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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74화 (74/240)

74화

피하려고 했지만 날카로운 뭔가가 발목을 스치며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삐익!

내 품에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복실이가 비명을 질렀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복실이 쪽으로 기어갔다.

"복실아, 괜찮아?"

-삐우우······.

복실이가 힘없는 소리를 냈다. 얼른 복실이를 안아 든 나는 절뚝거리며 도망치려 했다.

-캬카칵!

날카로운 쇳조각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횃불처럼 타오르는 한 쌍의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 깃든 감정은 강렬한 증오였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몸은 갑옷 같았고, 머리를 장식한 불은 왕관처럼 보였다.

대단히 거대하고 멋진 뱀이었다. 나를 저렇게 노려보지만 않았어도 더 멋졌을 것 같지만.

-크아악!

뱀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나를 죽여 버리겠다는 뜻 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품에서도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 왔다.

-삐아악!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울부짖은 복실이가 내 품에서 쏙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툭 떨어져서 데굴데굴 구른 다음 간신히 바로 섰다.

-슈슈슛!슛슛슈!

복실이가 열심히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나름대로 몸집을 크게 보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너무 하찮아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보, 복실아.“

나는 절뚝절뚝 걸어가 복실이를 집어 들었다. 복실이는 이거 놓으라는 것처럼 반항했다.

“이제 괜찮아.”

나는 복실이를 꼭 끌어안고 거대한 뱀을 올려다보았다.

뱀은 복실이가 삐아악! 울부짖은 순간부터 얼어붙은 양 가만히 있었다.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던 눈도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온 뒤였다.

“저기, 진정했으면 난 그냥 살려 주면 안 될까? 나한텐 토끼 같은 남편과 손가락만 한 아들이 있다고.”

-구르르르르······.

뱀이 목을 울리며 구슬픈 소리를 냈다. 마치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사람이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리는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

-구르르르!

뱀이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순간 깨물려는 줄 알고 움찔하는데, 커다란 물방울이 내 머리 위에 툭 떨어졌다.

”으악!"

내가 놀라서 소리치자 복실이가 삐빗거리며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뱀은 한참이나 내 머리에 대고 눈물을 뿌렸다. 마치 덜 꺼진 샤워기 밑에 있는 것 같았다.

뭐, 뱀의 눈엔 내가 손수건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방금 머리 감았는데…….

"어라?"

슬퍼하며 한 걸음 옮기는 순간, 발목이 멀쩡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신기해하며 발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네가 고쳐 준 거야?"

무심코 물어보자 뱀이 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나는 대답이 돌아온 것에 더 놀랐다. 참, 복실이도 사람말을 알아들으니까 놀랄 건 없구나.

“어, 잠깐만?"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난 뱀이 날 쫓아와서 때리려고 하다가, 복실이를 보자마자 침착해져서 내 상처를 고쳐 준상황인데······?

나는 복실이와 거대 뱀을 번갈아서 쳐다봤다. 하나도 안 닮았지만 왠지 예의상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혹시 복실이 친어머니세요?"

내가 복실이를 가리키며 묻자 거대 뱀이 다시 고개를 끄덕 움직였다.

* * *

나는 거대 뱀의 공격에 쓰러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제일 먼저 발견한 이는 제스터였다.

제스터는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이상한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상처는 없고 몸이 이상 할 정도로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거대 뱀이 눈물을 부려 주자 뻣뻣이 굳어 있던 제스터의 몸이 풀렸다.

"혁?"

번쩍 눈을 뜬 제스터가 나와 거대 뱀의 시선을 받고 움찔했다.

“제스터 씨, 오해가 있었어요. 이제 괜찮아요.”

“오해요?“

나는 놀란 제스터를 진정시키며 복실이의 친엄마가 찾아온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사실 남의 새끼를 멋대로 가져온 제 책임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뭔가 묘한 표정으로 나와 거대 뱀을 번갈아 보던 제스터가 헛기침을 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지만 살았으니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 덩치를 어쩔 생각이시죠?"

“일단 손님으로 대접할 생각이에요. 저랑 복실이를 찾아왔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복실이 엄마가 마음껏 드나들 정도로 커다란 방이 있으려나. 나는 눈으로 거대 뱀의 크기를 쟀다.

‘마불 홀을 비워야 하나? 하지만 거간 난로가 없어서 밤에 추울 것 같은데.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니고…….’

고민하던 나는 곧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중앙 정원에는 채소를 재배하는 유리온실 외에 새장 모양의 대형 온실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키우지 않아서 텅 비어 있었는데, 그곳을 복실이 엄마에게 주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밤에 난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일단 온실 바닥에 톱밥을 깔아야겠네요. 그런데 온도와 습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하지?"

