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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73화 (73/240)

73화

잠시 후, 서둘러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미친놈들이!"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왁자지껄한 고함이 들렸다.

“마법사들이 또 함정을 망가뜨렸습니다! 으아악! 진짜 힘들게 몰아넣었는데!"

“이런 미친놈들! 우리랑 대체 무슨 원수가 져서!"

밸런타인은 정신없이 눈을 굴렸다. 새로 나타난 자들은 마법사들에게 큰 유감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이보시오. 나는 마법사가 아니오. 나는 신성 왕국의 대신관 후보인 밸런타인이오!"

그는 진흙이 입에 들어가는 것도 무시한 채 소리쳤다.

“마탑이고 뭐고 깡그리 불 질러 버렸으면 좋겠다."

“휴 저도요. 요즘은 마법사만 보면 바로 주먹이 앞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상대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밸런타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옆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이보시오 ! 내 말이 안 들리는가?"

밸런타인은 더 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대답온돌아오지 않았다.

공작은 조금 떨어진 기슭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모리스가 충언했다.

"요즘 사검의 힘을 너무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몸에 무리가 가진 않으실지 걱정입니다.”

조금 전에 뱀이 도망친 것 역시 사검의 기운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문제없다.”

공작이 딱 잘라서 말했다. 하지만 모리스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사검 바리사다의 힘은 주인을 미치게 만들었다.

과거 사검을 손에 넣은 자들은 강한 힘에 도취되어 점점 더 많은 살육을 원하는 살인마로 변했다.

그래서 공작은 지금까지 사검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계속 통제해왔다.

‘하지만 이블린이 나타난 이후 달라지셨지.'

지킬 것이 생긴 공작은 사검의 힘을 사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모리스는 그 점이 제일 불만이었다.

"역시 생긴 게 너무 다르군.”

“예?”

“털도 없고, 뿔 모양과 눈 색깔도 달라.”

“아까 그 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뒤늦게 공작의 말을 알아들은 모리스가 되물었다. 하지만 공작은 대답 대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복실이의 존재를 모르는 모리스는 공작의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털이라니, 무슨 털을 말씀하시는 거지? 뱀은 당연히 털이 없는데?'

그때 붙잡힌 마법사들을 심문한 기사가 돌아왔다.

"주군, 그 뱀은 마탑에서 탈출한 것이 맞았습니다. 그동안 저희를 방해한 것도 뱀을 생포해서 다시 데려 가려는 목적이었답니다.”

"증언을 기록하고, 무슨 경로로 바실리스크를 손에 넣었는지 추궁해 봐라. 분명 이번 일의 협조자나 배후 세력이 있을 거다.”

처음 ‘보이지 않는 괴물’이 목격됐다는 동부의 농가에 도착한 공작은 단서가 인위적으로 훼손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괴물의 흔적을 지우며 그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이골이 나 있던 공작은 함정을 파서 단서를 훼손하려던 자들을 붙잡았다.

다름 아닌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마법사들을 추궁한 결과 동부의 괴물이 바실리스크라는 것 그리고 놈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에 마탑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공작은 마탑에서 바실리스크를 잡아서 연구하다가 실수로 놓쳤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 뒤로도 마법사들은 공작이 바실리스크를 잡지 못 하도록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마탑에서 바실리스크를 몰래 가지고 있다가 놓쳐 버린 사실이 알려질 경우, 대대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는 탓이었다.

오늘도 뱀의 습성을 이용해 바실리스크를 함정에 몰아넣는 것에 성공했지만, 마법사들의 방해로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주군,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마법사들에게서 뱀이 지나온 경로를 그린 지도를 압수했는데······.”

기사가 하도 자주 펼쳐서 너덜거리는 지도를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좀 헤맸지만 천천히 수도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틀 전부터는 직진하기 시작했고요. 녀석에게 뭔가 목적이 있는듯합니다."

뱀은 처음부터 이상할 정도로 숨어 다녔다.

배가 고프면 기축을 잡아먹고, 사람에게 발각당하면 빠르게 도망쳤다. 공격을 당해도 상대를 마비시키고 달아날 뿐, 죽이진 않았다. 공격성이 강한 바실리스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목적이 있어서 지금껏 참고 있었던 거군. 인간을 죽이면 추격자가 더 많이 따라붙는 것까지 이해하고 있다. 아주 영리한 놈이야.”

공작의 머릿속엔 춤을 추는 작은 털 뱀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닮았다.

“주군 놈을 생포하려 노력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위험합니다. 수도로 들어가기 전에 놈을 죽여야 합니다.”

"알고 있다.”

