.

"누가 네 아버님이냐!"

성질대로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블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그대로 몸을 획 돌려 응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예상 못 한 상황에 당황한 케인이 그녀를 쫓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아버님 아니라는데? 사람 잘못 본 거 아냐?"

"네? 정말요?"

"확인했어?"

이블린이 시녀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케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저, 저런 아둔한······!"

잠시 후, 응접실 안으로 다시 빼꼼 고개를 내민 이블린이 물었다.

"저기, 케인 엘마이어 씨 맞으세요?"

“감히! 누구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아니세요?"

"······."

왠지 맞다고 하면 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케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이블린은 역시 의심스럽다며 시녀에게 경비병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당황한 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케인 엘마이어다!"

“아니, 그럼 왜 아버님이 아니라고 하세요? 정말 성격 이상하시네.”

"······."

할 말을 잃은 케인은 멍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아버님 맞대 어서 들어가자.”

응접실로 들어오는 이블린을 따라 차 쟁반을 든 시녀들이 나타났다.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그들을 본 케인은 울컥했다.

‘이 밤톨만 한 것이 나를 놀려?'

하지만 여기서 회를 냈다간 또다시 이블린이 방을 뛰쳐나갈 것 같았다. 그는 두고 보자고 생각하며 화를 꾹 참았다.

“아버님, 어서 앉으세요. 제가 차 따라 드릴게요.”

이블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었다.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본 케인이 자리에 앉았다. 고녀는 제법 우아하게 차를 따랐다. 천둥벌거숭이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성껏 우렸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흥, 이딴 싸구려 찻잎 따위…….”

“폐하께서 하사하신 거거든요."

"······."

케인은 어쩔 수 없이 이블린이 내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하게 입에 맞아서 더 굴욕감이 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계속 끌려 다닐 거라는 것을 직감한 케인은 일부러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넌 대체 어떻게 돼먹은 아이냐!"

“네?"

“제정신 박힌 계집이라면 결혼 전에 어른께 인사를 올리러 왔어야지. 감히 얼굴도 안 보이고 식을 올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는 생트집이었다. 하지만 도리상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거린 이블린이 오히려 되물었다.

“아버님은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

감옥에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케인은 버럭 성질을 부렸다.

“내가 어디에 있든! 아랫사람의 도리로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니냐!"

“전 아버님이 신이신 줄 알았어요.”

이블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케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다들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 보통 산이라고 하잖아요?"

순간 풉 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블린의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애써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그래서 동화 속 유니콘 같았던 아버님이 실존하신 다니 정말 놀랍고 기쁘네요. 아버님도 저 만나서 반가 우시죠?"

케인은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존재감 없었던 자신을 비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기껏 잡은 꼬투리가 물에 떠내려갈 것 같았다.

“나는 너처럼 천한 것을 며느리로 인정 못 한다!"

그는 테이블을 광 내려치며 소리쳤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케인은 날카로워진 시녀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한마디, 한마디를 힘주어 내뱉었다.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나한테 공작 부인 자리가 가당키나 하느냐?"

동그란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던 이블린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홀짝였다. 마치 솜을 두드린 것 같은 반응이었다. 케인은 좀 더 열정적으로 떠들었다.

"네가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귀족들은 반쪽 혈통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네 자식은 천한 어미를 원망하게 될 거다!"

"야 네.”

이블린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 2세까지 걱정해 주시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아버님은 참 자질구레하게 상냥하시네요.”

“이런 뻔뻔한······!"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라리사 모어 씨 말이에요.”

케인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블린의 입에서 그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라리사 씨와 세스를 약혼시키셨잖아요? 라리사 씨도 유모의 딸이니까, 저와 똑같은 반쪽 혈통이라는 문제가 있는데 그건 “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어요?”

"감히!”

케인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똑같은 반쪽 혈통이라는 말이 그의 상처를 후벼 팠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진 잔이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쳐 깨어졌다. 깨진 파편이 여기저기 튀는 순간 시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마님!”

하얀 뺨에 주르륵 피가 흘렀다. 깨진 파편 하나가 이블린의 뺨을 스치면서 상처를 낸 것이다.

"아, 아니······."

벌떡 일어선 케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블린을 바라봤다. 화가 나서 잔을 내던지긴 했지만, 그녀를 상처 입힐 생각은 아니었다.

그때 멍하게 있던 이블린이 자신의 뺨을 더듬었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에 피가 묻어 나왔다. 이블린은 피 묻은 손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케인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부딪쳤다.

그 순간, 이블린이 번쩍 고개를 들고 그를 응시했다. 초롱초롱하던 붉은 눈이 기묘한 빛으로 번뜩였다.

"두고 보자, 영감탱이!"

이를 악물고 내뱉은 이블린이 벌떡 일어서서 방을 뛰쳐나갔다. 케인은 그 무례한 말에도 아무 반응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게 서 있었다.

이어서 그에게 원망의 시선을 던진 시녀들도 하나둘 절을 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케인은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이블린이 그렇게 사라진 후, 케인은 묘한 찜찜함을 느꼈다. 하지만 궁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목적은 달성했기에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쳐 냈다.

그는 시녀장을 불러 자신이 머물 방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가면 같은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시녀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손님방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손님방이라니? 동쪽 구역의 방을 준비해!"

케인은 자신이 이곳에서 손님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를 뻔히 쳐다보던 시녀장이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큰 주인님을 위해서 손님방을 준비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럼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뜻이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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