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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71화 (71/240)

71화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암컷은 12미터, 수컷은 16미터까지 자라는 대형종이거든. 이렇게 작은 녀석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복실이는 12센티도 안 되니까 정말 상관없네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지만 복실이랑 상관없는 이야기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럼 복실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종일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세스가 부드럽게 복실이의 머리를 문질렀다. 복실이가 행복에 겨운 소리를 냈다. 복실이의 재롱을 보다 보니 금방 왕궁에 도착했다. 나는 복실이를 다시 주머니에 숨긴 후 세스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영광의 문을 지키던 기사가 우리를 보자 깜짝 놀라며 경례했다.

"공작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블린 아가씨, 궁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환영받을 줄은 몰랐네요.”

"역도들의 손에서 국왕 폐하를 구해 내신 아가씨의 용맹함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웃었다.

“경께선 제 편이시네요.”

"예! 저와 제 동료들은 모두 아가씨의 편입니다! 진실은 곧 밝혀질 겁니다! 절대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시를 표한 다음 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기사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세스에게 속삭였다.

“여기만 이런 거예요, 다른 곳도 이런 분위기예요?"

“여기가 제일 점잖은 쪽이지.”

“아이고, 맙소사.”

내가 복실이를 키우는 동안 여론이 완전히 기운 모양이었다.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사람들의 반응을 모른척하기로 했다.

나를 보고 앞까지 데려다 준 세스가 당부했다.

“일이 끝나도 혼자 돌아가지 말고 기다려 내가 당신을 데리러 올 테니.”

"복실이랑 같이 기다릴게요. 빨리 와요.”

아쉬운 듯 나를 바라본 세스가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이어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그가 등을 돌리고 멀어졌다.

나는 세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를 지켜보았다.

* * *

“이블린, 정말로 와줬군요.”

“헉! 시녀장님, 괜찮으세요?"

나는 못 보던 사이에 엄청나게 초췌해진 피오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피오나는 창백한 안색과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때문에 무슨 중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블린은 다른 쪽을 신경 써 주세요.“

기운 없이 말한 피오나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주머니 속에 복실이가 잘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예상과 달리 보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바닥으로 쏟아진 보물들도 이전의 육분의 일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어라, 뭐가 문제인 거지?'

보고가 또 한 번 뒤집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겐 상당히 의외의 광경이었다.

그때, 피오나가 말했다.

“이블린, 지금 이 소리 들리나요?"

“네? 아, 오르골 소리네요.”

어디선가 영롱한 오르골 소리가 들려왔다. 곡은 백조의 자장가였다. 장난감과 함께 가져왔던 오르골이 아직 여기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루만 여기 두신다더니, 마음에 드셨어요?"

장난스러운 내 물음에 피오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뇨, 저는 분명 오르골을 치웠습니다.”

“네? 그럼 이건······."

순간 오르골이 마지막 음을 토해 내고 멈췄다. 뒤이어 드르륵드르륵 오르골의 태엽을 감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피오나도, 나도 여기 있는데 대체 누가오르골의 태엽을 감는 거지?

잠시 후, 다시 영롱한 오르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전처럼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았다.

“당신이 오르골을 두고 간 날부터 계속 오르골 소리가 들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저는 하루가 지나자마자 오르골을 치워 버렸어요.”

피오나가 지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오르골 소리가 들리더군요. 처음엔 어딘가에 다른 오르골이 있는 줄 알고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저 오르골 소리는 검이 내고 있는 겁니다.”

으아악, 갑자기 공포 이야기가 됐잖아!

나는 오스스 닭살이 올라온 팔을 쓸어내리며 피오나에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제가 책임지고 저런 짓을 못 하게 할게요.”

"부탁합니다. 어떻게든 참아 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행한 얼굴로 중얼거린 피오나가 휘청거리며 다시 보물을 정리하러 갔다.

나는 일단 검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보고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소리가 계속 일정한 크기로 들려온 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검이 나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도는 중인가?'

