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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66화 (66/240)

66화

나는 정신이 멍할 정도로 잔소리를 들은 뒤에야 정원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세스가 잔뜩 보로통해진 나를 보고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하도 잔소리를 들어서 배가 불러서요.”

"저런 샐러드도 안 먹으려고?"

“샐러드 배는 따로 있거든요?"

나는 얼른 냅킨을 무릎 위에 펼쳤다. 펄럭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잔소리를 할 시녀장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세스가 식사 정도는 편히 하고 싶다는 말로 그녀를 쫓아낸 것이다. 그래도 아예 멀어진 것은 아니라서 근처에서 서성대는 시녀장이 보였다.

“그냥 돌아가서 편히 쉬면 될 텐데.”

안타까워하는 나를 본 세스가 시종을 보냈다 . 시종을 통해 식사가 끝나자마자 나를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받은 시녀장이 겨우 몸을 돌렸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아마 소중한 아기 양이 늑대에게 잡아먹힐까봐 걱정 중일 거야."

"오, 세스의 애칭은 아기 양이었군요?"

머리가 은색이라서 나름 잘 어울린다. 장난스러운 내 대꾸에 세스가 작게 웃었다.

그때 낯익은 누군가가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 제스터 씨?"

나는 갑자기 나타난 제스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우처럼 눈웃음을 친 제스터가 우리 앞에 샐러드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가게는 어쩌고 여기 계세요?"

”가게는 잠깐 쉬고 부업 중이지요.”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세스를 바라봤다. 설마 샐러드 만들라고 친구를 잡아 온 건 아니겠지?

“겨자씨 소스 샐러드입니다 잘 섞어서 드세요.”

샐러드를 설명한 후 찡긋 윙크한 제스터가 멀어졌다.

초록색 잎채소 위에 예쁘게 자른 계란과 겨자씨 소스가 듬뿍 올라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나는 샐러드를 잘 섞어서 입에 넣었다. 매콤달콤한 소스가 아삭아삭한 채소와 무척 잘 어울렸다. 조금 맵다 싶을 때마다 고소한 계란과 베이컨이 혀를 감싸주었다. 그런데 샐러드를 한입 먹은 세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요? 맛이 이상해요?"

“아니, 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어서.”

뚱한 얼굴로 말하는 세스 때문에 나는 풉 하고 웃어 버렸다.

“제스터 씨는 요리사니까 당연히 요리를 잘하죠. 하 지만 세스처럼 잘 싸우지는 못할 걸요?"

"······."

세스는 매우 미묘한 표정으로 포크를 움직였다.

샐러드 접시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포크를 내려놓자마자 다가온 제스터가 빈 그릇을 들고 사라졌다.

그 뒤 마치 교대하듯 나타난 시종이 간단한 전채와 사슴 스테이크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제스터가 피클과 잘게 채 썬 양배추를 스테이크 옆에 내려놓았다.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샐러드는 어떠셨어요?"

“아주 맛있었어요. 그런데 제스터 씨, 혹시 주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요리해서 가져오시는 건가요?"

“아, 눈치 빠르시네요. 전 보조 주방을 쓴답니다. 물론 주방장은 제 존재를 모르고요.”

왠지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시종은 샐러드가 먼저 나왔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샐러드를 먹고 싶어 해서 무리하시는 건 아닌 가 싶네요.”

“아가씨가 샐러드를 먹고 싶어 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에요. 그걸로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제스터가 힐끗 옆을 쳐다봤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달려오는 총관할아버지가보였다.

"저기 봐요. 벌써 귀찮은 게 나타났잖아요.”

제스터는 진절머리 난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네 이놈! 아가씨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지팡이까지 내던지고 달려온 총관 할아버지가 덥석 제스터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제스터가 처음 듣는 불량한 말투로 으르렁거렸다.

“영감, 또 다리가 부러지고 싶어?"

여우처럼 가늘던 눈이 부릅떠지자 굉장히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스터, 이블린이 놀라니 적당히 해."

무심한 얼굴로 내뱉은 세스가 사슴 스테이크를 썰어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저기, 지금 스테이크를 먹을 상황이 아닌데요?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제스터가 거의 패대기치듯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난 할아버지가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전하, 이자가 아가씨께 이상한 음식을 먹인 게 틀림없습니다!"

“이상한 음식? 이상한 음식이 뭔데?"

“시치미 떼지 마라! 네놈이 익히지도 않은 이파리를 아가씨께 들고 가는 걸 목격한 사람이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삿대질까지 하며 제스터를 비난했다. 그러자 제스터가 짧게 비웃는 소리를 냈다.

뒤늦게 정산을 차린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스터 씨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제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요리예요.”

