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100화 (100/240)

100화

* * *

안녕하세요, 가택 연금당한 이블린입니다!

처음은 반성문, 두 번째는 반성실, 세 번째는 무기 휴가, 네 번째는 가택 연금이라니.

이다움은 귀양과 사형밖에 없다는 사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이고, 내가 가택 연금이라니! 내가 대체 뭘 잘못 했다고!"

나는 꽉 닫힌 창틀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진짜 억울한 건 내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잘못은 주크가 했지!

하지만 내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곳에 떨어졌으면 어떻게든 연락을 했어야지. 좋다고 시시덕거리며 감자나 구워 먹고 있어?"

오히려 괘씸하다는 이유로 매일 반성문까지 쓰란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눈물로 ‘앞으로는 길을 잃으면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절대 감자를 구워 먹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써 내려갔다.

‘모르는 곳이라서 연락할 수가 없었던 건데!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제스터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된 건데!'

나는 진짜 가만히 있었는데 친절한 사람들이 다가와서 불도 피워 주고 감자도 구워 줬을 분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벌을 받다니 서럽다, 정말 서럽다!

“아가씨, 식사 가져왔어요.”

그때, 안나가 내 식시를·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 왕의 엄격한 명령 탓에 시중드는 시녀들마저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내 방에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쪼르르 안나에게 다가갔다.

"안나! 복실이랑 까미랑 주크는 잘 있어? 공작님은?”

“복실이랑 까미는 온실에 있고요, 주크는 아직 조사를 받느라 궁에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전하께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린 안나가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받았다.

"안나,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했지?"

“아가씨, 그 말 들으면 저 여기서 잘려요.”

“미안, 너무 고맙다고.”

“전 먼저 침실부터 정리할게요.”

나는 안나가 돌아서자마자 얼른 쪽지를 펼쳤다.

[같이 까미 남편을 보러 갈래?

당신을 어떻게든 거기서 꺼낼 생각뿐인 세스가.]

어떡하지 진짜 눈물 날 것 같다.

쪽지에 살짝 입을 맞춘 나는 얼른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래도 세스가 제일 보고 싶어요.

창틀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이블린이.]

* * *

세스의 행동력은 굉장했다. 그날 저녁에 바로 왕명이 내려온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계속 가택 연금을 받는 것으로 하고, 눈에 띄지 않게 여행을 다녀오는 걸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몰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나는 새벽에 까만 로브를 쓰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다.

“이비.”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멍하게 입을 벌렸다. 한 손에 램프를 든 세스가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뭘 먹었는지 전보다 열 배는 더 영험하고 잘 생겨 보였다.

나는 기도하듯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왜 그래?"

내 태도가 이상했는지 세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걸 보자 완벽한 김세스 씨에게 나라는 오점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세스가 너무 좋아서요."

할 말은 많지만 차마 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열심히 수위 조절을 한 내 대답에 세스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의 귀 끝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 갈까? 까미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까미만요?"

“아니, 모두가."

세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몇 번 더 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떨쳐 버리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복도를 걷는 동안 세스는 오늘의 여행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바실리스크는 동족 의식이 강해서 대부분이 서북쪽 바다에 있는 '죽음의 섬’에 모여서 살고 있어. 까미의 남편도 거기에 있을 거야.”

“그럼 우린 까미의 남편을 만나러 ‘죽음의 섬’으로 가나요?”

“아니, 그 섬은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이야 그러니 우리는 까미가 붙잡혔던 해변에서 기다릴 거야.”

죽음의 섬은 바실리스크들의 낙원이었지만, 아직 어린 새끼들에겐 살기 힘든 환경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실리스크들은 바다를 건너와 따뜻한 해변 에서 새끼를 낳고 키웠다.

까미 역시 복실이를 낳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가 인간에게 붙잡힌 것 같았다.

"누군가가 북서쪽의 해변을 파헤쳐 놓았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까미는 새끼 낳을 곳을 찾아 계속 안쪽으로 이동하다가 함정에 빠진 모양이야.”

아니, 대체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한 거지?

“그런데 세스, 제가 까미 남편이면 그런 상황을 보고 엄청나게 화가 났을 것 같은데요. 대화가 통할까요?"

마누라는 납치당했지, 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 그 정도면 눈이 돌아서 뒤통수에 붙어 있어도 이상 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세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복실이를 보면 풀리지 않을까?"

설득력이······ 있어!

감탄하는 나를 세스가 보석 방으로 이끌었다.

-구르르르!

보석 방을 꽉 채우고 있던 까미가 나를 보고 부드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꾸우우!