"······일단 아가씨가 저걸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잘 알겠습니다.”

“오해는 다 풀렸잖아요. 그리고 복실이 엄마가 복실이를 돌보려면 제 도움이 꼭 필요한걸요.”

복실이 엄마의 크기로는 복실이를 돌보려다가 짓뭉개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처럼 곱게 간 고기를 먹여 주거나 목욕을 시켜 줄 수도 없었다.

‘알이 갑자기 깨져서 이렇게 작게 태어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복실이에게 더 미안해졌다.

“뭐, 저야 아가씨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네요.”

어깨를 으쓱한 제스터가 앞을 가리켰다. 의아하게 돌아본 나는 저마다 무기를 손에 들고 달려오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 괴물! 당장 아가씨를 놓아드려라!"

“아가씨! 지금 당장 구해 드리겠습니다!"

기사들은 물론, 사용인들까지 전부 다 모인 것 같았다.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주저 없이 달려오는 모습에 가슴이 찡해졌다.

“아가씨, 지금 감격할 때가아닙니다. 당장 달려가서 말리세요. 이러다가 정말 싸움이 나겠습니다.”

제스터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다행히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복실이 엄마가 쓰러진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새끼를 찾아 여기까지 온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동정심을 먼저 보였다.

“세상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식 잃은 어미 마음이 어디 사람이랑 다르겠어?"

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적당히 무르익길 기다렸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복실이 엄마는 당분간 우리 궁의 손님으로 있을 예정이에요.”

다행히 사람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말을 기다리며 내게 시선을 줄뿐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는 중앙 정원에 있는 대형 온실이 좋겠어요. 바닥엔 깨끗한 톱밥을 깔고 충분한 난방과 습도 조절을 해 주세요.”

"예, 아가씨.“

정원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다행히 겁먹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사는 생고기로 하고 다양한 종류로 준비해 주세요. 좋아하는 고기가 있다면 그쪽의 양을 늘려 주세요.”

“예, 맡겨 주십시오!"

주방장도 우렁차게 대답했다.

“복실이 엄마가 타고 들어온 벽이 무너졌다고 들었어요. 피해 상황을 확인해서 알려 주세요.”

"예, 조치하겠습니다.”

시종장이 외알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답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다친 기시들에게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 몰라요. 휴가와 치료비를 넉넉히 지급해 주세요. 다른 이상이 있으면 즉시 저한테 알려 주세요.”

"예, 제가 잘 살펴보겠습니다!"

네빌 경이 씩씩하게 답했다.

"훌륭하십니다.”

총관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속삭였다. 마치 어른 앞에서 구구단을 외우고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어색한 미소를 흘린 나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하죠!"

* * *

제스터의 연락을 받은 세스는 급히 프리지어 궁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달려온 그가 보게 된 것은 따뜻한 유리온실에서 포근한 톱밥 위에 누워 민트에 절인 양고기를 받아먹고 있는 거대한 뱀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동화가 생각나는군요.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다니지만, 결국은 집에서 발견한다는······.”

할 말을 잃은 세스의 옆에서 모리스가 중얼거렸다.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제정신이 아닌듯했다.

“앗, 공작님!"

그때, 세스를 발견한 이블린이 반갑게 소리쳤다. 이블린은 겁도 없이 뱀의 코앞에 앉아 있었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그녀가 뱀의 몸통을 꾸물꾸물 타 넘어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블린이 부주의하게 뱀을 밟을 때마다 모리스는 비명을 삼켜야 했다. 다행히 세스의 앞에 무사히 도착한 이블린이 그의 품에 폭 안겼다.

“다녀오셨어요?"

세스는 톱밥투성이인 그녀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순간 이블린의 목뒤에서 튀어나온 복실이가 세스의 어깨에 찰싹 달라붙었다. 복실이를 처음 보는 모리스 는 홈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삐우삐우!

복실이가 세스의 뺨에 머리를 비벼 대며 행복이 담긴 울음소리를 냈다.

"복실이가 아빠를 보고 싶었대요. 저도 진짜 보고 싶었어요. 이번엔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귀여운 투정에 살짝 웃은 세스가 거대 뱀을 쳐다봤다.

5일 동안 진흙 바닥을 굴러가며 싸웠던 적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조금 성가신 일이 있었어.”

“그랬구나. 그럼 다 끝났어요?"

"거의 마무리가 되었지.”

세스가 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황금색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뱀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모른 척하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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