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뭘 참고로 한다는 건지 궁금했지만 다음 작업에 필 요한 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을 덮은 흰 천이었다.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옆에 펼쳐 놓고 물었다.
“저, 근데 뭘 알고 싶으신 거예요?”
“물건을 숨긴 곳과 그걸 거래하는 사람.”
“물건이요?”
"불법으로 유통되는 마나석이야."
불법 노예에 불법 마나석까지. 이 배는 불법 전문 밀 수선인 모양이다.
정체가 드러나자 무릎 꿇고 있던 지들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세스 뒤에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검집을 휘둘렀다. 둘은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기절했다.
“와!”
반사적으로 박수를 치려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손을 내렸다.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불법적인 일을 하시는 분은 아니죠?”
아무리 먹고사는 게 중요해도 범죄를 돕고 싶진 않았다.
내 물음에 세스의 부하들이 움찔하며 분노를 드러냈다. 반면 세스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놈들을 처벌하는 쪽이지.”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뒤에 있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요. 나는 따끔따끔한 시선을 모른 척하며 상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일이나해야지.
장갑을 벗은 나는 축은 척하고 있는 상인의 뺨을 후려쳤다. 사흘 굶은 내가 쳐 봤자 별로 아프진 않겠지 만, 화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 능력은 냉정함을 잃을 때 더 잘 통하니까.
철썩-!
찰진 소리와 함께 두꺼운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양손으로 놈의 목을 곽 짓누르며 물었다.
“물건은 어디 있어 ?”
“이, 이년이!”
분노를 참지 못한 상인이 눈을 뜨고 나를 노려봤다. 그 순간, 놈의 몸에서 검은 것이 꿀렁꿀렁 흘러나와 내 손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나는 놈의 반대쪽 뺨을 후려갈기며 다시 말했다.
“숨겨 둔 물건 어디에 있냐고. 빨리 말해!”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것이 내 팔을 타고 올라 왔다. 눈앞이 핑 돌면서 구역질이 났지만 억지로 눌러 참았다.
이 검은 것들은 내 눈에만 보이는 환상이다. 기분은 더러워도 죽진 않는다.
나는 한 손을 뻗어 바닥에 놓인 천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내 몸 위를 기어 다니던 것들이 빠르게 천위로 이동했다 참시 후 그것들은 제멋대로 휘갈긴 검은 글자로 변했다.
접촉한 상대의 생각을 빨아들여 천이나 종이에 옮기는 것.
이것이 내 능력이었다. 이런저런 제약이 있지만 정보를 빼내는 것엔 꽤 유용했다.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천을 살폈다. 대부분은 쓸데없는 내용이었지만 꼭 필요한 정보도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읽었다.
“선창 아래의 비밀 공간? 비밀 공간은 어떻게 열어?”
“······뭐 , 뭐?"
상인이 콩만 한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봤다. 당황 할수록 그의 생각은 더 빠르게 흘러나왔다. 나는 일부러 천을 들어 올려 그에게 보여 주었다. 자선의 생각이 고스란히 천에 적히는 것을 본 그는 겁을 먹고 버둥거렸다.
“이 마녀! 악마 같은 년! 날 놓아줘!”
“너와 거래하는 자들은 누구야?"
“안 돼! 안 돼! 아아악!"
천에 새겨지는 이름을 본 상인은 혀를 물어 죽으려 했다. 하지만 내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놈의 턱을 후려 치고 천 뭉치 같은 것을 입에 밀어 넣었다.
“읍으읍!”
나는 그들과 어디서 만났는지, 어떤 방법으로 거래 했는지 꼼꼼히 물었다. 그다음, 알아낸 사실을 하나하나 읽어서 빠진 게 있는지 확인했다. 일련의 작업이 끝나자 상인은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축 늘어졌다.
‘그러게 왜 범죄에 손을 대서는······.’
나는 그를 외면하고 천을 챙겨 일어났다. 세스 쪽으로 돌아서자 나를 경계 중인 남자들이 보였다. 그들이 내뿜는 적의에 갑자기 현실이 느껴졌다.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거잖아 무슨 반응을 기대한 거야'
갓 태어난 나를 씻긴 유모는 천에 새겨지는 글자에 놀라 날 집어 던졌다. 떨어진 곳이 침대가 아니었다면 그때 죽었을 것이다.
부모는 내게 악마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은 악마가 그들에게 옮겨 붙을까 봐 무서워서였다. 그들은 나를 지하실에 가두고 잊으려 애썼다.
피 섞인 가족도 그랬는데, 남이 나를 좋게 봐줄 리가 없었다.