“아가씨, 저런 개망나니를 감쌀 필요 없습니다!"

“아뇨, 저는 원래 생채소를 좋아해요.”

나는 진지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할아버지가 그제야 입을 꾹 다 물었다.

“전 생채소를 즐겨 먹는 곳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여기선 그런 걸 먹지 않으니까 이상해 보일까 봐 참고 있었어요.”

나는 슬쩍 눈가를 문질러 눈물을 닦는 척했다.

“그걸 안 제스터 씨가 제가 좋아하는 요리를 몰래 만들어 준 거예요. 그러니까 혼내려면 저를 혼내세요.”

“아니, 그것이 아니라······.”

울먹이는 나를 본 할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세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관, 나는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뭐든 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내 말을 거짓으로 만들 생각인가?"

잠시 머뭇거리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가씨께 불결한 음식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병이라도 걸리시면 어떡합니까?”

“신성력으로 정화했으니 상관없다. 원한다면 성수라도 뿌려서 키우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공식적으로 샐러드를 먹을 수 있는 건가?

잠시 갈등하는 것 같던 할아버지가 다시 반대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어떻게든 아가씨를 헐뜯으려는 자들이 땅에서 난 음식을 먹는다고 흉을 볼 겁니다.”

이곳에선 땅에 가까운 식재료일수록 천하고, 하늘에 가까운 식재료일수록 고귀하다는 이상한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땅에서 난 채소는 천민의 음식이라고 불렸다.

“그자들은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흉을 볼 거다. 그런 하찮은 놈들 의견에 내 약혼녀가 따를 필요는 없어.”

“전하께선 그러셔도 됩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여인의 몸이십니다. 더러운 말에 명예가 짓밟히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날카로운 반박에 세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채소에 성수를 부려서 키운들 여전히 땅에서 자란 것이니 천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 그럼 땅에서 자라지 않으면 되나요?"

나는 불쑥 손을 들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만약 땅이 아니라 물에서 자란 채소라면 제가 먹어도 되는 거죠?"

"물에서 자란 채소라고 하셨습니까?"

“네, 물에다 영양분을 풀고 그 위에 채소를 고정시켜서 키우면 돼요. 바위섬처럼 흙이 적은 곳에선 그렇게 채소를 기르거든요.”

물론 이곳이 아니라 전생의 일이지만, 어쨌든 수경 재배는 어디서든 가능하니까. 내가 먹을 만큼만 조금씩 키워서 요리에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

눈을 끔벅거리던 할아버지가 기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영양분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네?"

할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갑자기 머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영양분은 그냥 영양분인데요?'라는 바보 같은 대답만 떠올랐다.

여긴 아직 영양의 개념이 없나? 아, 높이에 따라 식재료 가치의 차이를 두는 곳이니까 당연히 없겠구나. 나는 스스로의 멍청함을 한탄하며 더듬더듬 설명했다.

“어, 그러니까 흙에는 식물을 성장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것만 따로 빼낼 수가 있거든요. 근데 전 배낼 수 있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라요”

나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네, 이론만 알고 적용이 안 되는 바보가 바로 접니다.

"흠, 그렇군요. 식물을 성장시키는 성분이라…….”

할아버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내가 세스의 약혼녀라 ‘뭔 헛소리야? 그런 게 어디에 있어?'라고 면박을 주진 않는 모양이었다.

쭈글쭈글해진 나를 세스가 의자에 앉혔다.

“그런 건 마법사들에게 알아내라고 하면 돼. 마침 마탑이 당신에게 신세진 것이 있으니 기꺼이 협조해 줄 거야"

“정말요?"

“시험관에서 호문쿨루스도 만들어 내는 자들이니, 식물을 키우는 성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세스를 바라봤다. 내 열렬한 시선에 헛기침을 한 세스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방법인 것 같군.”

"예, 시도해 봐도 손해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법사 들은 이미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뜻밖에도 할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내 말을 밀어줬다.

“정원 중앙에 비어 있는 유리온실이 있으니 거기서 채소를 재배하도록 하지.”

“그럼 물에서 채소를 키울 수 있도록 온실을 개조해야겠군요. 당장 기술자들을 부르겠습니다.”

갑자기 신이 난 두 사람이 계획을 늘리기 시작했다.

유리병에 채소 몇 개를 심어서 돌려 먹기 정도나 할 생각이었던 나는 점점 커지는 스케일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큰 온실은 필요 없어요. 저는 그냥 제 방에서 화분이나 몇 개 키울 생각이었는데요.”

“아가씨, 뭐든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땐 강렬하고 웅장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유행이 되지요.”

아니, 왜 채소를 강렬하고 용장하게 키우죠? 게다가 채소 키우는 게 유행이 될 필요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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