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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28화 (128/240)

128화

* * *

우리의 결혼식은 전통에 따라 왕궁에 있는 ‘천공의 신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평소엔 대지신을 따르다가 결혼식만 천공신에게 맡기는 게 좀 이상했지만 전통이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프리지어 궁에서 천공의 신전까지는 거리가 꽤 멀지. 방을 내줄 테니 백합 궁에서 머무르도록 해라."

왕의 배려로 나는 결혼식 전날부터 백합 궁에 머물게 되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한 시간 동안 마차를 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당신이 고생하지 않는 건 좋지만, 결혼식 전엔 만나 지 못한다는 게 아쉽군.“

내가 백합 궁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세스는 정말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 준비라는 핑계로 매일 몰래 만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세스, 맹세의 키스는 어떻게 하죠?"

세스를 붙잡고 열심히 연습했지만 키스만 하면 기절 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피부가 닿으면 상대의 감정과 생각이 전해지는 내 체질 때문이었다.

아무래도좋아하는사람과키스하는상황때문에 더 흥분해서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기절해 있는 시간만 짧아졌다. 처음엔 몇 시간 정도 기절하다가 이제는 5분이면 깨어나게 되었다.

평소라면 놀라운 성장이라고 기뻐했겠지만, 결혼식장에서 5분이나 기절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냥 키스하는 척만 할까요? 아니면 이마나 뺨에 키스하고 말까요?"

“그럼 우리 사이에 불화가 있다거나 그동안의 모습이 연기였다는 소문이 날걸."

”······하긴 해야겠네요.”

하지 않으면 의심을 사고, 하면 기절하는 상황이라니. 난처함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세스가 물었다.

“나는 키스하는 쪽이 더 좋은데. 당신은 싫어?"

"저, 저도 좋기는 한데요!.“

당황한 내가 더듬거리자 눈웃음을 친 세스가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잘할게.”

부드럽게 닿는 입술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덕분에 나는 대체 뭘 잘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못했다.

* * *

결혼식이 열리는 시간은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오르는 정오였다. 그 전까지 나는 백합 궁에 꾸며진 신부 대기실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이블린!"

문이 열리자마자 다이애나를 시작으로 의상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세상에, 정말 예뻐요!"

신부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에 다이애나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탄했다. 정해진 드레스에 몸을 맞추느라 고생했던 나는 솔직하게 감시를 표했다.

“고마워요, 다이애나.”

풍성하고 화려한 드레스는 몸집이 작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허리선을 올려 엠파이어 드레스처럼 만들고, 장식을 상체에 몰아넣어 조금이라도 키가 커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로 번쩍이는 티아라와 거대한 사파이어 목걸이를 착용하자 노력한 것이 아무 의미도 없게 되었다.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보석 때문에 옷이 전혀 눈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인즈 양, 요정 같아요.”

“드레스가 너무 잘 어울려요.”

"예뻐.”

그러나 화려함에 익숙해진 귀족들에게 이 정도는 별것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광대 같은 내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진짜 결혼하는 거구나."

카밀라는 내가 결혼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다이애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난 선기해서 그러지. 다들 진짜 결혼식이 열리는지 궁금해 했잖아!"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스와 내가 결혼하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름뿐인 약혼녀로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몇몇은 내가 대역이라는 사실까 지 눈치챈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약혼만 하고 끝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귀족의 약혼 기간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으로 꽤 긴 편이었다. 계약 기간이 2년이었으니 약혼 상태로 끝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스가 결혼하자고 할 때는 깜짝 놀랐지.'

약혼과 달리 결혼과 이혼은 기록이 남았다. 이름을 바꾸고 도망치면 그만인 나와 달리, 세스에겐 썩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스에게 정말 결혼해도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물어보면 그만두자고 할까 봐 무서워서.

"축하해요.”

차가운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어 냈다. 전보다 살짝 마른 마리아가 오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결혼식 전에 얼굴은 봐야 할 것 같아서.”

“마리아!”

반가워하는 나를 보고 코웃음을 친 마리아가 쌀쌀맞게 내뱉었다.

“난 약속을 지켰어요. 그러니 앞으로 내 앞에 시시한 꼴을 보이 지 말아요. 알겠어요?"

"물론이죠."

결혼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마리아가 프림로즈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프림로즈 후작이 쓰러지자 아들인 리처드는 제 세상인 것처럼 날뛰었다. 반면 딸인 마리아는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러는 사이 기적적으로 후작의 상태가 나아졌고, 불안감을 느낀 리처드는 아버지에게 암살자를 보냈다.

마리아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암살자의 칼 앞에 뛰어들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후작은 패륜을 저지른 아들을 가문에서 내쫓은 후 마리아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 뒤에 다시 후작의 병세가 나빠져 가문의 실질적 인 주인은 마리아가 되었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마리아만 알겠지.’

