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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55화 (55/240)

55화

“아, 그게 심술부리는 거였습니까? 전 저를 좋아해서 그러시는 줄 알았죠."

”······!“

순식간에 새빨개진 다이애나가 핀을 노려봤다. 머쓱해진 나는 주섬주섬 테이블을 정리했다.

“이, 이블린……!"

다이애나가 도움을 청하듯 나를 불렀지만 못 들은 척했다. 우리 세스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괜히 쓸쓸하다.

내가 모른 척 정리만 하고 있으니 머뭇거리던 두 사람도 일어나서 거들기 시작했다. 결국 핀에게 맡기기 로 결정이 된 모양이었다.

접시를 정리하고 깨진 병 조각을 구석에 모아 두자 목걸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 이 목걸이는 어떡하죠?"

내 물음에 다이애나가 머뭇거렸다. 친척이 선물했다고 생각해서 소중하게 여겼지만, 저주가 담겨 있었다고 생각하니 찜찜한 모양이다.

‘다이애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좀 아깝네.’

고민하던 나는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눈을 빛냈다.

“다이애나, 혹시 이 목걸이 저한테 줄 수 있어요?"

"네? 이런 거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요."

다이애나가 얼떨떨한 얼굴로 목걸이를 내밀었다. 나는 목걸이를 잘 챙겨 넣고 곰탱이를 불렀다.

“곰탱아, 네 상처 소독하러 가자. 저주에게 물렸으니 신전에 가야 할 것 같아.”

“응?”

곰탱이는 아무 생각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핀을 바라봤다.

"궁 안에 혹시 신전이 있나요?"

“아, 네 천공신인 아스트라이아의 신전이 있습니다.”

"거기도 신관이 있겠죠?"

“대신관이 있습니다. 천공의 신전은 궁 안에 있는 것이 제일 크거든요.”

대신관이라니, 마침 잘됐다. 나는 핀을 재촉해 천공의 산전으로 향했다.

* * *

소박했던 대지의 신전과 달리 천공의 신전은 굉장히 화려했다 눈부시게 흰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모습이 꼭 그리스 신전을 보는 것 같았다.

“러셀 경께서 이곳에 방문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아버님이신 러셀 백작께서도 자주 이곳에 들르신답니다."

입구에서 곰탱이의 이름을 좀 팔았더니 대신관이 직접 뛰쳐나와서 환영을 해 주었다.

우리는 곰탱이의 상처를 보여 주며 치료를 부탁했다.

대신관은 곰탱이의 상처를 보고 눈물을 홀릴 것처럼 슬퍼했고, 역시 용맹한 기사답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퍼부었다.

나는 그게 나방에게 물린 상처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자비로운 천공선 아스트라이아께서 이 상처를 거두어 가실 겁니다."

엄숙하게 말한 대신관이 곰탱이의 상처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세스의 은은한 빛과는 다른 별빛 같은 반짝임이 흘러나와 상처에 스며들었다.

‘신마다 힘의 형태가 다른가 보네?'

선기한 기분으로 구경하던 나는 치료가 끝난 후에 대신관에게 말했다.

“저, 대신관남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대신관은 내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그러자 곰탱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 친구야."

"예, 자매님. 뭐라고 하셨지요?"

단숨에 웃는 얼굴로 변한 대신관이 물었다. 나는 그의 변화무쌍한 얼굴에 감탄하면서 품속의 목걸이를 꺼냈다.

“이 목걸이에 축복을 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요.”

“아,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분이시군요. 하지만 천공신의 축복은 아무에게나 내릴 수 있는 것이······."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돈주머니를 대신관의 손에 올렸다.

“아니지만, 이번 한 번만은 예외로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열심히 기도하는척했다.

대신관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자 하늘에 서 별빛이 내려와 목걸이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난 뒤에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황금색 하늘이 된 것처럼 목걸이 전체가 반짝반짝 빛났다.

대신관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천공신 아스트라이아 님은 최고십니다!”

"잠깐, 그 목걸이 좀 보여 주시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곰탱이를 끌고 후다닥 뛰쳐나왔다. 핀과 다이애나도 우리를 따라서 열심히 달렸다. 신전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멈춰선 우리는 헐떡이며 서로를 마주 봤다. 나는 여전히 눈부시게 반짝이

는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이게 원래 저주를 담는 매개체였잖아요. 보이지 않는 힘을 담기 위한 장치가 되어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신성력도 담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본 거예요.”

