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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09화 (109/240)

109화

아니, 왜죠?!

순식간에 달려든 의상부 시녀들이 자수 실로 나를 꽁꽁묶어 마리아 앞에 대령했다.

“아이고, 저는 억울하옵니다. 이날 이때까지 의상부를 위해 헌신한 제가 배신자라니요.”

나는 결백함을 읍소했다. 복실이도 나를 변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

-꾸꾸! 꾸우!

하지만 나를 보는 의상부 시녀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심지어 다이애나까지 배신당한 얼굴로 물었다.

“이블린, 의상부에서 휴식부로 옮기는 게 사실이에요?"

“예? 휴식부요?"

뭐야, 그 대충 갖다 붙인 것 같은 부서 이름은?

“아가씨가 의상부를 떠나 새로 생긴 휴식부의 수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핀이 시녀들 대신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내궁에서 봄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이 새로 꾸며졌는데, 거기가 휴식부의 대기실이며 내가 관리인이라는 소문이 퍼졌단다.

-뿌?

복실이마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니, 복실이 너는 나를 믿어 줘야지!

그때 곰탱이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우리 버리고 딴 곳으로 가는 거야?"

"상급 시녀로 승진하면서 부서를 옮긴다던데요?"

이어서 앤도 나를 다그쳤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전 그냥 휴식의 방을 관리하라는 말만 들었어요. 부서를 옮긴다는 소리는 정말 처음 들어요.”

“그게 옮긴다는 뜻 아니야?"

카밀라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자수 실로 묶인 손을 움직여 허 리에 달린 패를 내밀었다.

“저 아직 보고 관리관에서 안 잘렸다고요. 보세요. 여기 패도 그대로 있잖아요. 그럼 의상부 소속이죠?"

"음, 그렇다는데?"

카밀라가 의견을 구하듯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때까지 말없이 나를 관찰하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믿어 주죠. 카밀라, 풀어 줘.”

마리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겁게 카밀라가 가위로 싹둑 실을 끊었다.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된 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휴, 다들 진짜 화난 줄 알고 놀랐잖아요.”

“당신, 의상부 소속이면서 제대로 얼굴 내미는 날은 별로 없잖아요. 거기에 말도 없이 부서를 옮긴다는 소문까지 났으니 화가 안 나겠어요?"

마리아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다른 사람들도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군!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의상부와 함께 있었어요. 믿어 주세요.”

나는 열심히 사탕발림을 하며 싹싹 빌었다. 그러자 싸늘하던 시녀들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정말이지, 말만 잘한다니까"

“매일 나오는 건 아니더라도 조금은 신경 써 주세요.”

"곰 인형 완성된 지가 언젠데. 그동안 한 번도 안 찾아오다니 너무 무심하잖아요.”

“맞아, 나빴어.”

애들을 너무 오래 내버려 둔 탓인지 불평과 불만이 끝이 없었다. 괴로워진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아, 참. 곰 인형이 벌써 완성됐다는 소리는 들었어요. 혹시 보여 줄 수 있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완성된 곰 인형을 보며 리액션을 하면 분위기가 좋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녀들의 썩은 동태 같은 눈망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몇 호요?"

“네?"

“우리······ 벌써 7호까지 만들었는데…….”

“아니, 어쩌다가요?"

아직 3호까지밖에 계획 안 세우지 않았어? 어쩌다 곰이 7호까지 새끼를 친 거야?

"심심해서······ 달리 할 게 없었어요…….”

영혼 없이 중얼거리는 시녀들을 보니 할 말이 없어 졌다.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곰 인형 1호 발표 계획이나 잡죠. 내일 아침은 어때요?"

“어, 그런데 저 내일 북부로 가야 하는데.”

나는 머뭇거리며 사실을 고백했다.

마리아의 눈썹이 대번에 위로 치솟았다. 이어서 다른 시녀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네? 북부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이에요?"

“북부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반응이 조금 이상했지만 북부에 식량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러 가는 거라고 밝혔다. 그러자 핀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다 그런 일을 맡게 되신 거죠? 그게 의상부의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게 어쩌다보니?"

나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밀라가 투덜투덜 불평했다.

"뭐야, 그럼 우린 또 기다려야 되는 거야?"

"어, 그러지 말고 그냥 저 없이 발표하는 건 어때요?"

별생각 없이 한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당황한 나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제가 아이디어를 내긴 했지만, 패턴을 완성하고 만든 건 여러분들이잖아요. 마리아가 대표로 발표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이것 봐 역시 배신할생각인 거야.”

카밀라가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다른 시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가 바늘을 들고 나를 협박했다.

"빠져나갈 생각 하지 말아요. 다 함께 만들었으니 죽어도 다 함께 죽는 거예요.”

아니, 얘들이 왜 이렇게 과격하게 변했지?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는 극약 처방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럼 오늘 발표해 버릴까요?"

"네? 지금요?"

“다들 모여 있으니까 지금 해치우자고요.”

나의 망나니 카운터에 시녀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1호는…….”

