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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아내로 취업합니다-26화 (26/240)

26화

사람들은 이블린을 힐끔거렸다.

처음엔 공작이 저 여자에게 휘둘리더니, 이제는 왕까지 비슷한 중세를 보이고 있었다. 무슨 매력이 있어서 저러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아무런 공도 세우지 않은 자에게 그런 권리를 주시는 것은 너무도 과분한 일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불합리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항의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 했다.

그에 왕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공신의 권리를 내리겠다는 게 아니다. 단순히 마차를 타고 오갈 수 있는 자격을 줄뿐이야.”

“그래도 과합니다! 굳이 내리시겠다면 두 번째 문인 명예의 문을 사용할 권리로도 충분합니다!"

명분 없이 권리를 주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남이 잘되는 꼴이 배가 아플 뿐이었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친 왕이 한숨을 쉬었다.

"공작은 어떻게 생각하지?"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공작에게 쏠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은 이블린의 뺨에 찍힌 붉은 자국을 살피고 있었다.

"공작?”

왕의 재촉에 공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권리는 필요 없습니다. 제 약혼녀는 재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올 겁니다."

“이 짓을 매번 하겠다고?”

왕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공작이 조금 전까지 떠들던 지들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무기질적인 푸른 눈이 꼭 사냥감을 고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군.”

공작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과거의 그를 기억하는 자들은 부르르 몸을 떨기까지 했다.

은사자.

그것이 과거에 공작을 상징하던 말이었다.

왕의 검 학살자 정복자 그 외에도 수많은 별명이 있었지만, 은사자보다 더 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오직 왕가를 위해 키워진 맹수.

공작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은 악몽과도 같았다. 제아무리 담이 큰-귀족도 왕 앞에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가문의 이득은커녕 제 목숨을 지키기도 급급했던 날들이었다.

‘그 지옥에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때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 졌다. ‘

사실 돌아오려고 밑밥 까는 거 아냐?'

‘은퇴했잖아! 은퇴했잖아!'

마른침을 꿀꺽 삼킨 사람들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새, 생각해 보니 폐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앞으로 공작 부인이 되실 분이 아닙니까. 그 정도 권리는 있으셔야죠."

“당연한 권리를 좀 당겨서 쓰는 거라 생각하면 문제 될 것 없습니다.”

순식간에 태세를 바꾼 이들은 왕이 참으로 현명하다고 칭송했다. 왕실 서기관은 조용히 왕명을 썼다.

공작가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왕이 이블린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함으로써 손상된 공작가의 명예가 다시 세워진 것이다.

“아가씨, 어서 폐하께 감사 인시를 올리셔야지요.”

“아. 그, 감사합니다. 폐하.”

호들갑 떠는 시녀들의 재촉에 이블린이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렇게 맹한 것이 궁정에서 잘 적용할지 모르겠구나. 왕실 보고에서 몸을 지킬 물건이라도 하나 꺼내 줘야겠군.’

왕은 이블린이 귀엽지만 맹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래를 알면 결코 하지 않았을 약속을 하고 말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짐이 너를 지켜 줄 것이야.”

그렇게 이블린이 일으킬 파란의 궁정 생활이 막을 올렸다.

* * *

세스가 나를 꼭 껴안고 당부했다.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고, 위험한 곳엔 절대 가지 말고.”

“네.”

완전히 어린애 취급이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떡였다. 세스가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가 괴롭히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제일 가까이 있는 기사에게 공작님께 데려다 달라고 말합니다.”

이제 외우다 못해 입력이 된 말을 하자 세스가 칭찬하듯 등을 토닥였다. 나는 조금걱정이 돼서 물었다.

“정말 그렇게만 말하면 도와줄까요?”

"계속 기사로 살고 싶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거 왠지 협박하는 거 같은데.

“아직도 멀었느냐?"

왕이 지겨워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왕의 뒤에 선 사람들도 지친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진 나는 세스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꼬물거렸다. 한숨을 쉰 세스가 마지못해 나를 안은 팔을 풀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강아지를 처음 유치원에 보내는 주인도 이렇게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 있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 잘할게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그대로 충분해.”

내 뺨을 살짝 쓰다듬은 세스가 물러섰다.

“아가씨,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십시오.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내 첫 출근이라고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들이 한마디 씩 건넸다. 나는 그들의 진심 어린 걱정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이사 떡 효과인가?'

다시는 K-미풍양속을 무시하지 마라 조상님들의 풍습엔 다 깊은 뜻이 있다.

“디들 정말 고마워요.”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사람들에게 활짝 웃어 준뒤 왕에게 다가갔다. 왕은 이제 뭐라고 하기도 지친다는 얼굴이었다.

