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저게 뭐지?"
얼핏 보기엔 날개가 달린 거대한고양이 같았다.
검을 파리채처럼 휘젓던 네빌 경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를 보고 기겁했다.
“아가씨! 나오시면 안 됩니다!"
"단장님, 다시 옵니다!"
기사의 경고와 함께 째액 하는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네빌 경과 기시들이 악을 쓰며 무기를 휘둘렀지만, 획획 날아다니는 고양이들을 쫓아내기엔 무리였다.
‘아이고, 저거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딱 봐도 저 고양이들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뭔가를 흔들어 주면 더 좋아할 뿐이었다.
그때, 날고양이 한 마리가 마차의 창문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녀석은 새처럼 뾰족한 부리를 벌리며 째액 소리를 질렀다.
"까아악!“
기겁한 안나가 벌벌 떨며 나동그라졌다.
이놈의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울컥한 나는 부케로 날고양이의 얼굴을 철썩 후려쳤다. 갑자기 얻어맞은 녀석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똥고양이 녀석! 어디서 배운 못된 버릇이야!"
-카악! 칵!
“이놈 시키! 너희 주인 어디 갔어!"
당황한 날고양이 녀석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나는 사납게 문을 걷어차며 마차에서 내렸다.
마차 지붕에서 방방을 타던 날고양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없이 손을 까딱이고는 바닥을 가리켰다.
흠칫 놀란 녀석들이 급히 날개를 펴며 도망가려고 했다.
”씁! 안 내려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움찔한 날고양이들이 엉금엉금 마차에서 내려왔다. 나는 부케로 녀석들을 찰싹찰싹 때려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너희 주인 누구야! 어? 누군데 목줄도 없이 밖에 내 보낸 거야?!"
-끼이잉!
-구록구르르······.
잔뜩 몸을 웅크린 녀석들이 불쌍한 척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지만, 잔득 쥐어뜯겨서 엉망이 된 마차를 보자 다시 화가 났다. 저 마차가 어떤 마차인데!
“아가씨, 큰일 났어요.”
그때, 울상이 된 안다가 내 옆으로 몰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왜? 누가 다쳤어?"
"말들이 넘어지면서 좀 다쳤어요. 말은 새로 데려오면 되는데, 마차가 부서져서 끌 수가 없대요.”
안나는 제가 잘못해서 마차가부서진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렸다.
"울지 마 부서진 건 어쩔 수 없지, 뭐.”
“하, 하지만 지금 당장 마차를 구해와도 결혼식에 늦을 텐데……."
어쩔 줄 몰라하는 안나를 보자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진짜 세스가 혼자 식장에 서서 기다리는 거 아냐?
그 순간, 하늘에서 째액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든 나는 날고양이들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눈을 번뜩였다.
택시가 요기 있네?
* * *
“서둘러! 좀 더 속도를 높여라!"
창공 기사단의 단장은 자신이 탄 그리핀을 재촉했다. 바람이 그의 얼굴을 찢을 기세로 밀어닥쳤다.
“다, 단장님! 조금만 천천히······."
뒤따르는 기사들의 입에서 곡소리가 났지만 무시했다. 탈주한 그리핀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붙잡아야 했다.
‘하필 타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독수리의 날개와 사자의 몸을 가진 괴수, 그리핀.
제아무리 길들여졌다고 해도 그리핀은 무서운 맹수였다. 앞발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찢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 놈들이 무려 네 마리나 탈출했다.
“저는 분명 지정된 먹이만 먹이고 최면향도 잊지 않고 피웠습니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담당 기사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변명했다.
먹이를 먹던 그리핀들이 갑자기 뭔가에 홀린 것처럼 우리를 부수고 뛰쳐나갔다고, 자신이 실수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이다.
단장은 그의 목을 당장 베어 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탈출한 그리핀들을 붙잡는 게 중요했다.
‘공국이 그리핀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창공 기사단은 로엔 공국의 자랑이자 뛰어난 무기였다.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지면 사방에서 공격당할 것이 뻔했다.
‘무엇보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단장은 이를 꾹 악물었다.
그들은 아스트리아에 나타난 빛의 창을 돌려받기 위해온 사절단이었다.
“빛의 창을 꼭 찾아와라! 그걸 간악한 아스트리아 놈들의 손에 쥐여 줘선 안 돼!"
펄펄 뛰는 공왕 때문에 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지만, 빛의 창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스트리아 왕이라고 해도 주지 않겠지.'
그저 공국의 뜻이 이렇게 강경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시위였다. 그것마저 그리핀들이 탈출하면서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끼에에엑!
그때 그가 탄 그리핀이 뭔가를 발견한 듯 울부짖었다. 아래를 본 단장은 멈춰 선 마차와 그 근처에 모여 있는 탈주 그리핀들을 발견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마차를 습격했구나!'
어쩌면 죽은 사람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심호흡을 한 단장은 급히 그리핀을 하강시켰다.
