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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86화 (86/240)

86화

* * *

나는 엄숙한 얼굴로 실로폰을 두드렸다.

도도솔솔-라라솔-파파미미-레레도­

‘반짝반짝 작은 별’이 띵띵땡땡 보고를 울렸다. 마지막 음까지 틀리지 않고 두드린 나는 복실이에게 물었다.

"어때?"

-뿌······.

복실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주크가 전혀 반 옹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채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걸로는 안 되나.”

세스 대신 성검의 주인 되기 프로젝트 삼 일째.

나는 철저하게 주크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첫날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둘째 날은 어설프게 류트를 연주했고, 오늘은 실로폰을 열심히 두드렸는데 아무런 반용이 없었다.

"피아노를 갖고 올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악기거든.”

-뿌우!

복실이는 새침한 표정이었다. 당장 주크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계속 실패만 하자 실망한 듯했다.

“걱정하지 마, 복실아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있거든.”

휴, 주크. 날 여기까지 몰아넣은 것은 바로 너다. 내 수단이 악독하다고 원망하지 마라.

비장한 얼굴로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이블린,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나요?"

불쑥 나타난 피오나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집에서 늘어져 있는 백수 딸을 보는 듯 한 시선이었다.

“시녀장남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이번 방법은 꼭 성공할 거예요.”

“벌써 삼 일째 같은 말을 하고 있잖아요.”

“그동안은 제가 너무 마음이 여려서 주크의 체면을 생각해 줬던 거예요. 진짜예요.”

"오늘은 그만하고 밖으로 나가죠. 의상부에서 당신을 찾고 있으니까요.”

쳇, 주크 녀석, 운이 좋구나. 내일 두고 보자.

나는 얼른 복실이를 챙겨서 피오나의 뒤를 따랐다. 피오나가 나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이블린, 지금까지 검의 선택을 받은 건 전부 뛰어난 검사였어요. 게다가 여자는 한 명도 없었죠.”

세스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두 사람은 내가 주크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재로라고 믿었다. 내게 있어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었으면 나는 별재에 갇혀서 영원히 궁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스는 나에 대한 과보호가 좀 지나친 편이니까.

“괜찮아요, 시녀장남 저는 진짜 주크의 주인이 될 자신이 있거든요.”

피오나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겐 이미 완벽한 계획이 있는데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하죠. 내일 북부에서 발타자르 변경백이 도착할 예정이에요. 알고 있나요?“

“네.”

그걸로 사방이 시끌시끌하니 모를 수가 없었다.

“폐하께서 당신을 발타자르 변경백이나 그 일행과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일은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대기실에 있으세요. 보고에 갈 때도 꼭 나와 동행해야 합니다.”

"······. "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빠.

“대답은요?”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당신이 또 사고에 휘말릴까 걱정하시는 거랍니다.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피오나가 어린애를 달래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감정에 마음이 풀린 나는 빙긋 웃었다.

* * *

"특별히 구한 솜이에요. 이 정도면 충분하죠?"

카밀라가 내게 솜 덩어리를 내밀었다. 솜덩이를 조물조물 주물러 본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호음, 이 감촉이 아니야 "

-뿌우뿌!

복실이도 나를 따라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발끈한 카밀라가 소리쳤다.

“그 감촉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잘 뭉쳐지지 않는 보글보글 솜을 넣어야 한다니까요.”

카밀라가 가져온 것은 그냥 떡 솜이었다. 이런 걸 넣으면 인형을 안을 때 딱딱해서 포근한 맛이 없었다.

”솜이 다 똑같은 솜이지. 보글보글은 무슨······."

“다르니까 가공해 달라고 마탑에 의뢰를 넣은 거죠. 조금만 기다리면 마법으로 가공한 솜이 올 텐데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전 빨리 결과물을 내서 침방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다고요! 개들이 얼마나 우릴 비웃고 있는지 알아요?"

글쎄다. 카밀라가 침방을 비웃으며 도전장을 던졌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든 양이 먼저 침방을 도발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에잇, 당신은 대체 누구 편이야! 마리아,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카밀라가 치사하게 마리아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내게 바늘을 겨눌 줄 알았던 마리아는 멍하게 넋을 배고 있었다.

‘요즘 자주 저러는 것 같은데.’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했지만 삼 일째 저 상태이니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됐다.

“마리아?”

“뭐죠?”

마리아는 내가 부르자마자 뾰족하게 눈썹을 세웠다. 다행히 멀쩡하군. 안도한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뇨,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해서요.”

“나한테 신경 쓸 시간에 당신 곰이나 제대로 만들지 그래요?”

