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11화 (111/240)

111화

* * *

라리사는 따분한 표정으로 마도구에서 흘러나오는 보고를 듣고 있었다.

황금의 나라, 나바르에서 활동하는 첩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나바르 왕을 설득하는 건 거의 성공했습니다. 다만 태자가 아스트리아와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의견이 통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태자를 없애 버려.”

라리사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자 첩자는 크게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 그, 그럴 수단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태자는 무척 신중한 사람이고 태자비 또한 무녀였던 여자라 손을 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쪽에도 ‘그분'께서 준비해 두신 게 있지 않아? 그걸 쓰면 되겠네.”

라리사는 곱게 다듬은 손톱 끝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 검은 꽃을 쓰란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것은 주인님께서 오랫동안 준비하신 계획의 일부인데, 제가 감히 손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수단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써야지.”

- ······.

"눈치챘잖아? 쓰든 안 쓰든 네 목숨은 이미 위태로워. 공이라도 세우면 용서받을지도 모르지."

장난스럽게 내뱉는 말과 다르게 그녀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첩자가 겨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일이 끝나면 뒤를 부탁드립니다.

환한 빛을 내뿜던 마도구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라리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움직이기 쉬운데 말이야. 여기서의 일은 왜 자꾸 실패하는 걸까."

뺨에 회초리 지국이 있는 시녀가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 이래도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가?"

“안 그래도 주인님께서 맡겨 두신 알을 허락도 없이 써 버렸는데, 검은 꽃까지 손을 댄다면 분명 노여워하실 겁니다.”

“그분께선 아직 모르시는걸. 게다가 검은 꽃에 손을 댄 것은 내가 아니잖아?"

라리사는 자신은 그냥 충고했을 뿐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바르가 흔들리면 엘마이어 공작이 직접 나서야 할 거야 그럼 이블린 하인즈, 그 얄미운 여지를 처리 할 틈이 생기겠지.”

단지 싫어하는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시녀는 경악하는 눈빛을 감추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라리사가 연극적으로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이블린 하인즈는 왜 그렇게 운이 좋은 거지?"

"······."

“바실리스크를 보내도 죽질 않고, 프림로즈 후작마저 당해서 드러눕고, 집요한 신전의 손아귀에서도 도망치고. 자신이 선녀라면서 무덤을 파더니 갑자기 대리를 세워 빠져나가 버리고.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해?"

벽으로 다가간 라리사가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겁을 주듯 회초리를 획 소리 나게 휘두른 그녀가 물었다.

“사실 누군가가 정보를 흘리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번번이 위험을 피해 가겠어?"

“저, 저는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알아. 넌 배신자가 아니지 다만 내게 이런 의심을 들게 하는 네 태도 역시 문제가 있잖아?"

라리사가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을 해도 매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녀가 절망했다.

그때, 또 다른 마도구가 짧은 빛을 뿌렸다. 왕궁에 있는 첩자가 전하는 메시지였다.

"확인해.”

홍이 깨진 라리사가 차갑게 내뱉었다. 시녀는 반쯤 기듯이 마도구로 다가가 메시지를 읽었다.

“이. 이블린 하인즈가 오늘 감찰관 대표로 임명되어 북부로 떠난답니다."

“뭐라고?"

회초리를 내던진 라리사가 마도구를 확인했다. 메시지를 본 그녀의 얼굴이 환희에 물들었다.

“이번엔 신께서 나를 도우시는 모양이군.”

시녀는 라리사를 돕는 신은 악마가 틀림없다고 생각 했다. 라리사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천공신의 신녀 때문에 피해를 입은 암살 단체가 있다고 했었지?”

"예, 어둠의 눈과 웨어울프입니다."

“그들에게 이블린 하인즈와 천공신의 신녀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홀려.”

“예? 하지만 신녀와 이블린 하인즈는······.”

이블린 하인즈와 신녀는 같은 장소에서 목격되었다. 그래서 둘이 동일 인물일 확률은 없었다. 하지만 라리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한때 그런 소문이 났던 건 사실이잖아? 어떻게든 복수를 해서 체면을 세우고 싶은 자들에겐 좋은 미끼겠지. 그들에겐 진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거든.”

아이처럼 키득거린 라리사가 마도구를 내려놓았다.

* * *

북부에서 온 전사들과 궁에서 파견된 감찰관, 그리고 그들을 뒤따르는 수행원들이 왕궁 앞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나는 모두의 대표로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주크를 하사받았다.