고도가 낮아지자 그리핀들 앞에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새하얀 신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들고 있는 부케로 그리핀들을 찰싹찰싹 때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몸을 웅크린 그리핀들이 새끼 돼지처럼 꽥꽥 울부짖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다시 말하지만 그리핀은 맹수다.
알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먹이와 향으로 길들여도 절대 고분고분하게 사람을 따르지 않았다. 창공 기사들 역시 그리핀을 억지로 굴복시켜 타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끼에엥!
하지만 여자의 앞에서 빌빌거리는 그리핀들은 마치 주인에게 혼나 잔뜩 기가 죽은 강아지처럼 보였다.
‘저 부케는······ 마도구인가?'
그게 아니면 저렇게 가냘픈 여자가 꽃으로 때리는데 그리핀들이 비명을 지를 리가 없었다.
-구르륵!
-구록구륵!
그를 발견한 그리핀들이 이제 살았다는 것처럼 늘어진 꼬리를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반가워하는 녀석들을 본 단장은 어이가 없었다. ‘너희 그런 놈들 아니잖아?'
그때 여자가교를 획 돌아봤다. 아주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아가씨였다. 웨딩드레스를 입기엔 조금 어려 보이기도 했다.
“아저씨가 얘들 주인이에요?"
하지만 여자와 마주하는 순간, 단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어깨가 바짝 굳는 느낌이었다.
“주인은 아니고 책임자입니다.”
"호오?"
“제 관리 소홀로 그리핀들이 우리에서 탈출했습니다. 혹시 아가씨께 그리핀들이 위해를 가했다면……."
"말이 다치고 마차가 부서졌어요.”
죽은 사람이 없다는 말에 단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정도라면 돈으로 보상해 주면 그만이니까.
"야 정말 다행이군요.”
“다행? 지금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 늦게 생겼는데 다해앵?"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다행이란 말에 여자의 눈이 번뜩였다. 당황한 단장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됐고. 저거나 들어요.”
그의 변명을 싹둑 자른 여자가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마차를 가리켰다. 그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단장이 눈을 껌벅였다.
"들어.”
"······예?"
"들라고.”
단호한 명령에 단장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복면인들은 신전으로 가는 길목에 숨어 있었다. 이곳을 지날 신부 행렬을 습격하기 위해서였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차를 막아야 한다."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해내겠습니다."
“모든 것은 엘마이어를 위해서다. 망설이지 마라."
그들은 선대 공작인 케인 엘마이어를 따르는 지들이었다.
세스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 가신들은 형을 살해한 부정한 지를· 모실 수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세스는 그들을 달래거나 포섭하지 않았다.
대신 평민이나 다름없는 어중이떠중이를 모아 새로운 세력을 일구어 나갔다. 어디 잘되나 두고 보자고 코웃음을 치던 가선들은 곧 후회하게 되었다.
7년 전쟁의 영웅이된 세스는 공작으로 임명받았고, 케인 엘마이어는 작위를 빼앗기고 추락했다. 케인을 따르던 가신들 역시 추방되듯이 구석으로 밀려났다.
뒤늦게 용서를 빌며 세스를 찾아갔지만, 얼굴을 마주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들은 지난날의 영광을 그리며 무기력하게 썩어 갔다.
그런데 칩거 중이던 케인 엘마이어가 갑자기 서신을 보냈다 아들의 결혼을 막으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맞댄 가신들은 이블린을 죽이는 것이 가장 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블린을 암살하려던 가신들은 커다란 난관에 부딪쳤다. 아무도 그들의 의뢰를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약속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블린에게 심하게 덴 암살 단체들이 거부한 것이지만 가신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암살자를 구하지 못한 그들은 직접 복면을 한 채로 어설프게 숨어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야합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아직 내 솜씨는 녹슬지 않았소."
“그런데 대체 언제 오는 거요? 올 시간이 벌써 지나지 않았소?"
“여기를 지나가는 게 맞는 건가?"
“정보가 확실하다고 했지 않소?"
허둥거리는 그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때, 짜증을 내던 가신이 뭔가를 발견하고 입을 떡 벌렸다.
"저 , 저기! 저기 마차가!"
“아니,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어떡해!”
"마차가 하늘을 날아온다고! 이 멍청이들아!"
타박을 받은 자는 오히려 더 크게 소리쳤다. 가신들의 눈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정말로 마차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단 생물들이 위에서 마치를 움켜쥐고, 아래에서 바퀴를 떠받친 채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끼에에에!
그들을 발견한 그리핀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에 놀란 가신들은 들고 있던 검을 툭 떨어뜨렸다.
"균형이 안 맞잖아! 박자 맞춰서 똑바로 안 날아?!"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얼른 부리를 다문 그리핀이 열심히 날개를 파닥거렸다.
가신들은 입을 떡 벌린 채로 제 머리 위를 지나가는 마차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