나는 차마 세스를 바라보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반응을 확인하는 게 무서웠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결국 천을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여기 적힌 정보는 진짜예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거기 서.”
나직한 목소리에 몸이 우뚝 멈춰 버렸다.
아니, 서란다고 진짜 서냐? 스스로에게 어이없어하는 사이 세스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내가 당신을 언짢게 했나?"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불쾌감을 감추고 있는 걸까? 왜? 내 능력이 탐나서?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이비?"
뺨으로 다가오는 손을 느낀 나는 화들짝 놀라 피했다. 멈칫한 세스가 나를 살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정말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 혐오하지 않는 거야?'
나를 응시하는 눈이, 만지려던 손이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능력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나는 동요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가 문제인지 말해 봐.”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인 나는 실토했다.
“제 능력을 보고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요.”
"왜? 내가 시킨 일이잖아?"
"보통은 싫어하니까."
나는 소심하게 웅얼거렸다.
잠시 침묵하던 세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부하들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너희와는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
“악!”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른 나는 세스를 붙들었다.
"왜 그래요! 제가 고자질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내 능력을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데 그런 걸로 혼내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힐 거다.
입사 첫날에 선배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신입이라니. 업계의 전설로 남을 게 분명하다.
하지 마, 하지 마하고 울먹이는 나를 보던 세스가 작게 웃었다.
“당신이 원하니 이번만큼은 고냥 넘어갈까.”
“진짜? 진짜죠?"
“그래. 나 때문에 고생한 사람을 고자질쟁이로 만들 순 없으니까.”
확답을 받은 나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몸이 휘청거렸다. 비틀거리는 나를 세스가 가볍게 안아 올렸다. 놀란 나는 파드득 몸을 떨었다.
“가만히 있어 그렇게 설쳤으니 어지러운 게 당연하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입을 삐쭉이며 노려보자 세스가 조심스럽게 나를 다독였다.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시원한 바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기운 없이 허덕이던 몸이 확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 이거…….”
”쉿.“
놀라서 중얼대는 나를 세스가 막았다. 나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내 몸이 회복된 건 그의 능력인 것 같았다.
‘초능력인가?'
미남이라서 영험하게 생긴 게 아니었구나.
신기해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스의 부하가 툭 튀어나왔다.
“주, 주군 제가 대신 옮기겠습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내밀었다. 사무실을 청소 하는 사장님을 본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사장님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저, 저 혼자 걸을 수 있어요!”
버둥거리는 나를 고쳐 안아 든 세스가 부하를 노려봤다.
“다가오는 것도 무서워하는 주제에 나서지 마라.”
움찔한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아니, 왜 회를 내고 그래. 나만 미움받잖아!'
원망스럽게 쳐다봤지만 세스는 모른 척했다. 아무래도 내려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시무룩해진 나는 좀 더 편하게 그에게 기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몸이나 챙겨야지.
“모리스, 책임지고 이곳을 정리해라.”
세스의 명령에 나와 함께 상인을 두들겨 팼던 남자가 예를 표했다.
나는 모리스를 쳐다봤다. 남을 같이 팬 것도 인연이 라고 묘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내 시선을 눈치챈 세스가 미간을 좁혔다.
“모리스에게 할 말이라도 있나?"
“아뇨. 직장 선배님이니까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나는 소곤소곤 속삭였다. 그에 멈칫한 세스가 곧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반용에 조금 불안해 져서 물었다.
“저 고용된 거 맞죠?"
"왜? 갑자기 후회돼?"
“아, 아뇨.”
후회는 안 되는데 걱정은 된다. 범죄지들· 잡으러 다니는 일올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다들 체력 좋아 보이 던데, 짐이 될 것 같았다. 문을 열기 위해 나를 가볍게 한 팔로 드는 세스를 보자 더욱 불안해졌다. 아까 보니 쇠도 막 손으로 잡아 뜯던데, 그게 여기 평균은 아니겠지. 사무 보조 같은 일도 있기를 빌어야겠다.
“주군.”
선실 밖으로 나온 세스를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반겼다. 반사적으로 움츠러든 나를 다독거린 세스가 물었다.
“정리는 끝났나?"
"예. 깨끗이 치웠습니다."
순종적으로 대답한 남지들이 나를 힐끗 쳐다봤다.
‘저건 뭔데 우리 주군 품에 안겨 있지?'라는 시선이었다.
죄송합니다. 신입입니다. 일 다 마치고 쓰러진 거니 좀 봐주세요.
주녹이 든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나를 가리듯 이 몸을 돌린 세스가 명령했다.
“모리스를 도와서 증거를 수집하고 나머지를 정리해라 난 먼저 돌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