“마침 국왕 폐하께서도 일정이 없으시니까 딱 좋죠.“

사설 곰 인형 1호는 왕에게 바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신분을 떠나 곰 인형을 주고 싶었지만, 시녀들은 먼저 인지도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뭐든 왕에게 먼저 갖다 바치는 쪽이 안전하긴 했다.

“다들 준비하세요. 딱 10분 뒤에 폐하를 뵈러 갑시다."

“지금 당장이요?”

"10분 뒤라니까요.”

뜻밖의 말에 시녀들이 허둥거렸다. 하지만 나는 가차 없이 그들을 몰아붙였다.

“자, 선택하세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래요? 아니면 지금 당장 발표할래요?”

당연히 그들의 선택은 후자였다.

“잠깐! 내 거울 어디 갔지? 거울 본 사람?"

“앤, 내 치마 좀 봐줘. 여기 주름지지 않았어?"

시녀들은 분주히 왕을 알현할 준비를 했다.

매일 벌컥벌컥 왕을 만나러 들어가는 나와 달리, 알현 전의 준비는 필수인 것 같았다. 나도 뭔가 도와줄까 싶어 어슬렁거려 봤지만 방해가 된다고 구석으로 쫓겨났다.

복실이가 그런 나를 위로하듯 뺨에 보보 쪽을 날렸다.

홍,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었다 김복실, 나는 너의 배신을 김세스 씨에게 알릴 것이다.

-꾸우?

뒤늦게 귀여운 척하는 복실이를 괴롭히고 있는데, 마리아가 터벅터벅 옆으로 다가왔다.

"복실이 좀 줘 봐요.”

오만하게 말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의 손에 복실이를 넘겼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 마리아가 복결이의 꼬리에 그것을 묶었다. 하얀 꽃이 달린 예쁜 리본이었다.

“결혼한다는 소식 들었어요. 난 결혼식에 참석 못 할 테니까, 선물은 따로 보내 줄게요.”

덤덤하게 내뱉은 마리아가 복실이를 돌려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전보다 핼쑥해져 있었다.

사실 프림로즈 후작가는 지금 난리가 난 상태였다.

가주이자 마리아의 아버지인 후작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못 한다는데, 병인지 다른 이유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세스는 후작이 독에 당한 거라고 했다.

“그동안 사방에 암살자를 보낸 대가를 치르는 거시. 의외인 것은 마리아 프림로즈인데, 내 예상보다 행동력이 없더군.”

후작이 쓰러지자마자 죽은 듯이 찌그러져 있던 얌생이가 설치기 시작했다. 벌써 후작이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여동생인 마리아를 구박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사실 다이애나가 편지로 말해 준 거지만, 어쨌든 내 귀에까지 들어올 정도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거다.

"저도 소식은 들었어요. 요즘 많이 힘들죠?"

”뭐가요?”

미적미적 위로의 말을 꺼내자마자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왔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리처드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오만하게 다물린 입술은 강철 같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는 날카로워진 턱 선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의 병을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가 적은데 마리아까지 안 오면 내가 너무 손해잖아.'

결심을 굳힌 나는 한 차례 목을 가다듬었다.

“저, 마리야 잠깐만 둘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던 시녀들이 우뚝 멈췄다. 마리아는 말없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멋쩍게 옷은 나는 손가락하나를 세웠다.

“딱 1 분이면 되니까, 나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갔다 와, 마리아. 무서울 게 뭐 있어?”

슬며시 다가온 카밀라가 마리아의 등을 떠밀었다.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은 마리아가 먼저 문 쪽으로 향했다.

“딱 1 분만이에요.”

도도하게 말하는 뒷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마리아와 함께 복도에 나온 나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흑룡에게 부탁해서 받아 온 눈물이었다.

“이걸 주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요.”

”······네 ?"

“만병통치약이에요. 절 믿고 후작님에게 먹여 봐요.”

“뭐라고요?"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 마리아의 손에 억지로 병을 쥐여 주었다.

“한 병을 다 먹이면 바로 정상이 될 거고, 한 방울씩 먹이면 조금씩 회복될 거예요.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지는 마리아가 잘 알 거라고 믿어요.”

내가 마리아라면 아주 조금씩 후작에게 먹이면서 얌생이의 미친 짓을 보여 줄 것이다. 후작이 얌생이를 포기하고 나한테 후계자자리를 맡길 때까지.

‘하지만 마리아는 똑똑하니까 더 좋은 방법을 찾겠지.'

세스는 마리아가 행동력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계기였다.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뭔지도 모를 약을 아버지에게 먹일 거라고 생각해요?"

"네, 마리아는 저를 믿잖아요?"

"······."

마리아가 어이없다 못해 화가 난다는 얼굴로 나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만큼은 병을 꼭 쥐고 있었다.

“한 달 뒤에 있을 제 결혼식에 와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안 되지만 프림로즈의 후계자가 되면 가능하죠?"

나는 싱긋 웃었다. 마리아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나는 치마를 들고 깍듯이 인사했다.

“1분이 지났네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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