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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30화 (130/240)

130화

결혼식이 열리는 천공의 신전은 온갖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몇 년 동안 신전에 바쳐진 꽃보다 오늘 식장을 꾸민 꽃이 더 많을 정도였다.

곳곳에 늘어뜨려진 장식 천과 깃발, 촛대와 카펫, 단상까지 전부 오늘을 위해 세심하게 제작된 것들이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아름답게 꾸며진 식장을 보며 감탄했다.

”의외네요. 구색만 맞출 거라고 생각했는데.”

“폐하께서도 참석하시니 기본 이상은 해야겠지요."

“엘마이어 가문은 부유하니까요. 황금을 땅에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과시인지도 모르죠."

은근슬쩍 결혼식을 깎아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하위 귀족이었다. 그들은 상류 귀족으로 편입되는 이블린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운 좋게 선택받은 고아 주제에'

대외적으로 이블린은 몰락한 명문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고아가된 그녀를 공작 가문에서 후원해 준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신부의 부모 자리가 비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엔 왕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백합궁의 시녀장인 피오나와 근위대장 또한 함께였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왜 저 자리지? 폐하께서 이블린 하인즈를 자식처럼 아끼신다는 뜻인가? 그래서 이 결혼도 허락하신 건가?'

뿐만 아니라 동부 기사들의 우상인 러셀 백작 가문, 중앙 귀족의 대표인 프림로즈 가문, 사교적이고 발이 넓은 해밀턴 가문 역시 신부 쪽 하객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세 가문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놀랍게도 마탑의 마법사들 역시 신부 쪽의 하객으로 참석했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 사이에 이종족인 그레이들까지 섞여 있어 더욱 눈에 띄었다.

‘신부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몰락 귀족이라고 생각했던, 이런저런 소문만 무성한 이블린의 정체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신부가 좀 늦지 않나요?"

“그러게요. 폐하께서도 이미 입장하셨는데."

누군가 툭 던진 말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신랑이 신전의 입구에서 기다린 지도 한참이 되었는데 아직 신부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러다가 결혼식이 중단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의 얼굴에 악의 어린 기대감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허둥지둥 들어온 시종이 시녀장인 피오나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순간 당황한 표정이 된 피오나가 급히 왕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뭐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왕이 밖으로 나가 버렸다.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서서 왕의 뒤를 따랐다.

“세스!”

신전의 입구에서 이블린을 기다리던 세스가 왕을 돌아봤다. 덤덤한 그의 얼굴을 노려본 왕이 멀리서 후여 후여 날아오고 있는 것을 눈짓했다.

“네 짓이냐?"

“폐하, 저라고 해도 타국의 기사들을 강제할 힘은 없습니다."

“그럼 저건 뭐냐?"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어깨를 으쓱한 세스가 웃었다. 이블린이 일으키는 태풍에 익숙해진 자의 여유였다.

그때 왕을 따라 밖으로 나온 하객 중 하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 그리핀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를 짊어지고 날아오는 그리핀들의 모습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창공 기사단인가?"

”로엔 공왕이 참석 하는 건가?"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차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핀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키이익! 키익!

-캬아악!

신전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 그리핀들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음이었다.

“시끄러!"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마차 안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움찔한 그라핀들이 입을 다물었다.

달칵 문이 열리며 새파랗게 질린 시녀들이 우르르 내렸다. 마지막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신부가 왜 창공 기사단과 함께 나타나죠?"

“하인즈 가문이 로엔 공국과 관련이 있었나?"

이블린을 보자마자 애교를 떠는 그리핀들의 모습이 그 오해를 부추겼다. 자신의 동에 있는 기사까지 떨어뜨린 녀석들이 이블린의 앞에 모여 꼬리를 치켜들었다.

“그래그래, 착하지 고생했어.”

이블린은 주인처럼 그리핀을 토닥거렸다. 시녀들은 그녀에게 엉겨 붙는 그리핀들을 보고 기겁했다.

“아가씨! 드레스에 털 묻어요!"

“이놈들! 우리 아가씨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이블린을 보고 용감해진 그녀들은 매섭게 그리핀들을 쫓아냈다. 창공 기사들은 허망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동안 우리가 한 고생은 뭐였던 거침?'

그리핀을 길들이느라 이리저리 굴렀던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기사들의 눈가에 습기가 맺혔다.

“자자, 이건 상이야!"

이블린은 꽃이 다 떨어져 뼈대만 남은 부케를 위로 획 던졌다. 잽싸게 날아오른 그리핀 한 마리가 부케를 물고 도망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른 그리핀들이 괴성을 지르며 놈의 뒤를 쫓았다.

-키에엑!

-캬악!

쫓고 쫓기는 그리핀들을 멍하게 쳐다보던 왕이 이마를 짚었다. 이블린이 저지르는 일에 이유를 따져봤자 머리만 아프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다.

"피오나, 이만 들어가자.”

여기 있어 봤자 속만 답답해질 것 같았다. 왕은 아무것도 못 본 척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넋을 잃고 이블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훑어본 세스가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공작님!"

예비용 부케를 받은 이블린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어째서일까. 수십 번은 더 확인해 눈에 익은 차림이었는데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블린이 환하게 웃는 순간 숨이 막혔다.

“당신, 정말 예뻐.”

서툴게 토해 낸 말에 이블린이 수줍게 웃었다. 부케로 얼굴을 살짝 가린 그녀가 속삭였다.

