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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46화 (46/240)

46화

“전하! 지금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혼비백산한 시녀장이 소리쳤다. 세스는 그제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나를 내려서 품에 안았다.

“이제야 겨우 나를 보는군."

씩씩거리며 세스를 노려보던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울컥했다. 내가 피라냐처럼 세스위 어깨를 곽 깨물자 시녀장이 비명을 질렀다.

반면 세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더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

이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지는 나도 문제였다.

"와, 진짜 애도 아니고. 잠깐 안 쳐다봤다고 저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이러지 않았으면 당신은 계속 날 피해 다녔을걸."

부정할 수 없는 말에 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전 공작님처럼 뻔뻔하지 않아서 부끄럽단 말이에요.”

“나도 부끄러워 . 참고 있을 뿐이지.”

이 공작님 좀 보게. 이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

말을 한다. 당신 귀 색깔이 멀쩡한 걸 내가 똑똑히 봤어!

“두 분, 이제 떨어지십시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나보다 더 내 평판을 걱정하는 시녀장이 딱딱하게 말했다. 한숨을 내쉰 세스가 나룰 내려놓았다.

“내 약혼녀가 최강의 수호천사를 데리고 왔군."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 졌다.

우리는 정원을 산책하며 대회를 나누기로 했다.

세스는 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고, 시녀장은 그런 세스를 감시하고 싶어 했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앞서가는 우리를 시녀장과 다른 사람들이 졸졸 따라 왔다 그것이 신경 쓰여 계속 돌아보자 세스가 내 손을 잡았다.

"몸은 괜찮아?"

“괜찮아요. 오히려 폭 자서 개운한걸요.”

"주치의가 당신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 내가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당신을 다치게 했어."

이것 보라지. 예상 그대로 흘러가는 대화에 절로 한 숨이 나왔다.

“너무 좋아서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죠.”

세스가 움찔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얼굴이 절로 빨개지는 것을 무시하며 뻔뻔하게 말했다.

“저는 좋았거든요 딱 한 번밖에 못 하고 기절한 게 억울할 정도로요. 공작님은 싫으셨어요?"

따지듯이 묻자 세스가 눈을 피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귀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우리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급히 걸음을 옮기려는 내 손을 세스가 붙들었다.

“아니 , 좋았어.”

"······."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을 잃었다. 눈을 내리깔고 신발 끝만 쳐다보고 있자 세스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걸음을 옮겼다.

"다시 연습할까? 이번에는 자제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노력해도 안 되면요?"

“그럼 될 때까지 연습해야지.”

백주 대낮에 키스 모의라니. 이게 뭔가 싶어서 픽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언제 해요? 단둘이 있는 시간이 없잖아요.”

"입궁할 때는 힘들 테니까 집으로 돌아올 때?"

은근슬쩍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꼭 여우같았다. 그대로 유혹에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 달라지기로 했으니까!'

여기 오면서 세스에게 이 말은 꼭 해야겠다고 결심 한 것이 있었다. 세스의 반용이 조금 무서웠지만 지금 이 아니면 용기를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저 이제 혼자서 출퇴근하려고요.”

”……뭐?"

" 계속 공작님이랑 같이 다니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이 나 때문에 매일 몇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나를 출퇴근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해. 어제 습격도 받았잖아."

“어제 일은 왕궁 안에서 터진걸요. 걱정되면 기사들을 데리고 다닐게요.”

세스가 입을 다물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그의 눈은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비, 솔직하게 말해 줘. 나와 같이 다니는 게 싫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지금은 제가 공작님께 새로운 짐이 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세스가 따라다니며 지켜 줘야 히는 짐 덩이가 되긴 싫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이블린으로 태어나겠다고 선언하자 세스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 이 변하겠다고 결심한 건 러셀 가문과의 다툼 때문이겠지?”

세스는 내가 어제의 일로 상처를 입고 비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딱 잘라서 아니 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후회했어요. 제가 피해자여선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내가 전생처럼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무고한 피해자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엘마이어 공작의 약혼녀였다.

내가 쥐어뜯기는 것은 곧 공작가가 쥐어뜯기는 것.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사실은 결코 자랑이 아니었다.

‘도자기로 창문을 껄 게 아니라 곰탱이 엄마의 머리를 후려쳐야 했어.’

차라리 쌍방 가해였다면 공작가가 일방적으로 얻어 터졌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텐데. 억울하고 분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엔 제가 망나니 소리를 듣더라도 꼭 이길 거예요.” 자신 있게 말하자 세스의 얼굴이 더욱 미묘해졌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을 거란 소리군.”