그리고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별빛을 담고 반짝이는 목걸이 는 처음보다 몇 배는 아름다웠으니까.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다이애나에게 내밀었다.

“다이애나, 이거 받아 줄래요?"

“네?"

“다이애나에게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선성력이 담겨 있으니까 다른 저주도 막아 줄 거고, 또 제 소중한 친구에게 주고 싶어서요.”

멍하게 나를 바라보던 다이애나가 눈물을 글썽였다.

“고, 고마워요. 이블린."

”에이, 이런 걸로 울지 말고요. 제가 걷어 줄 테니까 잠깐만 돌아서 봐요.“

나는 다이애나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내 예상보다 더 잘 어울려서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목걸이를 만지작거린 다이애나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어딘지 불만스러운 표정이 된 핀이 내게 속삭였다

“아가씨, 그러다 친구가 결혼을 영영 못 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네? 안 하면 안 하는 거죠. 이 험한 세상 혼자 살기도 힘들잖아요."

“아니, 약혼자도 있으신 분이······.”

핀이 억울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감상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목걸이가 그녀의 얼굴을 더 생기 있게 만들었다.

‘어? 이런 목걸이를 만들 수 있으면 잘 팔릴 것 같은데? 아콰마린이나 사파이어에 물의 신성력을 넣고, 루비나 가넷에는 불의 신성력을 넣는 식으로······.'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실행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상상을 접었다.

“쟤는 줬는데 나는 왜 안 줘?"

그때, 곰탱이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는 별생각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한테 저런 건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나도 네가 주는 거 갖고 싶어."

곰탱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게 꼭 관심을 원하는 어린애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넌 다른 걸 줄게."

그동안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일할 테니까 상을 줘도 되겠지 내 말에 곰탱이가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속이야."

“저, 그런데 여러분 뭔가 잊고 계신 게 있지 않습니까?"

핀이 심각하게 한 손을 들었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저희 점심시간 끝난지 얼마나 됐을까요?"

”으아악!"

저주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말이었다.

* * *

모리스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짧은 시간 내에 서류를 분석하고, 변종 마나석의 행방을 추적하고, 회수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불평할 수도 없는 것이, 주군인 공작이 혼자서 몇 배의 일을 처리 중이었기 때문이다.

모리스와 기사들은 지나치게 유능한 주군의 뒤를 쫓아간다고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었다.

“다, 단장님, 전 더 이상은 못 버티겠습니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마나석 회수팀으로 빠져라.”

"감사합니다!”

그들처럼 서류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던 모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팔머 항에서 들어온 변종 마나석의 9할은 행방을 알아내거나 회수한 뒤였다.

‘문제는 아직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변종 상급 마나석인데······.'

127명의 사망자를 낸 닉스 강의 참변도 변종 상급 마나석이 일으킨 재난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들은 꼭 회수해야 했다.

그때 조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던 기사가 전서용 매를 어깨에 얹고 돌아왔다.

"단장님, 제스터에게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이블린 아가씨에 대한 내용입니다.”

순간모리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미친놈이 왜 갑자기 보고를 보낸단 말인가. 심심하면 디저트 가게에서 쿠키나 구울 것이지!

“제스터?"

눈이 빠져라 서류를 보던 기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제스터요? 그 위험한 놈이 지금 우리 아가씨 옆에 있단 말입니까?"

제스터는 한때 그림자 기사단에 속했으나 멋대로 떠나 버린이였다. 떠나기 전에 공작에게 검을 휘두른 일도 있어서 기사들은 모두 제스터를 싫어했다.

“설마 아가씨의 목숨을 노리는 건……!"

"단장님, 아가씨가 위험합니다!"

흥분한 기사들이 벌떡 일어나 소란을 피우자 모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께서 아가씨의 경호를 제스터에게 맡기셨다.”

모리스의 말에 그제야 기사들이 얌전해졌다.

“하긴, 독과 암기 쪽에서 놈을 따라올 사람은 없죠.”

“제스터가 아가씨 옆에 붙어 있다면 허튼짓을 할 놈은 없겠군요. 그 전에 죽을 테니까.”

제스터는 그림자 기사단의 마스터 나이트인 파르스의 제자였다. 제스터를 싫어하는 자들도 그의 뛰어난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사실 호위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제스터밖에 없었지만. 이런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제스터는 이블린의 출퇴근을 따라다니면서 점심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블린이 먹는 음식에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작의 염려 때문이었다.

물론 이블린은 이런 사정은 까맣게 모른 채 비밀 정원에 나타나는 식사를 아주 신기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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