“신녀의 이름으로 왕의 길을 열 성검을 내리노라. 이는 그대들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는 상징 이니 더욱 명심하여 봉행하라.”

“영광으로 받잡습니다.”

이것은 내가 주크를 들고 왕의 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벌이는 연극이었다.

두 손으로 주크를 받들고 일어서자 북부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내 기를 살려 주려는 것 같았다.

반면 감찰관과 수행원들은 무늬만 대표인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 난 당신들 공 같은 건 탐내지 않는다니까. 진짜 북부에서 놀다가 올 거야.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리다가 왕의 뒤쪽에 서 있는 세스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어젯밤 세스는 나를 꼭 끌어안고 몇 번이나 가지 말라고 속삭였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에서는 괴로움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 요령이 없는 나는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이 닥치자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현실을 외면하고 세스를 꽉 끌어안고 싶었다.

‘벌써 이래서야 진짜 헤어질 때는 어떡하지?'

애써 참을성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 세스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어깨 위의 복실이를 톡톡 건드렸다.

복실이가 나를 향해 뭐라고 짹짹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풀린 듯해서 다행이었다.

“아가씨,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때. 내 옆으로 다가온 네빌 경이 보고했다 주변을 돌아보자 모두가 말과 마차에 타고 있었다.

나는 이제 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세스를 바라봤다. 그가 입 모양으로 뭐라고 말하는 것이 보였다.

‘쫓아가면 화낼 거야?'

“······응?”

단순한 작별 인사라고 생각했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시간은 없었다.

싱긋 웃는 세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왕의 길을 열었다. 황금색 빛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집요하기로 이름 높은 암살 단체 웨어울프.

그들은 신녀 암살 의뢰를 수행하다가 뛰어난 형제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복수를 외치는 자들이 많았으나, 신녀의 힘에 저항 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는데, 무슨 수를 낸단 말인가.

그런데 뜻밖의 정보가 들어왔다. 이블린 하인즈라는 이름의 어린 계집이 천공신의 신녀라는 것이었다.

거짓 정보임이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그런 소문이 돈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블린 하인즈와 신녀가 친하다는 말도 있었다.

웨어울프들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라도 복수는 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그 계집이 천공신의 선녀든, 신녀의 친우든 우리의 분노를 받을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들은 이전의 일로 구겨진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이블린을 암살하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이블린은 북부의 감찰관이 되어 웨어울프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광야로 이동 중이었다.

이블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한 웨어울프들은 그녀가 반드시 거쳐야 할 장소에서 잠복하기로 했다.

“마침 이곳에 죽음의 계곡이 있습니다. 바위를 굴러 떨어뜨려 혼란을 일으키고 그사이에 이블린을 암살하는 겁니다."

계획은 짜여졌으니 아제 실행만 남았다.

그들은 그동안 모아 두었던 값비싼 이동 스크롤을 모조리 사용해 복수의 장소에 도착했다.

“꽤 미인이라고 들었는데 곧바로 죽여야 하다니 아깝군요.”

"북부의 전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여자를 암살한다면 우리의 명성은 더 높아질 거다. 인내심을 가져라.”

"호호,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만 떠들고 목표가 오기 전에 어서 준비해라.”

시시덕거리던 웨어울프들은 곧바로 냉정한 암살자의 얼굴로 돌변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 자리 잡고 은신술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악!"

그야말로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이들이 움찔했다.

“이런 곳에 왜······?"

“여긴 짐승이 살지 못하는 곳 아니었습니까?"

아무것도 살지 않아서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인데, 저 거대한 맹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다들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들은 전원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짐승의 공격 따윈 큰 위협이 아니었다. 처음 맹수에게 당한 형제는 방심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투척 무기를 던져라. 직접적인 공격만 피하면 된다!"

하지만 상황을 우습게보던 자들은 곧 파리하게 질리고 말았다. 짐승의 앞발이 인간의 피로 물드는 동안 누구도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으아악! 안 돼! 아악!"

다가오는 맹수를 보고 패닉에 빠진 암살자 하나가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 순간, 진정한 공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앙!

맹수가 크게 울부짖자 도망치 던 암살자가 그대로 얼어붙어 새하얀 동상이 되어 버렸다.

"마, 마물이다!"

뒤늦게야 일반적인 맹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암살자들이 도주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주를 예상했던 맹수는 사냥감을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죽음의 계곡이 다시 조용해지기까지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킁······.

불어오는 바람에 대고 쿵쿵 냄새를 맡은 맹수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블린이 오고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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