“고마워요. 세스 덕분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도 해 보고 엄청 좋네요.”

"······."

세스는 이블린을 번쩍 안아 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결혼식이고 뭐고 그녀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인내심을 끌어 모은 세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살짝 잡은 이블린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공작님, 유부남이 되실 준비는 끝나셨나요?“

"······응."

태연한 척 대답하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블린이 작게 웃는 소리에 세스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처음의 소란과 달리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무릎을 꿇은 신랑 신부의 머리 위에 천공신을 상징하는 푸른 천을 펼치고, 향유를 탄 물과 곡식 가루를 뿌려 두 사람의 결합을 축복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세스가 특별히 준비한 푸른 천은 빛이 비칠 때마다 은빛으로 바뀌며 반짝거렸다.

황금보다 더 비싼 향유의 달콤한 향기가 사람들의 코를 간질였다. 축복을 위해 뿌려지는 가루는 진주를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숨소리까지 죽이고 신랑 신부가 결혼 서약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어서 축복의 기도와 성가 합창이 끝나자 반지를 교환하는 순서가 되었다.

-꾸우우!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복실이가 반지를 입에 물고 포르르 날아올랐다.

공작 가문의 결혼반지는 커다란 사파이어가 박혀 있어 꽤 무거웠다. 복실이는 연신 기우뚱거리면서도 엄마 아빠의 손까지 반지를 운반하는 것에 성공했다.

‘날아다니는 뱀이라니, 희귀종인가?'

‘특이한 동물을 키운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군.’

허영심 강한 귀족들은 저런 뱀 한 마리쯤은 자신도 집에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깜짝 놀라는 얼굴로 상대에게 승리감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그레이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복실이에게서 위대한 존재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영원의 뱀? 하지만 화신이라고 하기엔 힘이 너무 약한데?' 어딘가에서 묻어온 것처럼 약한 기운이었다. 그래도 위대한 존재의 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레이들은 복실이를 유심히 바라봤다. 세스의 어깨에 올라앉은 복실이가 기쁜 듯이 뀨뀨 울었다.

'······아닌가?'

그레이들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이블린은 세스의 손에 반지를 끼우는 중이었다.

보여 주기용이라는 것을 알지만 진짜 결혼식처럼 손끝이 떨렸다. 자꾸 미끄러지던 그녀의 손이 가까스로 세스의 손가락에 반지를 밀어 넣었다.

‘됐다!'

기뻐하는 이블린의 손을 끌어당긴 세스가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지만, 빠져나갈 틈 없이 단호한 태도였다. 마침내 공작 부인의 상징인 사파이어 반지가 그녀의 손가락을 얽맸다.

어쩐지 멍해진 이블린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스가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녀의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자, 이제 맹세의 키스를 하셔도 좋습니다.”

대신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블린이 세스를 바라봤다.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살짝 웃은 세스가 베일을 걷었다.

“나한테 맡겨.”

낮은 속삭임과 함께 천천히 입술이 겹쳐졌다. 질끈 눈을 감은 이블린이 그에게 매달렸다.

하객들은 신부를 잡아먹을 것처럼 입을 맞추는 신랑 올 보고 당황했다. 아직 어린 소녀들은 깍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 틈새로 그 장면을 훔쳐봤다.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점잖은 이들의 입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왔다.

"저, 저 미친놈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왕이 집어 던질 것을 찾는 순간에야 겨우 길고 긴 입맞춤이 끝났다. 정신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진 신부를 안아 올린 신랑이 씩 웃으며 물었다.

“이제 가도 되나?"

“헉, 예! 천공신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 선언합니다!”

대신관의 선언이 끝나자마자 세스는 이블린을 안아 든 채로 퇴장했다. 끝까지 당당한 그와 달리 얼굴이 붉어진 하객들이 조금 전의 장면에 대해 수군거렸다.

“전하께서 급하셨던 모양이군. 결혼이 좀 늦긴 했지.”

“신부가 생각보다 순진한걸. 고작 입맞춤으로 기절 하다니 말이야."

“딱 봐도 어려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씨를 시골에서 키워서 데려온 것 아니겠나.”

결국 공작 가문은 물론 왕의 체면까지 엉망이 되었다. 분노한 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왕이 세스를 응징하기 위해 대기실에 들이닥쳤을 때 그는 이미 이블린을 데리고 신혼 여행지로 도망친 후였다. 수많은 하객과 축하 파티를 남겨 둔 채로.

* * *

“주군,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서진 감옥 앞에서 기사가 무릎을 꿇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케인 엘마이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이면 결혼식 전에 밖으로 나오길 바랐는데.”

“경계가 삼엄해서 오늘을 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얀 탑은 죄를 지은 왕족이나 고위 귀족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래서 감옥을 지키는 기서들의 솜씨도 출중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세스가 배치한 그림자 기사들이 더 문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림자 기사들의 방어선을 뚫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케인은 쓸모없는 가신들을 이용해 이블린을 공격하는 척했다. 덕분에 이블린을 지키기 위해 그림자 기사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겨우 탈옥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마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서 나가시죠.”

“그래야지 어서 가서 배은망덕한 아들에게 효를 가르쳐 줘야겠군.”

"분명 깜짝 놀랄 겁니다.”

사납게 웃은 케인 엘마이어가 감옥 밖으로 나섰다.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블린 때문에 프리지어 궁이 두 마리의 바실리스크와 정령수와 눈 요정이 지키는 철옹성으로 변해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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