내 생각에 후작의 암살 사건은 마리아가 꾸민 것 같았다. 아무 증거도 없는 추측일 뿐이지만.

“힘든 상황인데도 와 줘서 고마워요.”

“오라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톡 쏘아붙인 마리아가 가져온 선물을 안나에게 건넸다. 다른 사람들도 준비해 온 선물을 전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품에서 뭔가를 꺼낸 다이애나가 다가왔다.

“이블린 정말 결혼 축하해요.”

“고마워요. 다이에나."

“이건 다 함께 주는 선물이에요.”

다이애나가 내 손목에 팔찌를 채워 주었다. 조약돌처럼 다듬은 보석들을 금사로 꿰어서 만든 것이었다.

"친구가 결혼할 때 축복의 룬을 새긴 보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거든요. 각자 하나씩 새겼어요.”

의상부 시녀들은 물론 핀과 곰탱이까지 함께 준비했는지 보석 이 모두 일곱 개였다. 보석 하나마다 황금색 글자가 새겨진 것이 보였다. 뜻밖의 선물에 감격한 나는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예쁘네요. 소중하게 끼고 다닐게요.”

내 반응을 힐끗힐끗 살피던 시녀들이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다이애나가 작게 소곤거렸다.

“사실 프림로즈 양이 제일 먼저 만들자고 한 거예요."

"해밀턴 양,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마리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이애나를 위협했다. 즉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다이애나가 눈을 찡긋거렸다.

그 옆에 창백한 얼굴로 서 있던 핀이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즐거운 신혼 보내시고 되도 록 빨리 복귀해 주십시오. 다들 과로로 울고 있습니다.“

"핀, 축하를 하러 온 거예요, 독촉을 하러 온 거예요?“

“당연히 둘 다죠."

뻔뻔한 핀의 대답에 의상부 시녀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곰 인형 때문에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의상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곰탱이, 너는 나한테 할 말 없어?"

나는 아까부터 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 곰탱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입을 삐쭉거린 곰탱이가 마지못해 말했다.

"엄마가 너한테 축하한다고 말하래."

“넌 축하 안하고?"

잠시 머뭇거리던 곰탱이가 풀 죽은 얼굴을 했다.

"결혼하면 이제 못 만나?"

"응? 아니? 의상부에서 만나잖아?"

“정말? 그럼 좋아!"

얼굴이 확 밝아지는 곰탱이를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냉큼 달려온 녀석이 털썩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착하지 핀 말 잘 듣고.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응!"

갑자기 곰탱이 못지않게 쭈굴쭈굴한 내 동생이 생각났다. 공부는 잘하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모르겠다.

"테오, 이제 그만 일어나."

"치, 싫은데.”

“아가씨 바브다. 빨리 나오지 못해?"

핀이 계속 내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는 테오를 억지로 일으켰다. 다이애나와 다른 사람들도 이만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럼 저희는 식장에서 기다릴게요. 나중에 봐요."

손을 흔든 후에 돌아선 의상부 시녀들과 달리 머뭇거리던 핀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돌아오시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네?"

“전에 부탁하신 일에 대한 겁니다."

내가 뭘 부탁했지?

어리동절해진 내가 캐묻기도 전에 핀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가 버렸다. 이어서 방문한 손님 때문에 나는 금방 핀의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가씨, 이제 나가실 시간이에요.”

방문하는 손님 이 끊길 때쯤 안나가 말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지쳐 있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옷차림을 가다듬고 베일을 정리한 안나 가조심스럽게 나를 안내했다.

백합 궁에서 천공의 신전까지는 마차를 타고 가게 되어 있었다. 이날을 위해 세스가 주문한 웨딩 마차였다.

‘아니, 한 번 쓸 마차까지 주문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아?'

사실 심한 것은 베일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3미터가 넘는 베일을 시녀들이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따라오는 중이었다.

“전하께선 아가씨의 트레인이 짧은 게 신경 쓰이신 모양이에요.”

웨딩드레스 뒤에서 바닥에 끌리는 부분을 트레인이라고 하는데, 신분이 높은 여자일수록 길게 늘어뜨렸다. 그래서 왕족이나 공녀는 바닥을 청소하면서 결혼했다.

반면 신분 세탁으로 귀족이 된 나는 짧은 트레인밖에 붙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쉬웠던 세스가 베일을 미친 듯이 길게 한 것이다.

덕분에 복실이처럼 한참을 뽈뽈거리며 걷고 또 걸은 뒤에야 겨우 백합 궁을 벗어나 마차에 오를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가씨. 제가 신전까지 무사히 모시겠습니다.”

자신 있는 네빌 경의 목소리에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무슨 일이 생긴다는 플래그 아닌가?

‘에이 , 설마. 궁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

하지만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 법이었다.

마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마차 지봉에 날카로운 뭔가가 가득 박혀 들었다.

“까악!"

나와 함께 마치}에 탄 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다음 순간. 머리 위로 무언가가 획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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