마리아가 점점 쭈굴쭈굴해지는 세스곰을 가리키며 지적했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나는 시무룩하게 바늘을 들었다. 그것을 본 다이애나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제가 도와줄게요. 이블린.”

"흑흑, 고마워요. 다이애나.”

역시 나한텐 천사 같은 다이애나밖에 없었다.

그때 핀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아가씨도 내일 북부 사람들을 보러 가십니까?"

“아뇨, 전 시녀장님을 도와야 해서 못 나가요.”

나는 시무룩하게 답했다. 머리를 긁적인 핀이 곧바로 다이애나에게 물었다.

“그럼 해밀턴 양,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핀, 이 자식 너 처음부터 다이애나가 목적이었지.

다이애나가 망설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속으로 한숨을 쉰 나는 생긋 웃었다.

“핀이랑 다이애나가 함께 가면 저도 안심이죠. 다이애나, 보고 와서 어랬는지 저한테도 꼭 말해 줘요.”

"네, 그럴게요.”

다이애나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핀이 덩달아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아유, 얄미워.

“그런데 핀, 자신 있나 봐요? 북부 남자들은 야성적으로 잘생겼다던데, 한눈에 비교당하면 어쩌려고요?”

북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핀을 놀리고 싶었다. 그러자 핀이 콧방귀를 뀌었다.

"농담이시죠? 북부 남자는 덩치 큰 털북숭이들입니다. 어떤 여자가 그런 남자를 좋아하겠습니까?“

”와, 핀이야말로 뭘 모르네요. 여자도 근육 취향, 털복숭이 취향이 은근히 많거든요?"

“이, 이블린!"

당황한 다이애나가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새빨개진 얼굴을 보니 취향 이야기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이애나. 전 다이애나가 근육이 나 털북숭이를 좋아해도 이해하니까요.”

"친구에게 이상한 취향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핀이 지나치게 발끈해서 떠드는 바람에 피오나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나는 레이디답지 못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한참이나 혼났다.

그 뒤에 피오나는 모두에게 경고했다.

"북부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을 모욕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싸우자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거칠고 험악한 복부 산맥을 끼고 살아서인지 성격이 아주 화끈한 모양이었다.

"명심하세요. 북부 사람을 만나면 절대 그들의 자존심을 긁어서는 안 됩니다."

반복되는 피오나의 경고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난 만나지도 못하는데 상관없군!'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곧 일어날 일인 줄도 모르고.

* * *

발타자르 변경백이 도착하는 날.

나는 왕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출근 했다. 부족한 잠은 마차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채웠다.

"북부에서 온 인간들 때문에 당신만 고생이군.”

가는 내내 나를 품에 꼭 안고 있던 세스가 말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그의 손에 뺨을 비볐다.

“오늘만 이럴 거예요. 돌아갈 땐 이야기 많이 해요.”

“······.”

역시 오는 동안 나랑 아무 말도 못 해서 실망했구나.

나는 은은히 붉어진 세스의 귓불에 쪽 키스했다. 세스가 난처한 듯 나를 붙잡았다.

“하지 마."

"왜요? 전 더 하고 싶은데?"

장난스럽게 말하자 세스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순간 해롱해롱해진 나는 맥없이 그의 어깨에 기댔다.

“받아주지도 못하면서 자극하면 안 되지. 아가씨.”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 달아서 설탕 중독에 걸릴 것 같았다.

한밤중에 세스를 찾아갔던 날, 둘이서 밤 산책을 했던 그때를 계기로 변화가 생겼다.

수동적이었던 세스가 마치 껍질을 벗어 던진 것처럼 감정에 솔직해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기껏 진도를 밴 것이 무색하게 세스의 손만 잡아도 눈이 핑핑 돌았다.

아메리카노였던 감정이 갑자기 에스프레소가 되자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야 언제 키스 연습이라도 해 볼지 눈앞이 캄캄했다.

‘으으, 자라나라. 저항력!’

세스는 뽀뽀 한 번에 맥을 못 추는 나를 안아서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대로 보고로 향하는 그를 필사적으로 말린 나는 간신히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를 부르고. 알겠지?"

"네, 알겠어요.”

아쉬운 듯이 내 뺨을 어루만진 세스가 몸을 돌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 했다.

‘좋아 복실이는 문제없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복실이는 주머니 속에서 쿨쿨 자는 중이었다. 주머니 위를 토닥거린 나는 보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왕의 의상은 전부 보고에서 꺼낼 예정이었다. 혼자서 다 옮길 수 없는 양이기에 의상부 시녀들과 보고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여러분, 저 왔어요!"

나름대로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제일 꼴찌였다. 모여 있는 시녀들을 본 나는 급히 발을 놀렸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나를 발견한 카밀라가 울상이 되어 외쳤다.

“내 잘못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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