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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25화 (125/240)

125화

“아니, 그게 무슨!"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려던 사절은 왕의 헛기침 소리에 움찔했다.

사실 그가 질문을 던진 것부터가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여기서 더 따졌다간 외교적인 실책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결국 이를 갈면서도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왕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참으로 좋은 선물이구나. 그 이쑤시개는 짐이 잘 사용하마.”

사절은 자기 나라 신기 로 이를 쑤시겠다고 선언한 왕을 멍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뻔뻔하게 물을 뿐이었다.

“어디 아픈가? 안색이 좋지 않군.”

“하, 하하! 아닙니다. 갑자기 너무 귀한 물건을 봐서 놀란 것 같습니다.”

"저런, 고작 이쑤시개 때문에 놀라다니. 무리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군.”

상황이 뒤집힌 것을 느낀 왕은 여유롭게 자리를 끝내려 했다. 그러자 당황한 사절이 고개를 조아렸다.

“아닙니다. 모처럼 폐하께서 귀한 시간을 내주셨으니 좀 더 자세한 이야기별 드리고 싶습니다.”

"공국의 뜻은 충분히 이해했네. 짐이 좀 더 생각해 보고 답해 주지.”

“아니, 저희 뜻은 그것이 아니옵고······.”

사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여기서 설마 빛의 창을 인질로 잡힐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하나. 회담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짐이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너그러운 척하는 말과 달리 왕의 시선은 허공에서 꾸물거리는 바늘에 닿아 있었다.

"차, 참석하지 않는다니, 그럴 리가요! 오랜 우방으로서 당연히 참석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가? 그럼 그렇게 하도록. 살펴 가게.”

왕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당황한 사절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기사들에게 반쯤 끌려 나가듯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옥좌에서 벌떡 일어난 왕이 이블린에게 달려들었다.

"요 귀여운 것. 왜 이렇게 늦었느냐. 짐이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왕에게 붙잡혀 뺨을 마구 꼬집힌 이블린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왕은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얼마 전엔 그레이 녀석들의 무릎을 꿇리더니, 오늘은 공국이 쩔쩔매도록 하는구나.'

왕은 시키는 일도 척척, 시키지 않은 일도 척척 해내는 이블린이 귀여워 축을 지경이었다.

“폐하, 이블린이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긴 여행에 지친 모양이구나. 짐이 데려가서 돌봐줘야겠다.”

보다 못한 피오나가 말렸지만 왕은 오히려 이블린을 번쩍 들어 납치할 기세였다. 이러다가 진짜 끌려간다는 것을 느낀 이블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폐, 폐하! 아직 보고드릴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흠, 그래? 고럼 보고부터 듣고 가야겠군.”

마지못해 이블린을 놓아준 왕이 다시 옥좌에 앉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블린은 북부의 식량 공급 상황에 대해 차분히 보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다들 처음 보는 왕의 모습에 놀람과 경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가장 놀란 사람은 이블린과 함께 감찰관 임무를 맡은 리처드 해리슨이었다.

이블린에게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망신만 당한 그는 원한을 갚아 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이블린이 구원자라고 칭송받는 북부에선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해리슨은 북부를 감찰하는 척하며 이블린의 주변을 염탐했다. 그러다가 이블린에게 반역죄를 씌울 건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공작의 약혼녀라고 해도 반역 혐의에선 자유로울 수 없지.’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 이블린의 죄를 고발하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블린을 향한 왕의 총애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총애하기 때문에 더 노여워할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를 놓쳤다간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야.'

이블린이 공작 부인이 되어 버리면 언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아닐 때 잡아야 했다.

결심을 굳힌 해리슨은 이블린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폐하,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을 보고 드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북부에 있을 때 전설 속의 정령수가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참 신기한 일이로군.”

해리슨의 의도를 읽은 왕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하지만 해리슨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예, 북부 사람들이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정령수를 부활시킨 사람이 이블린 하인즈 양이라고 믿더군요."

폐쇄적이며 강한 전사 집단을 거느린 북부는 왕국의 오랜 골칫덩이였다. 아스트리아의 선왕들은 북부를 살리지도 축이지도 않는 정책을 줄곧 유지했다.

그런데 이블린이 북부의 정신적인 지주인 정령수를 부활시켰다 충분히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정령수는 무슨 희귀한 나무 하나 심어 놓고 부활시켰다고 우겼겠지.’

북부의 환심을 사서 뒷배를 키우려는 의도였겠지만,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왕이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이블린을 보며 물었다.

“이블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아,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블린이 당당하게 답했다. 순간 당황했던 왕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렇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으면 어쩔 수 없지.”

"······예?"

