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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그 너머에는-108화 (108/140)

108화. And morning comes……. (2)

“왜 그래?”

진혁이 놀란 얼굴로 묻자 어쩐지 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결국 큰 눈 한가득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희나를 보고 그는 걱정하는 기색이 되었다.

“아파서 그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우는데?”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도 몰라서 희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섬세한 손가락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자 감정이 물밀듯이 몰려와 터질 것 같다.

희나는 진혁의 목에 와락 매달린 채 얼굴을 묻었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고 감정 기복에 시달리는 건 자신이 변했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성인이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비로소 소녀가 아닌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제 오늘 전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은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충만한 행복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깊이 이어져 사랑하는 남자의 여자가 된 거다.

희나는 만족해하는 진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다 주었어. 나의 모든 것을 주어서 선생님의 일부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줄 수 있어.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어?”

“너무 좋아서 막 눈물이 나.”

“……바보가 그런 걸로 왜 울어.”

내용은 핀잔이었지만 말투는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각이 기분 좋다. 진혁은 고백을 받은 탓인지 흰 얼굴을 살짝 붉힌 채 한쪽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까 서글프던 감정이 그새 샥 가시고 발가락이 간질간질하고 몸이 뜨끈뜨끈하다.

희나는 입가를 올린 채 단단한 목덜미에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볐다. 이번엔 만족감의 표출이었으나 진혁은 그 행동을 눈물을 닦는 거라고 오해한 듯했다.

“어릴 땐 잘 안 울더니. 왜 이렇게 울보가 됐지.”

“이제 안 울어요.”

고개를 숙여서 헤헤, 웃고 있는 희나를 확인한 진혁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막 울다가 또 웃네.”

희나는 볼을 꼬집는 진혁의 팔을 떼어내고 그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진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선생님, 이제는 진짜 나 모른 척하면 절대 안 돼요.”

“너야말로 다른 사람한테 가지 마.”

같은 내용을 먼저 말한 주제에 희나는 깜짝 놀랐다. 항상 물러서기만 했던 그에게서 이런 말은 처음 듣는 것 같다.

희나는 힘을 주어 끌어안는 진혁의 얼굴을 곱게 째려보며 새침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 만나는 게 더 좋다더니.”

“이제 내 거잖아.”

그 말을 하며 진혁은 생긋 웃었다.

희나는 아마도 평생 이 순간 진혁의 표정은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투덜거렸다.

“뭐야, 내 거 니 거가 어딨어요.”

“여기 있지.”

둘은 그렇게 누가 엿들으면 기관총을 난사하고 싶어질 유치한 투닥거림을 한동안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서슴없이 떠올라 완연한 아침이 되었다.

밝아진 창 쪽을 쳐다보면서 진혁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좀 있으면 어머니가 식사하라고 부르실 텐데.”

“그러게요. 나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자고 가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하긴 이미 뽀뽀하다가 걸린 것도 수차례인데 새삼스럽다.

해가 떠오르자 일어날 기분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나른함이 한층 배가되었다.

“지금 몇 시예요?”

일어날 기력은 없었지만 희나는 그렇게 물었다. 진혁이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7시.” 하고 짧게 대답했다. 희나는 예쁜 이마를 마구 찡그렸다.

“왜 그래?”

“힝. 벌써 일어나야 되네.”

“웬일로 게으름을 부려? 많이 피곤해?”

늘 먼저 깨어나서 활발하게 움직이던 희나가 투정을 부리자 진혁이 의외란 듯 묻다가 곧 염려하는 표정이 되었다. 처음인데 무리하게 해버려서 가책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나도 안 피곤해요. 그냥 움직이기 싫은 거예요.”

희나는 진심으로 부정했다. 몸이 불편하긴 해도, 얻어맞으면서도 아르바이트는 꼬박꼬박 가던 몸인데 이 정도 통증은 통증 축에도 못 낀다.

일어나기 싫은 건 그저 몸을 두른 팔을 벗어나기 싫어서일 뿐이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 이 몸을 그냥 꼭 두른 채로 안 떨어지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 이렇게 있고 싶어.”

잔잔하게 말한 진혁은 곧 빨개져서 숙이려는 희나의 얼굴을 잡고 입술을 머금었다. 짧게 끝난 아까와 달리 희나의 호흡이 가빠질 때까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자극해오는 진혁의 움직임에 간밤의 쾌감을 기억하는 희나의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진혁의 팔이 파고들어 오며 둘의 몸 사이를 가르고 있던 이불을 치워냈다. 희나는 탄력 있는 진혁의 맨살에 닿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흥분으로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래도 좋았다.

희나가 그의 향기를 만끽하려는 순간이었다.

밀착한 배 부분에 커다란 것이 닿았다. 당황해서 움찔한 희나가 진혁을 올려보자, 그가 협탁 쪽을 눈짓하며 능글맞게 말했다.

“하나만 더 쓸까?”

“변태, 변태! 이제 좀 있으면 일해야 되잖아요!”

“빨리 하면…….”

“말도 안 돼! 얼른 어머니 나오시기 전에 옷이나 입어요.”

진혁이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희나는 굳건했다.