“앗, 아뇨. 비슷한 일이 생겨도 공작님까지 나설 필요 없이 제 선에서 끝장을 볼 거란 뜻이었어요.”

악독하단 소리를 들으면 들었지, 세스에게 짐을 넘기진 않을 거다. 주먹을 꾹 움켜쥐는 나를 보고 세스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당신 혼자 싸우게 만들지 않을 거야.”

“전 혼자서도 괜찮은데.”

“당신은 짐이 아니야. 내겐 단 한 번도 짐이었던 적이 없었어.”

세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어라 말하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당신이 강해지고 싶다면 존중할게. 변하고 싶다면 기꺼이 돕겠어. 다만 내가 원하는 건…… 당신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지 말아 달라는 거야.”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세스의 말에 망설인다는 것은 나도 우리 둘만의 시간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단둘이 있는 시간이라고 해도 고작 마차 안에 있는 거잖아요. 저 때문에 매일 몇 시간씩 낭비하는 건데 아깝지 않으세요?"

“내겐 고작 마차 안에 있는 시간이 하나니까 그걸 낭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배부른 상황도 아니고."

한층 낮아진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정말 ‘배고픈’ 것처럼 나를 보고 있는 세스의 눈에 놀라 숨을 죽였다.

당황한 나를 느낀 세스가 사르르 눈웃음을 쳤다.

"부탁이야, 옹?"

아니, 이 남자가 또 미남계를 쓰네?

뿌루퉁하게 그를 노려보던 나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당분간만 같이 출퇴근하는 걸로 해요."

“그럼 퇴근할 때 연습해도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온 물음에 좀 어이가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 다더니.

“세스, 지금 되게 음흉해 보이는 거 알아요?"

"눈치겠군."

작게 옷은 세스가 내 머리카락을 들어 끝에 살짝 입을 맞췄다. 다행히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겐 들키지 않았다.

나는 모자 끈을 만지작거렸다. 왠지 모자를 쓰지 않았으면 세스가 이마에 키스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 나는 발걸음도 당당하게 출근했다.

왕에게 병가를 받긴 했지만 집에서 버틴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왕궁에 뿌리를 박을 찬스였다.

‘지금쯤 내가 세스를 등에 업고 날뛴다는 소문이 퍼 졌겠지 그럼 진짜로 날뛰는 게 뭔지 보여 줘야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확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보란 듯이 가슴을 짝 폈다. 이럴 땐 그냥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최고였다.

뭐라고 수군거리려던 사람들은 내 뒤에서 세스가 눈을 번뜩이자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엣헴.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호랑이를 뒤에 세운 여우의 힘이다.

“이블린!"

멀리서 다이애나가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오자마자 내 손을 덥석 잡은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벌써 입궁해도 괜찮은 거예요? 몸은 아프지 않고요?“

나는 공식적으로 병가를 내고 조퇴한 상황이었다.

백작 부인 이 랑 싸우다가 반성실에 갇혔는데, 허락 없이 탈출했다고 알릴 수는 없으니 적당한 이유를 갖다 붙인 것이다.

덕분에 다이애나는 진짜 내가 아파서 입궁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제도 내게 병문안을 오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으니까.

"몸살이라서 금방 나았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던 다이애나는 내 바로 뒤에 서 있는 세스를 보고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여전히 세스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다이애나는 바들바들 떨며 세스에게 예를 올렸다.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한 세스가 나를 바라봤다.

“기다릴게."

”······네.”

뭘 기다리겠다는 건지는 뻔했다. 나는 차마 그를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세스가 떠날 때까지 숨소리도 죽이고 있던 다이애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블린 혹시 전하와 싸웠나요?"

"네? 아뇨?"

“평소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서요.”

눈치는 빠른데 방향을 못 잡는 게 이런 사람이구나.

"요즘 피곤하셔서 그런가? 앗, 그런데 처음 보는 목걸이네요?"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다이애나는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타국으로 시집간 종고모님이 제 생일 선물로 보내 주셨어요."

”엇, 생일이었어요?"

“한참 지났어요. 바다를 건너오다 보니 뭔가가 잘못 되어서 늦게 온 모양이에요.”

“아하! 정말······."

나는 머뭇거렸다. 보통 여기서 잘 어울린다든가, 예쁘다는 말을 해 줘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뭔가가 기분 나빠'

보석 색깔이 검어서일까. 광택도 없고 투박했다. 무엇보다 다이애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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