그게 아니면 나를 피해 일정한 거리에서 도망치는 중인 것 같았다. 아주 제멋대로인 녀석이었다.

그때 주머니 안쪽이 꿈틀거리더니 복실이가 순식간에 밖으로 기어 나왔다. 녀석은 내 치마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져 바닥에 톡 떨어졌다.

"복실아 갑자기 왜 나왔어?"

-부우부!

복실이가 뚱땅대는 오르골 소리에 맞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나름대로 리듬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미안하지만, 오르골 연주는 꼭 중단시켜야하니까.’

이미 노이로제에 걸린 피오나를 더 이상 학대할 수는 없었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나는 복실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기 강아지는- 자기 꼬리를 따라서- 빙글빙글-!”

잠시 방황하던 복실이가 이내 내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르골 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지더니 멈춰 버렸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단검 한 자루가 우뚝 서 있었다. 어이없는 광경에 멈칫했던 나는 태연히 말을 걸었다.

“어, 왔어?"

단검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검신(檢身)을 살짝 흔들었다.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내 노래 어때? 마음에 들어?"

잠시 침묵하던 단검이 다시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백조의 자장가’가 아니라 내가 불렀던 ‘아기 강아지’였다.

"네가 더 잘 부른다는 뜻이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자 단검이 검신을 앞뒤로 흔들었다. 어이가 없었던 나는 피식 웃었다.

“오르골 말고 다른 소리도 낼 수 있어?"

조금 전보다 더 오래 고민하던 단검이 갑자기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를 냈다. 몸을 빠르게 진동시켜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와, 진짜 피아노 소리랑 똑같다.”

내 감탄에 단검이 만족스러운 듯 들썩거렸다. 나는 문득 떠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주크, 이제부터 네 이름은 주크라고 하자. 주크박스의 주크야. 넌 노래를 잘 부르니까.”

매번 성검이나 울부짖는 검이라고 부르기도 그래서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가만히 있던 주크가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산들산들 움직였다. 왠지 복실이와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이 불만스러웠는지 빠르게 기어간 복실이가 주크를 툭 쳤다. 휘청한 주크가 복실이를 핵 밀어냈다.

나는 옥신각신하는 둘을 말렸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야지. 주크는 연주를 하고 복실이는 춤을 추자. 내가 노래를 부를게. 어때?"

잠시 고민하던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우리는 ‘아기 강아지’를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 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공연이었다.

* * *

“아니, 진짜 이블린 아가씨가 오셨다니까?"

“아까 의상부 대기실에 가 봤는데 안 계시던데?"

“이상하다 분명히 만났는데. 어디 가셨지?"

잡담을 하던 기사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하얀 꽃잎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어, 뭐야?"

봄에만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저마다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꽃잎을 떨어뜨리며 시들었다가 다시 꽃봉오리를 맺었다.

시간이 수십 배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생명과 죽음이 한자리에서 날뛰며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이블린 아가씨를 본 것도 꿈이었나보다.”

현실 도피를 하는 기사들과 달리, 공작은 냉정한 눈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그의 안에 있는 죽음의 기운도 화려하게 날뛰는 중이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신성력과의 균형은 전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기운이 서로 꼬리잡기를 하듯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치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현상임에도 불안하지 않은 건 이번 일을 일으킨 사람이 이블린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폐하께는 보여 드리지 않는 게 좋겠지.'

빠르게 커튼을 친 공작이 창가에서 물러섰다.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왕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스,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이냐?"

“햇빛이 신경 쓰여서 듣지 못했습니다.”

담담한 대꾸에 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란 놈은 대체……. 아니. 됐다. 간단하게 말하마. 네 아내 대역으로 이블린을 쓰는 건 그만둬라.”

“······.”

“그 아이는 고작 2년만 옆에 두기엔 너무 아깝다. 차라리 내가 오랫동안 시녀로 데리고 있고 싶구나.”

왕이 대놓고 욕심을 드러냈다. 공작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전 그녀를 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왕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이미를 짚었다.

“네가 이블린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네 진짜 아내가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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