어젯밤에는 막걸리도 마셨고, 어둠과 분위기에 휩쓸려 어떻게든 흘러갔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안길 자신 같은 거 전혀 없다. 밝은 곳에서 알몸을 보인다는 생각만 해도 이불 킥이 절로 나오는걸. 거기다 선생님의 알몸을 본다면 코피라도 흘려버릴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희나는 몸을 슥 일으키는 진혁을 보고 경악했다.

“꺄아! 일어나지 마요!”

“둘 중에 하나는 일어나야 옷을 입지.”

몸에 감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리고 잘 빠진 진혁의 몸이 드러났다. 다행히 알몸으로 침대 밖으로 나가진 않고 발치에 떨어진 옷을 줍고 있어서 하반신은 보이지 않았다.

흥분으로 얼굴이 폭발할 지경이면서도 희나는 눈을 감지 않고 진혁을 훔쳐보았다. 균형이 잘 잡힌 바디라인은 그야말로 매력적이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침을 꿀꺽 삼키며 희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장골 위쪽의,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흉터에 시선이 멈췄다.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진혁이 살짝 이불을 세워 허리께를 가렸다.

“보면 안 돼요?”

“응? 뭘?”

진혁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희나는 팔을 뻗어 진혁의 허리를 감은 이불을 살짝 내렸다.

희나가 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혁은 그녀가 드러난 흉터를 살짝 찌르자 픽 웃었다.

“뭘 보는 건가 했더니.”

“찌르면 아파요?”

“벌써 10년이 넘었는걸.”

희나가 손가락으로 상흔을 훑자 진혁이 간지러운 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으려니 진혁이 나직이 물었다.

“징그럽지?”

희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진짜 농담 안 하고 하나도 안 징그럽다. 대체 콩깍지가 어떻게 씐 건지, 흉터가 무슨 패션 문신보다 멋지게 보인다.

흉터의 선을 만지작거리는 희나의 손놀림에 진혁이 킥킥 웃었다.

“이제 그만해, 간지러우니까.”

“에이, 더 보고 싶은데.”

희나의 손을 떼어내고 진혁은 좀 전처럼 이불을 세워 흉터를 가렸다. 툴툴거리는 희나를 내려 보는 눈가에 살짝 색기가 깃들어 있었다.

“자기는 다 봐놓고 왜 나는 안 돼요?”

“그럼 아예 서로 이불 들추기 할까?”

“안 해요!”

진혁이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희나는 목숨처럼 이불을 붙잡고 매달렸다. 그런 희나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혁은 그녀에게 몇 번 입을 맞춘 후 옷을 집어 들었다.

희나가 시선을 돌린 사이 옷을 다 입은 진혁은, 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희나의 옷들을 집어 주려고 손을 뻗었다.

알몸 위에 시트를 둘둘 감은 채 그가 옷가지를 배달해주길 기다리던 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옷가지들 틈 사이로 비죽이 나온 연분홍색 속옷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린애 같은 토끼 브라. 절대 진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희나가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일어나자 진혁이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줄 테니 누워 있어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옷 내버려 둬요!”

그러나 진혁의 손은 이미 같이 벗어던진 후드와 함께 브라를 집어 든 후였다.

브라에 그려진 당근처럼 얼굴이 빨개진 희나는 전광석화처럼 덤벼들어 옷을 잡아챈 후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왜 그래?”

“소, 속옷 보이기 창피하단 말이에요.”

“귀여운데, 왜.”

“봤어요?”

“벗기면서 다 봤지.”

이불 속에서 고개를 획 빼들고 묻는 희나의 얼굴이 그야말로 토끼 같았다. 이미 보여버렸다는 생각에 흐물흐물 녹아버린 희나를 진혁이 찌르며 토닥였다.

“뭘 부끄러워해? 보면 좀 어때서.”

“하필 오늘 토끼 속옷 입었단 말이에요. 힝.”

“토끼가 그려져 있었나?”

“……봤다면서요?”

“그거 볼 정신은 없었는데.”

브라에 토끼가 대문짝만 하게 뒤덮인 디자인이라 못 보기가 힘들었을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희나를 보며 진혁이 음흉하게 씩 웃었다.

“그 안쪽이 신경 쓰여서.”

“이이익, 호색한. 장난치지 마요!”

“그만 침울해하고 옷 입어. 안 입으면 덮칠 거야.”

그러면서 진혁이 이불 빼앗는 시늉을 하자 희나는 기겁해서 후다닥 옷을 걸쳤다. 그러나 옷을 다 입고도 둘은 침대에 앉은 채 꾸물거리다 도로 엉겨 붙었다.

두 사람은 “이러지 말고 나가야 되는데.”를 번갈아 가면서 몇 번이나 중얼거렸지만 빈틈없이 서로를 휘감은 팔은 풀릴 줄 몰랐다.

진혁이 ‘나가야 되는데’를 중얼거릴 차례가 되었지만 그는 대신 희나의 작은 머리에 얼굴을 비비며 한숨처럼 말을 토해냈다.

“아, 나가기 싫어.”

이렇게 뭔가를 미뤄대는 진혁도,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표현하는 진혁도 처음이었다.

희나는 중요한 건 이제 없다고 쓸쓸하게 말하던 진혁을 떠올리고는 그를 올려보았다. 단정한 얼굴 가득 행복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시큰해지는 눈시울을 달래려 눈을 감고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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