해리슨의 눈이 멍해졌다. 하지만 왕은 뻔뻔하게 그를 외면했다.

그때 이블린이 마침 잘됐다는 것처럼 재잘거렸다.

"참, 폐하. 정령수가 바치는 선물도 있습니다."

이블린의 손짓에 커다란 함을 들고 있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기사가 함의 뚜껑을 여는 순간,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아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이건······."

“정령수가 올해 생산한 열매 중에서 제일 크고 튼실한 것들만 골라 모았습니다."

상자안에 가득차 있는 정령수의 열매를 본 왕은 할 말을 잃었다.

‘이전에 본 열매는 여기 비하면 가짜나 다름없군.'

그레이 일족의 장로가 가져온 정령수의 열매는 바짝 말라 대부분의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반면 이블린이 가져온 열매 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났다.

열매 하나하나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저런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상자에 넣어서 덜렁덜렁 들고 왔단 말이지.'

왕은 이블린이 남아도는 열매를 줄이기 위해 술까지 담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폐하의 은덕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북부는 아직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열매를 바치는 것으로 세금을 대신하고 싶다고 합니다."

“누가?“

“정령수가요.”

이블린이 당당하게 말했다.

왕은 정령수가 정말 그렇게 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이블린이 멋대로 말하는 것인지 미치도록 궁금해졌다.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되지?'

잘못하면 피오나에게 또 미쳤나는 시선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고민하는 왕을 보고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 다는 것을 느낀 해리슨이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하인즈 양은 북부에 거대 광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서 그들에게 알려 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인즈 양 덕분에 앞으로 북부는 번성할 일만 남았습니다."

해리슨이 노리던 회심의 일격이었다.

예상대로 왕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참, 그것도 있었네요. 정령수가 자길 살려 줘서 감사하다고 북부에 있는 광맥의 위치를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서 제가 폐하께 드릴 것도 받아왔어요.”

이블린은 깜빡 잊고 있었다며 품속에서 지도 같은 것을 꺼냈다. 왕이 의아하게 물었다.

“내게 줄 것이라니?"

“어, 그러니까…… 회색 산맥에 있는 마광석 광맥의 위치입니다.”

지도를 펼친 이블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마광석?"

마광석을 제련한 것이 바로 마나석이었다.

아스트리아에선 마광석이 발견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매해 마나석 수입으로 빠져나가는 돈만해도 엄청났다.

‘그런데 아스트리아에 마나석 광산이 생긴다?'

매장량에 따라서 는 현재의 판도가 뒤집힐 수도 있었다. 왕으로서는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네, 마광석입니다.“

자신이 무슨 폭탄을 던졌는지 모르는 이블린이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왕은 거의 뛰듯이 다가와 지도를 받아 들었다.

“이건······."

회색 산맥의 어디에 마광석이 묻혀 있는지 그려진 지도였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상세했다.

“이게 진짜라고?"

"네? 당연히 진짜입니다.“

지도에 표시된 엄청난 매장량을 본 왕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사실이라면 마나석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 아니, 마나석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춰서 카스티야의 목을 조르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회색 산맥이 지금껏 개발되지 못한 것은 그레이 일족 때문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레이 일족이 이주를 요청했다.

‘그레이 일족의 이주를 받아들인 후에 광맥의 탐사와 개발을 시작하면······.'

이블린은 계산하느라 바쁜 왕을 보며 생각했다.

‘하나만 드려도 굉장히 좋아하시네.’

세계수는 이블린에게 대륙 전체의 광물 지도를 그려 주었다. 이블린은 그중 북부의 것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세스에게 주었다.

심사숙고한 세스는 채굴해 봤자 국가의 엄격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마광석의 정보만 왕실에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왕은 이블린이 반역이 아니라 반역 할애비를 한다고 해도 기쁘게 용서할 기세였다.

“폐하, 저 잘했나요?"

제가 칭찬받을 기회라는 것을 눈치챈 이블린이 눈을 반짝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왕은 이블린을 번쩍 안아 들고 둥기둥기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내 새끼!"

왕은 당장이라도 왕궁의 벽에 ‘세계 제일의 충신 이블린‘이라고 새기고 싶었다. 그만큼 이블린이 물어 온 결과물은 대단했다.

‘큰일 났다!'

그리고 자신이 망했음을 눈치챈 해리슨은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힐끗 자신을 쳐다보는 왕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다들 뭘 멍하게 보고만 있느냐! 박수 치지 않고!"

왕의 윽박지름에 멍하게 있던 사람들이 얼떨결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요란한 박수 소리 속에서 왕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블린, 공작 부인은 관두고 왕비가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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