그런 까미의 머리 위에서 복실이가 반가움이 담긴 춤을 추고 있었다.

-띠링!

그리고 이번에 정식으로 ‘성검’ 으로 임명된 주크가 매우 의기양양하게 검신을 씰룩거렸다.

마지막으로 매우 어색해 보이는 선배님이 양손으로 짐을 끌어안고 서 있었다. 선배님은 매번 이런 일에 끌려오셔도 괜찮은 걸까.

"북서쪽 바다에 갔던 적이 있어서 길잡이로 동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냥 짐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내 시선을 느낀 선배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왠지 직장인의 비애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띠링! 띵!

그때, 내 앞까지 콩콩 뛰어온 주크가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성검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주크를 집어 든 나는 세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는 어떻게 왕의 길을 사용하는지 잘 몰라요. 전처럼 주크를 방 한가운데 꽂을까요?"

“그걸 찾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더군. 열쇠를 가진 자가, 지고왕이 가장소중하게 여긴 존재를 부르면 되는 거였어.”

세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눈을 깜빡이던 나는 주크를 꼭 쥐고 속삭였다.

“아스트라이아.”

그리고 빛의 길이 우리를 감쌌다.

***

“오늘 목표가 함정에 도착할 거라는 제보가 있었다. 바실리스크를 놓아주는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영상 기록구를 다시 점검하도록.”

상급자의 명령에 성기사들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다들 이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일을 마치고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헥터는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한 대신관 후보 밸런타인 때문에 바실리스크에게 당했다가 해독약을 받고 겨우 벗어났는데, 여기서 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다.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이봐, 헥터. 뭐 하는 거야?"

“그냥 내버려 둬. 모시던 대신관 후보가 완전히 나가리 됐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있겠어?"

“그럼 더 눈치껏 빠릿빠릿 일해서 새 줄을 타야지”

“그게 기능하면 저렇게 멍하게 있지도 않겠지.”

다른 성기사들이 비웃는 소리는 헥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지친다고 생각하며 뿌옇게 밝아 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봤다.

‘간신히 밸런타인의 손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이런 꼴이군.’

신의 뜻을 따르는 성기사로서, 악을 벌하고 선을 지키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 오히려 자신이 악이라고 느껴지는 일을 떠맡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처럼 어린 아가씨를 함정에 빠트려 흑마법사로 몰아가는 작업을 할 때면 절로 자괴감이 들었다.

‘이번 일을 성녀께서 알고 계시는 건가?'

신성 왕국의 우두머리는 성녀였지만. 실질적인 지배는 대신관이 맡고 있었다. 대신관이 작정하고 수를 쓰면 성녀의 눈을 가리는 것도 기능하다는 소리였다.

‘대신관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지금의 대신관이 자리에 오른 뒤로 뭔가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느껴졌다. 주신전은 이미 과거의 그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어쩌면 성직을 걷는 것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른다.

“엇, 잠깐만! 저기 봐!"

그때 누군가 바다 쪽을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헥터는 흠칫 놀랐다.

파도를 가르며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새끼를 낳을 놈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저놈들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알 게 뭐야?"

“뒤로 물러서. 저건 인간을 보면 무조건 공격한다.”

성기사들은 바실리스크의 눈에 될까 걱정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서 한 마리, 또 한 마리의 바실리스크들이 나타났다. 수십 마리의 바실리스크들이 해변을 점령하자 성기사들은 꼼짝도 못 하고 포위되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러다가 전멸 당할 겁니다!"

“어디로 빠져나가? 해변이 전부 뱀 천지인데!"

성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상급 성기사들마저 멍하게 입을 벌리고 굳어 있었다.

이상한 점은 바실리스크들이 그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도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감히 바실리스크들의 벽을 뚫고 도망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바다에서 검은 물기둥이 솟구쳤다.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헥터는 숨을 멈추고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거대한. 너무나도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시 왕관 같은 뿔이 놈의 머리를 멋지게 치장하고 있었다. 마치 뱀들의 왕처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꼿꼿이 세운 머리는 신전의 치솟은 첨탑과 같았고, 뾰족하게 일어선 바늘은 기사의 장검처럼 보였다.

놈이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괴, 괴물이다!"

"저건 상위종? 바실리스크의 왕이 여기 있었다고?"

“지금 당장 주신전에 연락해!"

성기사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때 목을 길게 밴 바실리스크의 왕이 구르르르하고 울부짖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공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을 정도로 위엄 있는 소리였다.

그러자 다른 바실리스크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황금색 빛무리에 둘러싸인 여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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