“따라와."

몸을 핵 돌린 왕이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계단 끝에서 돌아보자 세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모습에 다시 그의 옆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충동을 꾹 누른 나는 세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걸 본 세스가 살짝 웃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왕의 뒤를 쫓았다.

“왜 이렇게 발이 느려?"

자리에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던 왕이 짧게 타박 했다 왕의 뒤에 붙어 있던 아저씨들도 결코 곱지 않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벌써부터 구박받고 있어!

“이리 와.”

왕의 손짓에 나는 서둘러 달려갔다. 하지만 왕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콩만 해서 이렇게 느린가.”

“······!"

차가운 팩트가 가슴에 꽂혔다. 나는 불쌍한 얼굴로 왕을 쳐다봤다 작게 혀를 찬 왕이 바로 뒤에 서 있는 귀부인을 불렀다.

“피오나, 이 녀석을 교육시켜라. 나는 집무실로 가겠다."

"예 폐하.”

귀부인에게 나를 떠맡긴 왕은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그 뒤를 배 나온 아저씨들이 우르르 따라가면서 부인과 나만 덜렁 남았다.

귀부인은 둥근 얼굴과 통통한 볼 때문에 굉장히 인자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사람 이 일할 때는 더 까다로웠다.

‘전에 얼핏 봤을 때도 굉장히 깐깐해 보였지.'

예전에 세스에게 백합 궁엔 남자가 물어올 수 없다고 따졌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나를 찬찬히 관찰하던 귀부인이 입을 열었다.

“나는 백합 궁의 시녀장이자 의장관인 피오나입니다. 앞으로 날 시녀장이라고 부르세요. 당신은 내 관리 하에 의상부의 일을 맡게 될 겁니다. 질문이 있나요?"

원래의 나라면 의장관은 뭔지, 의상부의 일은 뭔지 몰라서 허둥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예상한 세스가 미리 꼼꼼히 알려 줬다.

"왕의 수석 시녀를 의장관이라고 불러.”

”의장관이요?"

"왕의 옷과 보석 그리고 내궁의 예산을 관리하는 사람이야. 지금의 의장관은 피오나인데, 당신은 그녀의 일을 돕게 될 거야.”

“전 옷이나 보석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돈 계산은 자신 있어요.”

“안타깝지만 그건 아카데미를 졸업한 회계사들에게 맡겨져 당신에겐 아마 폐하의 옷을 관리하는 일이 주어지겠지.”

좋아. 여기까지 전부 세스의 예상대로다.

“아뇨, 질문은 없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피오나의 눈에 의외라는 빛이 스쳤다.

“한 가지 더 말해 두자면 당신은 폐하의 배려로 중급 시녀가 되었습니다. 폐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일하세요.”

“네, 네에"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얼떨떨하게 답했다.

왕궁의 시녀는 철저하게 신분을 따른다.

하급 시녀는 일반적인 귀족의 딸.

중급 시녀는 대귀족의 딸.

상급 시녀는 대귀족의 부인만 될 수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하급 시녀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스가 손을 쓴 건가?' 아니면 정말 왕의 배님일 수도 있었다. 내가 다른 시녀들에게 치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시녀장님.”

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말하자 피오나가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좋아요, 이제 앞으로 일할 곳을 둘러보죠.”

좋았어. 세스 덕에 똘똘한 이미지를 얻은 것 같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피오나의 뒤를 따라갔다.

* * *

의상부의 일은 매우 간단했다.

왕이 원하는 옷과 보석을 체크한 카탈로그가 의상부에 도착한다. 카탈로그를 보고 체크된 옷과 보석을 꺼내서 왕의 침실로 가져간다. 침실부 시녀들에게 가져 온 것을 준다.

왕이 옷을 벗으면 침실부 시녀들이 의상부로 가지고 온다. 의상부 시녀들은 모든 물건이 다 돌아왔는지 확인한 후 보관한다.

‘어 ,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야!'

왕이 무슨 옷 가져오라고 말하면 그냥 들은 사람이 가져와서 입히면 되잖아. 왜 듣는 사람 따로, 갖고 오 는 사람 따로, 입히는 사람이 따로 있어?

충격에 빠져 있는 내게 피오나가 말했다.

“내일부터는 카탈로그를 보고 옷과 보석을 가져오는 일올 배울 겁니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내가 옆에서 봐 주겠습니다. 질문이 있나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던 나는 멈칫했다.

“저, 침실부에 옷과 보석을 가져다준 후엔 무슨 일을 하나요?“

설마 옷이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마침 그걸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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