여유를 부리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인제 무슨 수를 쓰든 바실리스크를 죽여야 했다.

“계속 추적한다. 놈이 발견되면 포위해서 몰아넣어라 내 손으로 끝을 내겠다."

공작은 씁쓸한 기분을 지우며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고도 수도로 이동하던 바실리스크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사라져 버릴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 했다.

* * *

"복실아, 네 아빠는 대체 언제 올까?“

-뿌우?

나는 괜히 잘 노는 복실이를 톡톡 건드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세스가 출장 간 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연락은 없었다.

‘극비 임무라서 연락을 못 하는 거야, 아니면 연락해야 되는 줄을 모르는 거야?'

왠지 후자일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상큼했다.

나는 세스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잠자리는 괜찮은지, 일은 잘되 어 가는지 , 언제 돌아오는지 궁금한데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출장 가면 꼬박꼬박 연락하세요. 아시겠어요?` 하고 닦달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한숨을 푹 쉰 나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러지 말고 놀러 가자. 복실아.”

-꾸?

복실이가 산이 나서 폴짝 뛰었다. 루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보자 우울하던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 이었다.

-삐이이-!

그때 복실이가 열심히 뭔가를 말하며 춤을 추듯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혹시 주크 말하는 거야? 주크 보고 싶어?"

-꾸우!

복실이는 주크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폴짝 뛰었다. 보고에서 성검인 주크와 함께 춤추며 놀았던 일이 무척 즐거웠던 모양이다.

“오늘은 주크에게 못 가. 다음에 꼭 같이 가자.”

-뿌우······.

복실이가 실망한 듯 꼬리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당분간은 궁을 멀리하는 게 좋았다. 나 혼자 궁에 갔다간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모르니까.

"복실아, 우리 유리온실에 가서 점심 먹을까?"

나는 복실이를 달래기 위해 살살 쓰다듬었다. 복실이는 그리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에구, 이 착한 녀석 같으니.

나는 소풍 기분을 내기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복실이의 머리에는 시녀들이 선물한 작은 모지를 씌웠다.

“까아, 너무 귀여워!"

“복실아, 여기도 봐 줘!"

시녀들의 비명에 으쓱해진 복실이는 당당하게 제 귀여운 모습을 뽐냈다. 사진기가 있으면 산뜩 찍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가만, 왠지 사진기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

온갖 마도구가 다 있는데 사진기도 있지 않을까? 조만간 비슷한 게 있는지 마탑을 뒤져봐야 할 것 같았다.

-땡땡땡땡!

복실이를 어깨에 얹고 유리온실로 걸어갈 때였다. 갑자기 날카로운 종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 종이 울리면 세스가 돌아온다는 뜻이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를 다급함이 느껴졌다.

‘뭐지? 무슨 일이지? 대피해야 하나?'

내가 복실이를 안고 우왕좌왕할 때였다.

“아가씨!"

갑자기 나타난 제스터가 내 손목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도시락 바구니를 떨어트렸지만 집어 들지 못했다.

제스터에게서 전해지는 감정이 너무 절박했기 때문이다. 무슨 큰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제스터 씨? 무슨 일이에요?"

“설명은 나중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를 번쩍 안아 든 제스터가 죽어라 뛰기 시작했다.

나는 섬뜩한 느낌에 어깨를 움츠렸다. 뒤에서 뭔가 가쫓아오고 있었다.

"안 돼 ! 뒤는 보지 마세요!"

제스터의 경고에 나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뒤를 보진 못했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스스슥하고 뭔가가 빠르게 지면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재 제스터 씨!"

“괜찮습니다. 저는 발이 빠르거든요.”

제스터가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뒤에서 다가오는 악의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놈은 제스터가 아니라 나를 노리는 중이었다.

“저건 저를 노리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테니까 저를 두고 도망가세요. 아, 복실이만 데려가 주······.“

제스터가 갑자기 나를 확 껴안는 바람에 말이 끊겨 버렸다. 맞닿은 몸으로 그가 작게 웃는 게 느껴졌다.

“가끔 사람 미치게 만든다기에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진짜네.”

"······."

“아가씨,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요. 돌아보면 나는 진짜 개죽음당하는 겁니다. 알겠죠?"

“제스터 씨?"

”뛰어요!”

제스터가 나를 내려놓으며 등을 밀었다. 그리고 자신은 뒤돌아서 적이 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

나는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머뭇거리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빨리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해 이 근처에 분명 기사들이 순찰하는 장소가 있었어.’

요리사인 제스터가 오랫동안 버틸 令 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심하게 다치기 전에 기사들을 데려와야 했다.

그때 강렬한 악의가 바로 뒤에서 나를 덮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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